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91화
음산한 뒷골목.
인간이 아닌 것들이 모여 요란스럽고 이상한 야시장에서도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그 어두컴컴함과 악취.
그리고 골목 어귀에 선 나를 응시하고 있는, 가스등 아래의 괴상한 존재들.
유니폼을 입은 퀭한 눈들.
-이런, 구둣발로는 지나가기 꺼려질 만한 장소로군요.
하지만 가야 했다.
그리고 내가 저 풍경에 잠깐 발이 얼어붙었다는 것을 동기들에게 들키면 안 된다…!
철퍽.
나는 뒷골목으로 발을 내디뎠다.
동기들이 바로 뒤에서 따라붙었다.
철퍽, 철퍽.
좁은 벽 사이, 희미한 가스등 밑 검은 그림자들 속으로 걸어 들어가며, 다닥다닥 붙은 쪽문들이 내 양옆으로 지나간다.
“…….”
기괴하다.
마치 끝없이 쪽문이 이어지도록 잘못 합성해 놓은 이미지에 들어온 것만 같은 풍경이다.
그리고 문 사이를 걸어가는 우리를 양옆에서 빤히 쳐다보는 시선들.
‘하.’
다 낡아빠지고 오물이 묻은 유니폼을 입은 자들. 비정상적으로 바싹 마른 검은 몸들이 우두커니 벽에 붙어 서 있다.
머리만 우리에게로 돌리면서.
-스타에게 시선은 필연적이지요! 하지만 휴식도 필요한 법. 이 브라운이 언제나 그랬듯이 잠깐 그 부담을 덜어줄 수 있습니다….
비명을 지르면서 제발 좀 그래 달라고 매달리고 싶지만….
‘아냐. 괜찮아.’
‘조명 끄기’는 지금 쓰면 안 된다.
‘나중에 정말 필요할 때 부탁해도 될까.’
-물론이지요!
그래. 차, 참아야 한다.
‘계획대로 해야 해.’
나는 침을 삼키며 계속 걸었다.
목뒤로 소름이 돋아서 더 걷기 어려울 만큼 다리가 뻣뻣해질 그 순간.
“…어?”
동료의 감탄사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끝없이 늘어선 괴상한 쪽문들, 유니폼을 입은 괴형체들. 그리고….
딱 하나.
살짝 열려 있는 문이 있다.
“…….”
문짝이 살짝 튀어나와 있다.
그 문틈 사이로 보이는 시커먼 어둠.
‘와 진짜.’
공포 영화가 따로 없었다. 눈꺼풀이 다 떨릴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해야 했다.
“저기 문이 하나 열려 있네요. 환영의 징조 같습니다. 들어갑시다.”
“예!”
“아… 그렇군요!”
“…….”
‘이딴 개소리에 설득이 되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그래도 할 건 해야 했다.
나는 심호흡한 뒤, 홀로 열려 있는 쪽문으로 접근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도망치고 싶은 공포가 밀려왔으나 참았다.
대신 가느다랗게 열린 검은 문틈 사이에 몸을 숙여,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충혈된 눈과 마주쳤다.
“…!!”
지, 짐작하고 있던 일이다. 절대, 절대 당황해서 허튼짓하지 말고….
나는 미리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문틈 사이로 겨우 찔러주었다.
담배 한 갑.
“…….”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주 차가운 것이, 내 손끝을 훑는 것 같더니…….
끼이이이익.
쪽문이 활짝 더 열렸다.
‘……후.’
해당 골목에서는 원칙적으로 가게 출입이 불가능하나, 술, 담배 등 중독성 기호품을 활용해 일시적으로 탐사가 이루어지기도 함.
해냈다…!
나는 어느새 담배가 사라진 빈손을 회수하며 이를 악물었다.
와, 진짜 눈물 날 것 같…….
“담배 한 갑, 오천 원 투자로 거래처 문을 열다니! 역시 호재는 따르는 게 아니라 만드는 거군요. 주임님!”
“그러게요…!”
“…….”
나도 차라리 누가 대폭 설득해 줘서 저렇게 마음 편히 다닐 수 있다면 좋을지도….
