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림천하 25권 취와미인(醉臥美人)편 :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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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천하 25권 취와미인(醉臥美人)편 : 2화


제 252장 진입강남(進入江南)

예전에 구강의 배 위에서(昔在九江上), 멀리 구화산의 봉우리를 바라보니(遙望九華峯). 녹수는 하늘에 걸려 있고(天河掛綠水), 아홉 개의 연꽃 같은 봉우리는 실로 빼어나더라(秀出九芙蓉). 한 바탕 손짓이라도 하고 싶지만(我欲一揮手), 어느 누가 나를 따를 것인가(誰人可相從). 그대는 동도의 주인이 되어(君爲東道主), 구름과 소나무를 벗 삼아 이곳에 누워 있구나(於此臥雲松).

장강에서 바라보는 구화산은 독특한 정취가 있었다. 구화산의 원래 이름은 구자산(九子山)이었다. 당대(唐代)의 명시인 이백(李白)은 구강 근처에서 배를 타고 구화산의 아홉 봉우리를 바라보며 마치 연꽃을 꽂은 것처럼 수려하다고 감탄했으며, ‘묘유분이기(妙有分二氣: 묘한 기운이 두 개로 나뉘었으니), 영산개구화(靈山開九華: 영산에 아홉 개의 연꽃이 피었구나).’라고 노래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구자산을 구화산이라고 불렀다. 진산월 일행이 구화산에 당도한 것은 해가 중천에 떠있는 정오 무렵이었다. 구화산에 면한 구강(九江)은 장강(長江)의 한 지류여서 장강 이북에서 배를 타고 거슬러 올라가면 구화산이 지척에 보이는 구강의 언덕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장강에서 본 구화산이 아홉 송이의 연꽃을 보는 것 같았다면, 막상 구강의 나루터에 도착해 올려다 본 구화산은 끝없이 늘어선 봉우리들로 인해 장엄하게 펼쳐진 거대한 병풍을 연상케 했다. 장강을 건널 때까지만 해도 주위의 풍광을 둘러보느라 여념이 없었던 중인들은 막상 나루에 도착하여 구화산을 목전에 두게 되자 모두들 표정이 무거워졌다. 강호의 전설인 모용 대협이 있는 구궁보를 찾아간다고 생각하니 절로 가슴에 납덩어리를 달아놓은 것처럼 무거운 중압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만큼 강호인(江湖人)들에게 있어 모용 대협의 위치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구궁보는 그들이 내린 구강의 나루터에서 한 시진쯤 말을 달리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동중산이 진산월을 향해 조심스런 음성으로 물었다.

“지금 바로 출발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근처 주루에서 잠시 쉬었다 가시겠습니까?”

장강을 건널 때부터 동중산은 부쩍 진산월을 대하는 태도가 신중해졌다. 구화산에 가까워질수록 진산월의 전신에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무거운 기운이 풍기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진산월은 문득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들이 장강을 건너 이곳까지 오는 시간이 제법 소요되었기 때문에 몇몇 사람들의 안색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가벼운 뱃멀미를 하는 모양이었다. 진산월은 특히 우거지상을 짓고 있는 손풍을 일견하고는 이내 마음을 결정했다.

“점심시간이 되었으니 간단한 요기라도 하는 것이 좋겠구나.”

“알겠습니다. 마땅한 주루를 찾아보겠습니다.”

동중산이 재빨리 머리를 조아리고는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일행의 막내인 손풍이 해야 할 일을 대제자인 그가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 이번에는 아무도 그것을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는 항상 손풍을 못마땅해 했던 전흠조차 한쪽에 우두커니 서 있는 손풍을 탓하지 않았다. 십이경맥을 뚫는 일이 막바지에 다다라서 손풍이 그야말로 하루하루를 지옥과 같은 고통 속에서 보내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제도 손풍은 두 시진이 넘는 시간 동안 죽음과도 같은 고통과 사투(死鬪)를 벌인 끝에 간신히 열 번째 경맥을 뚫을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경맥은 두 개에 불과했으나, 그것을 뚫기 위해서 얼마나 모진 시련을 겪어야 하는지는 당사자인 손풍 본인 외에는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을 것이다. 하나 항상 생기발랄했던 손풍이 요즘 들어 초췌할 정도로 안색이 좋지 않은 데다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안 하고 지나치는 것으로 보아 그의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누구라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동중산이 찾아낸 주루는 나루터 근처의 크고 작은 십여 개 주루 중에서 가장 끝 쪽에 있는 것이었다. 비록 그리 크지는 않았으나 조용하고 한적할 뿐 아니라, 창가의 자리에 앉으니 일대의 풍광이 한눈에 내다보여 누구도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용케도 이런 자리를 알아냈군.”

