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림천하 27권 호한위난(豪漢危難)편 : 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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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천하 27권 호한위난(豪漢危難)편 : 9화


제 280 장 선자지절(仙子之絶)

휘이익!

휘파람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한 번 소리가 들릴 때마다 소리가 다가오는 속도가 무시무시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다 마침내 한바탕 회오리가 일며 장내에 하나의 인영이 떨어져 내렸다.

그야말로 폭풍과도 같은 기세로 나타난 사람은 우람한 체구의 홍포인이었다. 대춧빛으로 붉은 얼굴에 검은 수염을 기른 홍포인의 전신에서는 패도무쌍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어 마음이 약한 사람은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홍포인은 장내에 내려서자마자 한 차례 주위를 둘러보았다. 홍포인의 눈에서 흘러나오는 횃불 같은 신광이 좌중의 분위기를 압도하는 듯했다.

그의 시선은 면사 여인을 지나 단후명을 거쳐 가마꾼들이 메고 있는 가마로 향했다. 잠시 가마 속의 인물을 살펴보려는 듯 주렴을 뚫어지게 응시하던 그는 이내 흥미를 잃었는지 고개를 돌려 종담을 바라보았다.

그는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게 전음으로 말을 건넸다.

“종 형, 시간이 상당히 경과되었음에도 아직도 일을 마무리 짓지 못했구려. 어찌된 연유인지 알 수 있겠소?”

말은 부드러웠으나 그 속에는 은근한 질책의 빛이 담겨 있었다. 종담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약간은 상기된 얼굴로 저간의 상황을 설명했다. 묵묵히 그의 전음을 듣던 홍포인이 면사 여인의 뒤쪽에 자리한 동굴을 힐끗 응시하더니 종담을 향해 다시 물었다.

“그가 저 동굴 안에 있는 건 확실한 거요?”

종담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이곳으로 추적해 왔을 때 막 면사 여인이 그를 부축하여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직접 보았소. 우리가 나타나자 그녀 혼자 다시 밖으로 나와 우리를 상대했으니, 그자는 지금 동굴 안에 있는 것이 분명하오.”

“그가 동굴 속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소?”

“그럴 리 없소. 그는 부상이 심해서 혼자의 힘으로는 거동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였소. 게다가 저 동굴이 제법 크기는 하지만 다른 곳으로 통해 있지 않고 끝이 막혀 있으니 달리 도망갈 수도 없소.”

“그렇다면 다른 방해자가 더 나타나기 전에 일을 매듭짓는 게 좋겠군.”

홍포인이 조금 서두르는 듯하자 종담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다른 방해자라니……?”

“자세한 건 나중에 말해주겠소. 우선은 그자를 한시라도 빨리 확보하는 게 급선무요.”

홍포인은 종담과의 은밀한 대화를 마치고는 이내 성큼 몸을 움직여 가마 앞으로 다가갔다. 잠시 가마를 응시하던 그의 두툼한 입술이 살짝 열리며 낮게 가라앉으면서도 힘이 느껴지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좌 부인(左夫人)이 이런 외진 곳까지 직접 올 줄은 미처 몰랐소. 예전에 파동(巴東)에서 잠깐 만난 적이 있었는데, 기억하고 계시오?”

가마 안에서 예의 차가운 여인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물론이에요. 경(耿) 대협이 십절산군의 거듭된 초빙을 거절하지 못하고 거처인 적인문(赤印門)을 떠나 강북녹림맹의 총호법(總護法)으로 발탁되었다는 소식은 들었어요.”

“이 사람에게 좌 부인의 옥용(玉容)을 다시 볼 수 있는 영광을 주시지 않겠소?”

주렴 안에서 새하얀 손 하나가 살짝 나오더니 주렴을 반쯤 걷었다. 그 안에는 궁장(宮裝)을 한 삼십 대의 미부인이 그림처럼 단정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여인의 얼굴은 붓으로 그린 듯 선이 고왔고, 피처럼 붉은 도톰한 입술은 새하얀 피부 때문에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다만 두 눈만큼은 수정처럼 맑고 깊게 가라앉아 있어서 왠지 차갑고 냉정해 보였다.

홍포인은 궁장 미부인의 얼굴을 날카로운 눈으로 주시하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부인의 아름다운 모습을 다시 보니 눈이 번쩍 뜨이고 마음까지 개운해지는 것 같소. 다른 두 분의 궁주(宮主)는 모두 평안하시오?”

