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77화
백사헌은 드물게도 자신의 하나 남은 눈을 의심 중이었다.
지금 내가 꿈을 꾸나?
아니, 꿈을 꾸는 건 맞긴 했다. 괴담 속 악몽을… 아니.
아니!!
사실 방금까지만 해도 그는 그저 열받은 상태였다.
‘이 학교 교무실에 세뇌 효력이 강력한 아이템이 있다고 해서 온 건데….’
이렇게 온갖 관계자들이 다 있는 걸 보면, 아무래도 그리 고급 정보는 아니었던 모양이라고 속으로 부글부글 끓었을 뿐이다.
‘…내일 출근하면 가만 안 둔다.’
그렇게 고급 정보랍시고 알려줬던 사람을 살생부에 갱신하며 이를 악문 것까진 그렇다 치자.
그래도 자신은 있었다.
아니, 오히려 두 세력의 대치가 팽팽한 이 상황은 써먹기 좋다고 생각했다.
‘조금만 흔들어 놓으면 난장판이잖아?’
이간질하든 괴물을 불러와서 깽판 놓든 간에 자기가 아이템을 챙겨서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까지 주변 바보들을 결정적인 순간마다 미끼로 쓰면서 올라온 것처럼 말이다.
들소 가면을 쓴 나약한 동기가 욱욱 거리며 눈물을 참는 것도 참아줄 수 있었다. 써먹을 수 있어 보였으니까.
근데…….
‘저 새끼… 대체 뭐냐고.’
백사헌은 얼이 빠진 채 전방을 응시했다.
검은 교복을 입은 익숙한 얼굴의 직원이 재난관리국 사람들 옆에 아무렇지 않게 당당히 서 있었다.
그들과 똑같은 철뱃지를 찬 채, 이상한 장난감 같은 권총을 들고.
…김솔음!
“포도 요원.”
포, 포도??
대체 그건 뭐란 말인가.
분명 아까 교실에 있는 걸 봤을 때만 해도 저런 장비들을 차고 있지 않았단 말이다. 아니….
‘왜 백일몽 주식회사 직원이 반대편에 천연덕스럽게 서 있냐고!’
“다들 물건 확보 중이신 것 같은데, 저희가 찾으려던 걸까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연스럽게 관리국스러운 대화도 나누고 있어…!
그걸 본 옆의 백일몽 회사 직원들이 숙덕거렸다.
“보통 녀석들이 아닌 것 같은데.”
“요원 중에 계급이 높은 걸까요? 호출받고 온 것 같죠?”
“…….”
옆에서는 장허운이 입을 뻐금거리며 자신과 김솔음을 휙휙 돌아보았다.
자신을 제외하면 여기서 유일하게 김솔음의 맨얼굴을 기억할 만큼 안면이 있는 직원이다.
가면을 쓰고 있는데도 그 경악이 아주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리고 아예 김솔음을 대놓고 보며 아는 척을 하려는지 입을 열었다!
‘그래. 그거다!’
네가 대신하라고!
“그… 그.”
“혹시 그냥 물러나 주실 순 없겠습니까.”
“예?”
하지만 상대는 김솔음이었다.
그… ‘포도 요원’은 자신을 아는 척하려던 장허운의 말을 단번에 끊더니, 진중한 얼굴로 직원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설득력 있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이런 초자연적 재난에서 개인이 위험한 물건을 소지하는 건 어떤 참혹한 결과를 불러올지 모릅니다. 여러분도 겪어보셨겠지만, 여기선 좋아 보이는 물건이 꼭 좋은 결과를 내진 않습니다.”
목소리가 어쩐지 아주….
그럴싸하게 들렸다.
“…지금도 밖에는, 괴물이 돌아다니고 있고요.”
“…….”
김솔음이 간절한 눈으로 말했다.
“부디 더 많은 인명을 살리는 일에 양보해 주셨으면 합니다.”
네가?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장허운은 어쩐지 눈을 껌벅거리더니, 천천히 홀린 듯이 입을 열었다.
“그, 그러면… 이번에는 양보,”
이 미친 새끼가!
“…! 야! 신입 주제에 무슨 소리야!”
“너, 입 다물고 있어라.”
퍼뜩 정신을 차린 직원들의 원성이 쏟아졌다.
백사헌은 몰랐으나, 은심장의 영향력을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을 만큼의 정신 방어 아이템을 지참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그림은 썩 좋지 않았기에 맞은편의 요원들은 숙덕거렸다.
“기업 문화도 쓰레기로군.”
“그러게요. 그래도 저 요원님, 아주 말씀을 잘하시네요.”
“…….”
아예 요원들에게 인정받고 있잖아…!
‘대체 저 자식은 뭔데 요원인 척….’
아니 잠깐만.
그 순간, 벼락같은 깨달음이 백사헌의 머리를 내리쳤다.
‘사, 사실… 처음부터 재난관리국 요원이었나?’
잘 보니 저 옆에 서 있는 공무원은 그 미친 살인 산장에서 만났던 그놈이었다!
