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림천하 32권 천양현음(天陽玄陰)편 : 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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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천하 32권 천양현음(天陽玄陰)편 : 6화


제 325 장 검적공극(1)

고진이 진산월의 대적자로 나설 때부터 교리는 상당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드디어 검정중원을 볼 수 있게 되었구나.”

귀호는 그동안 교리가 이처럼 흥분해 하고 어린아이처럼 설레어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기에 재미있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신검무적이 이번에 검정중원을 사용하리라 보는가?”

교리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신검무적은 음양신마 복양수를 꺾을 때도,천수나타 당각을 상대할때도 그 절세무적이라는 검정중원을 쓰지 않았네. 그런데 왜 그가 이번에는 검정중원을 펼치리라고 그렇게 자신하는 건가?”

“아무리 신검무적이라 하더라도 검정중원을 쓰지 않는 한은 고진을 상대로 승리를 쟁취할 수 없기 때문일세.”

귀호는 점점 더 의혹이 짙어지는것을 느꼈다.

“고진은 이십 년 가까이 외부에 전혀 출입을 하지 않았다고 알고 있는 데,자네는 마치 고진에 대해 자세하게 알고 있는 것 같군. 고진이란자를 알고 있었나?”

의외로 교리는 이번에는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나도 오늘 처음 보는 자일세.”

“그런데 왜……

“일전에 그에 대해 누군가에게서 몇 마디 말을 들은 적이 있지.”

“고진에 대해 무슨 말을 들었나?”

교리의 눈빛이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빛났다.

“고진이 이십 년 동안 칩거한 이유가 한 가지 무공을 익히기 위해서였다고 하더군. 그가 익힌 무공이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라면,신검무적은 이번에 검정중원을 펼치지 않을 수 없을 걸세.”

귀호는 강호무림의 정세에 대해서는 자신이 다른 누구보다도 자세하게 알고 있다고 믿고 있었기에 교리의 말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그게 대체 무슨 무공인가?”

교리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여느 때보다 한층 더 차갑고 냉정한 미소였다.

“우리 사이의 규칙에 위배되는 질문일세.”

귀호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제길. 이런 건 꼭 예외가 없군 그래.”

“다른 걸 물어보게.”

“자네에게 그 말을 해준 사람이 누구인지도 규칙에 해당되겠지?”

“잘 아는군. 보다 정확히 말하면 내게 말을 해준 게 아니라,내가 들은 걸세.”

비슷한 내용이긴 하지만 엄연히 다른 의미를 지닌 말이었다.

귀호는 말을 해준 게 아니라 자신이 들었다는 것이 대체 무엇을 뜻하는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다시 물었다.

“그럼 자네는 고진이 이십 년 동안 수련했다는 그 무공을 펼친다면 신검무적의 검정중원을 꺾을 수 있다고 보는가? 이것도 규칙에 위배되는 질문인가?”

“그렇진 않네. 하지만 제법 까다로운 질문이군.”

귀호는 교리의 얼굴에 한 가닥 난처한 빛이 떠오르자 쾌재를 부르며 재빨리 입을 열었다.

“규칙과는 상관없단 말이지? 그렇다면 자네 예상을 말해보게. 고진이 그 정체 모를 무공을 사용하고 신검무적이 그에 맞서서 검정중원을 펼친다면 두 사람 중 누가 승리하리라고 보는가?”

교리는 모처럼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나로서도 알 수가 없군. 왜냐하면 두 사람의 그 무공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지.”

“그런데도 고진이 그 무공을 펼치면 신검무적이 반드시 검정중원으로 상대한다고 믿는단 말인가?”

이번에는 교리가 단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반드시 그렇게 될 걸세. 그에게 검정중원에 필적하는 또 다른 절학이 있지 않는 한 말일세.”

그의 확신에 찬 음성을 들은 귀호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교리의 말인즉,고진의 그 무공은 신검무적이 검정중원을 펼치지 않는 한 막기가 불가능한 가공할 무학이라는 의미였다.

신검무적이 강호상에서 검정중원을 펼친 적은 단 두 번에 불과했지만,그 두 번만으로도 검정중원은 강호무림에서 가장 유명한 절학이 되었다. 그 검초를 본 모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 검초가 인세에 보기 드문 무적의 절학이라고 앞을 다투어 증언했고,검을 익히는 모든 검사들은 단 한 번만이라도 그 검초를 볼 수 있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검정중원의 첫 번째 희생자는 화산파의 이인자인 담로검 매장원이었고,두 번째로 쓰러진 자는 무림구봉 중의 도봉 양천해였다. 매장원은 화산파의 장문인이며 무림구봉중의 검봉인 육합신검용진산도 내심 두려워했던 절세의 검객이었고, 양천해는 자타가 공인하는 강호제일의 도객이었다.

