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68화


아침.

나는 조용한 사무실에 앉아 있다.

-아, 상쾌한 겨울 아침입니다. 커피 한 잔 어떻습니까, 친구?

그래. 점심 때 마시자.

책상을 조금 정리하면서 브라운과 이야기하며 적막을 쫓아내고 있으면, 8시 50분경에 도마뱀 머리의 상사가 문으로 들어온다.

다가가서 정중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조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예.”

나는 고개를 들며 말을 이었다.

“저, 제가 유급휴가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예.”

도마뱀이 눈만 움직여 나를 보았다.

“2주 전과 동일한 상태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겠습니까?”

“네. 이전처럼 일할 수 있습니다. 혹시 결과가 예전 같지 못하더라도 최대한 빨리 리듬 되찾겠습니다.”

“그렇군요.”

세로 동공이 빤히 나를 보았다.

“그건 제가 판단하고 보완하겠습니다.”

으음.

이쯤 되니 대충 번역이 된다.

‘네가 잘하든 못하든 보고 커버쳐줄 테니 넌 그냥 하던 대로 일 열심히 하면 된다는 건가.’

슬슬 외양과 어휘 선택이 도마뱀이라도 좋은 상사니까 아무려면 어떤가 싶은걸….

물론 그렇다고 방심할 순 없다.

‘한동안은 무조건 어둠을 잘 클리어해야 해.’

이미 유급휴가까지 받았었다.

근데 60일 만에 주임 달 정도로 일 처리 싹싹하던 직원이 쉬고 왔는데도 ‘전과 달리’ 성과를 못 낸다?

이건 사내 입소문에 오르락내리락하게 된다.

이상해 보이니까.

[아니, 동료가 죽은 것도 아니고 다 살아는 나왔다며.]

[음… 그 김솔음이란 직원, 의외로 정신적 충격에 약한 타입인가 보네?]

[근데 그렇게 멘탈이 약한 사람이… 무슨 수로 그동안 성과를 냈지?]

…이런 식으로 말이지.

‘의심 받기 시작하면 좋을 게 없어.’

아예 꼬투리를 주면 안 된다.

‘제대로 클리어 하자.’

비록… 지금 믿음직한 아이템을 새로 구매하진 못했지만 말이다.

나는 휴가 내내 떠 있던 외계인 상점 홈페이지의 문구를 떠올렸다.

<우주 쇼핑몰>

※ 다시 꾸미는 중 (일시적 사태) ※

>>나는 이해했다!

그렇다.

홈페이지 리뉴얼 중인 것이다….

‘언제쯤 열리려나.’

딱히 리뉴얼 관련된 문서는 본 적이 없으니 아마 금방 끝나고 다시 열리겠지.

내 예산은 정해져 있으니, 새로 오픈하는 외계인 상점의 물건들을 본 후에 아이템을 확보할 예정이었다.

지금은 초심을 되찾고 제대로 어둠이나 클리어하자.

‘한동안은 또 고등급 어둠을 주진 않을 테니까.’

인원이 줄어든 묘한 허전함은 어쩔 수 없지만, 그렇다고 퇴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

나는 일부러 약간 활기차게 물었다.

“그래도 오늘부터는 어둠에 투입되는 게 맞을까요? 저희가 3인 정원 상태가 아니라서 다른 조에 지원을 갈 확률이 높다고 들었습니다만….”

“맞습니다.”

오.

“오늘은 어떤 팀을 지원하는 겁니까?”

잘하면 아직 못 만난 입사 동기 중 하나를 만날 수도 있겠…….

“정예반입니다.”

…….

예??

또요?

“A조 말씀이십니까?”

“아니오.”

“…그럼 어느 조입니까?”

“C조입니다.”

안면도 없는 조였다.

정예반인 게 마음에 걸리지만, 그래도 A조 조장과 이자헌 조장이 만나는 일이 없어서 다행이다… 까지 생각하는데.

‘어?’

생각해 보니, 어떤 의미로는 C조와 안면이 없는 건 아니었다.

[K.LEE: 저 C조 이강헌 대리라고 합니다ㅎㅎ]

나한테 연어 마켓을 소개해 준 그 수상쩍은 대리!

