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림천하 32권 천양현음(天陽玄陰)편 : 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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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천하 32권 천양현음(天陽玄陰)편 : 4화


제 324 장 현신육결(1)

이제 종남파와 형산파의 비무는 막바지를 향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전적은 이 대 이!

서로 똑같이 두 번의 승리와 패배를 주고받았고,그 네 번의 비무는 하나같이 대단한 접전이었다. 비무가 끝날 때까지 전혀 결과를 예측할수 없는 치열한 승부는 군응들을 격앙시켰고, 비무가 계속될수록 그 흥분은 점점 커져만 갔다.

그리고 이제 종남파와 형산파는 오직 한 사람씩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종남파에서 누가 출전할지는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었다.

모든 군옹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는 그 사람은 종남파의 장문인이며 당대 무림 최고의 검객으로 평가 받고 있는 신검무적 진산월이었다.

이십 대의 나이로 강호제일검객(江湖第一劍客)의 칭호를 받는다는 건지난 백 년간 누구도 이루지 못한 업적이었다. 심지어 천하제일고수라고 불리는 모용 대협조차도 강호에 출도한 것은 이십 대 후반이었고,서른이 넘어서야 비로소 강호무림에 제일인자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진산월은 이십 대 중반의 젊은 나이로 이미 강호제일검객으로 공인되었으며,누구도 그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다. 더욱놀라운 것은 그가 그러한 명성을 얻기까지 불과 일 년 남짓의 시간밖에 소요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일 년 전만 해도 멸문된 줄만 알았던 종남파의 장문인인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나 불과 일 년도 되지 않아 그는 종남파를 훌륭하게 일으켜 세웠고,자신은 강호제일검으로 불리게 되었다.

구대문파에서도 소림,화산과 함께 가장 강력한 문파로 손꼽히던 형산파와의 이번 비무에서 종남파가 보여준 저력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들은 단지 몇 명의 제자들만으로 비무행을 시작했고,단 한 번도 패하지 않고 승승장구하여 무당산에 도착했다. 그리고 형산파와 벌인 네번의 비무에서 종남파의 고수들은 나이와 명성에 상관없이 형산파가 자랑하는 최고의 검객들을 상대로 눈부신 선전을 보여주었다.

형산파에서 출전한 인물들이 하나같이 이미 강호에 그 명성을 혁혁하게 떨치고 있는 절세의 고수들인 반면, 종남파의 출전자들은 이십 대의 젊은이부터 최근에 갑자기 명성을 얻은 인물, 심지어는 거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무명의 여인까지 참신한 얼굴들로 채워져 있었다.

명성만을 생각한다면 누가 보아도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현격한 차이가 났으나,종남파의 고수들은 눈을 부릅뜨게 할 정도로 엄청난 실력을 선보이며 형산파와 승패를 나누어가졌다. 그리고 이제 그들이 가장자랑하는 최고의 검객이 마지막 승부를 가리기 위해 나서고 있는 것이다.

형산파에 과연 신검무적을 상대할만한 고수가 있을지 많은 무림인들이 의문스러워 하는 가운데,진산월의 모습이 장내에 나타났다.

어마어마한 함성이 그 뒤를 따랐다.

“우와아아!”

“신검무적이다! 신검무적! 일검운해!”

사람들은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댔고,주먹을 쳐들거나 손을 흔들어보였다.

주위가 떠나갈 듯한 함성에도 진산월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모르는 사람들은 신검무적이 승리를 자신하기 때문에 담담함을 유지하고 있는 거라고 떠들어 댔다. 오직 종남파의 고수들만이 굳게 다물어진 진산월의 입술과 한없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는 눈빛이 단순한 자신감이나 비장감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진산월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환호와 갈채를 받으며 천천히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문득 고개를 쳐드니파란 하늘 아래 몇 개의 솜털 같은 구름이 둥실 떠 있는 광경이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그 구름은 바람에 뭉치고 흩어지며 이내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 냈다.

그것은 추레한 행색에 비쩍 말랐으나 유난히 부드러운 눈매에 따뜻한 눈빛을 가진 한 남자의 모습 같아보였다. 진산월은 그 남자의 얼굴을 하염없이 올려다보았다.

‘사부. 보고 싶습니다.’