성락중이 웃으면서 말하자 동중산도 살짝 미소 지었다.

“사실은 조금 전에 배에서 내릴 때 뱃사공에게 살짝 물어보았습니다. 뱃사공 말이 가장 끝에 있는 주루가 그다지 붐비지도 않으면서 경치도 좋고 음식 맛도 괜찮다고 하더군요.”

성락중은 너털웃음을 짓고 말았다.

“허헛……! 비천호리의 재주가 어디서 나오는지 이제 알겠군. 확실히 현명한 생각일세.”

“말씀을 낮추십시오, 사숙조.”

“무엇이든 자연스러운 게 제일 좋은 법일세. 말투야 앞으로 좀 더 지내다 보면 자연히 바뀌지 않겠나?”

성락중의 부드러운 말에 동중산은 그저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성락중과 그의 나이 차이는 불과 서너 살밖에 되지 않아서 다른 자리에서 만났다면 서로 말을 놓고 지내도 되었을 것이다. 하나 문파의 배분(輩分)이 두 배(輩)나 차이가 나는 동중산으로서는 성락중을 대하는 것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성락중은 무작정 하대를 하기보다는 그의 나이를 고려해서 어느 정도 배려를 해주고 있는데, 그 때문에 동중산은 적지 않은 난처함을 느끼고 있었다. 진산월 일행은 앞으로의 일정을 고려해서 간단한 요깃거리와 차를 주문했는데, 그들이 음식을 기다리고 있을 때 몇 명의 인물들이 주루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두 명의 청년과 두 명의 중년인들이었는데, 하나같이 병장기를 소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무심코 주루 안으로 들어왔다가 의외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주루 안에 있는 것을 보고는 약간은 의아하고 약간은 호기심어린 표정을 지었다. 두 명의 청년은 모두 이십 대 중후반쯤 되어 보였는데, 한 명은 호리호리한 체구에 눈부신 백의를 입은 보기 드문 용모의 미남자였고, 다른 한 명은 짙은 흑삼을 입고 당당한 체구에 서글서글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백의 미남자는 허리춤에 한 자루 장검을 차고 있었고, 흑삼 청년은 문양이 화려한 도를 차고 있었는데 흑백이 조화를 이루어 서로 간에 아주 잘 어울려 보였다. 두 명의 중년인은 삼십 대 후반에서 사십 대 초반의 나이로, 두 눈에 정광(精光)이 번뜩이고 있을 뿐 아니라 태도가 절도 있고 기개가 헌앙했다. 두 사람 모두 등 뒤에 한 자루 칼을 매고 있었는데, 칼자루의 문양이 무척이나 고색창연해서 보기 드문 보도(寶刀)들임을 알 수 있었다. 동중산은 그들을 살펴보다가 문득 두 중년인의 등 뒤에 매어진 칼자루의 문양을 유심히 바라보고는 이내 무언가를 느낀 듯 진산월을 향해 나직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저들의 도에 용화문(龍化紋)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강남의 유명한 고수들인 복마쌍룡도(伏魔雙龍刀) 여씨 형제(余氏兄弟)들인 것 같습니다.”

복마쌍룡도 여씨 형제라면 강소성 일대에서 적지 않은 명성을 쌓고 있는 유명한 도객(刀客)들이었다. 첫째가 맹룡도(猛龍刀) 여광(余廣)이고, 둘째가 창룡도(蒼龍刀) 여명(余明)이었다. 하나 진산월은 그들 여씨 형제보다는 두 명의 청년들에게 더 관심이 쏠리는 모양이었다.

