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림천하 21권 철혈행로(鐵血行路)편 : 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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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천하 21권 철혈행로(鐵血行路)편 : 3화


제 211장 청의방파

청의방이 처음 강호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거의 삼십 년 전쯤의 일이었다. 당시 청의방을 창립한 사람은 맹룡노호도 곽단의였고, 방의 명칭 또한 혈룡방이었다.
곽단의는 별호만큼이나 과격한 성격에 거친 손속을 지닌 인물이어서 하루라도 남과 싸우지 않는 날이 없었고 칼에 피가 마를 날이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주위를 지나가던 늙은 도사에게 호되게 당한 후 그 불같은 성정이 한풀 꺾여서 말년에는 여느 사람과 별로 다를 바가 없는 평온한 성격이 되었다고 한다. 곽단의는 혈룡방이라는 이름을 청의방으로 바꾸었는데, 그것은 자신을 감화시킨 늙은 도사가 청의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곽단의가 아들인 곽존해에게 청의방의 방주 지위를 물려주고 물러난 후 청의방은 본격적으로 규모를 늘리고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오륙 년 전 부터는 하남성에서도 손에 꼽히는 거대한 방파를 이루게 되었다.
청의방의 세력이 가장 융성한 곳은 정주였지만, 의외로 총단은 이곳 여남에 있었다. 원래 곽단의가 혈룡방을 세운 장소가 바로 여남이었고, 청의방으로 명칭을 바꾼 후에도 줄곧 이곳을 총단으로 삼았다. 그러다 아들인 곽존해가 청의방의 규모를 키우는 와중에 하남성의 가장 큰 도시인 정주의 세력 확장에 총력을 기울이느라 정주가 본거지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청의방의 총단이 정주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총단은 어디까지나 여남에 자리하고 있었다.
여남의 중앙에 있는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우측을 보면 유달리 커다란 두 개의 기둥이 나타난다. 마치 홍살문을 연상케 하는 그 기둥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이백여 장쯤 들어가면 비로소 한 채의 커다란 장원을 볼 수 있었다. 이곳이 바로 청의방의 총단이었다.
총단의 입구에 있는 두 개의 나무 기둥은 예전에는 혈룡방을 상징하는 붉은색으로 칠해진 용 모양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청의방으로 명칭을 변경하면서 용 모양의 문양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붉은색을 지우고 문양을 깎아버려서 지금처럼 아무 문양도 없는 평범한 나무 기둥이 되어버렸다.
청의방의 창립자인 곽단의가 직접 세운 나무 기둥이라 함부로 뽑아버릴 수도 없어서 그냥 내버려두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청의방의 수수담백함을 나타내는 상징처럼 인식이 되어 청의방에서 사람들을 고용해 관리에 만전을 기울이고 있는 형편이었다.
진산월 일행이 나무 기둥 쪽으로 다가갈 때 네 명의 인물이 나무 기둥 아래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가 앞으로 다가왔다.

“종남파의 고수분들이십니까?”

입을 연 인물은 네 명 중 가장 연장자로, 검은 수염을 기른 사십대 중반의 청의인이었다.
동중산이 재빨리 앞으로 나섰다.

“그렇소. 이분이 본 파의 장문인이시오.”

동중산이 진산월을 가리키자 검은 수염의 청의인과 그의 뒤에 서 있는 세 명의 청의인들이 일제히 그를 향해 정중하게 포권을 했다.

“어서 오십시오, 진 장문인. 저는 청의방에서 수석총관을 맡고 있는 서일명이라 합니다.”

세 명의 청의인들 또한 차례로 자신들의 신분을 밝혔다.

“청의방 우동향의 향주인 낙혼수 구정태입니다.”

“주서향의 향주인 철기추혼 순우곤이외다.”

“홍남향을 책임지고 있는 영풍섬도 두표라 하오.”

