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363화
“최씨! 최 요원!”
최 요원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는 마스코트들이 한 때 지하철 정비용 선로였던 산책로에 게이트를 만드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열린 게이트 앞에 현수막을 설치하는 마스코트들을 보았다.
축
게이트 개방
그들은 불 들어오자마자 당장 달려 나가는 고영은에게 ‘얼리액세스 기념 선물’이라며 기념품 상점에서 판매하는 지도를 선물했고 말이다.
황금지도 스케치북
플라워 골든 리조트 2호점의 기념품 상점에서 입수할 수 있는 지도 아이템.
스케치북의 형태로, 빈 종이를 펼쳐놓고 걸을 시 소지자의 위치에서 목적지까지의 대략적인 약도가 낙서처럼 표기된다.
해당 낙서가 마스코트의 필기체와 유사하다는 증언이 있음.
마스코트의 본체가 읽는 모 위키라면 해당 설명이 붙었을 만한 아이템이었다.
“…! 가, 감사합니다.”
고영은은 짧고 굵은 감사를 남기고 게이트를 뛰쳐나가 세광특별시로 가버렸다.
가족을 찾기 위해.
가장 놀라운 점은….
“왜 안 말리는 걸까.”
……마스코트들이, 그녀를 말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소 걱정이 되는 듯이 뚫어져라 그 뒷모습을 보면서도, 양손을 흔들거나 직책에 따라서 허리를 숙여 배꼽인사를 한다.
세광특별시로 향하는 것을 말리지 않는다.
그것은….
“…끝났어?”
…….
“네가 하려던 일이 끝난 거구나. …그래.”
최 요원의 말을 마스코트들이 가만히 멈춰서 듣고 있다.
풀 죽거나, 혼란 없이.
그래서 그들은 확신한다.
저 바깥의 초자연 재난이 멈춘 것이다.
종결인지 일시적 봉인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세광특별시는 나가기만 해도 인간이 미치거나 죽는 멸형급 재난의 소산물이 아니라, 비교적 안전한 비활성화 상태인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 짓을 해낸 녀석은 무사할까?’
추측도 예측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체 어떤 방법이 어떻게 통한 건지 알 수 없으니까.
해금 요원은 어느새 사라진 백일몽의 이사를 떠올린다.
대체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이 요원의 머릿속에서, 그리고 아마도 최씨 녀석의 머릿속에서 그리 좋지 않은 예감으로 떠오르는 문장이었다.
그리고 해금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최 씨 녀석이 당장 세광특별시로 쫓아 나갈지.
아니면 바깥으로 나가서, 봉쇄 의식의 진행 여부를 파악하려 들지.
그리고 어느 쪽이든 해금 본인도 선택해야 한다는 건 자명했다.
“막지 않는 겁니까?”
이전 고용주에 대한 예의로서 마스코트에게 존댓말로 묻자, 보급형 마스코트들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래.
해금 요원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누님?”
“같이 세광특별시로 나가보지.”
“…….”
“아무래도 사태가 심상치 않으니, 사태의 근원지부터 당장 확인….”
“누님.”
최 요원이 피식 웃는다.
“내가 재봉쇄 의식에 끼어들어서 원래 계획대로 움직일까 봐 그러시는 거지?”
“…….”
“에이, 그러시면 안 되는데. 우리 요원이잖습니까. 시민들 목숨을 먼저 생각해야지….”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세광역 근처로 이어진 게이트를 힐끗 보는 최 요원의 눈빛을 해금 요원은 안다.
“최가 녀석아.”
그 모습을 묵묵히 보던 이 팀장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 목숨 여럿이 하나보다 귀하냐?”
“예?”
“사람은 다 똑같이 귀한 거다.”
“…!”
“숫자가 많고 적음을 보는 게 합리적이라는 건 안다. 하지만 너무 거기에 매몰되지 마라.”
너에 대해서도. 포도 요원에 대해서도.
“…….”
