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362화
안온하고 따스한 햇살이 황금빛으로 옥상을 물들인다.
여우상담실의 실내가 가진 고유의 요소.
분명 그 창밖에 아무것도 없을 텐데도, 항상 맑은 날의 부드러운 햇살이 커튼 너머로 비치는 곳.
내담자를 위해 준비된 공간.
달칵.
대기실 너머의 상담실 문이 활짝 열려 있다.
대기실과 달리, 저 안의 상담실은 보통 문이 닫혀 있었었다.
오직 상담을 진행할 때만, 혹은 상담사가 호명할 때만 그 사람에게 개방되었기에 나도 몇 번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여전하다.
후우우우-
커다란 창문 너머로 푸른 정원이 보이는, 부드러운 소파가 있는 안락한 공간.
여우구슬 열매가 맺히는 화분의 초록 잎사귀가 바람에 흔들린다.
그 모습을 나와 함께 지켜보던 상담사는 미소를 짓는다.
후련한 목소리로 말한다.
“거동이 어려우신 분들이 많으니, 상담실이 직접 마중을 나올 거예요.”
“…….”
“노루 님. 내담자분들께서 이제 입장하셔도 괜찮을까요?”
…….
“예.”
여우상담실의 전경이 옥상을 뒤덮는다.
찢어진 고치 안, 변이한 김솔음의 얼굴 위로 안온한 햇살이 닿는다.
이윽고 나는 고치 속에서 온전히 드러난다.
꺼내어진다.
그 상반신 아래 달라붙어 덩어리진 세광특별시의 시민들이, 수많은 인체의 왜곡된 형상들이 전부 여우상담실 안으로 부드럽게 포옹되듯이 들어간다.
숨겨진 장소, 노크를 해 방문하는, 오염된 자들을 위한 상담사의 작은 공간.
그 공간은 기꺼이 옥상 아래에 숨겨진 그 모든 왜곡된 것들을 방문자로 받았다.
아니.
이제부터 오래도록 함께할 내담자로.
…….
“어서 오세요.”
내 옆에,
상담사의 형상이 완전히 녹아내린다.
견딜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을 욱여넣은 포장지처럼, 찢어질 듯 물건이 꽉 찬 보자기처럼 안의 내용물 윤곽이 드러나듯 일그러지고 불룩거린다.
희미해진다.
‘나 외의 모든 괴담을 배척하는’ 고치 안 김솔음의 영향력을, 그것에 오염된 세광시 시민들의 덩어리를 그대로 삼킨 상담사의 괴담은 붕괴하고 있었다.
그 영향력을 견디지 못하고.
물에 희석되는 수채화 물감처럼 완전히 흐려진다….
“걱정하지 마세요.”
“…….”
“음, 다만 이제는… 기존 내담자분들을 받기 어려울 것 같아서 걱정이네요. 제가… 필요할 순간이 올 텐데.”
목소리가 흐려진다.
마치 더는 현실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처럼.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힘겹게 말했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귀를 기울인다.
“그간 상담받은 경험을 토대로, 다들 방법을 찾아낼 겁니다….”
“똑같은 말을 돌려주시네요.”
웃음소리가 들린다.
“맞아요. 그리고 저는 선택을 했으니, 기다려온 순간을 맞이하러 가보겠습니다.”
“…….”
“노루 님.”
옥상 가득 드리워진 상담실의 따스한 기운도, 마지막 세광특별시의 시민이 상담실로 들어가는 순간 사라지기 시작한다….
호유원이 나를 본다.
“안녕히 계세요.”
“…….”
“아니, 이 표현은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저희는 계속 함께 상담을 진행할 거니까요.”
“…….”
“단지 노루 님이 지금의 모습으로는 인지하지 못할 뿐이죠.”
나는 결국 입을 열었다.
“지금이라도 상담실에서 빼내면….”
“네?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하는 내담자를 포기하는 건 안 되죠. 설마 노루 님은 저를 그런 상담사로 보셨던 걸까요? 정말 슬프네요….”
나는 심호흡을 했다.
부드러운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사실 농담이에요.”
…….
“슬프지 않답니다.”
호유원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호유원의 첫 번째 내담자님, 그리고… 마지막 내담자님.”
“…….”
나도 마주 손을 내밀었다.
악수한다.
“감사합니다.”
호유원의 형상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손아귀 아래로 사라지는 상담사의 형상은 상담실 안으로 빨려 들어가 흩어지고….
이제, 여우 상담실의 문이 닫힌다.
스르륵 닫히는 문 사이로, 어쩌면, 어쩌면… 나는 발을 옮기는 작은 여우의 꼬리 형상을 본 것 같았다….
달칵.
