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357화
고등학생 류재관은 숨을 참았다.
그들이 섬뜩하도록 이목구비가 완벽한, 이자헌이란 이름의 연구원을 따라 세광특별시를 이동한 지가 벌써 몇 시간째였다.
…자신을 구해준 요원이, 역사의 콘크리트 더미 아래로 사라진 것도, 몇 시간째였고 말이다.
-요원님!
그 충격이 아직 남아 있었으나, 방금 충격적인 일은 다시금 일어났다.
“…….”
류재관은 눈앞의 지하 선로를 보았다.
방금, 저 통로에서 갑자기 나타난 종이로 사라진 요원님과 소통했었다.
대체 어떻게 가능했던 건지는 모르지만, 분명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종이가 튀어나왔었다….
안도감과 혼란스러움이 교차한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
“연구원 양반, 정말 이대로 대기하면 된다고?”
“예.”
사실 그들은 요원님이 남겼던 말에 따라, 지하철을 타고 최대한 중심에서 멀리 위치한 역으로 나가서 가까운 산길을 타고 나가려 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세광특별시의 끝, 산길의 너머로 접근하자…….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응시하지 마십시오.
…정신을 차리자, 두 사람은 연구원에게 들린 채로 산길에서 제법 떨어져 있었다.
기억나는 건 ‘아무것도 없다’라는 강력한 신호뿐이었다.
존재론적 공포.
그곳에 잠식될 뻔했던 정신이 심장을 미친 듯이 뛰게 만들었었다….
-목적지를 변경하겠습니다.
결국 그들은 연구원의 안내에 따라 새롭게 루트를 정비해 이곳으로 뚫고 온 것이다.
정비용 선로의 출입구.
비교적 세광역 인근이긴 했으나, 사람이 없는 역의 관계자용 선로만 있는 그곳은 황량했다.
그들은 스마트폰은 이미 다 꺼버렸고, 이상한 ‘행진’은 이곳이 아니라 시내 부근을 돌고 있었기에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연구원은, 이곳이 외부로의 출입구의 기능을 되찾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그 말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요원에게 쪽지가 오기까지 했고 말이다.
그러나 지금, 마지막 쪽지를 넣고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아직 답이 오지 않았다.
“흠.”
류재관은 아직도 안광이 죽지 않은 은하제 기자가 지하 선로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면서 이것저것 탐색하는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곧 어깨를 으쓱거리며 나온다.
침착하려 하지만 혼란스러워 보이는 눈이다.
“별다른 건 없어 보이는데.”
초조함이 발을 타고 올라온다.
그런데 그 순간.
…툭.
지하 선로의 출입구 허공에서 불쑥 무언가가 나타난다.
구둣발, 그리고 정장을 입은 긴 다리가 쑥 빠져나온다.
초자연적으로.
“…!!”
하체가 빠져나오고, 허리 위의 상반신이 빠져나온다. 그리고 드러나는….
얼굴.
“안녕하세요.”
“…….”
“다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요원이었다.
…콘크리트와 철근 더미에 깔려서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그 사람은, 말쑥한 차림, 말끔한 얼굴로 세 사람을 돌아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멀쩡하다.
순간 반가움과 동시에 안도감이 왈칵 솟아올랐으나….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요원이 다급히 그들의 어깨를 잡고 선로 안으로 보낸다.
“최대한 안전한 곳에 있어야 합니다. 일단 선로 안에 들어가 계세요. 거긴 지하철의 영역입니다.”
“아, 알겠습니다.”
류재관은 선로로 들어가며 뒤를 돌아보았다.
연구원과 요원이 옆에서 나누는 대화가 들린다.
무언가를 암시하는 듯한 내용이 의문을 부추긴다.
“노루 씨.”
“괜찮습니다. …‘우리’의 도움도 받았어요. 저는 준비가 됐습니다.”
무슨 준비를 말하시는 걸까.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정말 연구원의 말대로 바깥으로 나갔던 거라면, 다시 들어와도 되는 걸까?
어떻게 몇 시간 만에 이렇게 말끔해진 걸까?
하지만 그 모든 의문에 앞서서 요원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것처럼.
이미 모든 마음의 준비를 끝낸 듯이.
“가보겠습니다.”
구조요청자의 어깨를 한 번 더 두드린 요원은 이미 저편에 있다.
정장을 입은 인영이 선로 너머로 달려간다.
얼굴에는 처음 보는 가면을 어느새 쓰고 있다. 뿔이 달린 가면이다.
그 사람이 남긴 말이 귀에 남아 있었다.
“오늘이 다 가기 전에, 안전히 나가실 수 있을 겁니다.”
* * *
나는 앞으로 뛰었다.
시청을 향해.