“다른 두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겠느냐?”

동중산은 빠르게 두 사람을 훑어보고는 이내 머리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제자의 견식이 부족해 알아보지 못하겠습니다.”

진산월은 모처럼 살짝 미소 지었다.

“네가 견식이 부족하다면 강호의 누가 견식이 풍부하다고 할 수 있겠느냐?”

동중산의 입가에도 웃음기가 감돌았다. 남궁선을 만난 후 줄곧 굳은 표정을 하고 있던 진산월이 가벼운 농(弄)을 할 정도로 마음의 여유를 되찾은 것 같아 기뻤던 것이다.

“제자의 견식은 아직 미흡하지만 그래도 눈썰미는 살아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강남에서 주로 활동하는 인물들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런 외모의 소유자들을 제자가 모를 리 없습니다.”

확실히 동중산의 말대로 두 명의 청년은 외모부터 범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준수한 백의 미남자는 말할 것도 없고 흑삼 청년 또한 당당한 가운데 주위를 위압하는 듯한 강한 기도가 풍겨 나오고 있었다. 특히 진산월이 관심을 갖는 것은 흑삼 청년이었다. 흑삼 청년의 전신에서 은은히 흘러나오는 기품 있는 위엄은 결코 일조일석(一朝一夕)에 되는 것이 아니라서 그가 적지 않은 기간 동안 남들의 위에 서 있는 존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동중산 또한 그것을 알아차렸는지 진산월을 향해 소곤거리는 음성에 강한 확신감이 담겨 있었다.

“백의를 입은 청년은 필시 뭇 여인들의 흠모를 한 몸에 받고 있는 풍류객일 것입니다. 주위의 시선을 자연스레 받는 걸 보면 평상시에도 이런 상황에 자주 처해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리고 흑삼의 청년은 필시 한 지방의 웅주(雄主)이거나 명문가(名門家)의 주인일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저런 자연스런 위엄을 풍길 수는 없을 테니 말입니다.”

“맞게 보았다. 그는 확실히 강호의 이름난 명문세가의 가주(家主)다.”

동중산의 외눈이 번쩍 빛났다.

“장문인께서는 흑삼 청년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예전에 본 듯한 인상이어서 계속 궁리를 하고 있었는데, 네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생각이 났다.”

“그가 누구입니까?”

“그는 강남 담씨세가의 가주다. 나는 사 년 전의 무림대집회에서 그가 무림맹의 지단을 맡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먼발치에서 보았기에 용모를 세세하게 기억하지는 못했으나, 당시 지단을 맡은 인물들 중 가장 젊은 나이여서 상당히 오랫동안 뇌리에 남았었지.” 동중산의 시선이 자신도 모르게 흑삼 청년에게로 향했다. 그때 흑삼 청년과 다른 세 사람은 그들에게서 서너 탁자 건너편의 커다란 원탁에 앉고 있었는데, 강호의 명성이 자자한 여씨 형제가 흑삼 청년을 대하는 모습이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조심스러웠다. 흑삼 청년 또한 그런 그들의 공경을 아무런 스스럼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도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럼 저 자가 바로 강남의 제일도객(第一刀客)이라는 강남절품도 담중호로군요. 과연 인세(人世)의 용(龍)이라 할 만 합니다.”

동중산의 입에서 나직한 감탄성이 흘러나왔다. 흑삼 청년은 외모는 비록 백의 미남자에 미치지 못했으나, 그 당당한 모습과 위엄어린 태도가 실로 보는 이로 하여금 외경심을 우러나오게 하는 특이한 마력(魔力)을 지니고 있었다. 강남절품도 담중호는 강남에서 누구나가 첫 손가락에 꼽는 전통의 명문세가인 담씨세가의 당대 가주로서,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약관을 갓 넘긴 나이에 가주에 오른 후 불과 몇 년 만에 강남의 젊은 층에서 최고의 고수로 불리운 인물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가 가주에 오른 후, 담씨세가의 역량은 무섭도록 증대하여 지금은 모용 대협의 칩거 이후 주춤해진 모용세가의 위명에 버금갈 정도로 성세(盛勢)를 누리고 있었다. 한동안 담중호를 조심스럽게 살피던 동중산의 시선이 백의 미남자에게로 향했다. 여씨 형제조차 어려워하는 담중호를 백의 미남자는 마치 동네 친구라도 되는 양 거리낌 없이 어깨를 두드리며 상대하고 있었다.