옥상의 비상문이 부드럽게 잠겼다.
사방이 고요해졌다.
내가 단 문패는 평범한 목재 장식처럼 비상문이 닫히는 충격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
나는 그것을 양손으로 받았다.
어떤 신비도 느껴지지 않는 그 문패를.
여우상담실
(CLOSE)
뒷면으로 뒤집는다.
-장기 휴진-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
나는 고개를 들었다.
노을이 비춘다.
붉고 따스한 노란빛이, 마치 여우상담실의 햇살처럼 구름 틈에서 나와 옥상에 드리웠다.
망가진 꿈 배양기 위에, 작동을 멈추고 꺼진 물약 제조기 패널 위에….
텅 빈 고치의 안에.
“…….”
세광특별시.
5월 4일의 낮이 끝나고 있었다.
‘아.’
옥상 아래로 부서진 도로와 인도, 인적 없는 도시의 풍경이 보인다.
모든 게 급속히 낡아가고 있었다.
지난 몇 년의 세월이 그대로 쏟아지듯, 도시가 바깥의 시간을 따라잡는다.
그러나 오늘 이 도시에서 오염된 시민들은 세월의 흐름 안에서도 안전할 것이다.
다시 5월 4일에 갇혀서 죽음을 반복할 일 없이, 안전한 상태로 상담을 받고 있을 테니까.
그 순간을 간절히 기다려온 한 상담사에 의해.
한 여우에 의해.
“…….”
“노루 씨.”
나는 고개를 돌렸다.
옥상 문을 열고 나오는 도마뱀 머리의 인영이 보인다.
“과장님.”
얼굴 없는 연구원이었던 그 형상은 익숙한 이자헌 과장의 머리로 돌아와 있었다.
“돌아오셨군요.”
“예. 특별시 외부에서 기상 후 즉시 이동했습니다.”
아.
“…봉쇄가 완전히 풀리고 있는 거군요.”
“예. 현재 균열과 흠집이 발생하며 스무 곳 이상의 진입로가 존재합니다.”
이자헌 과장의 시선이 옥상 아래를 향한다.
“봉쇄는 곧 완전히 사라질 겁니다.”
…….
세광특별시는 그렇게 현실의 일부로 다시 편입될 것이다.
그리고….
‘종결이구나.’
마침내, 끝이었다.
도시의 해방이었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가 내쉬었다.
“……굉장히 빠르게 오셨는데, 우리의 도움을 받으셨습니까?”
“제가 우리입니다.”
그것도 돌아왔구나.
“하지만,”
나는 고개를 돌렸다.
도마뱀의 주둥이 양 끝이 살짝 올라가 있다.
“우리가 아닌 별개의 개체로 존재한 것은 독특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렇네요. …정말로.”
나는 리조트에 삼켜진 내 상태가 천천히 안정되어 가는 것을 느낀다.
녹아내리던 몸이 제 상태를 되찾는다.
그리고 나는, 플라워 골든 마스코트에 완전히 뒤덮였던 사람으로서의 정체성도 다시 되찾는다.
비대한 마스코트의 정체성과 압력에도 불구하고, 나의 정체성은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한다.
마치 누군가 내 상태를 관찰하고, 끊임없이 진정시켜주고 있는 것처럼.
광기가 투영되지 않는 착한 친구의 의식으로는 알 수 없더라도.
분명 지금도 나와 상담을 진행하고 있을 누군가를, 내가 인지하는 것처럼.
“독특한… 경험이었습니다.”
나는 여우상담실의 문패를 조심스럽게 품에 넣었다.
문신의 인벤토리 기능이 살아났다는 것을 알았으나, 사용하지 않았다…….
…….
안 돼.
‘너무 빠져들지 말자.’
나는 살았다.
누군가의 덕분에 회복되고 있다.
그걸 마음 깊이 실감하는 게 지금에 알맞은 태도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약간 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팀원분들은 괜찮으신가요? 대리님과 요원님 말입니다.”
“예. 해당 인원들은 모두 깨어나는 징후를 보였습니다.”
“……! 다행입니다.”
정말로, 다행이었다….
깊은 안도감이 퍼진다.
‘이제 리조트 2호점에서 사람들을 내보내 줘야겠지.’
물론 다들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마스코트로서 알고 있었다….
나는 방금까지 상담실 문패를 쥐고 있던 빈손을 꽉 쥐며 아래를 보았다.
내가 문패를 품에 넣는 것을 유심히 본 이자헌 과장이 묻는다.
“호 이사가 이곳에 도달했었습니까?”
“……예.”
나는 조용히 말했다.
“세광특별시 멸형급 초자연 재난은, 호유원이 종결시켰습니다.”