뜻밖에도 그들 네 사람은 모두 청의방에서 중책을 맡은 인물들이었다.
청의방은 천지현황우주흥황의 팔 개 향 위에 네 개의 당이 있고, 그 위에 바로 청의방주가 있기 때문에 수석총관가 삼 개 향의 향주들이 나온 것은 청의방으로서는 그야말로 외인을 접대하는 데 최고의 예의를 갖춘 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제 미리 청의방에 사람을 보내 방문첩을 전달했기 때문에 누군가가 마중을 나오리라고 예상하긴 했으나, 막상 청의방에서도 수뇌급 인물들이 네 사람이나 미리 나와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자 종남파의 고수들은 내심 흡족한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과 비하면 종남파의 위상이 얼마나 올라갔는지를 여실히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나 동중산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는 청의방의 방주인 곽존해가 청의방의 세력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무척이나 치밀하고 잔인한 행태를 보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번 청의방과의 비무에 은근히 걱정되는 바가 적지 않았다. 막상 청의방의 환대를 받으면서도 그는 청의방주 곽존해가 순순히 비무에 응해오지 않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나 그의 걱정이 기우에 불과했는지 청의방의 정문을 넘어 총단으로 들어설 때까지도 별다른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청의방 소속의 무사들이 두 줄로 늘어서서 그들이 지나갈 때마다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바람에 얼굴이 뜨거워질 지경이었다.
청의방 총단은 화려한 양식의 건물들이 즐비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대부분의 건물들이 고풍스런 단층의 건물들이었고, 그나마도 모두 합해 이십여 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하남성에 퍼져 있는 청의방의 명성을 생각해본다면 조촐함을 넘어 초라하다 싶을 정도였다.
다만 중앙에는 상당히 잘 만들어진 커다란 연무장이 있어 이곳이 무림방파임을 알 수 있게 했다. 연무장은 그 크기도 무척이나 넓었을뿐더러, 바닥에 단단한 화강암을 정교하게 잘라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금치 못하게 했다.
연무장 안에는 적지 않은 인원들이 도열해 있었고, 연무장의 끝에는 붉은색 융단이 깔린 단이 마련되어 있었다. 단상에는 십여 명의 인물들이 앉아 있었는데, 가장 중앙에 있는 짙은 청색 장포를 걸치고 이마에는 푸른 두건을 쓴 당당한 체구의 중년인이 유독 시선을 끌었다. 청포중년인의 나이는 대략 삼십대 후반쯤으로 보였는데,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눈빛이 형형해서 언뜻 보기에도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동중산이 진산월을 향해 나직하게 소곤거렸다.

“중앙에 있는 청의인이 청의방 용두방주인 곽존해이고, 그의 양옆에 있는 인물들이 청의방의 최고고수들인 사웅입니다. 그들 중에서도 특히 곽존해의 오른쪽에 있는 철수패왕 최력은 정말 주의해야 할 무서운 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진산월의 시선이 빠르게 단상을 훑고 지나갔다.
단상에 있는 인원은 모두 열두 명이었는데, 동중산의 말대로 곽존해와 그의 양옆에 있는 네 명의 인물들의 기도가 두드러져 보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곽존해의 오른쪽에 있는 인물은 칼날같이 예리한 눈으로 진산월을 응시한 채 눈도 깜박이지 않고 있었다. 그는 오십대 중반의 비쩍 마른 중년인이었는데, 양팔이 유달리 길어서 마치 원숭이를 연상케 했다. 진산월과 시선이 마주치자 그의 얼굴에는 한 줄기 냉랭한 미소가 떠올랐다. 덤빌테면 덤벼보라는 듯한 다분히 도발적인 미소였다.
하나 진산월은 그를 한번 힐끗 쳐다보고는 이내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시선이 단상의 인물들을 차례로 훑다가 한인물에게로 고정되었다. 그는 의외로 단상의 제일 끝에 서있는 평범한 인상의 청년이었다.
남들처럼 청의를 입고 허리춤에 한 자루 장검을 차고 있다는 것 외에는 그다지 특이한 구석이 보이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런데도 진산월은 한동안 그 청년을 응시하더니 동중산을 향해 묻는 것이었다.

“저 청년이 누구인지 아느냐?”