그 남자는 진산월을 향해 지그시웃어 보였다. 새하얀 구름이 그 남자의 하얗게 빛나는 이 같았다.

‘녀석. 나도 보고 싶구나.’

‘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나도 알고 있다.’

‘지켜봐 주십시오.’

‘그래. 수고했다.’

그 말이 정말 듣고 싶었다. 그 음성을 듣고 그 모습을 한 번만이라도 더 보고 싶었다. 무정한 구름은 어느새 조금씩 흩어져 그 남자의 모습 또한 사라지고 있었다. 하나 진산월은 그 남자의 얼굴이 그대로 있는 것처럼 언제까지고 구름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다시 요란한 함성이 일어났다.

고개를 떨구어보니 형산파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앙상할 정도로 마른 체구에 껑충한 키를 가진 중년인이었다. 나이는 삼십 대로도 보였고 오십 대로도 보였다. 비쩍 마른 얼굴이었으나 의외로 피부는 팽팽했고, 수염이 전혀 나있지 않아서 정확한 나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다만 대충 묶어 맨 듯한 치렁한 머리카락에 듬성듬성 백발이 섞여있는 것으로 보아 사십 대 후반에서 오십 대 초반쯤 되지 않았을까 예상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이에 비해 무척 젊어 보이는 인상이었다.

허리춤에 고색창연한 보검 하나를 매달고 있었는데,그 보검의 수실에 걸려 있는 매듭의 숫자가 특이했다.

중인들 중 안력이 예리한 몇 사람이 무심코 그 숫자를 헤아리다 이내 경악성을 발했다.

“여…… 여섯 매듭? 육결(A結)이다. 육결검객 (A結劍客)이 나타났다!”

그 말에 장내는 삽시간에 아수라장처럼 변해 버렸다.

“뭐라고? 형산파에 육결검객이 존재했단 말인가?”

“그럴 리가? 육결은 단지 형산파문인들이 상상으로 만들어낸존재인 줄 알았는데……:,

“대체 저자가 누구이기에 육결을 매달고 있단 말인가?”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반백의 중년인에게 고정되었다. 그리고 이내 다시 누군가의 입에서 탄성에 가까운외침이 터져 나왔다.

“고진이다! 저자는 바로 오랫동안 폐관수련에 들어가 있던 냉홍검 고진이다.”

“고진이라니? 그는 오결검객이 아닌가? 대체 그가 언제 육결이 되었단 말인가?”

중인들이 경악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형산파의 오결은 강호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지만,오결 위에 누군가가 존재하리라는 것은 단지 막연한 예상일 뿐이었다.

-언젠가는 오결의 수준을 확연히 뛰어넘는 절세의 검객이 출현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자는 오결을 넘어선 육결검객으로 불려야 하지 않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육결의 존재를 당연시했다.

또한 그것은 형산파의 모든 제자들의 소망이었고,염원이기도 했다.

강호인들은 물론이고 자파의 제자 들까지 모두 오결 너머의 무언가를 향해 떠들어대자 형산파의 수뇌들은 잠정적으로 한 가지 사실을 결정했-누군가가 본 파의 건곤참(乾神新)을 혼자의 힘으로 격파한다면,그자는 육결이라 칭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 암묵적인 선언 이후,육결에 대한 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형산파의 제자들도 더 이상 육결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것은 건곤참이 어떤 것인지 그들 자신이 너무도 잘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건곤참은 형산파가 자랑하는 최고의 합격진으로,오결검객 중 특별히 선발된 두 명의 검객이 펼치는 것이었다. 이름 그대로 하늘과 땅을 갈라버리는 가공할 위력을 지닌 것이 어서,도저히 한 사람의 힘으로는 격파할 수 없다고 여겨져 왔다.

당대에 건곤참의 수행자는 낙백검사(落魂劍士) 우견汗堅)과 검수(劍樹) 이소립이었다. 그들은 모두 오결검객 중에서도 내로라하는 고수들로, 엄격한 심사와 동의를 거친 후 건곤참을 전수받았다.