“모두 잘 계셔요.”

“육 대궁주(陸大宮主)께서 좌 부인을 끔찍이 아낀다고 들었소. 육 대궁주는 좌 부인께서 이 자리에 온 것을 알고 계시오?”

궁장 미부인의 서늘한 눈이 홍포인의 얼굴에 고정되었다.

“나는 어린 계집아이도 아닌데 어느 곳에 간다고 한들 다른 사람의 지시를 받거나 일일이 알려야 할 이유가 없어요.”

“물론 그렇겠지. 하지만 나중에라도 육 대궁주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무척이나 실망할게 분명하오.”

“왜 그렇게 확신하는 거죠?”

홍포인의 신광이 이글거리는 두 눈이 궁장 미부인의 봉목에 고정되었다.

“육 대궁주가 좌 부인을 아낀 것은 좌부인이 육 대궁주가 가장 사랑했던 의제인 좌일군(左日君)의 부인이기 때문이오. 좌일군이 죽은 지 삼년도 되지 않았는데 부인께서 외간 남자를 위해 먼 길을 달려왔다는 걸 알게 되면 아무리 부인을 애지중지하는 육 대궁주라도 기분이 그다지 좋지는 않을 거요. 좌 부인도 알다시피 육 대궁주가 그렇게 마음이 넓은 사람은 아니지 않소?”

궁장 미부인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으나 그녀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도 차갑고 냉랭했다.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을 보니 나를 어떻게 대할지 이미 마음속으로 결정한 모양이군요.”

“지금도 늦지 않았소. 좌 부인이 이대로 순순히 돌아간다면 내가 부인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은 없을 거요.”

“그럴 거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겠죠.”

홍포인은 이미 짐작한 듯 담담한 음성으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아쉬운 일이로군.”

궁장 미부인은 다시 주렴을 내리고 가마의 아랫부분을 살짝 두드렸다. 그러자 가마꾼들이 조심스런 동작으로 메고 있던 가마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주렴이 걷히고 그녀가 천천히 가마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의외로 여인답지 않게 훤칠한 키에 성숙한 몸매를 지니고 있었다. 풍성한 궁장으로도 그녀의 굴곡이 완연한 몸을 가릴 수 없을 정도였다.

가마를 메고 있던 네 명의 가마꾼이 시립하듯 그녀의 뒤에 일렬로 늘어섰다. 그리고 어느새 다가왔는지 단후명이 그녀에게서 한 발짝 떨어진 우측에 서자 한 편의 완벽한 진용이 갖추어졌다.

그들의 도발적이기까지 한 모습을 본 홍포인의 두 눈에서 섬뜩한 광망이 흘러나왔다.

“희인몽(姬因夢). 육 대궁주 본인이라면 모를까 네 실력으로는 나를 당해낼 수 없다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 굳이 험한 길을 가려 하는구나.”

조금 전과는 달리 거칠기 짝이 없는 그의 말에 단후명의 얼굴이 차갑게 일그러졌으나 궁장 미부인은 전혀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경만리(耿萬里). 겉으로는 군자연(君子然)해도 당신이 얼마나 허세 부리기를 좋아하고 남들 위에 서고 싶어 하는 사람인지 나는 이미 알고 있었어요. 오늘 당신의 본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는군요.”

홍포인의 얼굴에 어린 붉은 빛이 조금 더 짙어졌다.

홍포인은 적천존(赤天尊) 경만리라는 인물로, 오랫동안 파동 은 물론이고 장강삼협 일대에서 제왕처럼 군림해온 전설적인 고수였다. 강북녹림맹의 맹주인 십절산군 사여명은 그의 명성을 흠모하여 여러 번이나 사신을 보내 그를 초빙하려 했고, 결국 다섯 번의 고사(固辭) 끝에 사여명 본인이 직접 찾아가서야 그를 포섭할 수 있었다.

사여명은 그에게 총호법의 지위를 맡겼는데, 그 자리는 맹주인 사여명을 제외하고는 그야말로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지고한 위치라고 할 수 있었다.

궁장 미부인은 연혼선자(燃魂仙子) 희인몽이라 했다. 젊었을 적 그녀는 사천의 삼대미인 중 하나로 불릴 정도로 염명이 대단했고, 무공은 사천성 제일의 여고수라고 자타가 공인할 정도로 독보적인 실력을 자랑했다.

