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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천하 : 335화


제 335 장 망중한담(作:中閑談)(2)

능자하라면 능히 그럴 만 했다. 그녀는 유중악의 옛 애인이었으며,며 칠 전 육난음을 구출할 때도 한 팔을 거들었던 여인이었다. 당연히 유중악의 실종에 대한 전후 사정을 알고 있기에 그녀가 유중악의 행방을 찾아 남암궁 일대를 뒤지고 다니는것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

“능 소저가 그냥 돌아갔다면 선자 들에게서 별다른 대답을 듣지 못했다는 말이로군요.”

“그렇소. 그녀들 뿐 아니라 본 궁의 제자들 중 누구도 본 궁 근처에서 중악을 본 사람이 없었다고 하오. 이건 나중에 첫째인 소소가 직접 제자들에게 물어 확인한 사실이오.”

진산월은 무심한 시선으로 차복승을 바라보았다. 차복승은 정소소까지 언급하며 유중악의 실종이 천봉궁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증명하려 했지만,진산월은 오히려 그 때문에 작은 의혹을 느끼고 있었다.

“천봉궁의 제자들 중 누구도 유 대협을 보지 못했다는 건 이해하겠습니다. 목격자도 유 대협이 이쪽 방향으로 가는 것을 보았을 뿐,그의 발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혹시 차 대협께선 유 대협과 친분이 있으십니까?”

“왜 그런 걸 물으시오?”

“차 대협께서 유 대협에 대한 호칭이 자연스러워서 예전부터 알고 있는 사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복승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허헛! 과연 진 장문인의 안목은 정말 예리하구려. 친한 정도라고 할 수는 없지만,예전에 만난 적이 있었소. 그의 사부인 조화신창과 몇번 왕래를 했기에 그가 어렸을 때 자연스레 안면을 익히게 되었지. 그게 그러니까 벌써 삼십 년도 더 된이야기로군.”

유중악의 사부는 전대의 천하제일창이었던 조화신창 감화였다. 감화는 육십이 훨씬 넘은 나이에 유중악을 제자로 받아들였고,그로부터 불과 십이 년 후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차복승이 처음 감화를 알게 된 것은 사십여 년 전의 일로,당시 감화는 무인으로서는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삼십 대 후반의 나이였고,차복승은 그때도 지금처럼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나이 차이를 넘어서 서로 간에 상당한 호감을 갖게 되었다. 두 사람은 서로 활동하는 지역이 달라 제대로 만난 것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었으나,그래도 교감을 이어가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차복승이 유중악을 처음 본 것은 유중악이 감화의 제자가 된 지 일년쯤 지난 날이었다. 감화가 늦은 나이에 새로운 제자를 영입했다는 소식을 들은 차복승이 일부러 시간을 내서 감화를 찾아갔던 것이다.

유중악에 대한 차복승의 첫 인상은 선량하다는 것이었다. 당차고 똑똑했지만,무엇보다 착하고 성격이 온후한 점이 기억에 남았다.

무인으로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성격이었지만,차복승은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조화신창 감화라면 그의 부족한 점을 잘 메꿔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짐작대로 칠 년 후 다시 만났을 때 유중악은 한층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무공은 물론이고 성격 또한 순후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무인다운 패기를 지닌 훌륭한 청년 고수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오 년 후에 감화는 흐뭇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고, 유중악은 한 자루 창을 들고 강호에 뛰어들어순식간에 커다란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 뒤로 차복승이 유중악을 본 것은 두 번에 불과했다. 천봉궁은 주로 강북에서 활동했고 유중악은 강남 일대를 주무대로 삼았기에 좀처럼 만나기 힘들었던 것이다.

진산월은 묵묵히 차복승의 말을 듣고 있다가 조용한 음성으로 물었다.

“유 대협을 제일 마지막으로 만난것이 언제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차복승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흠. 삼년 전인가 사년 전인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구려. 금릉의 진회하에서 잠깐 만난 적이 있었소.”

진산월은 자신의 물음이 추궁으로 들리지 않도록 주의하며 재차 질문을 던졌다.

“이번 무당산에서는 유 대협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아쉽게도 그렇소. 중악이 이곳에 왔다는 말을 듣기는 했는데,어찌된영문인지 나를 찾아오지도 않고 모습도 보이지 않기에 필시 무슨 곡절이 있으리라 생각했소. 아마도 구궁보에서 벌어졌던 일 때문에 나를 찾아오는 것에 부담을 느낀 게 아니겠소?”

차복승의 짐작은 진산월이 생각하기에도 일리가 있었다. 구궁보에서 있었던 모용봉의 생일연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로 유중악의 명성은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고,그 여파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중이었다. 유중악의 성격이라면 자신에 대한 오해가 모두 풀리고 오점을 깨끗이 지우기 전에는 결코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려 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차복승의 심연처럼 깊은 눈이 진산월에게 고정되었다.

“능 소저와 진 장문인이 중악을 그토록 찾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소?”

진산월은 이쯤에서 얼마간의 사정은 밝혀야할 필요성을 느꼈다.

“사실 유 대협은 무림대회의 마지막 날에 공개석상에서 구궁보에서 벌어졌던 일에 대한 진상을 밝히고 스스로에게 지워진 오명을 벗으려고 했었습니다.”