‘분명 C조라고 했었지.’

어쩌면 이번에 얼굴을 보게 되는 건가.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먼저였다.

정예반이 들어가는 어둠이라면….

“혹시 클리어가 어려운 고등급 어둠일까요?”

“어떤 척도를 기준으로 판단하길 원합니까?”

“……죄송합니다. 실언했습니다.”

“?”

“음. 무슨 등급이신지, 매뉴얼은 있는 상태인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D등급입니다. 매뉴얼은 완비되었습니다.”

오, 그럼 마무리팀 불러서 고기 방패로 쓰는 미친 짓을 볼 확률은 낮겠다. 나는 한결 안심한 채로 편안하게 물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언제 이동하면 될까요?”

“5분 후 이동을 시작하겠습니다.”

넵.

그렇게 우리는 가방만 챙겨 들고 사무실을 나서서 걸었다.

그런데….

“…….”

“…….”

“조장님.”

“예.”

“왜 저희가 C조 사무실이 아니라 별관 근처로 가고 있는 겁니까?”

“C조가 이미 어둠에 진입했기 때문입니다.”

“…….”

예?

이후 도마뱀 조장과 몇 번의 문답을 더한 끝에 받아 낸 대답은 이러하다:

[C조는 조장이 휴가 중이라 조원 2인이 남은 상태.]

[오늘 진입할 괴담은 D등급.]

[그런데 무슨 그런 저등급 어둠에 3인 정원까지 지키려고 하냐며, C조가 가라로 자기들끼리 들어가는 바람에 행정실에서 허겁지겁 추가 인원을 편성함.]

“…….”

와우.

나 막 입사했을 때는 ‘신입 포함 3인 맞잖아’라는 땜방에 은하제 대리가 불을 뿜으면서 욕했었는데.

‘여긴 자진해서 2명 진입을 하네….’

불길하다.

-흠, 지시에 잘 따르지 않는 구성원이라! 훌륭한 진행자라면 쇼의 모든 요소, 특히 인적자원을 잘 다룰 수 있어야 하는 법이죠.

-오늘 노루 씨가 그걸 익힐 기회일까요? 확인해 봅시다. 그럼 힘차게 가볼까요? 친구!

힘없이 주저앉아 있고 싶다…….

그러나 나는 포인트가 필요했고, 슬슬 어둠에 다시 들어가야 하는 상황도 맞았다.

‘지금까지 만난 정예반 중엔 정상이 없었지만….’

그리고 이번에도 그럴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든다만.

입사 반년 차 주임따리는 까라면 까야겠지.

억울했으면 A조에 가든가 했어야지… 물론 갔으면 벌써 마무리팀으로 튕겨서 시체가 되어있겠지만.

‘…벌써 그리운가.’

나는 D조의 두 상사를 떠올리지 않으려 애쓰며 발을 옮겼다.

이자헌 과장이 내게 태블릿을 건넸다.

“지금부터 10분간 매뉴얼을 숙지하십시오.”

“10분만 주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진입 종료까지 시간이 촉박하며, 최근 2분기 생환율이 97%에 육박하기 때문입니다.”

친절한 설명 감사합니다…….

‘이제 3%의 사망률은 그러려니 넘기게 되었군….’

솔직히 이런 배경에서 매뉴얼 다 있는데 죽은 3%는 보통 엄청나게 운이 나쁘거나 돌발행동을 한 것일 테니까.

‘괜찮겠지.’

나는 떨떠름함인지 해탈인지 모를 기분으로 태블릿을 들여다보았고…….

“…….”

“…….”

-음? 노루 씨, 갑자기 머릿속이 텅 빈 것 같군요.

응.

망했거든.

———————=

어둠탐사기록 / 괴담

[모르는 게 정답]

: <어둠탐사기록>에 등장하는 괴담, 백일몽 주식회사의 식별코드는 Qterw-D-2367.

귀신들 틈에서 하룻밤을 꼬박 보내야 하는, 피 말리는 정석 괴담.

———————=

“…….”

잠깐만.

잠깐만 기다리십쇼, 조장님…!

나는 안 들어가겠다고 통곡하는 대신 간신히 이성적으로 제안했다.