그런 절세의 고수들이 단 하나의 검초에 처참한 몰골로 쓰러져 버렸으니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이 천하무적의 검초라고 떠들어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종남파에 어떻게 그런 가공할 절학이 탄생할 수 있었는지 의문을 가지는 자들도 적지 않았지만,대다수는 이백여 년 전에 최고의 고수들로 천하에 군림하던 종남오선의 비학이 전해진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아무리 신검무적이 천하에 다시 없는 천재라 해도 짧은 순간에 그러한 무적의 검초를 창안할 리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교리는 고진이 그 검정중원에 필적하는 무공을 익혔다고 말하고 있었다.

아무리 고진이 형산파에서 처음으로 배출된 육결검객이라고 해도 검정중원과 같은 놀라운 무학이 또 있다는 것을 귀호는 쉽사리 믿기 힘든 심정이었다.

‘아니, 생각해 보면 적어도 두 개는 더 있을지도 모르겠군.’

서장 최고의 고수였던 아난대활불과 그를 격파한 모용 대협의 최고 절학이라면 적어도 검정중원보다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형산파에서 검정중원에 필적할만한 무공을 만들었을 가능성도 아주 없지는 않은 셈이었다.

다만 문제는 교리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대체 교리는 아직 등장도 하지 않은 형산파 육결검객의 무공에 대해 어떤 경로로 알게 된 것일까? 그리고 그 무공이 검정중원과 견줄만한 놀라운 위력이 있다는 걸 어떻게 확신하고 있는 것일까?

그 두 가지 점에 대해 꼬치꼬치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규칙에 위배된다는 이상한 논리로 거부당할 게 분명한지라 귀호는 그저그러한 의문들을 마음 깊숙한 곳에 담아둘 수밖에 없었다.

대신 그는 전혀 다른 것을 물었다.

“대체 왜 그렇게 신검무적의 검정중원이라는 초식을 보려고 성화를 부리는 건가? 어차피 그의 행적을 따라 다니다 보면 언젠가는 자연히 보게 될 텐데 말일세.”

그때 교리의 얼굴에는 귀호가 처음 보는 묘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것은 무엇이라고 딱 꼬집어 표현하기 힘든 0>룻한 표정이었다.

“글쎄. 내가 왜 그러는 걸까?”

교리는 귀호를 놀리는 듯 빙글거렸으나,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물음 같기도 했다.

“굳이 말하자면 만약을 대비하고자 한 것이겠지. 정말 만약의 일을 말일세.”

“만약이라니? 그게 무언가?”

귀호는 급히 물었으나 교리는 빙긋웃을 뿐, 그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다.

다만 턱으로 앞을 가리켰을 뿐이었다.

“이제 시작할 모양이군. 이제 강호제일검객의 솜씨를 제대로 지켜보도록 하세.”

교리의 말대로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교리는 물론 장내의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전혀 의외의 전개가 펼쳐졌다.

먼저 손을 쓴 사람은 고진이었다.

고진은 이십 년 만의 강호출도를 자축하기 위해서인지 처음부터 강력한 수법을 사용했다.

그가 펼친 것은 연혼팔검(燃魂 A 劍)이라는 것인데,형산파의 구종검법 중 서열 일위에 올라 있는 형산파 최고의 검법이었다. 칩거가 십년을 넘어가서 반 초의 무공에 대한 분석을 완료한 시점에서 고진은 장문인의 특별 지시로 연혼팔검의 검법서를 얻을 수 있었다. 그 뒤에는 용선생의 힘이 결정적이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연혼팔검은 이름 그대로 자신의 혼을 불태우듯 육체와 정신,기백이 혼연일체가 되어야만 터득할 수 있을 정도로 익히기가 어려운 무공이었다. 초식의 수는 여덟개뿐이지만 하나같이 가공할 위력을 지니고 있었고, 그 첫 초식인 혼유검저(魂遊劍底)는 단 일검에 상대의 혼을 빼앗아 버리는 무서운 수법이었다. 특히 빠르면서도 강력하기가 여타의 형산파 검법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살인적인 것이었다.

끼이이……

마치 귀신의 호곡성을 듣는 듯한 괴이한 검향 또한 연혼팔검의 가장큰 특징 중 하나였다. 연혼팔검에 대한 경지가 높을수록 그 귀곡성의 위력은 점점 증대되어 마침내는 귀곡성만으로도 상대의 심혼을 앗을 수 있을 정도였다.

