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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천하 : 338화


제 337 장 고택풍운(1)

정오의 따가운 햇살 때문인지 마적풍(馬積豊)의 얼굴은 흐르는 땀으로 흠백 젖어 있었다.

“휴우! 덥다,더워.”

마적풍은 소맷자락으로 이마를 닦으며 주루 안으로 들어섰다.

이곳 맹가루는 무당산의 끝자락에서 하남성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마을로,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으나 지리적인 이점 때문이지 객잔이나 주루의 수가 적지 않았다.

지금 마적풍이 들어서고 있는 구화반점(九華飯店)만 해도 맹가루에서 열 손가락 안에도 들지 못하는 평범한 음식점임에도 불구하고 실내가 제법 넓었고,손님도 많았다. 점심때라 그런지 반점 안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찼고,그래서 후덥지근한 열기가 후끈 느껴졌다.

“제기랄. 가뜩이나 더워 죽겠는데,여긴 아예 찜통이군.”

마적풍은 투덜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이내 한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른 곳은 모두 탁자마다 사람들이 가득했는데,그곳은 제법 넓은 원탁에 단지 두 사람만이 동그마니앉아 있었던 것이다.

구화반점은 워낙 손님들이 많은 음식점이어서 식사 시간에는 합석이 당연시되는 곳이었다. 굳이 점소이가 안내를 하지 않아도 빈 자리가 보이면 생면부지의 인물이 앉아 있더라도 스스럼없이 합석하는 것이 일종의 관례임을 생각해 본다면 예닐곱 명이 족히 앉을 수 있는 자리에 두 사람만이 있는 것은 특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곳으로 다가가던 마적풍은 이내그 탁자에만 사람들이 몰려들지 않은 이유를 알아차렸다. 앉아 있는 두 사람의 행색이 범상치 않아 보였던 것이다.

한 사람은 짙은 흑의를 입은 청년이었는데,키는 그리 크지 않았으나체구가 단단해 보였다. 게다가 아무렇게나 대충 하나로 묶어 뒤로 넘긴머리 때문에 훤히 드러난 이마 아래에 번뜩이는 눈빛이 얼마나 매서운지 거칠고 사나운 느낌이 물씬 풍겨나오고 있었다.

흑의 청년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그와는 반대로 큰 키에 차분한 눈빛을 지닌 백의 청년이었다. 나이는 이십 대 중반쯤으로 보였는데,평범한 외모임에도 이상하게도 함부로 말을 걸기 어려운 위압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마적풍은 흥미로운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주저 없이 그들 옆의 빈자리에 가서 앉았다.

“실례하겠소.”

그가 간략하게 고개를 까닥거리자 흑의 청년이 힐끔 돌아보았다. 그눈초리가 어찌나 차갑고 살벌하던지 마적풍은 절로 찔끔하여 자신도 모르게 변명처럼 주절거렸다.

“빈 자리가 이곳밖에 없어서 말이 흑의 청년은 주위를 한 차례 쓱둘러보더니 그의 말이 사실임을 확인했는지 이내 다시 시선을 거두어들였다.

하나 그 뒤로 마적풍은 괜히 바늘방석에라도 앉은 사람처럼 마음이불편해서 연신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제길. 나이도 어린 놈이 눈빛 하나는 고약하군.’

그는 재빨리 지나가는 점원에게 주문을 하고는 음식이 한시라도 빨리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다 문득 시선이 흑의 청년의 앞에 앉아 있는 백의 청년에게로 향했다. 백의 청년은 단정한 자세로 음식을 먹고 있었는데,젓가락질 하나하나에도 범상치 않은 절제와 품위가 느껴졌다.

마적풍은 한동안 멍하니 백의 청년이 식사하는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백의 청년이 그 시선을 느꼈는지 힐끗 그를 돌아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마적풍은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살짝 눈인사를 했다.

“안녕하시오.”

백의 청년은 담담한 눈으로 마적풍을 응시하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보면 무례하거나 거만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이상하게도 백의 청년에게는 그러한 모습이 너무도 잘 어울려 보였다.

마적풍은 다시 싱겁게 히죽 웃었다.

“이렇게 한 자리에 앉게 된 것도 인연인데,인사나 나누는 게 어떻겠소? 나는 마가라 하오.”

백의 청년은 짤막하게 대꾸했다.

“진가요.”

마적풍의 시선이 다시 흑의 청년에게 향했으나,흑의 청년은 무엇이 그리도 불만인지 인상을 찡그리고 있다가 백의 청년의 눈짓을 받고서야 겨우 한마디를 내뱉었다.

“전가.”

마적풍의 나이는 삼십 대 중반이어서 자신보다 한참 어린 청년의 그런 모습에 기분이 상할 법도 한데,그런 표정은 전혀 짓지 않고 오히려입가에 훈훈한 미소를 매달았다.

“두 분의 외모를 보니 하나같이 범상치 않아 보이는데, 두 분 모두 이곳 사람은 아닌 것 같구려.”

흑의 청년은 여전히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반면에 백의 청년은 가볍게 그의 말에 응대를 해주었다.