[또다시 대단원의 막이 다가오나 봅니다. 친구, 달음박질로 가봅시다.]
주변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이제 세광역 주변에서 재난 문자 알림은 단 하나도 없었다.
사람들의 행진 소리만 울렸다.
아마도, 내가 열차에서 떨어졌을 때 보았던 ‘덩어리’가 만들어지고 있을 시점인 듯했다….
‘혹시 세광시청의 고치에서 그 덩어리가 태어나는 걸까.’
나는 고개를 들어서 시청을 응시했다.
…고치는 이제, 터무니없이부풀어오르며저게뭐야비정상적인비정상적이상해이상한모습으로부풀어생물재해!생물적재해가퍼지
[액션!]
…!
[요청했던 알람입니다. 친구! 노루 씨가 오늘의 목적지를 응시하면 즉시 알려달라고 했지요. 자, 우리의 주인공이 다시 뛸 준비를 마쳤습니다.]
‘…고마워.’
[내 기쁨이지요!]
나는 즉각 주머니 속에서 캔디 한 알을 꺼내 포장지를 까서 입에 넣었다.
노스텔지어 캔디.
내 몸과 머리가 깨끗하고 이지적인 상태를 되찾는다.
빠르게 녹지만 괜찮다.
‘계속 입에 넣으면 돼.’
주머니에 하나 가득 잡힌다.
백일몽 이사, 호유원의 전폭적인 협조를 받는다는 건 이런 뜻이었다.
-노루 님. 필요하신 게 있다면 뭐든 준비해 볼게요.
나는 호유원의 설득에 성공한 시점에서, 필요한 아이템을 모조리 백일몽 이사의 자본력을 통해 사들였다.
외부 존재의 빌어오지 않았기에, 세광특별시에서 쓸 수 있는 아이템들.
검증된 것들.
그건 어둠탐사기록에서 타인의 사용 사례와 효과를 읽었다는 뜻이 아니다.
내가 그간 직접 사용한 물건들을 의미한다.
이 이상하고 무서운 세상에서, 최선을 다해 고르고 부작용과 효과를 경험했던 그 모든 것들.
나는 이제 무엇이 효과적이고 이 상황에서 최대한 부작용 없이 쓰일지 알고 있다.
물어볼 사람들도 충분히 주변에 있다.
-응…. 노스텔지어 시리즈는… 통할걸요….
-그래. 출신이 같은 영험한 물건은 서로 영향을 주기 쉽지. 한쪽이 일방적으로 더 강력해도 말이야. 그 틈을 노려보는 건 괜찮을 거다.
준비해 온 아이템들이 주머니에서 덜그럭거린다. 물약 제조기가 들어 꽉 찬 인벤토리 문신 대신, 실제 주머니가 꽉 찬다.
그리고 허리춤에서는, 방울 소리가 울린다.
…최 요원의 장비였다.
서명 이후, 나를 언제 방해했냐는 듯이 최 요원은 무수한 ‘꿀팁’을 내게 쑤셔 넣듯이 전수했다. 머리가 아플 만큼 집요하고 확실한 속성 지도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것을 건넸다.
본인이 가진 요원용 아이템.
-도깨비감투에 넣어놓았던 방울이야. 누구한테 치성드린 것도 아닌데 자기 혼자 성질이 변했지.
-이걸 패용하고 있으면 삿된 걸 덜 마주치게 돼. 길가에서 ‘도를 믿으세요’ 외치는 분들 살짝 피해 가는 것처럼 그렇게.
-자, 시작할 때부터 차고 가야 하는 거야. 아끼다 훅 가는 거라고. 알았나, 포도?
나는 올곧게 나아간다.
방울의 도움인지 군중도, 기이한 시선도 나를 스쳐 간다.
하지만 이 방울만으로는 멸형급 재난의 중심에 도달할 순 없을 것이다.
그래서 다음 수단을 꺼낸다.
가장 결정적인 길잡이.
-종결 시도를 위해 영은 씨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뭐든 말하세요. 아니, 이번엔 제가 직접 들어가고 싶은데요.
오르골을 들으면 다들 미치니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영은 씨를 필사적으로 설득하는 동시에, 그 동기에게 부탁해서 하나의 아이템을 만들어냈다.
그간, 대단위 어둠에 빠질 때 몇 번이나 내 앞길을 비추고 일행을 보호해 줬던 물건.
-한 번 더, 부탁드립니다.
신비한 양초 키트.
이 사태와 원산지가 같은, 유쾌연구소의 제작 상품이었다.
명예, 치유, 명상, 상처, 거짓, 분노, 방해, 보호, 일격, 응시, 혼란, 꿈.
이 낱말 카드 중 세 장을 뽑아, 그 속성이 반영된 양초를 만드는 의식.