동중산은 진산월이 그 청년을 유심히 바라볼 때부터 열심히 머리를 굴려보았으나 마땅히 생각나는 사람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제자가 모르는 인물입니다. 아는 인물이십니까?”

“나도 모른다. 단지 저들 중 가장 뛰어난 고수인 것 같아 궁금했을 뿐이다.”

진산월의 말에 동중산은 새삼스런 눈으로 청의청년을 바라보았다. 나이는 아무리 많이 보아도 서른이 넘지 않을 것 같았고, 눈빛도 여느 사람과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하나 진산월의 입에서 나온 말이니만큼 겉보기와는 다른 뛰어는 무공의 소유자임이 분명했다.
동중산은 자신이 알고 있는 청의방 소속의 고수들을 하나씩 떠올려보았으나 당최 그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청의방에서 사당을 맞고 있는 사웅 외의 고수라면 두 명의 집법과 세 명의 호법들뿐인데, 그들 중 이십대의 젊은 청년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최근에 청의방에서 영입한 고수란 말인데… 장문인께서 관심을 기울일 정도의 고수가 새로 들어왔다면 강호에 알려지지 않을리가 없는데 정말 기이한 일이구나.’

진산월 일행이 단 가까이 오자 단상에 앉아 있던 곽존해가 자리에서 일어나 단 아래로 내려왔다.

“어서 오시오. 강호에 명성이 자자한 진 장문인을 만나게 되어 반갑소. 내가 청의방을 이끌고 있는 곽모요.”

곽존해의 음성은 외모만큼이나 당당하고 자신감에 차 있는 것이었다.

“종남의 진산월이라 하오. 갑작스런 방문에도 환대를 해준것에 감사드리오.”

곽존해는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신검이라고까지 소문난 진 장문인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이 정도로 어찌 환대라고 하시오? 이쪽은 본 방에서 수석당주를 맡고 있는 철수패왕 최력이라 하오.”

곽존해가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오십대 중년인을 소개하자 중년인은 한 걸음 앞으로 나와 간단하게 포권을 했다.

“집혼당주 최력이오.”

“반갑소. 진산월이오. 이쪽은…”

진산월과 곽존해가 서로 자신의 방파의 고수들을 소개하는 시간이 지나자 곽존해는 진산월을 단상으로 안내했다. 단상에는 어느새 종남파 고수들의 수에 맞는 의자가 새롭게 놓여져 있었다. 그 짧은 사이에 종남파 인원들을 헤아려 의자를 준비한 것만 보아도 청의방의 일처리가 얼마나 신속하고 정확한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양파의 고수들이 자리를 잡은 후 곽존해가 웃음 띤 얼굴로 입을 열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종남파의 쟁쟁한 고수들을 직접 보게 되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오. 사실 어제 배첩을 받고는 가슴이 뛰고 흥분이 되어 밤에 제대로 잠을 자지도 못했소. 여기까지 오는 길에 불편한 점은 없었소?”

“편안하게 잘 왔소. 여남의 거리는 무척이나 깨끗하고 분위기도 소란스럽지 않고 조용해서 아주 인상적이었소.”

“하하… 본 방이 이곳에 자리를 잡은 지도 삼십 년이 넘었소. 처음에는 이곳도 상당히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곳이었으나 선친께서 노력하신 덕분인지 지금은 조금의 소란스러움도 찾아볼 수 없는 평화로운 고장이 되었소.”

“노고가 많으셨구려.”

“별말씀을.”

“그런데…”

진산월의 가장 끝 쪽에 앉아 있는 청의청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저 쪽에 앉아 계신 분은 조금 전에 미처 소개를 받지 못한 것 같은데. 어느 분인지 알 수 있겠소?”

곽존해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난처한 기색이 떠올랐으나 이내 호탕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하…. 저 아이는 내 막냇동생이오. 어려서 다른 문파의 제자로 들어갔는데, 마침 인사차 나를 찾아와서 이 자리에 함께하게 된 거요. 본 방이 소속이 아니어서 진 장문인께는 따로 인사를 시키지 않았소.”