하지만 지금은 내가 설득한 당사자라는 사실에 통탄하며 발걸음을 옮기는 수밖에 없었다.
‘크흑.’
충혈된 눈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어딘가에서 희미한 담배 냄새가 나기 시작했지만, 그게 어딘가.
‘훨씬 나아.’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안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
아주 어두웠지만 어렴풋이 윤곽이 구분되었다. 검은 천에 덮인 박스와 짐들이 미로처럼 쌓인 공간.
퀴퀴한 창고의 냄새가 났다.
“아, 여기 창고형 마트나 재고떨이점이면 딱이겠군요! 박리다매면 건질 아이템이 많겠는데….”
아쉽지만 아니었다.
나는 박스 사이를 헤치고 나가서 마침내 찾던 것을 찾았다.
“…! 노루 씨, 저기….”
“예.”
안쪽에 문이 하나 더 있다.
우리가 밀고 들어온 것과 비슷하게 생겼으나, 그보다 덜 낡고 깨끗한 쪽문이었다.
‘……이번에도 내가 열어야겠지?’
맨 뒤가 아닌 것에나 감사하자.
나는 앞으로 나가서,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힘껏 당기자….
반짝이는 화려한 빛이 눈을 찌른다.
“…!!”
쏟아지는 빛에 잠깐 흐려졌던 시야가 몇 초에 걸쳐서 천천히 회복되며, 공간을 하나 가득 눈에 담는다.
휘황찬란한 광경이 눈에 담겼다.
우아한 샹들리에 수정과 황동, 깊은 색감의 목재로 실내 골조가 짜여 있으며, 벽에는 황금 액자와 두껍고 윤기 나는 녹색 벨벳 커튼이 걸려 있다.
하지만 그보다 압도적인 게 있다.
상반신만 있는 상아빛 토르소가 벽을 따라 삼면을 채우고 있었는데, 각각 미완성된 정장과 드레스가 진열되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옷의 치수를 재고 재단을 완성 중인, 몸통 없는 흰 면장갑을 낀 손들!
동료들이 입을 떡 벌린다.
“여, 여기는…?”
음침한 뒷골목 같은 곳에서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냐고?
간단히 말하자면….
‘거긴 정말로 뒷골목이었던 거지.’
지금까지 확인된 사망단길의 골목:
38. 부티크 뒷길
우리는 이 휘황찬란한 고급 상점들의 지저분한 뒷길을 통해 들어온 것이다.
당연히 정당한 손님은 아니다.
허드렛일 하는 노역자들과 해고된 노숙자들이 뒹구는 빈민굴 같은 장소에서, 담배 한 갑을 뇌물로 먹여 숨어들어온 날치기들에 불과했다.
하지만 괴담에서 이레귤러 이용하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안 되면 튀자.’
무단 침입을 했다는 게 들통나면 상당히 참혹한 꼴을 당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때는 브라운에게 부탁해서 존재감을 지우고 튀면 된다.
‘뒷문 도주로가 확보된 상태니까.’
그러려고 지금까지 브라운에게 부탁을 참은 거 아니겠는가!
나는 앞으로 나아갔다.
“오오…!”
감탄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심란한 내 심정과 달리, 토르소를 만지던 장갑들은 일사불란하게 반응했다.
휘익!
가벼운 휘파람 소리와 함께 장갑들의 몸이 허공에서 불쑥 드러난다.
바로 고급스러운 남색 유니폼을 입은 마네킹의 몸이다.
아까 뒷골목에서 본 것과 유사하지만 훨씬 깔끔하고 단정하며 디테일이 많았다.
그리고 머리까지 튀어나왔다.
그려 넣은 마네킹의 얼굴.
‘윽.’
응시하지 말자.
나는 황급히 시선을 내렸다.
기괴하지만 참을 만했다.
어쨌든 마네킹 직원은 정중한 자세로 깊게 인사하더니, 안내하듯 나에게 손짓했다.
참고로 저거 따라가면 실종된다.