‘보아 하니 담중호의 친구인 모양인데, 그렇다면 저 자도 평범한 인물은 아니겠군.’

동중산의 뇌리에 몇 사람의 이름이 떠올랐으나, 백의 미남자가 그들 중 누구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마침 그때 주문한 요리가 나왔기에 동중산은 이내 그들에게서 신경을 거두어 들였다. 그런데 그때 이번에는 백의 미남자가 진산월 일행을 찬찬한 눈길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성락중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다른 중인들을 신중한 눈길로 살펴보았다. 그의 시선은 외눈의 동중산에 이어 진산월에게 고정되었다. 그가 자신과 이야기를 하다 말고 엉뚱한 곳을 바라보고 있자 담중호가 의아한 듯 물었다.

“무얼 그리 보고 있는가?”

백의 미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저런 행색의 사람들에 대해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담중호의 시선이 그가 바라보는 곳을 따라 움직여졌다. 담중호는 진산월 일행을 일별하고는 이내 시선을 거두며 담담하게 웃어 보였다.

“너무 그렇게 쳐다보지 말게. 자칫 시비에 휘말리게 될까 두렵네.”

백의 미남자가 피식 웃었다.

“자네가 시비를 두려워하다니 별일이군.”

“다른 사람이라면 내가 두려워할 리 없지. 하지만 저 자라면 좀 다르네.”

담중호는 특별히 누구를 지칭하지 않았으나 백의 미남자는 진산월을 힐끔 쳐다보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가 누군지 알겠나?”

담중호는 피식 웃으며 반문했다.

“자네도 이제는 짐작하고 있지 않나?”

백의 미남자의 두 눈이 어느 때보다 반짝거렸다.

“역시 그렇지? 훤칠한 키에 왼쪽 뺨의 흉터, 그리고 저 무심한 듯 하면서도 쉽게 범접하기 어려운 기도……. 마침내 신검무적이 강남땅에 나타났구나.”

그의 음성은 나직했으나, 같은 탁자에 앉아 있는 여씨 형제는 모두 그 음성을 들었는지 낯빛이 살짝 굳어졌다. 하나 그들은 강호 경험이 풍부하고 노련한 인물들답게 고개를 돌려 진산월을 돌아보는 실수를 하지 않았다. 담중호는 차를 따라 마시며 조용히 웃어 보였다.

“자네를 보니 축제를 앞두고 들떠있는 어린애 같군.”

백의 미남자는 담중호의 조롱 섞인 말에도 화를 내지 않았다.

“강호제일검객을 눈으로 보게 되었으니 흥분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지. 자네는 흥분되지 않는단 말인가?”

“조금 설레긴 하지. 그가 소문대로의 사람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말이지.”

“아무래도 안 되겠군.”

백의 미남자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담중호가 어리둥절하여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무얼 하려는가?”

백의 미남자는 그를 내려 보더니 이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강북에서 비무행을 하고 있는 신검무적이 이곳까지 온 것으로 보아 우리와 목적지가 같을 게 분명하네. 그러니 당대 제일의 검객과 동행할 수 있는 이런 좋은 기회를 어찌 그냥 흘려보낸단 말인가?”

이어 그는 담중호가 말릴 사이도 없이 진산월 일행을 향해 성큼 걸음을 옮겼다. 동중산은 식사를 하면서도 신경을 계속 그들에게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에 백의 미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부터 줄곧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가 자신들을 향해 걸어오자 자리에서 일어나 슬쩍 그의 앞을 막아섰다. 백의 미남자는 동중산을 향해 포권을 했다.

“혹시 종남파의 비천호리 동중산, 동 대협이 아니시오?”

동중산은 그가 자신의 명호를 정확하게 부르자 약간은 어리둥절하고 약간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강남에서 활약한 적이 거의 없었는데, 강남땅을 밟자마자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을 만나게 되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소만…….”

