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80화


내가 덧붙인 탐사기록 13번.

-교복을 적합한 방법으로 입수하여 입으면, 학생으로 취급받을 수 있다.

사실 상당히 파격적인 내용이다.

잘못 다루면 기존 괴담의 맛을 변질시킬 수도 있는 선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학교 괴담.

시선이 없을 때만 움직이는 괴물.

두 가지 클리셰를 변주하여 만든 ‘검은 그늘 밑에서’는 원래 클래식한 ‘쫓기는 자의 공포’ 테마 괴담이다.

일상적으로 익숙했던 장소, 인물이 정체를 종잡을 수 없는 괴상한 것이 되어 나를 죽일 때까지 추격한다는 악몽.

하지만 탐사기록이 10회 넘게 쌓이면 이것도 살짝살짝 빌드업이 들어간다.

‘세계관 백그라운드를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재미를 더해주는 거지.’

탐사기록 #5

칠판에서 발견된 글씨:

선생님을 피해 선생님은 (이후 문구는 거칠게 지워졌다.)

그런 식으로 떡밥이 차곡차곡 붙는다.

그렇게 12회 동안 쌓이기만 했는데, 심지어 이 괴담이 꽤 인기가 있어서 더 ‘쌓이기만’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쯤 되면 답답해지지.’

정보의 공백에서 공포를 느끼는, 기존의 테마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그런데 말이다.

‘학생이라는 내부자로 탐사를 할 수 있으면, 이 떡밥 자체를 회수하는 재미가 더해진다…!’

내가 적은 13번째 탐사기록은 그렇게 괴담 작성자들의 수요와 맞아떨어졌다.

그렇게 ‘검은 그늘 밑에서’ 괴담은 새로운 변곡점을 맞이하게 됐다.

이후 중후반 탐사부터는 그간 기록에 뿌려진 세계관의 으스스한 떡밥들이 전부 회수되며 충격적인 반전을 드러낸다.

더 깊고 스토리 요소가 깊은 탐사기록들로 후반부가 채워지게 된 것이다…….

그건 참 경이로운 간접 경험이기도 했다.

내가 심어놓은 씨앗이 여러 사람의 참여로 더 크고 새로운 이야기로 완성돼 가는 것을 보는 것 말이다.

‘근데 실제 경험도 해볼 줄이야.’

그래.

나는 지금, 그 스토리의 방점을 좀 더 일찍 경험해 볼 계획이었다.

‘가자.’

나는 학생의 모습으로 세광공업고등학교 3층의 어두운 복도를 걸었다.

저 멀리서 공포에 질린 ‘괴물’들이 느릿느릿 복도 모퉁이 사이로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추격 욕구가 확 끓어올랐다가 사라진다.

‘후우.’

교내에서 학생의 역할을 맡아 존재한다는 건 이상할 정도로 편안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서 있는 느낌이다.

그만큼 이질적인 ‘괴물’이 교내를 돌아다니는 것을 목격할 때의 거부감과 파괴욕은 더욱 심했다.

특히.

[2학년 2반에서 사망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처음 저 방송을 듣자마자 심장이 덜컥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릿한 슬픔과 싸늘한 공허함.

그리고 사고의 원인을 찾아야겠다는 의무감!

[모두 5초간 묵념합시다.]

그리고 대낮처럼 밝아진 학교를 마음껏 뛰어나가서, 기꺼이 이 오류의 원인을 제거하고 ‘묵념’하고 싶었지만….

‘난 학생이 아니야.’

잊어버리면 안 된다.

김솔음에겐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우선 4층으로 올라가야 한다. 나는 계단에 발을 디뎠….

‘아.’

어라?

내가 소속된 1학년 5반의 교실은 2층에 있다.

3층으로 올라갈 이유가 없는 것 같다.

팝업처럼 떠오른 생각.

“…….”

이래서 ‘각 층에서 잘 벗어나지 않는다’라는 설정이 학생들한테 붙어 있었던 거지.