마네킹 점원의 안내에 따라 이동한 최 대리가 실종됨. 마지막 통신에서 ‘부티크 거리 회원 등록 코너로 이동 중인 것 같다’라고 발언.
추가 : 이후 실종 직원의 망가진 안경을 쓴 노역자가 부티크 뒷길에서 목격됨. 본인으로 추정. (탐사기록 #145 참조)
아마… ‘회원 등록’ 중에 정체가 들통나서 무단 침입의 죄를 노역으로 갚게 된 것을 암시하는 듯했다.
아니면 회원 등록 자체의 비용을 갚지 못했거나.
“…….”
어느 쪽이든, 나는 뒷골목에서 목격했던 낡은 유니폼의 수많은 괴형체들이 본래 어떤 사람이었을지 상상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지금은 의미 없어.’
중요한 건 이것뿐이다.
회원 등록이 문제니 피해야 한다는 것.
‘일단 시험 삼아 비회원 가격으로 비싸게 구매하겠다고 접근해 본다.’
만약에 구매 자격 자체가 회원에게만 있다면, 튀자. 여기서 내가 얻으려던 게 내 목숨보다 귀하진 않으니까.
하지만 내가 우호적인 제스처를 보여주기 위해 손을 들었을 때였다.
…!
프린트된 마네킹의 얼굴 위로 마치 그 표시가 뜨는 것처럼, 마네킹 직원들이 움찔거린다.
그리고 내게 다시 고개를 숙였다.
“…….”
그리고 그 이유가 될 만한걸, 난 딱 하나 알고 있다….
나는 팔을 돌려서 확인했다.
손을 들어 올리며 자연스럽게 내려간 와이셔츠 소맷단 아래로 드러난, 이제는 익숙해진 라틴어 단어를.
: Socius :
“…이걸로 회원 확인이 된 겁니까?”
마네킹이 깊게 고개를 숙였다.
“…….”
이제 무서워진다.
‘벌써 두 번째잖아.’
마스코트가 남긴 ‘테마파크 회원권’ 문신이 내게 괴담에서 권한을 부여해 준 것이 말이다.
-소키우스.
-동료, 회원, 친족 같은 뜻으로 쓰였죠. 라틴어의 범용성이란!
브라운의 말대로, 정말 그 단어가 내포하는 의미 그대로 여기저기서 범용성 있게 통하고 있었다.
심지어 여우 상담실에서도 아는 척을 했었다….
‘…왜 이런 걸 나한테 남긴 거지?’
예전이었다면 개이득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을 수도 있었겠다만 지금은 좀 달랐다.
한 번 오염에 지독히 당해본 경험을 했으니까.
‘이거, 강한 만큼 나한테도 영향력이 강할 것 같은데.’
착한 친구처럼 검증된 소환법을 통해 나온 것도 아닌, 예측할 수 없는 강력한 표식이 내 몸에 있는 걸 어떻게 봐야 하는가?
하지만 이미 회원 인증은 통과되었고, 어차피 위험하다면 알뜰하게라도 써먹어야겠지.
“물건을 보여주십시오.”
마네킹들이 다시 고개를 꾸벅거리며 자신이 작업하던 토르소로 다가가더니, 그 뒤의 커튼을 걷어냈다.
마법처럼 유리장이 나타났다.
그 안에 전시된 한 벌의 매끄러운 정장. 내가 지금 입고 있는 것과 유사한 형태였으나, 어딘가 색이 더 깊고 기묘한 광택이 돌았다….
마음에 드는지 묻듯이, 마네킹들이 양손을 공손히 맞잡고 나를 돌아본다.
‘…시작한다.’
나는 손을 들었다.
“잠시만요. 전 작은 선물용 액세서리 위주로 보고 있습니다.”
명심할 점이 있다.
여기서 분에 넘치는 걸 가져가겠다고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
분명 인간 개인이 제정신으로 감당할 수 없는 가격대일 것이다.
물물교환이든, 화폐든.
그러니까 범위를 좁히자.
“편안히 착용하고 다닐 수 있는 캐주얼한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자 바로 커튼이 다시 내려갔다가 올라간다.