육천기의 의제이며 경요궁의 삼궁주(三宮主)였던 천수검(千手劍) 좌일군은 한눈에 그녀에게 반하여 오랫동안 끈질기게 구애를 벌였으나, 희인몽에게는 이미 마음에 둔 사람이 있었다. 그가 바로 당대 제일의 기남아인 환상제일창 유중악이었다. 하나 유중악은 풍류를 즐기는 인물답게 어느 한 여인에게 정을 쏟지 않았고, 오랜 기다림에 지친 그녀는 결국 좌일군의 청혼을 승낙하고 그의 부인이 되고 말았다.

삼 년 전 좌일군은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고, 육천기는 과부가 된 그녀를 위로하려는 뜻에서 공석이 된 경요궁의 삼궁주에 그녀를 앉히게 되었다. 그동안 그녀는 경요궁에 틀어박힌 채 무림에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었는데, 뜻밖에도 오늘 이 자리에 홀연히 나타난 것이다.

경만리는 이미 그녀를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는지 눈가에 진득한 살기가 감돌고 있었다. 돌연 그는 주위를 향해 한 차례 휘파람을 토해냈다.

휘익!

그러자 그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듯 서너 개의 인영이 허공을 날아 장내로 떨어져 내렸다.

나타난 자들은 삼십 후반에서 사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네 명의 중년인들이었다. 가장 앞에는 유난히 얼굴이 하얀 문사 차림의 중년인이 있었는데, 입술이 얄팍하고 눈빛이 싸늘해서 냉혹하고 잔인해 보였다.

중년 문사의 뒤에는 체구가 건장하고 얼굴에 수염이 가득한 텁석부리의 사내와 커다란 일월륜(日月輪)을 든 뚱뚱보, 그리고 뾰족한 가시가 잔뜩 박힌 낭아봉(狼牙棒)을 들고 있는 비쩍 마른 인물이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서 있었다.

경만리는 그들을 향해 묵직한 음성을 내뱉었다.

“둘러보았나?”

문사 차림의 중년인이 얇은 입술을 붉은 혀로 살짝 축이며 입을 열었다.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상하군. 분명 그자가 제갈세가에서 나온 걸 봤다고 했는데…….”

“아마 다른 곳을 헤매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자는 이 일대의 지리를 전혀 모를 테니 어두운 밤에 엉뚱한 곳을 쑤시고 있을 겁니다.”

“그럴 가능성이 있겠군. 하지만 더 지체할 수는 없으니 자네들은 경요궁의 다른 인물들을 상대하게.”

“알겠습니다.”

경만리의 시선이 한쪽에 있는 종담과 마여상을 향했다.

“종 형과 마 형은 면사녀를 맡아 주시오. 이번에는 확실하게 처리하리라 믿고 있겠소.”

종담과 마여상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맡겨 주시오.”

경만리가 슬쩍 턱짓을 하자 종담과 마여상이 면사 여인의 앞을 막아섰고, 그와 동시에 문사 중년인과 세 명의 장한들도 일제히 단후명과 네 명의 가마꾼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단후명은 그들이 나타날 때부터 인상이 그리 밝지 않았는데, 그것은 그들이 하나같이 만만치 않은 실력의 소유자들임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오늘 일은 길(吉)보다 흉(凶)이 많겠군. 오늘 일이 쉽지 않으리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지만, 강북녹림맹에서 이렇게 많은 정예들을 투입할 줄은 미처 몰랐구나.’

그의 짐작대로 그들 네 사람의 신분은 범상치 않았다. 문사 중년인은 강북녹림맹에서 순찰사자를 맡고 있는 잔심서생(殘心書生) 냉고성(冷古城)이고, 다른 세 명은 내단(內團) 소속 고수들인 폭렬도(暴烈刀) 강호평(康浩平)과 쌍륜객(雙輪客) 장희동(張喜東), 혈수마효(血手魔梟) 전소충(全小充)이라는 인물들이었다.

강북녹림맹에서 순찰사자는 맹주의 지시를 직접 전하는 위치에 있었기에 그 수도 많지 않았고 실력 또한 뛰어나서 오대호법에 못지않았다.

