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93화
가게 안은 약한 먼지 냄새가 났으나 따듯했다.
오래된 공간 특유의 아늑한 느낌.
달콤문방구에서는 이름값을 하듯, 약간 포근하게까지 느껴지는 단내도 났다.
어깨에 잔뜩 들어간 긴장과 힘이 풀리는…… 아니, 안 되지!
‘방심하지 말자.’
나는 입안을 한번 깨물고 다시 전진했다.
좁은 공간을 미로처럼 감싼 벽마다 철제 선반이 들어차 있고, 그 안에는 칸칸이 각종 간식이 쌓여 있었다.
정중앙의 제법 큰 매대 맨 앞에는 인기 상품의 이름도 적혀 있다.
망각 솜사탕
보들쿠키
태양의맛 칩스칩스
당근이지콕
거꾸로 버불뚝껌
노스텔지어 캔디매진!
나는 조용히 걸어가면서 간식들을 빠르게 눈으로 스캔했다.
‘착한 아이 초콜릿 바’는 보이지 않았으나, 낯익은 이름이나 생김새들이 몇 가지 보였다.
그중엔 비교적 안전하고 쓸모 있는 것들도 있다.
‘좋아. 기왕 온 김에 여기서 거스름돈을 쓰자.’
아이템으로서도 괜찮고 부수입으로 바꿔도 좋았다.
지난번에 청동 요원과 헤어질 때 분위기가 썩 나쁘지 않았으니, 그쪽으로 다시 ‘괴담 유래 식품’ 판매 루트를 복구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골드바까지 탈탈 털린 마당이라 돈 벌 구석이 필요했다.
-제법 많이 고르는군요, 친구! 이빨이 썩지 않게 조심해야겠습니다.
나는 간식 몇 가지를 빠르게 골라냈다.
그리고 멀뚱히 최소 걸음으로 날 따라다녀 주던 도마뱀도 한번 돌아보았다.
“…과장님, 혹시 필요하시거나 구매하시고 싶은 과자가 있을까요? 감사의 의미로 드리고 싶습니다.”
“예.”
의외로 이자헌 과장은 사양하지 않고, 주변을 휙 둘러보더니 과자를 하나 잡았다.
거꾸로 버불뚝껌
입안에서 풍선처럼 후 불면, 내 몸이 건물만큼 커져요!
유쾌연구소 정품 인증 완료
(노점상에서 파는 불량 유사품 주의!)
“……이걸로 괜찮으시겠습니까?”
“예.”
혹시 거대 도마뱀이 되고 싶은 건가.
나는 쓸데없는 상상력을 눌렀다.
‘계산이나 하자.’
그렇게 고른 과자를 양손으로 들고, 가게 안쪽에 있는 계산대로 향했다.
가는 길에 실내 구석구석을 눈으로 훑었지만 ‘착한 아이 초콜릿 바’는 아직도 보이지 않았다….
‘흠.’
결국 계산대에 먼저 도착했다.
“안녕하십니까.”
철제 카운터에 앉아 있던 인영이 고개를 느리게 끄덕였다.
이 가게의 주인일 그것은 후줄근한 평상복에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다.
언뜻 보면 평범한 문방구 주인아저씨처럼 보였으나, 여섯 개 달린 팔이 카운터를 두드렸다….
‘후.’
나는 절대 얼굴을 확인하려 하지 않으며, 구매하려는 간식들만 정중히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빠르게 동전들을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혹시라도 ‘물물 교환’으로 착각 당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나는 처음으로 이곳에서 구매에 성공했던 어둠탐사기록을 떠올렸다.
구매 상품 : 당근이지콕 1개
비용 : 1997년 가족 여행 둘째 날의 기억
그래.
이 문방구는 추억을 값으로 치르는 가게였다.
떠올리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 행복한 기억부터 잊어버리고 싶은 끔찍한 트라우마까지.
어떤 과자를 구매하냐에 따라 잃어버리는 추억의 종류가 달랐다.
‘그래서 은근히 훈훈한 기록부터 섬뜩한 기록까지 탐사 바운더리도 넓었지.’