백의 미남자는 준수한 얼굴에 환한 웃음을 매달았다.

“역시 내 짐작대로 귀하들은 종남파의 고수들이셨구려. 반갑소. 나는 정검 부옥풍이라고 하오.”

그의 이름을 듣자 동중산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담중호와 동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해천사우 중의 한 사람이 아닐까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보니 강호삼정랑 중의 한 분이신 부 대협이셨구려. 과연 소문으로 듣던 대로 헌앙하신 모습이오. 그런데 본 파에는 어인 일이시오?”

부옥풍의 시선이 그의 어깨너머에 있는 진산월을 향했다.

“강호에 명성이 높은 신검무적 진 장문인이 이곳에 계신 것을 알고 감히 만남을 청하고자 하오. 진 장문인께 말씀드려 주시겠소?”

이곳은 그리 크지 않은 주루이니 지금 부옥풍이 하는 말을 진산월이 듣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래도 일단은 이렇게 아랫사람을 통하는 것이 한 문파의 존주(尊主)를 대하는 기본적인 예의였다. 동중산이 무어라고 대꾸하기도 전에 진산월의 음성이 들려왔다.

“중산. 부 대협을 이곳으로 뫼시어라.”

“예, 장문인.”

동중산이 부옥풍을 진산월이 앉아 있는 탁자로 안내했다. 부옥풍은 진산월을 마주하게 되자 정중하게 포권을 했다.

“금화(金華)의 부옥풍이 진 장문인을 뵈오.”

진산월 또한 그에게 포권을 하며 자신의 앞자리를 가리켰다.

“만나게 되어 반갑소. 진산월이오. 이쪽으로 앉으시오.”

“고맙소.”

부옥풍은 단정한 자세로 자리에 앉은 후 진산월의 얼굴을 찬찬히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이렇게 불쑥 찾아왔는데 환대해 주어 감사하오. 진 장문인이 이곳에 계신 것을 알게 되자 뛰는 마음을 가눌 길이 없어 무작정 오게 되었소. 이해해 주시오.”

“별말씀을. 나 또한 부 대협의 명성은 익히 들어왔던 터라 기회가 닿으면 꼭 만나고 싶었소.”

부옥풍은 인사치레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짐짓 눈을 크게 떴다.

“그게 정말이오? 말뿐이라도 진 장문인의 입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 기쁘기 그지없구려.”

그렇게 말하며 활짝 웃는 부옥풍의 모습은 정검이라는 외호답게 너무도 준수하면서도 부드럽고 온화해 보였다. 누구라도 이런 사람을 만나게 되면 호감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진산월 또한 그에 대한 인상이 나쁘지 않은 듯 모처럼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말뿐일 리가 있겠소? 그런데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부 대협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있겠소?”

“실례라니 당치 않소. 진 장문인도 짐작하셨겠지만, 나는 구궁보로 가고 있소. 며칠 후가 친우의 생일이라서 말이오.”

뜻밖의 말에 진산월은 조용한 음성으로 물었다.

“친우라면 모용 공자를 말하는 거요?”

“그렇소. 내일모레가 마침 그의 스물일곱 번째 생일이오. 진 장문인도 혹시 그의 초대를 받으셨소?”

진산월은 굳이 숨기지 않았다.

“그렇소.”

부옥풍은 반색을 하며 웃었다.

“하하……! 진 장문인을 초청해 놓고도 우리에게는 일언반구 언질조차 주지 않다니, 그 친구가 우리를 놀라게 하려고 단단히 결심한 모양이구려.”

진산월은 활짝 웃고 있는 부옥풍의 얼굴을 담담한 시선으로 주시하고 있었다. 하나 그의 마음은 결코 편하지 않았다. 냉옥환은 모용봉이 이달 보름까지 구궁보로 와 달라고 말했다며 날짜까지 명확하게 언급했다. 오늘이 십사일이니 결국 모용봉은 자신의 생일 전날에 그를 만나자고 사람을 보낸 셈이었다. 그가 단순히 자신의 생일잔치를 위해 진산월을 보자고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서신에 암시된 ‘판옥주인’이란 말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아니면, 모용봉은 단순히 자신의 생일잔치에 그를 초대한 것뿐이고, 나머지는 진산월의 잘못된 억측인 것일까? 진산월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다. 모용봉은 대담하게도 자신의 생일 전에 임영옥에 관한 일을 매듭지으려 한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그에게는 다른 어떤 것보다 커다란 생일 선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그가 자신의 의도대로 생일 선물을 받을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다.