내단은 강북녹림맹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세력으로, 마여상 또한 내단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들 네 사람이 질풍 같은 기세로 달려들자 단후명도 감히 경시할 수 없어서 처음부터 비류문의 절예인 청류장과 명류권(明柳拳)을 펼쳐 그들에 맞서나갔다.

또한 희인몽의 뒤에 병풍처럼 서 있던 네 명의 가마꾼들도 어느새 사방진(四方陣)을 펼친 채 추호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들 네 명은 단순한 가마꾼들이 아니라 희인몽을 지척에서 호위하는 수신위(守身衛)들이어서 개개인의 무공도 뛰어났지만 특이한 합격술(合擊術)을 연마하여 어떠한 고수라도 능히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삽시간에 장내는 여기저기서 고함과 칼바람 소리가 난무하는 격전장이 되어 버렸다. 단후명은 냉고성과 치열한 공방을 주고받고 있었고, 수신사위는 강북녹림맹 내단의 세 고수들과 난전(亂戰)을 벌이고 있었다.

하나 그들 중 가장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자들은 다름 아닌 면사 여인과 종담, 마여상의 삼인이었다. 종담과 마여상은 경만리의 추궁을 받은 탓인지 조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맹렬한 공세를 펼치고 있었고, 면사 여인 또한 조금도 약세를 보이기 싫은 지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하나 시간이 흐를수록 면사 여인이 조금씩 뒤로 물러서고 있는 모습이 확연해지기 시작했다.

연신 격렬한 파공음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경만리는 천천히 희인몽에게로 다가갔다. 희인몽은 그 자리에 그림처럼 가만히 선 채 묵묵히 그가 다가오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한 순간,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두 사람의 신형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파파팍!

제대로 신형을 알아볼 수도 없는 빠른 움직임 속에서 그들은 질풍 같은 십여 초를 교환했다. 그 후에 두 사람은 일 장쯤 떨어져서 잠시 숨을 골랐다.

경만리는 자신의 오른쪽 소맷자락을 힐끔 내려다보았다. 소맷자락 끝부분이 완전히 으스러져서 손목 부분이 훤히 드러나 보였다. 경만리의 대춧빛 얼굴에는 미미한 경탄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희인몽. 확실히 사천제일의 여고수라 할 만하구나. 여인의 몸으로 내 적멸수(赤滅手)에 정면으로 맞설 수 있다니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희인몽의 얼굴에는 여전히 아무런 표정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하나 그녀의 낯빛은 조금 전보다 더욱 창백해져서 마치 하얀 분(粉)을 칠한 것 같았고, 굳게 다물어진 입술 사이로 엷은 혈흔(血痕)이 내비쳤다.

그래도 그녀는 한 마디도 입을 열지 않고 묵묵히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창!

그녀의 가는 허리에 둘러져 있던 허리띠가 풀어지며 섬섬옥수에 새하얀 연검(軟劍)이 쥐어졌다. 때마침 떠오르는 양광을 받은 검날에서 섬뜩하리만치 날카로운 검광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경만리는 예리한 광망을 뿌리는 연검을 보면서도 오히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처음부터 너는 검을 뽑았어야 했다. 맨손으로 나를 상대하려 한 배포는 인정할 만하지만, 그런 치기는 한 번으로 족하지.”

희인몽은 연검을 자신의 앞에 우뚝 세우더니 아무 말 없이 경만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경만리 또한 양손을 활짝 펴며 그녀의 앞으로 바짝 다가들었다.

그녀의 연검이 허공에 수(繡)를 놓듯 섬세하게 움직이며 수십 개의 영롱한 검화(劍花)를 그려냈다. 그 검화들은 순식간에 경만리의 상반신을 뒤덮어갔다.

경만리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두 손을 질풍처럼 휘두르며 오히려 검화 속으로 뛰어들었다.

파아아……

그가 펼친 수영(手影)과 검화가 정면으로 부딪치며 세찬 경풍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들이 치열하게 싸움을 벌이고 있을 때, 장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숲의 그늘 속에서 은밀히 그들의 격전을 지켜보고 있는 두 사람이 있었다.

우측의 인물이 나직한 감탄성을 발했다.

“허, 과연 적천존일세. 연혼선자의 수화검기(繡花劍氣)는 예리하기가 강호일절인데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스스로 수화검기 속으로 뛰어들다니 대단한 강심장이로군.”