청의청년이 그 말을 들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포권을 했다.

“곽승이라 하오.”

“진산월이오.”

곽승을 한 차례 훑어본 진산월은 이상하게 그 뒤로는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동중산은 진산월이 갑자기 그에게서 신경을 끊은 것이 이상했으나 청의방 인물들이 있는 자리에서 물어볼 수도 없어서 의구심을 속으로 삭일 수밖에 없었다.
시비가 가져온 차를 한 모금 마신 곽존해는 진산월을 향해 웃는 낯으로 입을 열었다.

“진 장문인께서 여남의 구석에 있는 본 방을 방문한 것은 아마도 요즘 하남성 일대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비무행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내 짐작이 어떻소?”

진산월이 용건을 꺼내기도 전에 곽존해가 먼저 종남파가 찾아온 이유를 말해버리자 동중산이 아차 싶어 재빨리 품속에서 미리 준비한 비무첩을 꺼내 곽존해의 앞으로 내밀었다.

“어제 배첩을 드릴 때 함께 보내야 했으나, 비무첩만큼은 직접 전달하는 게 도리일 것 같아 제가 가지고 왔습니다. 늦게 드려 죄송합니다.”

동중산이 정중하게 말하자 곽존해는 비무첩을 받아 대충 펼쳐본 후 아무렇게나 탁자 위에 놓으며 빙긋 웃었다.

“어차피 그쪽이나 이쪽이나 뻔히 용건을 알고 있는데 비무첩을 늦게 받는다고 무슨 상관이 있겠소? 그런데 진 장문인은 어떤 식으로 비무를 하실 생각이시오?”

진산월은 담담한 눈으로 곽존해를 응시했다.

“본 파와의 비무를 응해주시는 거요?”

곽존해의 얼굴에 떠올라 있는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자랑은 아니지만 본 방이 세워진 후 아직까지 어떤 문파의 도전도 거절해본 적이 없었소.”

말하는 음성과 태도에서 패도무쌍한 기운이 물씬 풍겨 나왔다. 그와 함께 단 아래 도열해 있던 청의방 고수들이 일제히 입을 모아 소리쳤다.

“청의방도 용맹무쌍, 적전무퇴 소향무전!”

수백 명의 고수들이 내지르는 쩌렁한 고함 소리가 넓은 연무장을 뒤흔들었다. 간담이 약한 자는 그 고함 소리만으로도 오금이 저릴 정도로 맹렬한 기세가 연무장을 뒤덮었다.
종남파 일행들은 삼 년 전에 숭산 아래에서 청의방 인물들이 형산파 고수들에게 낭패를 당했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종남파 고수들이 그들에게서 받은 인상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 이곳에 모인 청의방 고수들은 당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칼날같이 예리한 기상을 풍기고 있었다.
물론 이곳이 총단이어서 정예들이 많이 모여 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동중산은 내심 짚이는 것이 있었다.

‘청의방이 최근 몇 년 동안 외부로의 확장을 자제하고 내실을 다져서 그 역량이 크게 늘었다고 하더니 과연 방도들이 많이 정예화된 모양이로구나.’

그런 자신감이 있기에 ‘청의방도는 용맹무쌍하며, 적을 앞에 두고 물러나지 않으니 나아가는 길을 막을 자가 없다’라고 소리칠 수 있는 것이다.
곽존해가 오른손을 들자 청의방도들이 다시 입을 다물어 주위가 조용해졌다. 곽존해는 신광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진산월을 응시하며 한 자 한 자 힘주어 말했다.

“종남파에서 비무를 청해온 이상 본 방은 당연히 그 비무에 응할 것이오. 이제 비무 방식을 말해보시오.”

“각 파에서 세 명씩 나와서 실력을 겨루어보는 게 어떻겠소?”

곽존해의 시선이 종남파의 고수들을 한 명씩 차례로 훑고 지나가더니 이내 다시 진산월에게 고정되었다.

