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65화
박민성 주임의 머리 위로 검은 책자 홀로그램이 덧씌워진다.
타르처럼 들러붙은 홀로그램이 흘러내리고 박민성 주임이 바닥을 긁으며 몸부림친다.
발버둥 치는 모습 뒤로, TV에서 다시 명랑한 목소리가 나온다.
[지금부터 행맨 놀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한 신규 선생님들을 알려 드릴게요.]
곧 사방에서 비슷한 그림이 반복되었다.
문제는, 문제는….
[박민성 신규 선생님, 한 번도 알파벳을 맞히지 못했네요!]
기존에 누적된 1회.
단상에 올라서 1회.
그리고…
알파벳을 맞히지 못해서 1회.
그러면,
[벌칙 누적 3회]
TV가 선고한다.
[박민성 신규 선생님은 나머지 학습 대상자로 지정되셨어요.]
[완벽한 ■■부속유치원의 선생님이 되실 때까지 유치원에서 영원히 교습받고 개원을 준비하게 될 거예요.]
알파벳을 맞히지 못한 사람들의 얼굴을 덮고 있던 검은 책자 홀로그램들.
그중 박민성 주임의 것만이 시뻘겋게 바뀌었다.
그리고 전신을 뒤덮었다.
“■!!”
주임의 비명이 이상한 형태로 좀먹는다.
“안■, ■줘, ■■■■…!”
사람이 끔찍한 꼴로 바닥을 구르고 뒤틀린다.
알아들을 수 없는 교육서의 내용이 낭독되며 튀어나오는 문구와 흐느낌이 교차했다.
그래도 주변에서는 관심도 없다.
힐끗 보고 혹시라도 연관되지 않으려는 듯이 멀리 피해, 매뉴얼에 적혀 있던 다음 단계를 기다릴 뿐.
바로….
[오늘 모의 놀이 수고하셨어요! 안녕히 돌아가세요, 신규 선생님들!]
클리어 확정.
“…….”
“아 X발 드디어!”
“비켜!”
게임이 끝났다는 것을 자각하자마자 욕설과 달리기가 자유로워진 사람들이 우르르 유희실을 빠져나갔다.
곧, 10분의 벌칙 교육이 끝난 직원들까지 타르 같은 홀로그램을 토하고 이마를 잡고 비틀거리면서도 일어나서 절뚝이며 뛰었다.
그러다가 나와 부딪히기도 했다.
“어?”
“…….”
“뭐, 뭐야.”
“…….”
“문 딱 30분만 열리는데, 지금 못 나가면 그쪽도 지원자로 처리된다고요! 에이씨!”
그리고 나를 지나쳐서 다시 뛰었다.
“…….”
그렇게 혼자 남았다.
바닥을 구르고 있는 ‘오염된’ 박민성 주임과 함께.
-세상에, 내 친구가 이런 케케묵은 곳에 지원했다고 오해를 받다니! 당장 나갑시다, 노루 씨!
“…아니.”
-노루 씨?
게임은 끝났다.
그건….
이 괴담의 규칙도 끝났다는 뜻이다.
‘최악의 경우에 나 혼자 뛰어도 10분이면 충분히 문밖으로 나갈 수 있다.’
그러니까.
“주임님… 데려가려고 시도는 해봐야지.”
버틸 수 있다.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봐야 한다.
아까도 됐잖아.
‘바로 포기하고 싶진 않다.’
기껏 행맨이 된 사람을 실낱같은 빈틈을 파고들어서 살렸는데, 살리려 시도한 사람은 결국 괴담에서 실종됐다는 식의 마무리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것참 헝그리 행맨 같은 탐사 결과다’ 따위로 위키에 여담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할 수 있어.’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당장 팔목의 문신에 손을 집어넣었다.
: 恩主 :
달아오른 문신에서 내가 집어넣어 둔 물건들이 나온다. 양초 제작 키트, 사과즙, 흡혈 나이프, 스티커, 오백 원 동전 묶음 수십 개…….
-오, 이번에는 어떤 재밌는 물건을 사용할 생각입니까, 친구?
“아무것도 안 쓸 거야.”
-음? 그렇다면 그 행동은…….
나는 꺼낸 물건들을 몽땅 서류 가방에 넣었다. 혈욕조가 없는 덕에 빠듯하게나마 들어간다.
튀어나올 것 같은 흡혈 나이프 같은 건 따로 빼서 뒷주머니에 넣어두었다.
‘…됐다.’
그렇게 완성된 서류 가방은 묵직했지만, 들고 못 뛸 수준은 아니었다.
그리고 남은 건.
텅 빈 팔목 속 공간.
-자리를 비우기 위한 거였군요?
그렇다.
나는 팔목의 문신을 통해 연결되는 공간에 살짝 손을 집어넣었다가 뺐다.
“이거, 크기가 한 변에 60㎝인 정육면체만큼의 부피라고 했지.”
-정확합니다.
“하지만 비정형인 거지?”
-…! 그것도….
브라운의 목소리에 흥미와 웃음기가 섞였다.
-정답입니다.
좋아.