물론 못 이길 정도는 아니다. 나는 교복을 빌려 입었을 뿐이지, 실제 이곳의 학생은 아니니까.

‘후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한걸음, 한걸음.

[4F]

복도에 가득 찬 눈부신 ‘묵념의 빛’이 사라지기 한참 전에, 나는 4층에 올라섰다.

전구가 깨지고 깜박거려 어두컴컴하던 그곳.

복도에서 마네킹처럼 멈춘 채 사람을 응시하던 수십 명의 학생들이 있던 4층은 이제….

활기찼다.

“…!”

학생들은 이제 생동감 있는 표정으로 서로 눈짓을 주고받거나 손짓을 하면서 서로 소리 없는 잡담을 나누고 있다.

나는 혹시라도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혀를 깨물었다.

세광공업고등학교의 학생들에겐 목소리가 없다.

교복을 빌려 입은 상태에서 육성으로 말을 걸면 ■■■ ■■■■.

이후 잠에서 깨어나며 의식을 차림.

내가 썼던 문장에 내가 구속받을 줄이야.

나는 나를 힐끗 쳐다보다가 별 관심 없이 시선을 돌리거나, 눈이 마주치자 머쓱하게 웃어주는 학생들 틈 사이를 걸어서 계속 걸었다.

어색해 보이지 말자….

‘자연스럽게….’

나는 복도 모퉁이를 지나, 3학년 교무실 바로 근처 계단 직전에 멈춰 섰다.

작은 철문이 하나 있었다.

[교무실 창고]

보통 학교에서 청소도구 따위를 보관해 두는 자투리 공간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앞에, 대여섯 명의 학생들이 모여서 둘러앉아 있다.

내가 세광공업고등학교의 교복을 입고 있지 않았다면 절대 접근하지 못했을 빼곡한 대형이었으나….

‘이제는 들어갈 수 있지.’

나는 그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학생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1학년이 왜 여기까지 올라왔어?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나는 양호실에서 챙겨온 A4용지를 꺼내어 천천히 글을 썼다.

선배님들이 창고에서 사다리를 찾아오라고 하셔서요.

혹시 꺼내 갈 수 있을까요?

학생 중 한 명이 웃으며 내 펜을 챙겨가서 답글을 단다.

오케이ㅋㅋ

짤랑.

눈을 들자, 다른 학생이 어느새 열쇠꾸러미 하나를 들고 내 앞에서 흔들고 있었다.

나는 그 꾸러미를 받았다.

그리고 직접, ‘4층 창고’라고 적힌 열쇠로 창고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학생만이 들어갈 수 있는 장소.

끼이익.

문틈 사이로 번쩍이는 빛이 내 눈을 찔렀다.

창고 안에서 곳곳의 물건들이 마치 존재감을 발산하듯 반짝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내가 장허운에게 받은 명찰처럼.

‘맙소사.’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도 눈에 띄는 기이한 모습이었다. 나는 창고 문을 잘 닫은 후, 물건들을 향해 바로 손을 뻗었다….

아직 내가 챙길 수 있는 물건이 아닌 것 같다.

팝업처럼 떠오르는 생각을 한 번 더 무시하고, 나는 번쩍이는 각종 물건-양동이, 대걸레, 소형 화이트보드 등-을 헤치고 뒤져서….

마침내 찾던 것을 발견했다.

“…….”

그건 장식 브로치였다.

아마추어가 수제로 제작한 것 같은, 두꺼운 종이를 코팅해 만든 약간 어설픈 맛의 장식.

‘명찰 장식’을(를) 습득했다!

명찰 장식 : ‘축 졸업 하’라고 적힌 꽃장식. 세광공업고등학교의 교화인 철쭉의 모양을 따서 제작한 것 같다.

졸업생에게 선물하는 용도일까?

나는 가장 반짝거렸던 이 ‘명찰 장식’을 챙겨서 주머니에 잘 넣어뒀다.

‘됐어.’

이 괴담을 ‘공략’하기 위한 필수품은 이제 갖추었다.