“…….”
“…….”
“그렇군요.”
도마뱀이 대답한다.
“그러나 호 이사가 이곳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은 노루 씨의 영향입니다.”
“…….”
“이 시도는 노루 씨의 선택과 노력을 통해 발생한, 극히 예외적인 어둠 종결 사례입니다.”
나는, 간신히 작게 대답했다.
“예.”
울컥거림을 삼킨다.
그리고 다시 차분한 목소리를 내려고 시도한다.
“저, 그리고 여우상담실은 이제 방문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주… 대규모의 내담자들을 받아서요. 문을 닫는다고 합니다. 기존의 진입 방식을 사용해도 이제 통하지 않을 거예요.”
아무리 문패를 걸고 열어도, 따스한 햇살이 비추는 여우상담실의 대기실이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군요. 기상했을 때 장기입원실이 아닌 외부 공간이었던 이유를 확인했습니다.”
“…네.”
그 와중에 원래 입원실에 ‘보관’하고 있던 내담자들을 다 내보냈구나.
이것 참.
“저, 호유원이 프로젝트 담당 이사로서는 그리 마음 편한 직속 상사는 아니었습니다만.”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담자한테는 정말 괜찮은 상담사였죠?”
…….
“예.”
바람이 머리를 쓸고 지나간다.
고치의 빈 껍질이 옥상에서 점점 부서지며 사라지고 있다.
직감한다.
이제 이 도시에서 나가면, 이 괴담은 이 자리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호 이사의 프로젝트는 끝이군요.”
나는 이자헌 과장을 돌아보며 말했다.
“책임자인 백일몽 임원도, 탐사할 어둠도 사라졌으니까요.”
“예.”
하지만 그 모든 게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아니….
모르겠다.
시원함인지 쓸쓸함인지 모를 슬픔이 아릿하게 마음속에서 퍼진다.
나는 좋은 것을 생각하려고 한다.
안도할 만한 것들을.
‘영은 씨의 부모님은 무사하실까.’
꼭 그랬으면 좋겠다. 아니, 지금 보니 영은 씨는 내가 게이트를 열어주자마자 리조트에서 뛰쳐나오셨다.
아마 즉각 부모님의 소재지를 찾아가고 계시겠지.
숨어 있던 사람들이 건물 곳곳에서 나오는 게 보인다.
다들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집으로.
…….
나는 이제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여기서 나가서 꿈결 용액이 무사히 추출되면, 그걸 통해서 ‘어린이용 낙원 시럽’을 만들면 집으로 갈 수 있는 걸까….
‘쓸 수 있는 꿈 배양기는 있어.’
그리고 나에겐 버튼이 될 그립톡이 있다.
작은 희망이 솟아난다.
[오, 희망이란 끝없이 샘솟는 원동력과 같지요. 축하합니다, 친구!]
…!
‘브라운!’
[마침 당신의 새롭게 개점할 리조트에 도착, 오, 내게 사전 입장권을 준비해뒀군요. 친구, 외눈 안경이 참 잘 어울리는 앙증맞은 모양새입니다.]
나는 어디선가 들리는 사회자의 구둣발 소리와, 그를 환영하며 이 저명인사를 위해 특별히 개인용 모노레일을 내주는 마스코트의 의사를 인지한다.
여기까지 나를 도운 존재를 향한 감사의 마음도.
‘…고마워.’
[내 기쁨이지요, 노루 씨!]
마음에 온화함이 깃든다.
신사 장갑을 낀 두 손이 가볍게 손바닥을 털어내며 모노레일에 오르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 요원들이 옥상에 도착하면, 나는 인계하고 여기서 떠나….
[자…. 친구.]
응?
[잊어버린 것을 떠올릴 때가 왔습니다.]
…….
잊어버린, 것?
[음. 지나치게 진지한 단어 같기도 하군요. 그렇지, 깜박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습니다!]
[마치 감정을 뒤흔드는 영화를 한 편 보고 나서, 그날의 저녁 약속을 깜박한 채 여운에 푹 젖어 귀가하는 상황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지하철에서 깨닫지요. ‘이런! 약속이 있었는데!’]
무슨 의미지?
[자, 감정적 클라이맥스가 지났으니 생각해봅시다.]
[지금의 이 엔딩 시점에서 당신에게 주어진 힌트들을 다시 되짚어보는 겁니다!]
…….
…….
“과장, 님.”
“예.”
“프로젝트가 끝나는 것… 말입니다.”
“예.”
…….
“그럼, 프로젝트 직원들은 지금 회사에서, 직무도 소속도 없는 상태가 되는 겁니까?”
그렇다면.
“원래 하던 일로… 복귀해야, 하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