‘어차피 모 아니면 도야.’
죽는 것보다 오염되어서 죽지도 못하고 이 괴담에 영원히 갇혀 있는 게 더 끔찍하다는 소리, 분명히 들었다.
‘해 보자.’
나는 이를 악물고 기다렸다.
박민성 주임의 3번째 벌칙이 끝나기를.
‘지금 당장 붙잡고 뭘 해보려는 건 바보짓이야.’
벌칙을 받는 중인 사람과 접촉할 시 저 홀로그램 교육서가 나에게도 친절히 ‘보인다.’
그렇게 나도 10분간 리타이어 상태가 된 채 교육서를 낭독하게 되는 것이다.
‘그건 끝장이지.’
나는 초조함을 억누르며, 차분히 기다렸다.
‘벌칙 끝날 때까지 남은 시간… 7분.’
6분.
5분.
4분.
3분.
2분.
1분…….
0.
“…….”
바닥에 쓰러져 있던 박민성 주임의 주변에서 타르처럼 끈적한 붉은 것들이 사라진다.
그리고 서서히 일어났다.
말끔한 유치원 선생님의 외관으로.
검은 정장을 입고 있던 몸에는 이제 부드러운 베이지톤 바지와 하얀 티셔츠, 그리고 연두색 앞치마가 보였다.
한 손에는 붉은 타이틀이 적힌 갈색 서류철을 들고 있다.
<■■부속 유치원 교육서>
그리고 가면이 완전히 녹아내린 맨얼굴 위에 드러난….
이마의 인두 자국.
새싹반
완전히 드러난 박민성 주임의 얼굴 위에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솔음 선생님!”
X발.
“나 교육서 낭독할 동안 기다려준 거야? 정말 고마워.”
“…당연히 기다려야죠.”
동요하지 말자, 동요, 겉으로 드러내면 X된다.
“컨디션은 괜찮으십니까?”
“그럼. 더할 나위 없이 좋지!”
박민성 주임이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입니다. 그럼 이제 갈까요?”
“가자고? 아… 귀가?”
“예. 같이 가시죠.”
“아, 난 퇴근 시간이 없어서! 이제 신규 선생님이 아니잖아. 교육서를 완독했으니까!”
“하지만 퇴근은….”
“없다니까?”
“…….”
“음. 나는 이제 새싹반에 가서 개원 준비를 도울 시간인데….”
그리고 박민성 주임이 환한 표정으로 외쳤다.
“아, 그렇지! 솔음 선생님도 같이 갈래?”
소름이 주욱 올라왔다.
“솔음 선생님은 어떤 반에 배정받을지 아직 모르지? 아직 교육서 읽어본 적 없잖아. 읽으면 알 수 있어. 소속반!”
박민성 주임이 손을 내민다.
“어디일까? 같이 새싹반이면 좋겠다. 우리 원래 같은 조였으니까,”
망할.
망할!
나는 마치 제안을 고민하듯이 자연스럽게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선생님이 내밀던 손이 허공을 스치고 지나갔다.
“어….”
“말씀은 감사하지만… 그럼 출입구 밖에 이걸 던지고 와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서류 가방을 들어 올렸다.
“빌린 물건이 있어서 시간 내로 돌려줘야 할 것 같거든요.”
“솔음 선생님, 어쩐지 이런저런 신기한 아이템 많이 가지고 있더라니 빌린 거였어?”
“네.”
제발 들키지 마라.
‘제발.’
박민성 주임…이었던 무언가가, 직업적 소양처럼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답했다.
“그럼 선생님들께 옮기는 걸 도와달라고 할까?”
“그냥 서류 가방인데요 뭘. 괜찮으시면 잠깐 현관까지 안내만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 …오소리 주임님께서요.”
박민성 주임이 굳었다.
“…….”
혹시.
“…오소리 주임님?”
…….
주임의 입이 열린다.
“그…….”
…!
그러나 다음 순간.
“그래! 같이 현관까지 가자.”
다시 온화한 선생님의 목소리가 나왔다.
“…….”
“솔음 선생님?”
“네, 현관까지 동행만 부탁드립니다.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이동하겠습니다.”
“좋아!”
나는 몸을 돌려 유희실 밖으로 향했다.
바로 뒤에 ‘선생님’으로 완전히 오염된 박민성 주임을 두고.
‘하.’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타박. 타박.
바로 뒤에서,
바짝 붙어 따라오는 소리가 들린다.
정장 구두가 아니라 부드러운 재질의 덧신형 슬리퍼 소리.
타박. 타박.
“아, 서류가방 같이 들어줄게.”
“괜….”
…찮다고 말하기도 전에,
선생님의 손이 내가 든 서류 가방의 반을 잡았다.
그리고 같은 손에 들고 있던 완벽한 선생님의 교육서의 표지가, 툭, 내 손을 친다.
타박. 타박.
“…….”
괜찮다.
갑자기 정신을 찌르는 소리가 들리지도 않고, 미칠 것 같은 공포나 두려움이 몰려들지도 않는다.
‘나갈 수 있다.’
현관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냥 걸으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생각이 든다.