만드는 세 사람의 성향과 욕망이 강하게 반영된다.
그러니 고영은 씨만 한 적임자는 없었다.
종결을 향한 강한 목적의식을 가진 사람, 세광특별시의 관계자.
무엇보다 검증된 사람.
-당장 할까요?
이 동기는 이전에 눈먼 자들의 저택에서 ‘명예’를, 룩키마트에서 ‘혼란’을 뽑았었다.
그리고 지금 이 시점, 여정의 종착점에서 뽑아 든 카드는….
[응시]
확고한 목표 의식과 한 점을 찌르는 듯한 의지.
나는 감사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 낱말 카드는 본래 세 사람이 뽑아야 한다.
그리고 나는 다음 적임자를 알았다.
안전히 옥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안위를 우선하려는 목적성도 필요했기에.
-뭐, 뭔데요.
-해줄 일이 있어. 부탁할게.
백사헌.
생존에 대한 집착이 강렬한 그 백일몽 동기는, 결국 상담실에 와서 함께 카드를 뽑았었다.
[보호]
그 녀석이 처음에 뽑았던 카드가 ‘방해’였던 것을 떠올린다.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
백사헌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히 일을 마쳤다. 어쩐지 나를 관찰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그게 끝이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마지막 인원은 정해져 있었다.
이 양초가 필요한 당사자.
나.
“…….”
나는 카드를 뽑아 들었다.
이전에 ‘거짓’, ‘보호’를 뽑았던 내 손에 들린 것은….
[명상]
…선입견과 고통에서 벗어나, 세상을 성찰하려는 마음가짐.
“…….”
백일몽 동기였던 우리 셋은 이 양초를 처음 만들었을 때와 똑같은 인원이었다.
그러나 전혀 다른 키워드로 조합되었다.
그리하여 완성된 것이다.
[응시, 보호, 명상.]
종결에 대한 강렬한 목적의식.
자기 보호의 욕구.
그리고 실사용자의 성찰.
세 가지 요소가 합쳐지며, 잘 굳은 양초는 지금 시청을 향해 달리는 내 손에 달려 있었다.
“…….”
다만, 알고 있다.
※해당 완구는 현대 지구인의 피로를
풀기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안전을 위해 외계인, 타계인, 비지성체, 신, 그 외 모든 인간이 아닌
지성체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
…나는 처음부터 이 양초에 불을 붙일 수 없었다.
내가 잡으면 불은 꺼져버렸다.
이제는 안다.
‘사용 자격이 없던 게 맞아.’
스스로 다른 세상에서 왔으니 타계인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애초에, 사람이 아닌 몸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것조차도 제대로 몰랐어.’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이곳에 있는지 알지 못하기에 사용 자격을 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할 수 있다.
이제 알고 있었으니까.
‘나는….’
지금 타계인이 아니다.
최 요원이 의식에서 확인했듯이, 내 피와 살이 이곳에서 태어났으니까.
그리고 비지성체도, 신도, 인간이 아닌 지성체도 아니다.
사람으로서 살고 있으니까.
어둠을 탐사하면 꿈결이 추출되며, 스스로 김솔음이라고 정의하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아는 그 모든 진실에 의해.
또, 그 모든 진실에도 불구하고.
내가 스스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나는 사람이었다.
양초를 잡아 들었다.
기도자는 이 촛불을 들어 명상하려는 대상을 향해, 응시하는 권능을 힘입어,보호된 모습을 드러내야 합니다.
양초를 든 기도자에게 가호가 주어집니다.
어둠 속 탐구자.
불이 붙는다.
타오르는 양초의 불빛은 따스한 노란색이다. 어둠 속에서 홀로 타오르는 작은 빛.
그 빛이 비추는 길을 따라 나는 나아갈 수 있었다.
저 목적지를 향해서.
발을 옮긴다.
이제 내가 응시하는 것만이 올바르게 보인다. 주변의 환경은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다.
양초가 타오른다.
나는 맑은 정신으로, 다시금 뛰기 시작했다.
시청이 가까워진다.
불빛은 꺼질 듯이 흔들리고, 양초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빠르게 녹아내린다.
하지만 꺼지지 않았다.
나는 좁은 길을 달려 목적지로 향했다.
양초가 비추는 길을 따라 비상계단이 나타난다.
계단에는 녹아내린 상담사가 남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무너지지 않고 발걸음을 옮겨, 그때 상담사와 함께했던 것처럼 옥상으로 향했다.
작은 불빛이 타오른다.
그 모든 과정에서 망설임이 없었다.
여전히 희미하게 오르골 소리가 들렸으나 정말 이상하게도,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끼익.
다시 한번, 옥상 문을 연다.
옥상은 이미 바닥이 부풀어 올라 제 모습이 아닌 것 같았으나, 나에겐 오로지 꿈 배양기만이 보인다.