최 요원의 눈빛이 순간 흐려졌다가 다시 또렷해진다.
“그건….”
그 순간이었다.
♩♪♬♬~♩♬♬~♩♪♪
저 멀리서 열차가 진입하는 소리가 들린다.
정확히는 플라워 골든 리조트의 귀여운 모노레일이다.
많이 들어본 소리였다. 여기 앉아 있으면서 시범 운행하는 모노레일이 여러 번 지나갔으니까.
이번에도 대충 인지하고 넘어갔을 만한 일이었다.
그런데….
두 요원 모두 순간 굳었다.
“…….”
“뭐가, 제대로 된 게 온 것 같은데요. 누님.”
그렇다.
피부의 땀샘이 오그라드는 듯한 느낌.
버려진 산속에서 홀로 우두커니 서 있는, 빨간 천이 묶인 장승을 만났을 때 느낄 감각.
섬찟한 위기의식, 초자연 재난에 대한 육감이 두 요원의 뇌를 찌른다.
그리고….
♩♪♬♬~♩♬♬~♩♪♪
열차가 이곳에 정차한다.
두 요원은 서로 말도 꺼내지 않은 채, 단번에 아래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단히 조심스럽고 빠르게.
산책로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자…. 목소리가 들린다.
[이런, 고맙습니다!]
악센트가 위트있게 도드라지는, 매력적인 남성의 목소리였다.
귀에 꽂히는 듯한 명료함.
기분이 좋아지는 운율감.
그리고….
[하하, 모노레일 시티 스테이션에 도착하기 전에 잠깐 산책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해서 말입니다.]
[오, 이런 잠시간의 유예는 마치 핫초콜릿 위 시나몬 파우더와 같지 않습니까? 혀와 목에 초콜릿이 닿기 전에 먼저 코를 자극해 기대감을 부추기는, 일종의 전채요리지요.]
유려한 말투.
“…….”
발을 멈춘 두 요원은, 정차한 모노레일 열차를 본다.
기존에 다니던 것과 유사하게 둥그렇고 정교한 형태였으나 묘하게 장식이 달랐다.
가령 머리 부근의 골든 마스코트 장식은 빨간 보타이를 하고 있으며, 네온사인 같은 간판이 반짝인다.
그리고 열차 문이 열린다.
전체적으로 약간 더 고풍스럽고 격식 있는 뉘앙스의 목재 내부가 정원에서 쏟아지는 광원에 드러나며….
열차 입구에는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리고.
[흐음, 선객이 있군요.]
그림자 속에서 누군가 내린다.
윤이 나는 새카만 남성 구두.
고전적인 그 형식 위로 먼지 한 점 묻지 않은 질 좋은 정장을 걸친 다리가 쑥 빠져나온다.
그것을 타고 빛이 쭉 올라가, 그 전신이 드러난다….
그 몸은 전선이요 빛이요 어둠이요 진공관 전자의 흐름 명암 깔깔대는 웃음소리 박수 환호 눈물 반짝이는 꽃가루 밴드사운드 고전적인 간판 관객의 환호성
브라운관 TV 머리가 그들을 본다.
“…!”
[이런, 광과민성이 있는 시청자를 위한 주의문구가 필요한 상황이었나요? 하하하, 반갑습니다….]
열차에서 내린 거대한 형체.
맵시 있는 정장 끝, 장갑을 낀 단단한 손이 앞으로 손을 내민다.
[지나친 감격으로 몸이 굳었나 보군요. 괜찮습니다!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너무 아쉽지 않겠습니까?]
“…….”
심상치 않은 발언이었다.
최 요원이 그것의 장갑 낀 손을 잡았다.
[오, 용기를 냈군요. 아주 좋습니다!]
가죽 너머로까지 체온이 전해진다.
최 요원은 자신이 팀 막내 후배가 느꼈던 어느 날의 소름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는 줄은 몰랐으리라….
그 다음 말에도.