차복승의 눈빛이 한층 더 깊어졌다.

“그 진상이란 게 무언지 알 수 있겠소?”

“그건 유 대협 본인만이 알고 있을 겁니다. 다만 유 대협은 그 일에 상당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모든 걸 내걸 결심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회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구려.”

“그날 오전부터 홀연히 사라져 어디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위를 은밀히 수소문해 보았는데,유 대협의 모습이 제일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이 바로 남암궁근처였습니다.”

차복승은 이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두 사람이 본 궁에 와서 그의 행방을 물은 것이었구려.”

“그렇습니다.”

차복승은 잠시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진산월은 그의 상념을 방해하지 않고 묵묵히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잠시 주위에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 정적은 한참 후에 입을 연차복승에 의해 깨어졌다.

“진 장문인은 중악이 갑작스레 사라진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다만 현재 유 대협이 별로 좋지 못한 상황에 처해 있을 거라는 건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차복승은 나직한 한숨을 토해냈다.

“후우. 진 장문인의 생각도 그렇구려. 나도 또한 마찬가지요. 조화신창과의 인연을 봐서라도 그의 실종을 모른 척 할 수는 없지만,공교롭게도 꼭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당장 몸을 빼기는 힘든 상태요.”

“이해합니다.”

“그래서 말인데,진 장문인에게 한 가지 당부드릴 말이 있소.”

“기꺼이 경청하겠습니다.”

차복승의 음성이 한층 더 진지해졌다.

“중악의 행방에 대해서는 내가 나름대로 알아보겠소. 대신 진 장문인은 내가 해야 할 일을 해주면 안되겠소?”

진산월은 침착한 음성으로 물었다.

“하셔야 할 일이란게 무엇입니까?”

“어느 곳에 가서 한 사람을 만나말을 전해주기만 하면 되는 일이오.”

진산월은 차복승의 의중을 파악하려는 듯 주름살 가득한 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언뜻 차복승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게 간단한 일을 왜 굳이 부탁하느냐는 눈빛이구려. 특별한 이유는 없소. 단지 그곳이 여기에서 제법 떨어져 있는지라 그곳까지 갔다오는 동안 중악의 실종에 대한 단서는 모두 사라지고 말거요. 나는 그게 걱정스러운 거요.”

진산월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그에게 물었다.

“유 대협의 행방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보십니까?”

“절대적인 장담은 못하겠소. 하지만 중악이 이 근처에서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게 사실이라면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의 종적을 찾아내고야 말겠소. 아무리 사소한 흔적이라도 놓치지 않고 추적하여 그의 행방을 알아낼 것이오.”

그리 크지 않은 음성이었으나,그속에 담긴 결연함은 진산월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차복승이 이렇게까지 말하니 결국진산월로서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좀 더 정확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제야 차복승은 한시름 덜었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고맙소. 낙양 북쪽의 망산(t[3 山)에 가면 동쪽 산기슭 뒤편에 유달리 좁고 가파른 계곡이 있소. 그 계곡안에 들어가면 한 채의 모옥이 나올거요. 그 모옥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말을 전하면 되오.”

“계곡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그리 크지 않은 계곡이고,찾아오는 사람도 없어서 특별한 이름은 없소.”

“전할 말은 무엇입니까?”

“‘결정했다’라고 전해 주시오.”

너무 짧은 말인지라 진산월은 절로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그 말 한 마디만 전하면 됩니까?”

“그렇소.”

“그 사람의 용모파기라도 알 수 있겠습니까?”

“그 계곡 안에는 오직 한 사람밖에 살고 있지 않으니 걱정할 필요 없소.”

“언제까지 전하면 되겠습니까?”

“빠르면 빠를수록 좋소. 늦어도 보름까지는 전해야 하오.”

진산월이 다시 무언가를 물으려 하자 차복승은 빙그레 미소 지었다.

“진 장문인이 궁금한 점이 많다는건 알고 있소. 하나 그곳에 가면 대부분의 의문은 자연히 해소될 테니미리부터 너무 신경 쓸 필요는 없소.”

차복승의 그 웃음을 보자 진산월은 더 이상의 질문을 해보았자 제대로 된 답변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진산월의 머리 속으로 여러 가지 의문이 줄기줄기 일어나고 있었다.

차복승이 말한 모옥 안의 인물은 과연 누구일까?

그리고 그가 전하라는 ‘결정했다’

라는 말은 무슨 의미를 지닌 것일까?

왜 하필이면 차복승은 자신에게 이런 부탁을 한 것일까? 그는 정말 유중악의 행방을 찾기 위해서 자신에게 대신 일을 맡기려한 것일까?

차복승은 과연 실종된 유중악의 행방을 찾을 수 있을까?

어떠한 흔적이라도 놓치지 않고 유중악을 찾아내겠다는 그의 장담은 과연 단순히 결연한 각오를 나타낸것일 뿐일까? 아니면 그에게 유중악을 찾을 나름대로의 확신이 있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대체 그는 어떻게 그런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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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의혹이 구름처럼 일었으나 지금으로서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차복승의 말처럼 망산으로 가서 직접그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의문을 해소하는 가장 빠른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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