어느 쪽에 걸릴지 모험하고 싶진 않았다. 특히 내 머릿속에 든 정보가 중요한 이 괴담 세계관에서는 더더욱.
‘착한 아이 초콜릿 바나 찾자.’
아예 주인에게 위치를 물어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포장지에 나로 추정되는 뭔가가 그려져 있는 이상, 괜히 연상되게 만들고 싶지는 않….
“초콜릿 바의 진열 위치를 알려주십시오.”
조장님!
하마터면 직속 상사의 멱살 잡을 뻔했다.
하지만 가게 주인은 아무렇지 않게 선반 하나를 가리키며, 여전히 깊게 의자에 기대어 앉아 있을 뿐이다….
‘후.’
아무래도 그 포장지의 그림이 단번에 알아볼 정도로 나와 유사하진 않았나 보다.
‘도마뱀 간 크기의 절반만이라도 닮고 싶군….’
생식 정육점에서 간을 구매할걸. 나는 그딴 헛소리를 중얼거리며, 계산이 끝난 간식들과 남은 동전을 회수하기 위해 카운터로 몸을 숙였다….
그러자 보였다.
‘어?’
카운터 뒤편에 뭐가 있다.
급하게 치운 것 같은 등신대와 장식용 종이들.
팻말과… 초콜릿 바가 들어 있는 파란색 박스.
테마파크 콜라보 신제품 출시!
착한 아이 초콜릿바 (시나몬 츄러스 맛)
맙소사.
‘찾았다!’
나는 최대한 빠르게 초콜릿 바 포장지를 관찰했다.
내 생각보다 포장지에 헤어스타일이나 가면, 정장이 굉장히 잘 구현되어 있었다.
매대 프로모션이 끝나서 치운 건가? 그렇게 보기엔 묘하게 급하게 치운 것 같….
“…….”
잠깐만.
나는 초콜릿 바의 포장지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저 상품은 날 광고 모델로 삼은 게 아니었으며, 비슷한 생김새의 캐릭터로 포장지를 꾸민 것도 아니었다.
그건…….
이 착한 아이를 찾아주세요.
목격담을 기다립니다.
미아 광고였다.
“…….”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한발 물러났다.
그렇다면…….
띠리리리링.
…….
고개를 삐걱거리며 카운터 위를 돌아보았다.
가게 주인이 전화기를 들고 있었다.
어딘가로 전화 연결음이, 가고 있다가….
달칵.
연결되는 그 순간.
여기 있어!
나는 뒤돌아 이자헌 과장을 붙잡고 뛰쳐나갔다.
여기 있어! 여기 있어! 여기 있어!
욕할 여유도 없다. 나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가게를 가로질러서 카운터로부터 최대한 멀어졌다.
그리고 들어왔던 문을 잡고 당겼…….
어?
왜 저기 있지?
찰칵.
문이 잠겼다.
“…….”
나는 고개를 돌려서, 카운터에 선 가게 주인을 돌아보았다.
“이제 돌아가려고 합니다. 열어주십시오.”
짧은 침묵 후.
괜찮아.
가게 주인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그것이 들고 있던 전화기에선, 어느샌가 검은 물줄기가 새어 나와 뚝뚝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점점 굵게.
꿀렁꿀렁.
가느다랬던 물줄기가 어느새 뭉텅이 지더니, 마치 점토가 빚어지듯 형체가 허공에 뒤틀리며 쌓여간다.
널 데리러 왔단다.
……어디선가 본 적 있는, 마스코트 복을 입은 동물의 형태로….
“…!!”
나는 필사적으로 몸을 돌려 가게 문을 잡아당겼다. 하지만 미동도 없다, 이런 망할 개….
“손을 떼십시오.”
아.
내가 문을 놓는 그 순간, 이자헌이 왼 주먹으로 문손잡이를 내리쳤다.
빠각, 쿵!
거짓말처럼 손잡이가 바닥에 떨어졌다.
연달아 발로 찬 문이 활짝 열리며 바깥 골목이 드러났다.
나와 이자헌은 지체하지 않고 당장 밖으로 뛰쳐나갔다.
내 문!!