나는 직진했다.
발이 낯선 고치의 표면에 부딪히고, 또는 쓰러진 판넬 쓰레기를 친 듯했으나 개의치 않는다.
달려 나가서 꿈 배양기의 앞에 앉아, 한 손으로 침착하게 연결을 해제하기 시작한다.
양초를 든 손은 놓지 않았다.
한 손으로 빠르게 하기 위해 몇 시간이나 연습했다.
‘할 수 있어.’
하단에서 패널을 뜯어낸다.
전선을 뜯기 전에 스위치를 내려 동력을 차단하고, 그 후에 전선을 하나씩 분리한다.
‘빨리, 빨리.’
툭, 툭. 질긴 소리를 내며, 묵직한 선들이 떨어진다.
‘막 뜯으면 안 돼…!’
다시 연결이 가능하도록 분리해야 한다. 식은땀이 손바닥에 맺힌다.
그리고 마지막 선을 분리한 순간.
“…….”
배양기에 불이 꺼진다.
“…후,”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이제부터가 문제였다.
…양초를 잠시 내려놓아야만, 거대한 물약 제조기를 문신에서 꺼내서 무사히 설치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어차피 꺼야 한다고 가정하고, 계획해 둔 상태였다.
“흡.”
나는 숨을 들이켜고, 노스텔지어 캔디를 재빨리 새로 입에 넣으며 기존에 작아진 사탕을 뱉었다.
그리고 양초를 내려놓으며… 바로 문신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오르골 소리가 머릿속을 파고든다.
고치가 울렁인, 참아. 방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나는 이를 악물고 물약 제조기를 꺼내어 내려놓는다. 쿵. 나는 꺼놓은 꿈 배양기를 밀어서 치우…….
…….
잘 치워지지 않는다.
‘안 돼.’
나는 조금이라도 자리를만들기위해배양기를멜로디밀었다. 밀었다 밀치며 옆으로 쓰러트려…….
그리고 깨달았다.
[오 맙소사.]
꿈 배양기의 바닥은 고치와 연결되어 있었다.
아니, 꿈 배양기 바닥을 뚫고 내려간 무언가가 고치가 된 듯, 아예 기계의 뚫린 바닥 안으로 보이는 내부는 허옇게 오염되어 고치로 더덕더덕 붙어 있었다….
‘…괜찮아.’
이것도, 예상했던 시나리오 중 하나이다. 나는 침을 삼키며 반쯤 넘어진 꿈 배양기, 아니, 그 고치의 껍데기를 미는 것을 멈추고 고개를 물약 제조기로 다시,
지이이익.
…….
반사적으로 알았다.
고치가 찢어졌다.
어쩌면, 꿈 배양기가 멈추며… 거기서 공급되던 꿈결 용액이 끊겨서.
약해진 고치가, 내가 미는 힘에 살짝 찢긴 듯하다.
아주 약간.
자그만 틈.
“…….”
나는 노스텔지어 캔디를 다시 새로 갈았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그리고 양초를 잡아서 불을 붙이려다가….
멈췄다.
‘오히려 좋은 건가?’
멸형급 재난이 커질 동력 중 하나를 상실한 것 아닌가.
나는 즉각 다시 작업에 착수했다.
머리는 맑다.
‘고민할 시간 없어.’
배팅해야 할 때다. 나는 배양기를 내버려 둔 채, 전선을 끌어와서 물약 제조기에 연결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경계심을 가지고 인지했다.
옥상으로 부풀어 올랐던 고치가 꺼지고 있었다.
그 바닥의 실루엣이 드러난다.
“……!”
수많은 사람을 삼킨 실루엣.
내가 보았던 덩어리가, 그 밑에서….
종말이 왔다!
낙원이 있다!
우리는 실패했다!
캔디가 다 녹았다.
나는 다시 입에 처넣으며 계속했다.
종말이 왔다!
낙원이 있다!
우리는 실패했다!
가까워진다.
나는 일을 계속했다. 고치가 무너지며 내 발 아래에서 인간들이꿈틀꿈틀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나? 이게 무슨….
…….
뭔가 있다.
종말이 왔다!
낙원이 있다!
우리는 실패했다!
나는 넘어진 꿈 배양기를 다시 보았다.
그 바닥, 중앙에서 부풀어 오른 고치가 가라앉으며 드러난 것은….
한 사람의 실루엣이었다.
찢어진 고치의 틈으로 그것이 드러난다.
오르골을 품에 안은 것.
전신이 덩어리와 연결되어 기이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오르골 소리가 울린다. 끝없이 울린다.
종말이 왔다!
낙원이 있다!
우리는 실패했다!
고치와 연결되어 흘러내리는 그 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