나는 그 후에도 학생만이 쓸 수 있는 각종 장소를 다니며, 혹시 내가 알고 있던 탐사기록의 정보와 어긋나는 점은 없는지 확인했다.

도서실에 가서 책을 대출한다든가, 음악실에서 피아노 건반을 잠시 두드려본다든가….

‘한 치만 어긋났어도 빠르게 죽어서 깨어나는 편이 낫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모든 것이 일치했다.

‘…좋아.’

이 과정에서 절대 ‘졸업식 행사를 준비 중인 강당’이 있는 5층으로는 올라가지 않았다.

아직 때가 아니었으니까.

‘언제쯤 알림이 올까.’

나는 긴장되는 숨을 고르며, 천천히 기다렸…….

그때였다.

₩uc544₩uc544₩uc544₩uc545₩u0021₩u0021₩u0020₩uc800₩ub9ac₩u0020₩uac00₩u0021₩u0021₩u0020₩uc800₩ub9ac₩u002e₩u002e₩u002e

어마어마한 굉음이 귀를 강타했다.

“……!”

글리치가 소리가 되면 이런 느낌일까?

수백 명이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것 같은, 이 미친 소음!!

정체도 뭔지 알았다.

‘…괴물들이다!’

내게는 오류 난 괴물처럼 보이는 탐사자들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아래층에서 뭐라고 자기들끼리 떠드는 건지 어마어마한 노이즈가 내 귀를, 아니 뇌 속을 강타했다.

엄청난 충동이 몸을 감싼다.

‘이래서 시끄러운 사람부터 추적했다는 거지!’

최소한 소리만이라도 없애고 싶…….

‘…! 진정, 진정하자….’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대신, 몇 초간 최대한 충동을 눌렀다.

‘지금 가자.’

그리고 충분히 차분해진 후에야 이동해, 4층 복도 저편에 있는 괴물들을 확인했다.

괴물들은 학생과 대치 중이었다.

아니, 이미 거의 끝난 상황이다. 학생은 이동 불가 상태로 바닥에 엎어져서 멈춰 있었다.

그런데 괴물들은 전부 리타이어 하지 않았다.

‘젠장.’

나는 준비했다.

멀쩡히 살아남은, 딱 하나의 괴물.

그것은 바닥에 엎어진 학생을 보다가….

나를 돌아보아서.

날 멈추었다.

…….

나는 저 멀리, 나를 멈춘 괴물을 보았다. 픽셀로 뭉개져 얼굴이 녹아내리는 끔찍한 형상의 인영.

그러나 다른 괴물들과 하나 다른 점이 있었다.

‘가면을 썼잖아.’

그리고 그 가면의 형상은….

산양이다!

‘…고영은 씨!’

* * *

“와.”

나만 남았네.

고영은은 숨을 고르며 복도에서 등을 기댔다.

눈앞에는 (아마도) 이 3층의 마지막 학생이 이동 불능 상태로 엎어져 있었다.

아직 살아 있는 것 같긴 했으나 죽일 생각은 안 들었다.

‘죽이면 또 정전되고 몰려오고… 하.’

같이 동행하던 민간인들은 이미 다 사망한 상태였다.

‘그래도 마지막 세 분은 명찰을 가지고 돌아가셨으니까….’

회사 매뉴얼에 따르면 그냥 죽어도 현실에서 일상적으로 생활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꿈결 수집기의 용액이 ‘명찰’을 습득해야만 차오르는 게 찝찝했다.

‘…뭐가 있는 것 같아.’

고영은은 명찰을 아득바득 모아서 고등급 클리어하는 것을 약간 포기하고 일행에게 명찰에 대해 은근히 떠들며 나눠 가졌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방금 다 죽었다.

‘어휴….’

이 회사 다니면서 이 고어한 살육현장과 괴물, 귀신에 이제 제법 익숙해진 탓인지 압도당하진 않았다.

애초에 그녀는 해부학 공부에 카데바 실습도 무리 없이 끝마쳤었으니, 원래도 강한 편이긴 했겠지만.

‘진짜 돌아가신 건 아니라 다행이지 뭐….’