좌측의 인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화검기? 재미있는 이름이군. 검을 휘두르기보다는 찌르는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는 걸 보니 아미(峨嵋)의 난피풍검법(亂披風劍法)과 유사해 보이는데…….”

“잘 보았네. 그녀의 사문은 아미파 속가 출신의 여고수가 세운 것일세. 그러니 그녀의 무공에도 아미파의 흔적이 남아 있겠지.”

“연검으로 찌르기를 사용하려면 무척이나 정순한 내공이 필요한 법인데, 여인의 몸으로 저런 검법을 사용하다니 대단하군.”

“원래 아미파의 여승들이 익히는 내공은 강호에서도 가장 정순한 일종 중 하나일세.”

“나도 이름은 들었지. 대정신공(大靜神功)이라고 하던가?”

우측의 인물은 피식 웃었다.

“그건 아미파 최고의 신공이라 속가 제자는 익힐 수가 없네. 대정신공 말고 수미혜정신공(須彌慧靜神功)이 주로 아미파의 여승들이나 속가 여제자들이 익히는 것일세. 연혼선자의 사문에서는 그걸 더욱 발전시켜 금강선정신공(金剛仙靜神功)이라는 걸 만들어냈다고 하더군.”

“이름만 들어도 고리타분한 여승 냄새가 팍팍 나는군.”

“하하. 금강선문(金剛仙門)의 문하들이 자네 말을 들었다면 눈에 불을 켜고 자네에게 덤벼들려 할 걸세.”

“금강선문? 그게 연혼선자의 사문인가?”

“그래. 자신들의 시조가 아미파 속가제자였다는 사실은 금강선문에서 결사적으로 감추려고 드는 그들의 가장 큰 비밀일세. 그래서 강호에서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지.”

좌측의 인물이 우측의 인물을 돌아보았다.

“그런데도 자네는 용케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군.”

“예전에 말했지 않나? 오랫동안 강호를 떠돌아다니다보니 이런저런 소문들을 많이 접하게 된단 말일세.”

“어떤 소문들은 단순히 떠돌아다니는 것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도 있지.”

“그저 내 귀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밝다고 해두지.”

우측의 인물이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잘라 말하자 좌측의 인물도 싱겁게 웃었다.

“어쩐지 그럴 것 같았네. 그러니 별호에 ‘귀(鬼)’자가 붙은 것이겠지.”

우측의 인물은 얼굴을 구겼다.

“그 말은 하지 않기로 하지 않았나? 자꾸 그러니까 자네 이름 앞에 ‘교(狡)’자를 붙인 것일세.”

“귀호나 교리나……. 자네 말대로 우리끼리 서로 얼굴에 먹칠은 하지 않기로 하지.”

“제발 부탁일세.”

“알았다니까.”

두 사람은 서로 구시렁거리면서도 장내의 싸움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만큼 좀처럼 보기 드문 치열한 격전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싸움은 모두 네 군데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들 중 단후명과 냉고성의 싸움은 거의 백중세라 전혀 승부를 예측할 수 없었고, 수신사위와 강북녹림맹 내단의 세 고수들 간의 격전도 상당히 팽팽했다. 그에 비해 면사 여인은 종담과 마여상의 합공에 조금씩 수세에 몰리고 있어서 머지않아 승패가 판가름 날 것 같았다.

장내에서 가장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곳은 희인몽과 경만리가 있는 곳이었다. 맨손의 승부에서는 열세를 보였던 희인몽이 연검을 든 후로는 조금도 밀리지 않고 경만리와 팽팽한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녀의 연검이 허공에 자욱한 검화를 수놓으며 금시라도 경만리를 난도질할 듯 다가서는가 하면, 경만리의 육장(肉掌)에서 뿜어 나오는 가공할 경력이 희인몽의 교구를 단숨에라도 박살내 버릴 것만 같았다.

귀호는 한동안 두 남녀의 싸움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가 교리에게 물었다.

“나로서는 도저히 승부를 예측할 수 없겠군. 자네가 보기에는 누가 더 유리한 것 같은가?”

교리는 별다른 고민도 하지 않고 즉시 입을 열었다.

“앞으로 십 초 이내에 경만리가 절대적인 승기를 잡을 걸세.”