뒤에서 거센 물소리가 들렸다. 철퍽, 철퍽, 철퍽!
분노한 가게 주인의 목소리에 섞여서 물소리가 골목까지 따라오고 있다. 머리끝까지 오싹함이 치솟는다.
‘브라운!’
-내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군요, 친구!
그래!
‘조명을 끄자! 이자헌 과장님도 같이!’
-저자까지? 좋습니다. 이걸 내 선물로 하지요!
따딱!
솜 인형에게서 손가락을 튕기는 경쾌한 소리가 들리더니, 또 한 번 무거운 그림자가 내 위를 덮었다.
내가 흐려지는 그 느낌.
“!”
이자헌 과장의 세로 동공이 휙 나를 돌아보았다.
“노루 씨.”
“끝나고 설명하겠습니다. 일단 뜁시다!”
철퍽, 철퍽, 철퍽….
등 뒤에서 골목의 벽 틈마다 물이 거세게 부딪히는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다.
‘망할, 망할!’
…붙잡히면 어떻게 되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미지의 결과라는 것이 사람을 더 미치게 만들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피하는 게 정답이었어.’
뭘 알아내 보겠답시고 온 것부터가 문제였다!
여긴 괴담이었다. 진실 확인이 정답지가 아니라 죽음으로 향하는 지름길이 되기도 하는 세계관이란 뜻이다.
‘잘 모르겠다고 하고 넘겼어야 했는데…!’
아니, 이딴 자책도 나중에!
당신의 몸을 포기하지 마세요!
남은 걸음 수 : 3441
400걸음을 버텨야 했다.
‘다음 골목이 뭐든 간에 그쪽으로 도망가야 한다…!’
이제 바로 뒤에서 급류에 발목 아래가 휘말린 골목의 주민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우와, 즐거워~ 이게 뭐지?”
“물을 타고 마스코트가 퍼레이드를 왔어! 재밌어! 재밌어!”
“워터랜드에서는 후룸라이드를 탈 수 있대! 초콜릿을 먹고 당첨되어서 워터랜드로 가자! 착한 아이를 찾자!”
“와, 착한 아이…….”
“…….”
“…….”
“쟤야?”
X발.
“누구?”
“어디 있어?”
“안 보이는데….”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귀신의 인파를 헤치고 골목을 나아갔다.
-오, 그래요. 비추던 모든 조명이 사라져도 스타는 스타인 법입니다. 그리고 극성팬의 추격은 숙명적으로 견뎌야 할 상황이지요!
-그들이 특히 스타의 외관적 특징을 잘 알고 있다면, 그것만 더 집요하게 찾으려 들지 않겠습니까?
외관적 특징.
나는 포장지에 있던 그림을 떠올렸다.
‘……가면!’
나는 쓰고 있던 가면을 뜯어내듯 벗어 문신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마스크와 모자를 꺼내서 얼굴에 눌러썼다.
자연스럽게 걸음이 느려지면서 물살이 더 가까워졌다. 바닥을 보는 내 시선에, 바로 뒤까지 온 파도가 보였다….
안 돼. 속도 차이가 너무 난다.
‘그렇다면….’
나는 다른 방향을 확인했다.
머리 위!
“…조장님, 전봇대!”
“예.”
나는 바로 옆 전봇대에 매달려 재빨리 타고 올라갔다. 인생에서 그렇게 필사적으로 빨리 뭘 타고 올라가 본 적이 없었다. 손바닥이 까지든 말든 어떻게든, 어떻게든….
‘…됐다!’
내가 있던 자리에 물이 치고 들어온다.
하지만 나는 성공적으로 전봇대의 전선 바로 아래까지 올라갔다.
“하….”
안도감에 풀릴 뻔한 손을 다잡았다.
‘일단 됐어.’
그대로 몸을 비틀어서 골목 벽에 다리를 기대고 자세를 안정시키려던 순간.
툭.
내 정장 주머니에서,
화면이 켜진 스마트폰이 스르륵 떨어진다.
첨벙.
바닥에 들이찬 물로 빠졌다.
돌바닥에 부딪히며 실금이 간 스마트폰 화면으로 물이 들어가고, 어플의 화면이 지지직거린다.