[내 소개를 해야겠군요. 그게 예의겠지요! 심야토크쇼의 사회자, 브라운입니다.]
브라운.
토크쇼 사회자.
들어본 호칭.
그건….
“…혹시,”
최 요원의 입가가 경련한다.
“…토끼 인형과,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
…….
[눈치챘군요.]
구형 TV 머리가 아래로 굽어 내려다본다.
[하하, 오, 우리는 구면이지 않습니까? 작은 봉제 인형의 모습으로 만났던 적이 있지요.]
…!!
[음, 대접이 초라했다고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모든 시청자가 부유할 수는 없지요.]
[당신들이 성의를 다해 작은 봉제 인형의 자리를 마련해 주었으니, 나 역시 성의껏 그 자리를 즐겼습니다. 다만….]
사회자의 유려하던 목소리가 끊긴다.
[핑크라니.]
최 요원은 식은땀을 흘리며 생각했다.
[그 짓궂은 호칭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요.]
이거 X된 건가?
[하지만 본래 엔터테이너란 관객의 즐거움을 위해 어느 정도의 자신을 내려놓고 수치도 견뎌야 하는 법입니다. 그 또한 관객의 즐거움이었으니.]
후우.
“…이야, 사회자님께선 굉장히 프로의식이 투철한 분이시군요?”
포도 이 미친 새끼는 대체 뭘 가슴팍에 달고 다닌 거란 말인가.
최 요원이 서늘한 긴장으로 무장된 내면과 달리 서글서글 웃으며 악수를 푼다.
[오, 쇼 비즈니스에 관심이 있습니까?]
“…예?”
[아쉽지만 어렵겠군요. 슬프게도 내 토크쇼는 지금 크루 모집 기간이 아닐뿐더러, 대단히 엄격한 선정 기준을 요구하니 말입니다.]
두 요원이 모두 순간 안도했으나.
[하지만 당신의 말솜씨와 재치, 그리고 독특한 상황 조건은 나쁘지 않습니다…. 흠, 단발성 게스트라면 한번 초청하죠.]
X발.
“…이야. 권유는 감사하지만, 제가 많이 바빠서 요 근래에는 어렵게 됐습니다.”
강력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담과의 문답은 살얼음판이나 칼날 위를 걷는 것과 똑같았다.
그러나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어본 게 아닌 최 요원이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씩 웃으며 알맞게 대화를 돌린다.
“…당신과 같이 다니던 요원을 찾고 있거든요.”
[오, 솔음 씨 말이군요.]
‘…!!’
최 요원은 고개를 든다.
구형 TV 안에 눈까지 웃는 흑백 이모티콘이 뜬다.
“…좋은 감정을, 가지고 계신가 봅니다?”
[오, 누구나 가장 친하고 애착이 가는 친구가 있는 법이지요.]
그리고 사회자는 모두가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과장되게 귓속말을 하는 손동작을 한다.
[사실, 그것이 아직 검증되지 않은 이 작은 리조트에 내가 방문한 이유기도 합니다. 적잖이 훌륭한 예술적 감각을 갖추긴 했지만, 내 친애하는 친구가 새롭게 운영하는 장소라면 이 브라운의 방문을 받을 자격이 있지요!]
마침 마스코트들이 오더니 유심히 관찰하는 듯 이 방문객들을 쳐다본다.
“…….”
전직 직원인 해금 요원은 거기서 이 방문객들이 싸우는 건지 걱정하는 듯, 감시하는 듯한 묘한 뉘앙스를 읽어낸다.
‘사회자’가 마스코트들에게 너스레를 떤다.
[하하,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이 브라운은 어느 때든 TV로 방영될 만큼의 심의를 준수하는, 격식과 교양을 갖춘 모습으로 이 리조트에 방문했으니 말이지요.]
머리 대신 달린 구형 TV에는 또 다시 귓속말을 하는 듯한 이모티콘이 떠오른다.