“저, 30분 정도만 더 준비하고 들어가는 게 가능하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

맞다. 입구가 닫힌다고 했지…….

딱히 이성적인 제안이 아니었다.

“…….”

아아아아! 진짜!!

왜 하필 이게 복귀용으로 걸리냐고!

“심장마비로 죽은 2인을 제외하면 사망 기록은 없습니다. 동급 대비 안전합니다.”

“……예.”

‘그걸 몰라서 이러는 게 아닙니다…!’

그냥, 내가 뭘 착각하고 있었다.

‘엘리트 신입 캐릭터를 구축하는 나’에 취해서 잊고 있던 것이다.

유급휴가 전에도 나는… 무서운 게 싫어서 속으로 눈물을 좍좍 뽑으며 타임어택하던 사람이었을 뿐이었는데.

근데 내 복귀 괴담이, 내가 제일 약한 정통 호러의 지옥이라니.

‘처음 보는 사람, 그것도 정예조가 절반이니까 허튼수작도 못 부려.’

심지어 등급이 낮아서 타투 스티커를 쓰기도 아까워서 악으로 깡으로 그냥 버터야 하는 상황.

생존본능이 벨을 울려서 미친 듯이 뛰고 탈출법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 생으로 다 느껴야 한다….

위키 작성자가 의도한 호러의 맛을.

‘후….’

차라리 편의점 귀신이랑 술래잡기는 얼결에 모르고 들어가기라도 했지.

갑자기 찬물 맞은 듯이 현실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충격 요법이라고 불러줘야 하나.

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심정으로, 울며 겨자 먹기로 내 발로 어둠에 진입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쪽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에는 시공간이 뒤틀리며 이상한 곳으로 우리를 삼키는 류의 어둠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번 진입 방식은 아주 간단했다.

특정 조건을 만족하는 밀폐공간에 노크한 후 들어가면 그곳이 괴담이 되는 것이다.

사방 100m 내에 사람이 없으며, 4면 및 천장이 가로막힌 밀폐형 실내 공간.

창문 등 바깥을 확인할 수 있는 인테리어 요소가 없어야 하며, 반드시 아날로그 시계 한 점이 있어야 한다.

부피는 40㎥ 내외로, 4㎥ 이상의 차이가 있을 시 해당 어둠은 발생하지 않음.

우리 회사 같은 경우, 해당 조건을 충족하는 공간을 별관 한쪽을 개축하여 따로 만들어두었으며, 이것을 평상시에도 활용 중이라고 한다.

바로 ‘크기 4m x 4m x 2.4m’의….

[탕비실]

나와 이자헌 조장은 이 명패가 붙은 문 앞에서 멈추었다.

평범한 사무실 옆에 붙은 탕비실은 맞았지만, 조건이 충족된 상태.

숫자 ‘4’로 끝나는 날짜의 수요일.

해당 밀폐공간의 문을 특정 리듬으로 두드리면 괴담이 시작됨.

“…….”

내가… 해야 하는 거지?

짬순으로?

똑, 똑, 똑똑, 똑똑똑

나는 떨리는 손을 들키지 않으려 애쓰며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문이 달칵 열렸다.

“어?”

“웬 사람들…… 오!”

안에는 직원 두 사람이 편안한 표정으로 앉아있다가 우리를 보고선 손을 흔들었다.

“아, 지원 오신 거예요?”

“예.”

“거참, 필요 없다니까 굳이 보내시네.”

클리어 인원이 많아지면 포인트도 분산되고 꿈결 원액 농도도 희석되고… 등등을 자기들끼리 떠드는 직원들에게.

도마뱀 조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불만이 있다면 부서 이동을 신청해 현장탐사 공통 매뉴얼을 고치십시오.”

“…….”

“…….”

직원 두 사람은 입을 쩍 벌렸다가, 결국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 오신 분들을 비난하려고 꺼낸 말은 아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하하하, 저희가 경우 없이 군 것 같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 D조 과장님 맞으시죠?”

“예.”

“그럼 그쪽은….”

“노루 주임입니다.”

“아아아!”

둘 다 또 안색이 변했다.

“A조 될 뻔했던 그 신입님 맞아요? 나비 대리가 완전 찍어뒀담서요!”