진산월은 자신들과 동행하자는 부옥풍의 제의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어차피 목적지가 같은 걸 뻔히 알고 있는데 굳이 동행을 피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곧이어 부옥풍의 부름을 받은 담중호와 여씨 형제가 합류해서 다시 한 차례 서로 간에 인사를 주고받았다. 담중호는 외모에서 풍겨오는 인상 그대로 과묵한 성격이었고, 여씨 형제 또한 그다지 말이 많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진산월 일행과의 대화는 주로 부옥풍이 담당하고 있었다. 주루를 벗어난 지 반 시진을 조금 지나자 제법 멀어보였던 구화산이 바짝 앞으로 다가왔다. 부옥풍이 멀리 보이는 두 개의 봉우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두 봉우리 사이를 지나면 바로 구궁보가 보일 거요.”

진산월이 보니 두 봉우리의 모양이 몹시 특이했다. 진산월이 그 점을 말하자 부옥풍은 낭랑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역시 사람들의 눈은 모두 비슷한 것 같소. 두 봉우리 모두 동물의 형상과 닮지 않았소? 그래서 왼쪽의 봉우리는 귀형산(龜形山)이라 하고, 오른쪽의 봉우리는 봉형산(鳳形山)이라고 부르고 있소.”

이어 그는 귀형산과 봉형산 뒤로 병풍처럼 펼쳐진 수많은 봉우리들을 손으로 쭈욱 훑는 시늉을 했다.

“저 뒤의 봉우리들이 진짜 구화산이고, 귀형산과 봉형산 일대는 사실 구화산의 초입이라고 할 수 있소. 구궁보는 그쪽에서도 남쪽으로 더 내려가는 곳에 있어서 구화산 전체에서 보면 가장 아래쪽에 위치해 있는 셈이오.”

이어 그는 모용 대협이 왜 그런 외진 곳에 구궁보를 세웠는지를 설명해 주었다. 원래 구화산은 예로부터 불교(佛敎)의 사대명산(四大名山)으로 손꼽혔으며, 특히 지장보살(地藏菩薩)의 성지(聖地)여서 수많은 사찰들이 일대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모용 대협이 구궁보를 세우려고 장소를 물색할 즈음에는 구화산에서 쓸 만한 곳은 모두 사찰이 세워져 있기에, 마땅한 장소를 고르고 고르다가 남쪽의 외진 곳까지 내려가게 된 것이다. 한데 그곳의 위치와 풍광이 생각보다 너무 좋아서 모용 대협은 오히려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했다고 한다. 구궁보가 세워진 후 무림인들은 구궁보의 백 리 안에서는 가급적이면 피를 보는 싸움이나 남을 해치는 일을 하지 않았다. 중원 무림을 위해 평생을 바친 모용 대협의 업적을 기리기 위함이었다. 그래서인지 구화산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사찰들이 구궁보 근처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귀형산 인근에 있는 감로사(甘露寺)가 그나마 가장 가까운 사찰이었고, 감로사를 지나자 더 이상 사찰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들이 귀형산과 봉형산 사이 길로 들어선 것은 주루를 벗어난 지 한 시진쯤 지난 후였다. 시간은 신시(申時)를 지나고 있어 오후의 해가 조금씩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들이 막 봉형산을 지날 때였다. 멀지 않은 곳에서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모두들 자기가 잘못 들었나 싶어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구궁보의 백 리 안에서 싸울 수 없다는 것은 강호에서는 일종의 불문율(不文律)과도 같은 것인데, 구궁보가 지척인 이곳에서 누군가가 병장기를 맞대고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중인들은 호기심에서라도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방향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의 얕은 구릉을 넘자 울창한 송림(松林)이 나타났다. 송림의 중앙에는 십여 장 되는 공터가 있었는데, 공터 안에서 두 명의 남녀가 맹렬한 격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은 체구가 비쩍 마르고 다소 선병질적인 청년이었다. 청년의 손에는 폭이 유난히 얇은 협봉검(狹鋒劍)이 쥐어져 있었는데, 협봉검을 휘두르는 청년의 솜씨는 상당히 빠르고 날카로웠다. 청년과 싸우고 있는 사람은 뜻밖에도 백의의 미녀였다. 갓 이십쯤 되어 보이는 백의 미녀의 용모는 무척 뛰어났으나, 아쉽게도 표정이 너무나 차가워서 미색을 가리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단창(短槍)이 들려 있었는데, 그 단창이 어찌나 민첩하고 영활하게 움직이는지 협봉검을 휘두르는 청년이 오히려 조금씩 밀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두 남녀의 얼굴을 확인한 부옥풍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진산월은 이내 그의 표정을 알아차리고 조용한 음성으로 물었다.