그들은 장문인의 명이 있기 전에는 형산파에서 백 리 밖으로 나갈 수 없으며,어디를 가든 두 사람이 서로 십 리 이상 떨어져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형산파를 벗어나 외유를 할 때도 반드시 두 명 이상의 오결검객과 동행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것은 그만큼 건곤참이 형산파에서도 특별한 대접을 받는 귀중한 무공임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실제로 건곤참의 수행자로 결정된후 그들은 삼 년 동안 외부와의 출입을 금한 채 혹독한 수련을 받아야만 했다. 그들이 모두 오결에서도 뛰어난 수준의 검객들임을 생각해본다면 건곤참이 얼마나 익히기 어려우며 놀라운 절학인지를 미루어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 건곤참을 혼자 격파한다는 것은 단순히 오결검객 두 사람의 합공을 뚫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그래서 오결 중의 최고수라고 인정받는 조화신검 사견심조차도 육결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견심보다 약간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았던 고진이 육결을 매단 채 종남파와의 마지막 비무에 나섰으니 어찌 놀라운 일이 아니겠는가?

고진은 이십 년 전부터 형산 정상의 축융봉 아래에 있는 고동에 기거하며 좀처럼 바깥출입을 하지 않는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그때 그의 나이 불과 서른세 살이었다.

어려서부터 검의 천재로 불렸던 그가 왜 전도양양한 나이에 좁은 동굴속에 스스로 몸을 묶어 두었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다만 그렇게 벼려진 그의 검이 예전보다 훨씬 더매섭고 날카로우리라는 것은 누구나가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이 사견심을 그의 위에 둔 것은 막상 그가 남들에게 보여준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축융봉의 동굴에 칩거한 이후 고진 이 남들 앞에서 무공을 펼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때문에 고진의 검이 예전보다 한층 더 무서워졌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조차도 고진이 사견심보다 앞선다고는 장담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고진이 사견심도 달지 못한 육결을 수실에 매달고 문파의 운명을 가를 마지막 비무에 나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는가?

‘고진이 바로 당대 형산파의 제일검객(第一劍客)이란 말이구나!’

그것이 모든 사람들의 뇌리에 공통적으로 떠오른 생각이었다.

전후사정이 어찌 되었건,고진은 건곤참을 격파하고 형산파의 육결이 되어 나타났다. 그리고 그의 상대는 누구나가 인정하는 강호제일검객 신검무적이었다. 그러니 어찌 흥분되지 않겠는가?

장내의 군응들은 일제히 우렁찬 함성을 보냈다. 그것은 앞으로 벌어질 두 절세 검객들 간의 격전에 대한 성원과 기대가 가득 담긴 것이었다.

“우와아아!”

“형산파의 육결과 신검무적의 대결이라……. 내 평생 이런 싸움을 보게 될 줄이야!”

고진은 진산월의 앞으로 다가와서 우뚝 몸을 멈췄다.

두 사람의 시선이 잠시 허공에 교차되 었다.

물처럼 고요하고 담담한 시선과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듯한 무심한 시선.

언뜻 보기에는 비슷한 것 같았으나그 속에 담긴 것은 판이했다. 물처럼 고요한 시선은 거대한 폭풍을 앞둔 망망대해가 잔잔한 물결을 일렁이고 있는 듯했고,무심한 시선은 수백,수천 개의 날이 시퍼렇게 선칼을 가득 담은 만년 빙벽을 연상케 했다.

두 시선은 상대방의 시선을 끝없이 받아들이면서도 한쪽은 더욱 담담하게,다른 한쪽은 더욱 무심하게 변해갔다.

그들 사이에 흐르는 질식할 듯한 공기의 여운이 사방으로 번져가며 환호성으로 뒤덮였던 장내가 점차로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죽음 같은 정적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고,숨조차 제대로 내쉬지 않는 가운데 한 사람의 입이 살짝 열렸다.

“형산파 고진.”

앞뒤를 자른 짧은 말이었다. 그에 대한 다른 한쪽의 대답도 마찬가지로 짧았다.

“종남 진산월.”

두 거대문파의 모든 걸 내건 마지막 비무 답지 않은 짧고 간단한 자기소개였으나, 그만큼 장내의 긴박감과 군옹들이 느끼는 흥분감은 고조되 었다.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은 모두 입을 다물었고,주위는 다시 무거운침묵에 휩싸였다.

지나가는 바람조차 숨을 멈춘 것 같았다. 그러던 한순간,갑작스럽게 싸움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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