귀호는 흥미진진한 얼굴로 교리를 쳐다보았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병장기를 든 무인과 수공(手功)의 고수와의 싸움은 결국 한 가지로 귀결되네. 수공의 고수가 상대에게 접근을 할 수 있느냐 못하느냐 하는 것이지.”

“너무 극단적인 생각 아닌가?”

교리는 평소의 그답지 않게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실력차가 분명하다면야 그러지 않겠지만, 백중세의 싸움이라면 결국 접근의 허용 여부가 승패를 판가름 지을 걸세.”

“그렇다면 자네는 경만리가 희인몽의 공세를 뚫고 그녀에게 접근할 수 있다고 믿는군.”

“싸움이 시작된 후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이미 절반 이상으로 좁혀져 있네.”

교리의 말에 귀호는 눈을 번쩍 뜨고 장내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한참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런 것 같군. 그런데 왜 나는 단번에 알아보지 못했을까?”

“그건 경만리가 교묘하게도 접근했다 물러섰다 다시 접근하는 식으로 계속 거리를 조절했기 때문일세. 그래서 자네는 물론이고 싸우고 있는 당사자인 희인몽조차도 경만리와의 간격이 처음보다 상당히 좁혀진 상태라는 걸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걸세.”

“그렇다면 앞으로 십 초 이내에 경만리가 자신이 절대적인 우세를 점할 수 있는 간격 안으로 들어간단 말인가?”

“경만리의 무공 중 탈포양위(脫袍讓位)라는 신법이 있네.”

“탈포양위?”

“이름 그대로 옷을 벗어서 위치를 바꾸는 식으로 허초(虛招)를 이용해 순식간에 상대와의 거리를 좁히는 상당히 뛰어난 신법이지. 결정적인 순간에 경만리는 탈포양위의 식으로 나머지 거리를 좁혀 들어가 희인몽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가할 걸세.”

귀호는 새삼스런 눈으로 교리를 응시했다.

“그런 무서운 수법을 감추고 있군. 그런데 자네가 경만리에 대해 그토록 자세하게 알고 있을 줄은 몰랐네.”

교리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예전에 경만리가 싸우는 걸 본 적이 있었지.”

“어디서 말인가?”

“구당협(瞿塘峽) 근처에서. 벌써 몇 년 전 일일세.”

“그런데 용케도 기억하고 있었군.”

“워낙 인상적인 장면이어서 말일세.”

귀호는 교리를 한 번 더 각별하게 쳐다보다가 싱거운 웃음을 흘렸다.

“무공은 몰라도 강호의 일에는 내가 자네보다 훨씬 더 해박하다는 걸 유일한 자랑거리로 알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 생각을 버려야겠군.”

“실없는 소리 말고 싸움이나 구경하게. 곧 경만리가 탈포양위를 쓸 모양이네.”

귀호는 정신이 번쩍 들어 황급히 장내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 마침 경만리가 양쪽 어깨를 흔들며 유난히 큰 동작을 취하자, 희인몽은 경만리가 강력한 일격을 퍼부으려는 줄 알고 그 동작에 반응해 앞으로 살짝 몸을 숙이고 있었다. 그것은 아주 자연스럽고 순간적인 행동이었으나 그것으로 경만리의 노림수는 완벽하게 맞아 들어갔다.

경만리의 신형이 갑자기 그 자리에서 푹 꺼진 것처럼 사라지더니 순식간에 희인몽의 코앞에 불쑥 나타났다. 그것은 마치 땅속으로 사라졌다가 공간을 건너 뛰어 땅 위로 솟구쳐 오른 것 같았다. 바로 직접 눈앞에서 그 상황을 겪은 희인몽은 더욱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그들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그녀로서는 도저히 검을 펼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경만리의 반쯤 굽어진 커다란 손이 그녀의 아래턱을 사정없이 강타했다. 아니, 강타하는 듯했다.

절체절명의 순간, 금시라도 그녀의 고운 얼굴을 처참한 꼴로 만들어 버릴 듯했던 경만리가 갑자기 훌쩍 뒤로 삼 장이나 물러나 버렸다. 그러고도 모자라 경만리는 다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가 탈포양위의 식으로 다가서는 속도도 놀라웠지만, 그녀에게서 다시 물러서는 속도는 더욱 빠르고 민첩했다.

귀호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무슨 일이지?”