“아는 사람들이오?”

부옥풍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모르는 자들이라고 할 수는 없소. 언젠가는 저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는데, 하필이면 진 장문인 앞에서 못 볼 걸 보여드리게 되었구려.”

진산월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남자는 형산파의 고수구려. 원공검법(猿公劍法)이 상당히 능숙한 걸 보니 적어도 삼결(三結)은 되는 것 같소.”

부옥풍의 얼굴에 씁쓸한 빛이 떠올랐다.

“바로 보셨소. 그는 형산파의 사결검객인 추풍비검(秋風飛劍) 정일군(程壹君)이오.”

형산파의 사결검객이라는 말에 종남파 고수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 청년에게로 향했다. 청년의 나이는 아무리 보아도 서른도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형산파의 사결이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 년 전에도 무림대집회 직전의 소림사 입구에서 형산파 고수들과 시비가 벌어졌었는데, 이번에 또 다시 구궁보를 코앞에 둔 곳에서 형산파의 고수를 만나게 되었으니 참으로 묘한 인연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산월의 시선이 정일군과 싸우고 있는 단창의 백의 미녀에게 향했다. 강호에서 단창을 사용하는 여고수는 무척 드물었다. 그녀처럼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사용하는 경우는 더욱 드물었으며, 더구나 그 단창을 휘두르는 실력이 형산파 사결검객을 상대로 우세를 점하는 경우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진산월은 머리를 굴려 보았으나 저런 여인이 있다는 말은 들은 기억이 없었다.

“내가 과문(寡聞)해서인지 저 여인의 정체를 모르겠구려.”

부옥풍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잠시 후면 알게 될 테니 말해 주리다. 저 여인이 바로 구궁보 사대신녀 중의 한죽(寒竹) 당소령(唐素玲)이오.”

그녀의 이름을 듣자 진산월은 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사천(四川)에서 왔겠구려?”

“그렇소. 그녀는 사천당문(四川唐門)의 당대 문주인 당염(唐琰)의 딸이오.”

부옥풍은 자신의 대답이 너무 짧다고 생각했는지 이내 말을 덧붙였다.

“당염에게는 모두 세 명의 딸이 있는데, 첫째 딸은 암기(暗器)의 고수이고, 둘째 딸은 독공(毒功)을 익혔소. 그리고 셋째 딸은 보다시피 뛰어난 무공의 소유자요.”

그녀의 무공은 확실히 보는 사람을 놀라게 하기에 족한 것이었다. 더구나 접근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삼엄하기 그지없는 정일군의 검세를 뚫고 들어가 짧은 단창을 매섭게 휘두르는 그녀의 손속은 여인의 그것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였다. 하나 그들의 싸움은 이내 멈춰졌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싸움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서로 병기를 거두고 물러난 것이다. 둘 중 한 사람은 피를 보아야만 끝날 것 같았던 치열한 격투가 너무도 싱겁게 끝나 버렸다. 중인들 속에서 부옥풍과 담중호를 발견한 두 남녀의 반응은 서로 달랐다. 정일군이 약간은 당혹스럽고 약간은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는 데 비해 당소령은 조금도 변함없이 차가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부옥풍이 일행에게서 떨어져 자신들 쪽으로 다가오자 정일군이 그를 향해 억지로 웃어 보였다.