이제 제법 무덤덤하게 이런 생각도 할 정도는 된다는 것이다.

‘…이제 위층에 올라가 볼까.’

고영은이 숨 좀 고르고 움직이자고 판단했을 그 순간이었다.

깜박.

“…!!”

복도 너머에서.

학생이 하나 더 나타났다.

훤칠한 키에, 어딘가 불량한 교복차림을 한 세광공업고등학교의 학생.

‘하.’

와….

더는 못 해 먹겠다!

‘그냥 가자.’

이 정도 버텼으면 그래도 인사고과 문제는 없겠지.

고영은은 피로에 찌들어 머리에 끼고 있던 초강력 헤드랜턴도 그냥 빼버리고 싶어졌다.

그냥 이 거지 같은 악몽에서 깨어날 준비나 할…….

깜박.

…어?

‘자, 잠깐만.’

어두운 전등 아래로 학생의 이목구비가 언뜻 보인다.

무덤덤한 듯 냉철하고 단정한 인상.

“…노루 씨?”

김솔음이다.

혹시 닮은 학생이 아닌가 했으나, 평소에 보던 얼굴보다 약간 앳되어 보이긴 했어도 확실했다.

본인이 맞았다.

고영은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자, 잠깐만…!’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설마! 이 괴담에서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오염’되어서 저렇게 잡히는 건가…?

학생이라는 괴물로?

“아…….”

몇 달간 근무하여 괴담의 오염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공포가 확 밀려왔으나….

다음 순간 결심했다.

‘확인해 보자.’

이대로 깨어났는데 정말로 일이 잘못된 거라면, 중간에 그냥 도망친 스스로가 싫을 것 같았다.

‘어차피 지금 죽어서 꿈에서 깨어나도 괜찮아.’

그녀는 양 눈을 동시에 깜박이지 않으려 기를 쓰며 복도 앞으로 접근했다.

우두커니 굳어 있는 학생의 외관은, 접근할수록 김솔음이 확실하다는 확신만 줬다….

‘…그 토끼 인형도 없네.’

사연이 있는 건지 들고 다니던 봉제 인형 키링도 보이지 않아서, 고영은은 씁쓸함인지 우울함인지 모를 감정을 느끼며 더 전진했다.

깜박.

불이 깜박였지만, 머리에 쓴 헤드랜턴 덕에 문제는 없었다.

‘조금만 더.’

더 가까이 가자.

하지만.

툭.

갑자기 섬광 같은 빛이 고영은의 눈을 찔렀다.

“…!!”

일시적으로 시야가 사라졌다.

원인은 김솔음의 손에 들린 손전등.

타이머를 이용해 몇 초 후에 터지도록 잡아놓은 것이다.

접근하는 상대의 눈이 일시적으로 마비되도록.

구체적으로 어떤 사물 때문인지는 확인할 수 없던 고영은도 사태 자체는 파악하고 아연해 졌다.

‘미리, 설치해서…?!’

함정이었다.

순간 아찔한 감정을 느꼈으나, 동시에 빠르게 마음을 정리했다.

‘어쩔 수 없지.’

다만 대체 이게 무슨 기묘한 일인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하지만 이 생각도 오래는 못 할 것이다. 저 괴물들은 미친 듯이 빠르니까.

나는 이다음 순간, 죽…….

“……??”

안 죽었네?

통증도 꿈에서 깨어나는 부유감도 없다.

…멀쩡했다!

‘뭐야?’

섬광의 후유증에 적응한 고영은은 당황한 표정으로 퍼뜩 ‘학생’을 올려다보아 그를 ‘정지’시켰다.

…….

세광공업고등학교의 교복을 입고 있는 김솔음은 고영은을 보고 있지 않았다.

대신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바닥?’

고영은은 약간 뒤로 물러나서, 김솔음과 바닥이 동시에 시선에 잡히도록 보았는데….

“…!”

바닥에 글귀가 생겼다.

어느새 깔린 A4용지와 그 위에 적힌 글씨.

산양 씨?

으아아악!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