그는 혹시나 하고 교리를 돌아보았다. 교리는 두 눈에 기이한 빛을 일렁인 채 한동안 가만히 장내를 응시하고 있더니 이윽고 나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그렇군. 확실히 강호란 곳은 놀라워. 이렇게 예상을 종종 벗어나는 일이 벌어지니 말이야.”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있나? 왜 경만리가 결정적인 기회를 잡고도 저렇게 놀란 토끼처럼 물러났는지 아느냔 말일세.”

교리는 희미하게 웃었다.

“놀란 토끼라. 정확한 표현이군. 확실히 경만리는 무척이나 놀랐을 거야. 지금까지도 멍하니 서 있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지.”

“놀리지 말고 말해주게. 경만리가 왜 물러났나?”

“조금 전에 경만리는 그녀에게 접근하여 완벽한 기회를 잡았지. 그리고는 한 치의 주저도 없이 그녀에게 살수(殺手)를 썼네.”

“그거야 나도 눈 뜨고 보아서 잘 알고 있네. 그 다음에는?”

“막 그의 손이 그녀의 아래턱을 가격하려 할 때 그녀가 입김을 내뱉었네.”

귀호는 누구보다 예리한 두뇌를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순간적으로 어리둥절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입김이라니?”

교리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그를 향해 후! 하고 입김을 내뿜었다.

“이런 식으로 말일세. 너무 갑작스럽고 미약한 행동이어서 나도 처음에는 내가 잘못 본 게 아닐까 생각할 정도였지. 하나 그 입김을 본 순간 경만리는 놀란 토끼처럼 뒤로 훌쩍 물러나고 말았네.”

“경만리가 대체 왜 한낱 여인의 입김에 놀라서 물러난단 말인가?”

“여자의 입김에 얽힌 아픈 추억이라도 있지 않는 한, 이유는 한 가지뿐일세.”

“그게 무언가?”

“그녀의 입김 자체가 강력한 무공이라는 것이지. 경만리 같은 고수가 기절초풍을 할 정도의 위력을 가진…….”

그 말을 듣자 귀호는 멍한 얼굴이 되었으나, 이내 두 눈에 기광을 번뜩였다.

“입김을 이용한 무공이란 말이지?”

이번에는 교리가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래. 내 짧은 강호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그런 무공을 모르겠는데, 자네는 떠오르는 생각이 있나 보군.”

“입으로 경력을 내뱉는 무공은 소림사의 옥금강(玉金剛)이 유명하지.”

“소림사에 그런 무공이 있단 말이지?”

“하지만 옥금강은 엄밀히 말하면 불문(佛門)에서 내려오는 사자후(獅子吼)의 일종이라 음공(音功)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지. 다시 말해서 옥금강을 펼치면 반드시 예리한 호곡성 같은 소리가 뒤를 잇는단 말일세. 그러니 그녀가 펼친 것은 옥금강이 아닐세.”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천절뢰(天絶賴)라는 것이 있네.”

무공에 관한 한은 나름대로 확고한 자신을 가지고 있는 교리도 처음 듣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천절뢰? 그건 어떤 무공인가?”

“나도 정확히는 모르네. 다만 입 속에 진기를 머금고 있다가 단순히 불어내는 것만으로도 바위를 박살낼 정도의 가공할 위력을 낼 수 있는 희대의 절학이라고 알고 있네.”

“입속에 진기를 머금었다가 내뱉는 것만으로 그런 위력을 발휘한다고? 정말 그런 무공이 존재한단 말인가?”

“틀림없이 존재하네. 왜냐하면 나는 무림에서 천절뢰를 익힌 자가 분명 한 명은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지.”

교리는 신통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누군가? 그 대단한 작자가?”

귀호는 조용한 음성을 내뱉었다.

“천절신사(天絶神士) 조현(趙玄).”

“조현?”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분이지만, 사십 년 전만 해도 아는 사람들은 그를 강호제일기사(江湖第一奇士)라고 불렀지.”

교리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사십 년 전이라면 그야말로 까마득한 옛날 일이니 내가 모르는 게 당연하겠군. 하지만 그렇다면 당금에는 아무도 천절뢰를 익힌 사람이 없다는 말이 아닌가?”

“조현에게 제자가 한 사람 있었네.”

“그가 누구인가?”

“화의신수 육천기.”

“육천기라면 경요궁의 대궁주 말인가?”

“그렇지.”