“세 명이라면 너무 적지 않겠소? 본 방에서 종남파 고수들과의 비무를 고대하는 자들이 적지 않으니 말이오. 저 어린 소년을 제외하고 오늘 이곳에 오신 종남파 고수분들이 다섯 분이니 다섯 사람으로 하는 게 좋을 듯하오만.”

이 말을 듣고 있던 종남파 고수들의 얼굴이 모두 굳어졌다. 특히 손풍은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냐는 듯 눈을 부릅뜨고 곽존해를 노려보고 있어 동중산이 황급히 그의 손을 붙잡고 달래야 할 형편이었다.
그런데 진산월은 의외로 선뜻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좋소. 대신 승자가 계속 싸우는 연승식으로 하는 게 어떻겠소?”

곽존해는 자신의 의도가 이루어진 것에 만족하는지 흔쾌히 승낙을 했다.

“진정한 실력을 가르기 위한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되는구려. 그렇게 합시다.”

이로서 이번 청의방과 종남파와의 비무는 각 파에서 다섯 명의 고수들이 나와 승자가 질 때까지 계속 싸우는 방식으로 결정되었다.
이러한 방식은 자칫 한쪽의 일방적인 독주가 될 우려가 있어서 정파들간의 비무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는 것이었으나, 그만큼 무림인들의 입맛에는 더 맞는 것이었다. 곽존해의 말마따나 어설프게 우열을 가리기보다는 승자가 분명하게 결정되는 이 방식을 무림인들이 더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곽존해는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그치지 않고 있었지만, 안면 가득 투지 넘치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번 양파의 비무는 본 방으로서는 절대로 소홀히 할 수 없는 중대한 사안이오. 그래서 몇 분의 참관인을 두어 제대로 된 형식을 갖추고자 하오. 마침 이 근처에 강호에서 명숙으로 널리 알려진 하삭삼은께서 와 계신 듯하니 그분들을 참관인으로 모시는 것이 어떻겠소?”

진산월은 선뜻 수긍을 했다.

“하삭삼은이 근처에 계시다면 마땅히 모시는 게 도리일 것이오.”

하삭삼은은 무공이 뛰어나면서도 학식이 높고 인품이 고매해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이름난 명숙들이었다. 동중산과 뇌일봉도 하삭삼은이라면 공정한 심판을 할 수 있으리라고 판단했다. 오히려 뇌일봉은 과거에 하삭삼은과 약간의 안면이 있기에 더욱 기꺼워하는 모습이었다.
곽존해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뼉을 탁 쳤다.

“하삭삼은 세 분은 바로 모셔오겠소.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으니 비무는 한 시진 후 이곳 연무장에서 벌이기로 합시다.”

비무가 결정되자 진산월 일행은 잠시 휴식을 위해 객청으로 안내되었다.
객청에 자리를 잡자마자 손풍이 울그락불그락한 얼굴로 무어라고 입을 열려 했으나, 동중산이 한발 먼저 진산월을 향해 신중한 음성을 내뱉었다.

“다섯 사람이 출전한다면 손 사제까지 나서야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손풍은 자신이 할 말을 동중산이 대신 꺼내자 입을 다물고 진산월의 대답을 기다렸다.

“손풍이 나설 필요가 있겠느냐?”

“예?”

동중산이 의중을 몰라 되묻자 진산월은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번 비무에서 손풍뿐 아니라 너도 나설 필요가 없다. 그 전에 비무가 끝날 테니 말이다.”

그제서야 동중산은 진산월의 말뜻을 알아차리고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렸다.

“아! 그래서 연승식을 제안하신 것이군요.”

일 대 일의 비무라면 다섯 사람이 모두 출전해야 하나, 연승식의 비무에서는 이쪽에서 몇 명이 나서든 상대편의 출전자들을 모두 꺾는다면 그 순간 승부는 끝이 나버린다. 진산월은 애초부터 손풍과 동중산을 제외한 자신과 전흠, 낙일방 세 사람만으로 비무를 끝낼 생각이었던 것이다.
손풍은 연승식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해 있다가 동중산의 설명을 듣고서야 안색이 활짝 밝아졌다. 아무리 남에게 두들겨 맞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손풍이라고 해도 무공을 익힌 고수들과 진검을 들고 비무를 한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질색할 일일 수밖에 없었다.
장내의 분위기가 한결 밝아졌으나 동중산은 아직도 완전히 경계심을 풀지 않은 듯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곽존해는 상대 세력을 제거할 때 아주 치밀하면서도 냉혹하게 일처리를 해서 어떤 사람들은 냉혈잔심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더구나 그는 효웅 기질이 다분하여 나에게 약세를 보이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한다고 하니 조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뇌일봉이 듣고 있다가 말참견을 했다.