회사에서 지급하는 가면에는 회사 직원이 아닌 사람들의 인지를 교란하는 효과도 있어서, 자신을 알아보진 못한 것 같지만…….
‘……설마.’
다 짜고 친 거였나?
김솔음은 처음부터, 재난관리국의 스파이였다고?
등골이 서늘해졌다.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패가 생긴 것 같았다.
‘그럼 저 자식 정체를 밝히면….’
그때, 김솔음과 눈이 마주쳤다.
김솔음이 씩 웃으며 스스로 가슴을 툭툭 쳤다.
그리고 입 모양으로 말했다.
‘빚.’
“……!”
-빚
자신이 비상용 손전등을 남기며 적어놓았던 글귀.
‘미, 미친 새끼야 그건 네가 나한테 진 빚이잖아…!’
설마 빚진 거 받고 싶으면 입 닥치고 협조하라 이건가?
어떻게 채무자가 채권자를 역으로 협박… 아니!
‘X발, 그건 됐고!’
백사헌은 이를 악물었다.
지금은 이 팀이 쪽수에서 밀린다.
‘요원 쪽 사람이 더 많아졌어.’
이대로면 고점 클리어를 노리는 현장탐사직 직원들은 그냥 순순히 물러나서 아이템을 포기할 확률이 높았다.
그럼 아무 교란도 하지 못한다. 기회 자체가 사라지니까!
‘차라리….’
“…….”
백사헌은 고민하다가, 결정했다.
그는 반드시 저 아이템이 필요했다.
…반드시.
또한 천 포인트라는 거금을 선투자하여 마련한, 자신의 전용 장비가 신발 밑창에 잘 부착되어 있는 것을 알았다.
심혈을 기울여 부모 장비를 골라 만든 이것은….
혼란 목적의 살상용 무기였다.
소유자 : 백사헌
등록 장비 설명 : 삼색 볼펜 형태의 장비로, 볼펜 끝을 누를 시 펜촉이 튀어나가 폭죽처럼 터짐.
Qterw-E-99에서 제작.
신발 밑창에서 느껴지는 원통형의 가느다란 압박감을 즐기며.
백사헌은 일부러 장허운을 돌아보며 말을 걸었다.
“저기요.”
“예?”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것 같지 않….”
그리고 자연스럽게 김솔음에게 발포했다.
“…아요?”
노린 것은 머리.
‘죽어!’
즉사해라.
그래서 이 어둠에서 깨어나도 자신이 쏜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
‘저 자식이면 어차피 명찰도 있을 거 아냐!’
기껏 빚도 달아뒀는데 자신이 이 상황을 망친 걸 들킬 순 없었다.
‘다른 새끼한테 덮어씌우면 돼.’
어차피 이 회사 직원들 인성은 다 고만고만했으니까.
백사헌은 티 나지 않게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훅.
신발 밑창에서부터 날아간 그의 전용 장비의 펜촉은 소리 없이 훅 김솔음의 머리를 꿰뚫…….
…지 못했다?
김솔음은 자연스럽게 머리를 비틀어 펜촉을 피했다.
“…?!”
김솔음이 백사헌을 힐끗 보았다.
‘내가 위키에서 네 전용 장비 사용법 읽은 게 몇 번인데.’
장전 동작도 이미 알고 있었다.
‘왼쪽 뒷굽을 두 번 부딪히는 거잖아.’
룸메이트가 됐을 때부터 대비하고 있었으니, 어찌 보면 이 반사신경도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아무 기대치가 없었기에 화도 나지 않았으나….
‘밀리면 안 되겠지.’
그 순간, 김솔음은 백사헌을 보고 씩 웃었다.
‘네가 쏜 거 다 안다.’
그리고 넌 이제 X 됐다는 뜻이다.
“…….”
백사헌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학습된 공포가 거의 패닉 수준으로 올라왔다.
하지만 혼란을 일으키려는 그의 목적 자체는 성공했다.
“어억,”
“…!”
김솔음의 등 뒤에 있는 락커를 때린 볼펜 촉이 사방으로 터졌다.
순식간에 불빛과 소음, 그리고 연기로 교무실이 자욱해진다.
“…누구야!”
이제 아무리 목소리를 낮춰 말해도 소용없다.
이 정도 소란에는 ‘학생’들도 약간의 기물파손을 감수하고서라도 쫓아온다. 그러니까…….
곧 몰려올 것이다.
“…!!”
“손전등.”
다들 자세를 낮추고 벽에 붙었다. 연기 때문에 시야가 가려지는 건 이 악몽의 학교에서 최악의 조건이었다.
‘어떤 새끼지?’
모두의 머리에 생존이 원인 제공자 색출보다 우선순위로 떠오르기 직전.
‘이렇게 된 이상…!’
노렸던 거라도 가지고 간다!
백사헌은 테이블로 뛰어들어서.