[이 리조트의 주인은 예의를 몹시 중시하니 말입니다. 자칫하면 가난한 정부 인사로서는 감당하기 힘들 만큼 천문학적인 빚더미에 깔리기 쉬우니, 주의하는 게 좋을 겁니다.]
최 요원의 입이 열린다.
“그것 참… 꿀팁이네요. 감사합니다.”
[감사를 안다니 좋은 태도입니다. 그럼….]
“그런데 혹시,”
최 요원의 목소리가 울린다.
“그 친애하는 친구의 행방을 알고 계십니까?”
사회자의 발이 멈춘다.
“…정말로 항상 같이 다니는 친구라면 알 것 같은데.”
…….
…….
[당연히 알고 있지요.]
최 요원은 해금 요원이 자신을 무시무시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차마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사회자를 응시하고 있다.
그를 응시하는 구형 TV 모니터를.
[방금의 발언은 우회적인 도발이로군요! 자주 쓰는 방법이지요? 물론 시청자는 좋아할 겁니다. 다만.]
목소리가 부드러워진다.
[습관적으로 하면 다른 즐거움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듣게 될 겁니다….]
“…….”
[당신에게 업보를 요구하는 대중의 목소리 말이지요.]
최 요원이 굳었다가 식은땀을 흘리며 씩 웃었다.
“어쨌든 오늘은 좋아한다니 다행인데요?”
…….
[호오, 방금은 제법 재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서, 사회자님 친구가 어디 있는 건지 확실히 아는 게 맞습니까?”
해금 요원은 하마터면 이 망할 애송이의 머리를 잡아당길 뻔했다.
그러나 유려한 사회자의 대답이 먼저 들려왔다.
[확실히 알고 있지요. 오, 그리고… 지금 그 위치가 변하고 있군요.]
“…예?”
최 요원은 말하면서 깨달았다.
해금 요원이 자신을 두드리고 있었다.
‘왜?’
주변을 보게 하기 위해.
플라워 골든 마스코트들이 갑자기 기이한 현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
모두가 갑자기 부들부들 떨고 있다.
그리고 다양하게 기묘한 증상이 발현된다. 양팔을 치켜들고 굳은 자, 마스코트 탈 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 마스코트 안이 녹아내린 듯 힘없이 탈이 무너지다가 복구되는 것, 머리를 부여잡고 벽에 흡수될 듯이 붙은 것.
만일 마스코트가 비명을 지를 수 있었다면, 명이 끊어질 듯한 처절한 비명이 가득 채웠을 듯한.
오싹한 침묵.
[오…. 그렇군.]
…….
[내 친애하는 친구, 그는 지금 불타는 가뭄 속에 있습니다.]
* * *
나는 옥상 위에서 헐떡인다.
하늘에 나타난 거대한 눈.
불타는 가뭄.
청 이사.
꽝철이.
눈안에무수히구르는응시하는수많은동공이빙글빙글빙글빙글빙글빙글빙글빙글빙글빙글빙글빙글빙글빙글빙글빙글빙글빙글
“노루 씨.”
파충류가날?부른다아아아같은건가?같은건가아니아니다 이건 하늘에 나타난 것과 다르다. 과장님이 나를 들고 옥상 문으로
이런
뒤에서 거대한 목소리가 들린다.
멀어진다.
너희 외부 족속들은 정말이지 주제를 모르는군
사내망에 상점 광고를 넣어두질 않나, 근로계약의 허점을 찾아내 지금처럼 편법으로 내 직원을 빼돌리려 하지 않나
쿵.
옥상 문이 뒤에서 닫히는 소리가 들린….
뭐 상관없지
…….
…….
돌아보지 않았지만 알았다.
하늘에서 눈이 사라졌다.
“허억.”
나는 이자헌 과장에게 들린 채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아니, 이제 내가 직접 내려서 뛰어야, 그런데 이게 의미가 있….
하지만 귀찮아서 말이야
옥상 문이 다시 활짝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