“그럼 처음부터 육천기가 천절뢰를 익힌 사람이라고 말하면 되는데 왜 그렇게 사람 헷갈리게 말을 삥 돌리는 건가?”

교리가 쏘아보자 귀호의 입가에 장난스런 미소가 내걸렸다.

“조현이 천절뢰를 익힌 건 분명하게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육천기가 익혔다는 건 단순히 짐작일 뿐 아직 확인해 보지 않은 일이라서 말일세.”

교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가끔은 자네 뒤통수를 한 대 후려치고 싶을 때가 있네. 아무튼 육천기가 천절뢰를 익히고 있다면 희인몽도 그것을 알고 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는 말이로군.”

“아마 그럴 걸세. 들리는 소문으로는 육천기가 희인몽을 의동생의 부인이 아닌 수양딸처럼 애지중지한다고 하니 그녀에게 가르쳐 주었겠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에는 아주 적절한 무공이니 말일세.”

“아무튼 새삼 강호란 곳이 얼마나 넓고 깊은지 다시 한 번 깨달았네. 입김을 불어 상대를 물리치는 무공이라……. 직접 눈으로 보기 전에는 상상도 못한 일일세.”

“우리가 아무리 놀랐다고 한들 경만리만 하겠나? 아마 경만리는 이제 이겼다 싶은 순간 그녀의 천절뢰 공격을 받고 심장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을 걸세. 그때 그의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제대로 봐두었야 했는데, 아쉽게도 너무 순간적으로 흘러간 일이라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다가 그 장면을 놓치고 말았네.”

귀호가 아쉬운 듯 입을 쩍쩍 다시자 교리는 피식 웃고 말았다.

“아무튼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앞으로 두 사람 사이의 승부가 어떻게 될지 정말 귀추가 주목되는군. 그녀도 더 이상은 조금 전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테니 말일세.”

아닌 게 아니라 그 후로 희인몽과 경만리는 다시 싸움을 시작했으나 조금 전과 같은 치열함은 보이지 않았다. 희인몽은 경만리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으려고 잔뜩 주의를 기울이는 모습이었고, 경만리는 경만리대로 그녀에게서 어떤 또 다른 기이한 무공이 나올지 몰라 신중을 기울이고 있었다.

귀호는 잠시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다가 흥미가 떨어졌는지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교리가 그 모습을 보았는지 그를 힐끔거렸다.

“무얼 찾고 있나?”

“아니. 이 좁은 곳에 오늘따라 고수들이 참 많이도 모여 있는 것 같아서 말일세.”

귀호는 턱으로 장내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곳에서 싸우고 있는 자들만 해도 이십 명에 가까운데, 그들 외에도 두 무리의 고수들이 더 숨어 있으니 신기한 일이 아닌가?”

의외로 교리는 고개를 저었다.

“두 무리가 아니라 세 무리일세.”

귀호는 눈을 살짝 치켜떴다.

“세 무리라고? 내 눈에는 두 무리밖에 보이지 않는데? 좌측 숲의 커다란 나무 사이에 숨어 있는 무리들과 지금 남들의 시선을 피해 동굴 쪽으로 몰래 접근하는 두 명 말일세.”

교리는 유난히 낮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그들 외에 한 사람이 더 있네.”

“어디에 있나?”

“이곳에서는 안 보이네.”

귀호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보이지도 않는데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단 말인가?”

의외로 교리의 표정은 신중해 보였다.

“나도 몰랐네. 그런데 조금 전에 경만리가 희인몽에게 살수를 쓰려 할 때 순간적으로 강렬한 기세 하나를 느꼈네.”

귀호의 눈이 번쩍거렸다.

“기세라고? 나는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너무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져서 나도 간신히 느낄 정도였네.”

귀호는 투덜거렸다.

“그래. 자네가 나보다 훨씬 더 뛰어난 고수란 말이지?”

교리의 눈은 어느 때보다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단순히 운이 좋았던 것뿐일세. 내가 늘 관심을 가지고 있던 자의 기세와 비슷하지 않았다면 나도 무심히 지나쳤을 것일세.”

“그렇다면 자네는 단순히 기세만으로도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차렸단 말이지? 그가 누구인가?”

“확실치는 않네. 단순히 짐작일 뿐이니까. 그보다 저자들은 용케도 저기까지 들키지도 않고 접근했군.”

교리의 말에 귀호는 퍼뜩 고개를 돌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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