2학년 ■■■의 만년필
아이템을 잡아 호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직원들에게 합류하여 함께 교무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교무실 안에서 시야의 사각이 없는 방진을 짜던 요원들은 안개가 약간 사라지고 나서야 사태를 확인했다.
만년필과 직원들이 동시에 사라진 것을.
“…! 제길!”
“백일몽 주식회사 놈들…!”
졸지에 연대 책임이 되었다.
‘얼씨구.’
백사헌을 쭉 주시하고 있던 김솔음만이 이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 떠들기엔 상황이 너무 급박했다.
[3층 복도에서 사망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죽은 학생은 2학년 김소라입니다.]
복도를 나가던 백일몽 주식회사 직원들이 학생 중 하나를 사살한 것이다.
“…하.”
정전이 찾아왔다.
* * *
5초의 정전.
난무하는 손전등 불빛.
비명.
시체.
‘이런 미친.’
사람도 괴생명체도 많으니 이건 B급 스플레터 호러 무비가 따로 없다.
고요해 숨이 막히던 아까와 다른 종류의 공포.
아아아악!
저거, 저기 창문에!
피! 피!
지원을 주…… 흐,
머리가 쭈뼛 서는 잔인한 광경이 사방에서 펼쳐지는 가운데, 나는 어떻게든 새롭게 교무실에 들어오려는 학생들을 안개 틈으로 포착해 정지시키고 있었다.
끔찍한 디펜스 게임이라도 하는 것 같다.
아니면, 그것밖에 못할 만큼 궁지에 몰린 호러 게임 속.
“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요원들이 적극적으로 공세하는 바람에 나에게 거의 어그로가 끌리지 않는다는 점인가.
하지만 그것도 한계다.
깜박.
안구에 튄 피에 어쩔 수 없이 눈을 깜박인 순간.
내 머리 위에서 학생의 손이 갈고리처럼 멈췄다.
“…!!”
나는 뒤로 재빨리 물러섰다.
…방금 두개골이 뚫릴 뻔했다.
머리가 쭈뼛 섰다.
‘허…….’
심장이 떨어질 것 같다.
‘안 돼.’
이건 늪이었다.
‘손전등 하나로 커버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어.’
내가 알기로, 회차마다 차이가 있으나 한 층에 적어도 스무 명 이상의 학생들이 있었다.
학생을 죽여서 안내방송이 나오면?
[2학년 교무실에서 사망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또 오는 것이다.
5초간의 묵념 정전과 함께.
‘끝나지 않아.’
높은 확률로 여기서 다 죽고 탐사가 종료된다. 그러니까….
‘차라리 이 기회에 탈출한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다른 층에서 다른 사람들을 찾아서 합류하자.
안개가 잦아들고, 정전이 막 끝난…….
깜박.
‘…지금!’
나는 피와 장기와 폭력의 한복판이 된 교무실을 가로질러, 원래부터 열려 있던 문으로 슬라이딩했다.
그 순간,
“포도 씨!”
“…!”
안개가 걷힌 시야에 청동 요원이 보였다.
가면 쓴 직원 하나를 붙잡고 대치 중이었는데, 그 가면은….
“힉.”
“조용.”
들소 가면이다. Y조 마무리팀.
‘장허운이잖아.’
직원들 탈출할 때 못 따라갔냐…!
“이걸로 포박을…!”
요원이 수갑처럼 보이는 아이템을 내게 던졌다.
장허운을 포박하라는 거겠지. 내가 자기 도우러 이쪽으로 왔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난 모두를 손절하기로 결심….
“도, 도망가세요, 노루 씨!”
“…!”
젠장.
장허운은 자기가 부르고 놀라서 입을 틀어막았다.
내 가면의 이름을.
“……노루?”
“아니, 그….”
요원의 표정만 봐도 알겠다.
‘들켰다.’
망할, 그렇다면…!
나는 재빨리 요원이 내민 수갑 아이템을 제대로 잡았다.
그리고 역으로 요원에게 채웠다.
“……?!”
수갑이 커지며 요원의 입과 팔을 구속하고, 거기서 나온 은빛 체인이 내 손에 연결되었다.
“들소 씨, 뜁시다.”
“예, 예…?!”
그리고 난 장허운과 요원을 끌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아아아아악!
[묵념을 마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우리는 아수라장이 된 교무실에서 벗어나, 미친 듯이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교무실 밖으로 한두 개체가 따라 나왔지만, 재차 벌어지는 교무실의 소란에 의해 도로 방향을 돌렸다.
“위를 계속 주시 부탁드립니다.”
“네!”
장허운이 제법 빠릿하게 대답하며 계단 위를 보았다.
‘후우.’
나는 학생들이 따라 올라오지 않고 사라지는 것을 계단 중간에서 바라보며, 식은땀을 닦고 싶은 기분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가 내가 붙잡고 있는 줄 끝에 포박당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재난관리국 요원, 청동 씨가 날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사기를 치자…!’
나는 인생에서 그보다 빠른 적이 없던 속도로 체계적인 감성팔이를 지어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