“네 말도 일리는 있지만, 하삭삼은이 참관인이 된다면 곽존해가 허튼수작을 부리지는 못할 것이다. 하삭삼은은 강호에서의 명망이 높을뿐더러 내가 본 바로도 충분히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저도 하삭삼은 세 분의 명성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다만 강호에 알려진 곽존해의 성격이라면 자신들이 비무에서 이기기 위해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다고 생각되기에 걱정스러울 뿐입니다.”

뇌일봉도 그 말에는 어느 정도 동조를 하는지 표정이 약간 무거워졌다. 강호의 흉험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고 그로서는 동중산의 말을 무작정 무시할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만에 하나 그들의 수작에 넘어가 비무에서 자칫 패하기라도 하는 날에는 종남파의 구파진입은 시작해보기도 전에 실패로 돌아가게 될 것이고, 앞으로의 여정 또한 극도로 험난해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묵묵히 이들의 말을 듣고 있던 전흠이 의아한 듯 물었다.

“강호의 비무에서 정당한 실력으로 겨루는 것 외에 무슨 수작을 부릴 여지가 있단 말입니까?”

동중산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원칙은 그렇지만 수작을 부리려면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흔한 방법은 독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음식이나 음료수에 독을 투입하는 것은 물론이고 병장기에 독을 묻히거나 심지어는 상대가 앉는 의자나 탁자에 침투독을 발라놓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치명적인 것은 아니지만,
내공을 운용하는 데 약간의 지장을 주거나 몸 상태를 불편하게 하는 독은 나중에라도 그 흔적을 알아내기가 어려워서 주의해야 합니다.”

“청의방이라면 그래도 하남성에서 가장 유명한 방파 중 하나인데 그런 추잡한 짓을 벌일 리가 있는가?”

“강호에서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설사 명문정파라고 해도 비무에서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면 비무에 패해서 문파의 명성에 누를 끼치는 것보다는 순간의 수치심을 참고 편법을 이용해서라도 명성을 보존하고자 하는 유혹을 느끼게 될 겁니다. 하물며 청의방같이 패도를 추구하는 방파라면 더 말할 나위 없겠지요.”

전흠은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물었다.

“독말고 주의해야 할 다른 방법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비무장에 특이한 장치를 하거나 지형적인 특수성을 이용하기도 하고, 억압적인 분위기로 상대가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하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참관인을 매수하여 승패를 뒤집거나 어느 한쪽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판정을 내리도록 하는 경우도 있고, 아예 비무의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상대를 암습해서 제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흠의 얼굴에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비무에서 지고 오히려 상대를 암습해 죽인단 말인가? 설마 그 정도로 막가는 경우는 없겠지?”

“거대문파간의 비무에서는 그런 일이 없지만, 문파간의 세력 차이가 많이 나는 경우에는 간혹 그와 유사한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 경우에도 생존자가 없기 때문에 자세한 내막은 알려지지 않지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누구라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요.”

전흠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다.

“강호라는 곳에 대한 회의감이 드는군.”

“정작 주의해야 할 일은 비무의 방식을 철저히 이용하는 경우입니다. 이건 딱히 불법이라고 할 수도 없고 트집을 잡을 수도 없기 때문에 알면서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전흠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비무의 방식을 이용한다는 게 어떤 것인가?”

“가장 일반적인 것은 무공의 상성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무공에 가장 상극인 무공을 지닌 자를 상대로 내보내는 것이지요.”

“그 정도라면 굳이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없지 않겠나?”