당신의 몸을 포기하지 마세요!
남은 걸음 수 : 3210
그리고…
화면은 꺼졌다.
“…….”
“노루 씨.”
깨진 스마트폰에 검은 표면만 남았다.
기괴하게 움직이는 마스코트 형체의 검은 물 덩어리들은 어둡고 좁은 골목길에 가득 들어차, 가게의 창문들을 이리저리 들여다보았다.
내 스마트폰은 그 물살에 휩쓸렸다.
어느새 골목 구석으로 이동하고, 이동하더니… 마스코트 모양 덩어리를 따라다니는 인파 사이로 사라졌다.
급류는 골목 저편으로, 내가 매달린 전봇대를 스치고 지나간다….
내게 안비되어 있던 탈출 방법과 함께.
“…….”
조졌….
“노루 씨.”
나는 얼어붙은 채로 고개를 돌렸다.
내 바로 밑 전봇대 구간에서 한 손으로 매달려 있던 도마뱀이 내게 손을 뻗고 있었다.
뭔가를 보여준다.
바로 자신의 멀쩡한 스마트폰 화면.
사망단길 나가는 길 →
화살표를 따라 움직이세요!
이자헌 과장은 이 순간 만 보를 무사히 채운 것이다.
나는 이미 길 안내가 활성화된, 이자헌 과장의 스마트폰 어플 페이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런데.
“받으십시오.”
“…예?”
도마뱀이 내게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어플의 길 안내를 따라 탈출하십시오.”
“…!”
동아줄이 내려왔다.
“스마트폰은 소지자가 변해도 인지하지 못합니다. 안내 경로에서 이탈하지만 않는다면, 당신이 탈출할 수 있습니다.”
“…….”
나는 이자헌의 스마트폰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 거절했다.
“그럴 순 없습니다.”
“?”
“과장님. 방금 저 이상한 검은 물은… 분명 절 찾아내려던 겁니다. 지금도 이 골목을 뒤지고 있고요.”
가면을 벗고 존재감을 감춰서 간신히 피했다.
하지만.
“제가 어플의 길 안내를 따라 이동하면, 검은 물을 마주쳐도 못 피합니다. …경로를 이탈하면 안 되니까요.”
어플의 길 안내를 따라 움직이는 동안, 절대로 화면에서 3초 이상 시선을 떼거나 안내 경로에서 벗어나지 말 것.
이를 지키지 못할 시 행방불명 처리됨.
이 규칙은 돌아가는 길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제가 실종되지 않고 무사히 여기서 나갈 확률은, 극히 낮습니다.”
내가 무사하려면 적어도 다른 골목으로 피신한 후에 길 안내가 활성화되어야 했다.
‘하….’
“…전 차라리 다른 길을 찾아보는 게 더 탈출 가능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이자헌이 세로 동공으로 물끄러미 나를 보았다.
“그렇군요.”
“예. 그러니까 조장님께서 그걸로 탈출….”
그리고 자신의 스마트폰을 종료했다.
“…!!”
이 도마뱀이 미쳤나?
“뭐 하시는 겁니까?”
“2인 1조 권장 매뉴얼을 지키는 중입니다.”
앞뒤가 안 맞는 소리를 하네.
“그럼 아까는 왜 제게 탈출로를 양도하려고 하신 겁니까?? 2인 1조가 아니라 혼자 남으실 텐데요!”
“매뉴얼 우선순위를 따랐습니다. 더 자세한 설명을 원한다면 탈출 이후에 요청하십시오.”
이자헌이 평이하게 말했다.
“지금부터 모든 대화와 질문의 우선순위는 해당 어둠에서의 생존 및 귀환으로 합니다.”
“…….”
“노루 씨, 현재 매뉴얼에 기재되진 않았으나 당신이 추론할 수 있는 새로운 탈출법을 구상하십시오.”
맙소사.
“…예.”
나는 간신히 대답했다.
잠시 후.
우리는 전봇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급류가 휩쓸고 간 골목의 바닥을 다시 걷기 시작했다.
길 안내도, 탈출법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