이대로 내가 몰래 현관으로 나가는 게 맞나?
X발.
욕하는 내 꼴 좀 봐라.
아직 교육서를 한 번도 낭독하지 못해서 그런가, 약간 부끄러운 일이다….
사실 그건 벌칙이 아니라, 벌칙이라는 이름으로 교육의 기회를 베풀어주는 게 아닐까?
이런 미친.
잠시만. 오염이라고 치부하지 말고 진지하게 생각해 볼 문제다.
이곳은 멋진 직장이다. 점잖고 순종적인 사람들과 함께 완벽한 개원을 준비하는 건 더없는 기쁨일 것이다.
나에겐 완벽한 선생님이 될 적성이 있다.
■■부속유치원이 알려주었다!
아니다.
아니긴 무슨.
나는 스스로 자조했다. 거짓말을 들켜도 벌칙인 거 알고 있지 않은가. 그냥 효율적으로 현관을 포기하자.
그게 맞다.
여기서 자발적으로 교육서를 낭독하자. 박민성 선생님께 같이 보자고 부탁하면 될 것 같다.
안 된다.
교육서를 빌리면
안 돼.
다른 생각을 하지 말자.
왜냐하면 생각이 깊어질수록, 이게 꽤 괜찮은 발상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될
일은 없다!
발을 옮기는 것에 집중하자. 발을 하나하나 옮기면, 입구가 점점 가까워진다.
타박, 타박.
“…….”
도착했다.
현관이다!
처음 들어왔던 지저분한 현관 대신 말끔한 모양새의 현관이 있는데 나가고 싶지 않을 만큼 닥쳐.
“이제 이 가방을 던질 거지?”
나는 서류 가방을 잡아당겼다. 그 틈으로 내 손에 닿아 있던 교육서가 아쉽게도 떨어졌다.
“같이 던질까?”
제발.
“좋습니다.”
돼라.
“여길 잡아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그때야 고개를 돌렸다.
‘선생님’의 얼굴로 웃고 있는 박민성 주임의 모습이 시야에 찼다.
내 권유 그대로 서류 가방을 잡으려고, 윗몸과 손을 내미는 것도.
‘지금.’
나는 그대로 주임의 머리통을 잡아챘다.
“…!!”
그리고 내 팔뚝에 우악스럽게 밀어 넣었다.
‘들어간다.’
내 문신에 딸린 공간의 크기는 한 면이 60㎝인 정육면체.
하지만 정말로 정육면체 모양인 건 아니다. 고정되지 않은 비정형의 공간인 것이다.
그러니까 이걸 다른 부피로 환산하자면….
‘성인 남성 하나는 너끈히 들어가고도 남아.’
그대로 위로 시선을 고정했다.
으득, 으득.
손목 위 문신에 쑤셔 넣어지는 인간형 몸뚱어리가 반발하는 것이 관절이 부서지듯 느껴진다…!
‘일부러 얼굴부터 집어넣으려고 했어.’
대화를 하면 분명 영향을 받고, 오염이 거세질 것 같아서다.
나는 계속 한 손으로 눌렀다. 타투 속 공간은 무리 없이 그것을 계속 삼켜갔… 아! 교육서가 닿았다! 이건 따로 챙겨서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마지막 발까지 구겨 넣고 나면, 이제는….
텁!
“…!”
불쑥 튀어나온 것이 내 왼쪽 팔뚝을 잡았다.
하얗게 질릴 정도로 손가락 마디마디에 힘이 들어간,
박민성 주임의 오른손.
“윽!”
망할!
손가락 하나하나 뜯어내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다.
‘선생님이 상해를 입게 하면 안 된다.’
이 어둠이 어떻게 반응할지 몰랐다.
‘조용히…!’
숨도 못 쉬고 흡혈 나이프를 꺼내 들어, 내 팔에 꽂아 넣었다.
“……!”
손가락이 뜯겨나가며 팔뚝의 살점도 뭉텅이로 뜯겨나갔다. 비명을 미친 듯이 질러야 할 고통이었으나 긴장과 아드레날린에 가로막혔다.
나는 마지막 손가락을 문신에 집어넣는 동시에, 황급히 현관으로 발을 내디뎠다.
툭.
마지막 걸음을.
“…….”
나는 고개를 들었다.
대낮의 푸른 하늘.
어느새 등 뒤엔 폐쇄되어 낡아빠진 민영 유치원 건물만이 서 있었다.
반짝이는 햇살이 탁 트인 서울 외곽지대의 잡초들을 비춘다.
“…….”
클리어였다.
고개를 내렸다.
바닥에 쓰러진 은하제 대리의 손목 없는 모습이 보였다.
다른 직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미 돌아가 버린 듯했다….
나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고 정해진 대로 버튼을 눌렀다.
현실인 것을 증명하듯이 신호가 가고, 상대편이 전화를 받는다….
“거기, 보안팀 대여창고… 맞습니까?”
마른 입에서 정해진 말도 간신히 나왔다.
“오염을 가둘 장비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오염된 직원을 구출했습니다.”
…….
…….
됐다.
나는 그대로 졸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