“이치상으로야 그렇습니다만, 오늘처럼 본 파의 출전자가 거의 정해져 있는 상황이라면 청의방은 얼마든지 심사숙고하여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인물들로만 선별하여 내보낼 수 있습니다.”

“그거야 비무행을 시작할 때부터 이미 각오한 일 아닌가?”

“더욱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그건 우리가 결코 부상을 입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피육의 가벼운 상처라면 몰라도 뼈가 다치거나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는 일은 무조건 피해야 합니다.”

“그건 왜 그렇지?”

동중산은 진중한 음성을 내뱉었다.

“우리의 진정한 목표는 청의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흠은 표정이 무겁게 굳어졌다가 이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건 정말 만만한 일이 아니로군.”

종남파의 비무행은 이제 겨우 시작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 두 명이라도 심각한 부상을 당하게 되면 비무행을 계속하는데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게 된다. 만약에 전흠과 낙일방이 모두 다치는 상황이라도 된다면 비무행은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가지의 비무가 가벼운 몸 풀기에 불과했다면 이번 청의방과의 비무야말로 처음으로 문파의 명예를 걸고 벌이는 제대로 된 일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조금 전에 보았던 청의방 고수들의 면면을 생각해본다면 전력을 기울인다 해도 쉽사리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쪽은 상대가 수작을 부릴 것에 대비해야 할뿐더러 심각한 부상을 당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하는 것이다. 승패를 장담하기 어려운 치열한 격전에서 상대방은 부상을 염두에 두지 않고 마음껏 실력 발휘하는 데 비해 이쪽은 부상을 신경 써서 몸을 사린다면 그 결과는 명약관화할 것이다.
전흠이 비장한 표정을 짓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나 진산월은 그 점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전흠이 이런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오히려 자기의 실력을 십분 발휘하는 성격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동중산도 말과는 달리 전흠에 대해서는 크게 우려하지 않았다. 그가 신경 쓰는 것은 다른 부분에 있었다.

“장문인께서는 조금 전에 보았던 곽승이란 인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는 상당히 뛰어난 실력을 지닌 검객이다.”

“장문인게서 그자에게 관심이 많은 줄 알았는데 나중에는 별로 신경을 쓰시는 것 같지 않아 의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무형지기를 발출할 정도의 고수라서 정체가 궁금했었다.”

동중산의 외눈이 번쩍 빛났다.

“그렇다면 그의 정체를 알아내셨단 말씀이십니까?”

“이름을 알았지.”

“예?”

뜻밖의 대답에 놀라 동중산이 외눈을 크게 뜨며 되묻자 진산월은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너도 듣지 않았느냐? 그자는 곽존해의 막냇동생이며, 다른 문파에서 수학하고 돌아온 인물이다. 그 정도면 충분히 그자에 대해 알 만큼 안 것이다.”

동중산의 머리가 비상하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장문인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면 곽존해의 말만으로 그자의 정체를 알아내셨다는 뜻이다. 대체 내가 놓친 게 무엇일까?’

동중산이 외눈을 깜빡이지도 않고 생각에 골몰하자 뇌일봉이 대신 나섰다.

“나도 궁금하구나. 혼자 알고 있지만 말고 속 시원히 털어놓아 보거라. 내가 보기에도 제법 기도가 범상치 않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네가 경계해야 할 만큼 뛰어난 고수로도 보이지 않았는데, 그의 정체가 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중인들의 시선이 모두 자신에게로 쏠리자 진산월은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어야만 했다.

“뇌 숙부께서 그자에게서 특이한 점을 찾지 못한 것은 그자가 제게만 무형지기를 발출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자에게만 무형지기를 발출하는 것은 검도가 절정의 수준에 이르지 않고서는 어려운 이야기지요.”

“그래서 노부의 눈에는 평범한 젊은이로만 보였던 것이로군.”

“그 정도의 나이에 그런 실력을 지닌 검객을 배출할 수 있는 곳은 강호에서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의 검을 보니 손잡이 부근에 매의 눈알을 연상케 하는 특이한 문양이 새겨져 있더군요. 마침 저는 얼마 전에 그와 유사한 문양의 검을 지닌 자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동중산이 무언가를 느낀 듯 짤막한 경호성을 터뜨렸다.