“원래 죽어야 하는 직원 살렸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오오, 여기서 나가면 이야기 좀 들려주시죠!”

“그리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고, 운이 좋았던 거였습니다만… 예. 저도 반갑습니다.”

나와 이자헌 과장은 둘의 안내를 받아서 탕비실 구석에 위치한 작은 테이블에 함께 착석했다.

“저희 밤새 같이 있어야 하는데 통성명이라도 합시다. 일단 저쪽은 돌고래 주임으로 부르면 돼요.”

“반갑습니닷, 노루 주임님.”

돌고래 가면을 쓴 작은 체구의 여성이 자신이 호명되자 손을 흔들었다. 말투가 톡톡 튀는 편이었다.

그리고 약간 까무잡잡하게 탄, 싹싹하고 사교적인 태도의 남자가 손을 내밀며 씩 웃었다.

“그리고 저는 표범, 표범 대리로.”

“예. 표범 대리님.”

흠.

[K.LEE: 오 안녕하세요 사원님ㅋㅋㅋ]

분명 ‘이강헌’의 프로필은 하와이 바닷가였지. 피부가 타 있는 게 어울렸다.

게다가 일치하는 직급과 사교적인 태도까지.

‘이 사람 같은데.’

물론 가능성은 열어둘 생각이었다. 아직 본명을 모르니까.

당연히 상사 앞에서 아는 척할 생각도 없었고.

“잘 부탁드립니다.”

“넵. 하룻밤 저희 탕비실에서 간식이나 까먹으면서 지내보죠!”

어쨌든, 여기까지만 보면 어디 사무실에 야근하러 앉아서 나눌 대화 같았다.

실제로 탕비실에서 갑자기 벽면에 피눈물이 흐른다거나 위아래가 뒤집히거나 커피머신이 살인 기계로 변하는 일은 없다.

하지만….

‘귀신은, 이미 여기 있다.’

탐사자 중 일부는 귀신으로 바꿔치기 당한다.

그렇다.

지금 대화를 나누는 사람 중 누군가는 이미 귀신으로 바꿔치기 당한 상태다.

어쩌면 한 명 이상이.

“커피 한 잔 드실래요?”

“아, 제가 내려오겠습니다.”

“에이, 우리 조에선 막내 그런 거 없어요. 그냥 앉아있어요.”

언제 그렇게 되는지는 모른다. 어쩌면 문지방을 넘는 순간부터, 어쩌면 자리에 앉아서 인사를 나누는 순간부터….

‘차라리 귀신으로 바꿔치기 된 사람은 쉽지.’

그냥 탕비실에 진입할 때부터 정신을 잃은 상태로 그 다음 날 깨어나니까.

문제는 귀신이 안 된 사람의 매뉴얼이다.

“…….”

내가 지켜야 하는 규칙.

귀신은 탐사자와 외양, 인격, 성격 등 모든 측면에서 동일하나 인간이 하지 않는 행동을 하며 위화감을 조성한다.

그러나 누가 귀신인지 눈치채면 안 된다.

알아차렸다는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탐사자는 전원 실종되었다.

하, 할 수 있다.

‘대충 흘려 보면서 무시하면 되겠지.’

할 수 있다!

뭐 누군가 입 찢어지게 웃고 뭐 그러면, 안 보고 참으면 되지 않겠는가.

‘그땐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 보는 척하면서 참자.’

사람이 많으니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양한 일을 겪으면서 오히려 더 쫄보가 된 게 아닌가 했는데, 의외로 나도 호러에 좀 강해진 걸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상상하며 식은땀으로 목욕하고 있지는 않으니까!

“아! 방금 입구가 완전히 닫혔네요. 이제 이 인원으로 버티면 되는 거예요.”

“오~”

“좋습니다. 화이팅하죠!!”

짝짝짝짝!

직원들이 활짝 웃으며 박수했다. 훈훈한 장면이었다.

하나만 제외하면.

“와!”

방의 모든 사람이 손등으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

“…….”

아.

“어? 노루 씨. 왜 박수 안 쳐?”

“…….”

“왜?”

표범 대리가 내 눈앞에 얼굴을 들이댔다.

“마음에 걸리는 거라도 있나 봐?”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