명문정파인 형산파의 검법답지 않게 섬뜩한 외형에 파괴적인 위력을 지니고 있기에 최고의 검법임에도 불구하고 형산파에서는 특정한 사람들 외에는 누구도 익히거나 접하지 못하게 꼭꼭 숨겨두었던 것이다.

주위가 온통 시퍼런 검 그림자에 가려지는 순간, 진산월은 주저하지 않고 검영 속으로 뛰어들었다.

마지막 비무인 만큼 신중할 법도 했지만 진산월은 그럴 생각이 추호도 없는지 비호처럼 달려들며 수중의 용영검을 휘둘렀다.

팟! 팟! 팟!

몇 가닥의 검광이 검영 속에서 번뜩였다.

그러자 고진이 발출한 자욱한 검영이 거두어지며 고진의 얼굴이 드러났다. 고진은 여전히 무심한 모습이었으나,두 눈만큼은 여느 때보다날카로운 빛을 뿌리고 있었다.

놀랍게도 진산월은 단숨에 혼유검저의 초식을 뚫고 그의 코앞으로 날아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 바람에 소맷자락이 잘려져 허공에 나풀거리며 양쪽 손이 팔목까지 훤히 드러났으나,진산월은 전혀 개의치 않는지 달려드는 기세 그대로 용영검을 앞으로 찔러댔다.

고진의 눈꺼풀이 살짝 찌푸려졌다.

단순히 앞으로 내뻗은 일검(一食IJ)같았으나,그 속에는 무시무시한 수 십 개의 변화가 숨어 있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 변화는 무려 서른여섯 개로,그 중 어느 것도 실초(實招)가 아닌 것이 없었다.

그것은 수비는 생각지 않는 공격일변도의 수법으로,이러한 검초를 대뜸 펼쳐온 것은 단숨에 승부를 결하려는 의지가 엿보이는 행동이었다.

단번에 서른여섯 군데를 노리는 검초도 놀라웠지만,고진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진산월이 탐색전 없이 처음부터 사생결단을 내려는 듯 승부를 걸어왔다는 점이었다.

연혼팔검의 절초들을 펼쳐 진산월의 실력을 판가름한 다음 최후에는 구주파천황으로 승부를 내려 했던 고진으로서는 갑작스런 진산월의 대응에 순간적으로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 이내 그는 두 눈을 번뜩이며 냉소를 날렸다.

‘단숨에 승부를 내겠다는 말이지?

원하던 바다.’

연혼팔검이 비록 형산파 최고의 검법이지만, 그것만으로 신검무적을 이길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건 고진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명문정파의 비무답게 격식을 갖추어 차근차근압박하려 했는데,상대가 대뜸 승부를 걸어온다면 피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자신의 눈앞으로 날아오는 서른여섯 개의 변화를 감춘 일검을 냉정한 눈으로 보고 있던 고진은 자신도 수 중의 검을 똑같이 앞으로 내뻗었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빨랐던지 출검이 진산월보다 늦었음에도 두 사람의 검은 중간에서 정면으로 맞부딪히게 되었다.

고진이 펼친 것은 연혼팔검의 최절초인 백락심연이었다. 변화는 열여섯 개에 불과해서 진산월의 일검에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다만 그 하나하나의 위력은 훨씬 더강력한 것이었다.

파파파파파!

진산월이 펼친 서른여섯 개의 변화가 채 완성되지 못하고 급격하게 파해되어 갔다. 열여덟 개의 변화가 순식간에 사라지고,남은 열여덟 개중 다시 열네 개의 변화가 채 완성되지 못하고 고진의 검에 사그라졌다.

끝까지 살아남은 네 개의 변화가 고진의 양쪽 옆구리와 관자놀이를 향해 날아들었다. 막 검광에 격중되기 직전,고진은 슬쩍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뎌 너무도 수월하게 그 네개의 검광을 벗어나 버렸다.

간단한 것 같아도 그의 걸음은 일섬풍(一織風)이라는 형산파 비전의 무학으로, 표홀하면서도 가볍고 민첩해서 지금같이 짧은 거리에서 상대의 공격을 피하기에는 뛰어난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었다.

고진이 서른여섯 개의 변화 중 그네 개만 남겨놓은 것도 그것들이 일섬풍으로 피하기에 가장 적당한 방위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고진은 단숨에 삼십육변의 천하무궁을 돌파하여 진산월의 지척에 도달했다. 수비는 거의 도외시하다시피 하고 공격적으로 초식을 펼쳤기에 진산월의 몸은 허점투성이였다.

고진의 검이 그런 진산월의 몸을 향해 움직여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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