잠깐 가려졌다 다시 드러난 유리장의 품목이 마법처럼 바뀌어 있다.
토르소가 아닌, 상반신 마네킹들 서너 개.
그 목과 팔, 손가락에서 액세서리들이 번쩍거렸다.
“…….”
나는 그중, 가장 가볍고 눈에 띄지 않을 법한 물건을 찾아냈다.
가느다란 은반지였다.
우아한 세공이 가느다랗게 들어가 있었으나, 원료가 가장 적게 들어갈 것 같은 생김새였다.
가장 저렴해 보였다는 뜻이다.
“이건 얼마입니까?”
마네킹들이 우수수 손을 들더니 일제히 가리켰다.
내 뒤의 동행인들을.
“…….”
그래.
<어둠탐사기록>에도 기록된, 이 부티크에서 기본적인 물물교환은….
인간이다.
■■■ 대리가 정신 교란 장비를 이용하여 부티크 기존 회원으로 행세에 성공.
구매 상품 : 반지
비용 : 민간인 세 명 (35세 1명, 21세 2명)
※정부 감사를 대비하여 해당 탐사기록을 이관. 전문 열람을 보안 C레벨 인증자로 한정함.
“……노루 씨?”
“…….”
“저, 저기, 지금 대체 무슨 상황인지….”
“아, 그렇군요. 포장해 주십시오.”
마네킹들이 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내가 고른 반지를 조심스럽게 유리장에서 꺼냈다.
그리고 어디선가 고급스러운 태그가 달린 실크 줄을 가져와 반지에 매듭을 짓더니, 마치 확인해 보라는 듯이 내게 가져왔다.
태그에는… 깨알처럼 작은 글씨가 유려하게 적혀 있다.
나는 그것을 읽으려고 애써서 사망단길 오염 직통 지름길을 걷는 대신, 착한 친구에게 부탁했다.
‘브라운, 읽어주겠어?’
-문제없지요! ‘맞춤 의복 전문, 영원히 낡지 않는 윤택함.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고결한 장인의 솜씨.’
-졸부나 벼락출세한 유명인들이나 혹할 것 같은 문구로군요. 아차! 이건 어디까지나 우리 사이에서만 나눈 이야기입니다, 친구!
‘……그래.’
역시.
‘영원히 낡지 않는다, 항상 그 자리에 있다’…라.
그런 류의 키워드가 있을 줄 알았다.
지속성이나 항상성에 관련된 능력 말이다.
사실 내가 아까 떠올렸던 이 부티크의 탐사기록 중 ‘구매 상품 : 반지’ 항목의 경우, 그 원류가 되는 위키 문서가 따로 있었다.
어떤 대규모 정신 오염 사태.
거기서 유일한 회사 직원 생존자가 바로 민간인 셋 팔고 이 부티크의 반지를 구매해서 착용한 사람이다.
‘…바로 떠오를 수밖에 없지.’
내가 가진 굿즈와 관련된 사건이니까.
바로 은심장 때문에 대참사가 났던, 단 한 번.
그 기차 사고.
직원 ■■■
‘탐라행 고속열차 사태’의 유일한 백일몽 주식회사 직원 생존자.
생존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장비, ‘반지’를 사건 직후 분실했다고 주장.
그건 재난관리국 항목에 기록된 휴먼에러 사고 중 가장 긴 문서로, 단편 소설로 기록되기도 했던 위키였다.
그 정도 대형 사고에서 오염 없이 살아남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반지라니.
그 반지 설정에 개연성과 재미를 주기 위해 역으로 이 부티크 항목이 생겨났던 것과 다름없다.
즉, 이곳에서 판매하는 액세서리나 의상은 위키에 의해 간접 검증된 것이다.
착용 시 정신착란, 세뇌 등 마음의 ‘한결같음’을 깨트리는 상황에서 저항성을 발휘한다고.
그걸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강력한 정신 방어용 장비로 쓸 수 있다는 거지….’
…한번 오염으로 큰일날 뻔한 내게 반드시 필요한 아이템.
“…….”
나는 고개를 들었다.
“좋네요. 이 반지, 결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