“부 형이 온 줄도 모르고 못난 꼴을 보이고 말았소.”

부옥풍은 빙그레 웃으며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모처럼 정 형의 솜씨를 보게 되었으니 내가 운이 좋은 것이오. 그나저나 우리가 당 소저와의 좋은 시간을 방해한 게 아니오?”

“그렇지 않소. 당 소저의 단창이 너무 날카로워서 애를 먹고 있던 참이었소. 부 형이 때맞추어 나타나지 않았다면 낭패스러운 꼴을 면치 못했을 거요.”

부옥풍은 정일군이 조금 밀리고 있었던 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조용히 웃어 보였다.

“그럴 리 있소? 나는 오히려 정 형의 숨겨둔 비기(秘技)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친 것 같아 아쉬웠는데…….”

정일군은 정색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비기라니, 나에게 그런 게 있을 리 있겠소?”

부옥풍은 더 이상 그를 난처하게 하지 않고 당소령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당 소저의 솜씨는 갈수록 매서워지는 것 같소. 오늘 덕분에 눈요기를 단단히 하게 되어 기쁘기 한량이 없소이다.”

당소령은 차가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이내 냉랭한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일언반구 말도 없이 몸을 날려 송림 밖으로 사라져갔다. 두 사람은 그녀의 평소 성격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전혀 놀라지 않았으나, 지켜보고 있던 종남파 사람들은 찬바람이 불 정도로 차갑고 오만한 그녀의 모습에 어이가 없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부옥풍과 정일군은 서로 마주본 채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러다 부옥풍이 문득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정 형도 구궁보로 가는 길이면 같이 갑시다.”

정일군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구궁보에서 나오는 길이었소.”

부옥풍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모용봉의 생일에 참석하지 않을 셈이오?”

“그게 아니라, 모셔올 사람이 있어서 마중을 나가던 참이었소.”

그제야 사정을 짐작한 부옥풍이 다시 빙긋 웃었다.

“그러다 그녀에게 잡히고 말았구려.”

정일군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성정(性情)이 그토록 집요할 줄은 몰랐소. 자신의 오빠가 내 사형에게 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계속 나에게 도전을 해오기에 그동안은 그럭저럭 몸을 피했는데, 이번에는 정면으로 마주쳐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소.”

“그래도 정 형이 본 실력을 모두 보인 건 아닌 것 같던데…….”

“그녀도 마찬가지였을 거요. 그녀의 손속이 비록 매섭긴 했지만, 살심(殺心)이 깃들어 있는 것 같지는 않았소. 또 이곳에서 피를 볼 수도 없었을 테고 말이오.”

서로 최선을 다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녀에게 약세를 보인 건 사실인지라 정일군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자신의 최고 수법을 펼쳤다고 해도 그녀를 이긴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부옥풍은 어깨를 한 차례 으쓱거린 후 짐짓 쾌활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럼 나는 이만 올라가 보겠소. 생일연(生日宴)에서 보도록 합시다.”

정일군도 무거웠던 표정을 털어내고 밝게 웃었다.

“그럽시다. 내가 깜짝 놀랄 만한 사람을 소개시켜 주겠소.”

부옥풍은 짐짓 눈을 크게 떴다.

“재미있구려. 사실은 나도 정 형에게 소개시킬 사람이 있기는 한데…… 아마 모르긴 해도 정 형이 더욱 놀라게 될 거라고 장담할 수 있소.”

“하하. 그것 참……. 모레가 기다려지는구려.”

“기대해도 좋을 거요.”

부옥풍이 멀어지는 광경을 별 생각 없이 가만히 보고 있던 정일군의 시선이 뒤늦게 담중호와 여씨 형제를 지나 진산월 일행에게로 향했다. 그때 진산월 일행은 이미 몸을 돌린 후였기에 정일군은 진산월 일행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감이라도 하듯 서쪽 하늘부터 붉은 노을이 조금씩 짙게 번져나가고 있었다. 정일군은 그 노을 속에서 한동안 서 있다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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