“점창파!”

진산월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뇌일봉을 향해 말을 이었다.

“더구나 곽씨란 그리 흔한 성이 아닙니다. 그리고 며칠전의 그자들 중에서도 같은 성을 쓰는 인물이 있었지요.”

뇌일봉은 무겁게 침음했다.

“음… 네 말은 그자가 점창파의 고수이며, 소림사에서 일방과 겨루었던 곽희와 형제라도 된다는 것이냐?”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곽승이 동생이 되겠지요. 나이가 몇살 어려 보이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곽희는….”

“그도 또한 곽존해와 형제일 겁니다. 그들 세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아래턱과 눈매에 유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단지 나이 차이가 제법 많이 나고 체격이 서로 달라서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 것뿐입니다.”

동중산의 외눈에서 쉴 새 없이 기광이 번쩍거렸다.

“장문인의 말씀을 듣고보니 확실히 그렇군요. 곽존해가 곽승을 막내라고 한 것은 곽존해와 곽승 사이에 다른 형제가 있다는 뜻입니다. 단순히 두 형제뿐이라면 막내라는 단어를 쓰지 않겠지요.”

“그렇다.”

“곽승과 곽희가 점창파에서 함께 수학했다면 곽승 또한 진공검을 익혔을 가능성이 높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중인들의 얼굴이 모두 굳어졌다. 심지어는 지금까지 한쪽에서 허공을 응시한 채 무언가 깊은 상념에 잠겨 있던 낙일방마저 퍼뜩 정신을 차리고 그를 돌아볼 정도였다.
진산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것이다. 그리고 내 짐작이 맞다면 그의 진공검은 곽희보다 뛰어난 수준일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곽희 대신 그가 이 자리에 있지 않았을 테니까.”

“곽승이 이번 비무에 나오리라고 보십니까?”

“반드시 그럴 것이다.”

그대 낙일방이 불쑥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만약 그렇다면 그자는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사람들이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말도 없이 생각에만 잠겨 있었기에 그가 자신들의 대화를 듣고 있을 줄은 짐작도 못했던 것이다.
뇌일봉이 신기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이제 정신을 차렸나보구나. 대체 오늘 하루 종일 무슨 생각을 그리 하고 있었던 거냐?”

낙일방의 얼굴에 멋쩍은 웃음이 떠올랐다.

“별거 아닙니다. 그저 최근에 익히고 있는 구반장법의 초식들이 뇌리에 어른거려 그 배합을 궁리하고 있었습니다.”

뇌일봉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초식 연구에 빠져 그렇게 넋이 나간 놈처럼 있었다니 이제는 정말 무공광이 다 되었구나.”

동중산의 표정은 여전히 무거웠다.

“곽승이 이곳에 나타난 것이 단순히 자신의 형을 찾아온 것이라면 모르지만 본 파와의 비무를 미리 염두에 둔 것이라면 사태가 심각해집니다. 저는 아직도 점창파가 왜 이토록 집요하게 본 파를 노리고 있는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석가장에서의 비무 때문이라면 소림사에서 벌어진 삼
파비무로 충분히 체면치레를 한 셈일 텐데, 굳이 이곳까지 따라와서 기어이 승부를 내려고 하니 말입니다.”

진산월 또한 그 점이 의아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종남파와 점창파는 교분이 두터운 사이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원한을 맺은 적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들의 짐작대로라면 점창파는 종남파에 대해 이상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는 소림사에서 잠깐 보았던 백리장손의 표독스런 얼굴을 떠올리고는 내심 침음을 했다.

‘곽승이 곽희와 형제라면 두 사람 모두 백리장손을 사사했을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곽승이 이곳에 온 것은 백리장손의 지시가 있거나 적어도 그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다.’

진산월은 설사 자신들이 청의방과의 비무를 무사히 끝낸다해도 조만간에 어떤 식으로든 백리장손과 만나게 될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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