“잠시 지나가는 길이었소.”

“그럼 맹가루는 처음이란 말이오?”

“그렇소. 귀하는?”

“나도 토박이는 아니오. 하남성 일대를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신세이긴 하지만,그래도 이 일대의 지리는 눈을 감고도 훤히 알 수 있을 정도로 자주 들락거리고 있소.”

마적풍이 다시 무어라고 입을 열려했을 때 마침 그가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간단한 국수와 어른 주먹만한 만두 몇 개였다.

마적풍은 입맛을 다시며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이 구화반점의 국수와 만두는 이일대 최고의 진미라고 할 수 있소.”

마적풍은 열심히 국수를 먹기 시작했다. 그가 어찌나 맛있게 먹는지 뚱한 얼굴로 한쪽에 앉아 있던 흑의 청년이 고개를 돌려 힐끔거릴 정도였다.

“후루룩! 카,역시 여기는 국물이 제대로라니까.”

마적풍은 순식간에 국수를 다 해치우고 이번에는 만두를 집어 들었다.

그가 만두를 크게 베어 물자 만두특유의 향기가 주위에 솔솔 퍼져나갔다.

썹쩝하고 입맛을 다시며 만두를 먹는 그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백의 청년은 들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 광경을 본 마적풍의 눈이 번쩍 빛났다.

“왜 더 드시지 않고……

입이 터져라 만두를 넣고 우물거리면서도 용케도 파편을 튀기지 않고 말하는 그의 시선은 백의 청년의 앞에 놓인 요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백의 청년과 흑의 청년의 앞에는 대여섯 가지의 요리들이 펼쳐져 있었는데, 아직 절반 가까운음식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다 먹었소.”

백의 청년의 말에 마적풍의 시선이 흑의 청년에게로 향했다.

흑의 청년은 휑하니 고개를 돌렸는 데,아무리 보아도 더 이상은 젓가락을 들고 음식을 먹을 것 같지 않았다.

마적풍은 입안 가득 씹고 있는 만두를 꿀끽 삼키며 조심스럽게 그를 힐끔거렸다.

“모두 드신 것이라면 남은 음식들백의 청년은 무심한 음성으로 말했다.

“우리는 모두 먹었으니 상관없소.”

“고맙소.”

마적풍은 반색을 하며 남은 요리들을 자신의 앞으로 재빨리 옮겨 놓았다. 그리고는 어느 것부터 먹을까하는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며 둘러보더니 이내 벼락같은 솜씨로 젓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

잠시 장내에는 그의 음식 먹는 소리만이 요란하게 들리고 있을 뿐이었다. 주변의 다른 탁자에 있던 사람들이 돌아볼 정도로 정신없이 요리를 먹는 마적풍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가득 떠올라 있었다.

순식간에 빈 접시가 수북하게 쌓이 고,마적풍은 부풀어 오른 배를 두드리며 만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끄윽! 정말 모처럼 잘 먹었네. 이게 대체 얼마만의 포식이냐?”

마적풍은 이내 백의 청년과 시선이 마주치자 약간은 계면쩍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덕분에 모처럼 사람다운 식사를 한 것 같소. 요새 통 벌이가 시원치않아서 주머니가 너무 가벼웠던 참이라 하하!”

마적풍이 어색한 웃음을 홀렸으나백의 청년은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와 흑의 청년이 금시라도 자리에서 일어날 듯하자,마적풍은 은근한 음성으로 물었다.

“맹가루 일대에는 제법 볼만한 풍광들이 많이 있는데,혹시 길 안내가 필요치 않으시오?”

백의 청년이 아무 대답 없이 자신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자 마적풍은 눈을 반짝이며 열띤 음성으로 말했다.

“두 분은 이곳에 처음 와서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사실 맹가루는 그냥 지나쳐 가기에는 아쉬운 곳이라서 말이오. 특히 서쪽 강변의 일몰은 그야말로 최고의 절경이라고 할 수 있소. 그곳을 보지 못하고 간다면 하남성 최고의 경치 중 하나를 놓치게 되는 거요.”

“맹가루 강변에서 떨어지는 석양을 보며 마시는 옥골향(玉#香)과 세가지 고기로 버무린 냉채요리는 그야말로 별미 중의 별미라오. 아마중원의 어디를 가도 그 정도의 맛과 멋을 즐길 수 있는 곳은 찾기 힘들거요. 이건 평생을 두 발이 닮도록천하를 떠돌아다닌 나,마적풍이 자신 있게 장담할 수 있소.”

마적풍은 모처럼 가슴을 두드리며 큰소리를 쳤으나, 백의 청년은 표정의 변화가 없는 얼굴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적풍이 실망스런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을 때,몸을 일으킨 백의 청년이 불쑥 입을 열었다.

“길 안내를 하지 않을 셈이오?”

그 말에 귀가 번쩍 뜨였는지 마적풍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그렇지. 내가 오늘 두 분공자께 최고의 절경을 보여드리겠소.”

마적풍은 희희낙락하는 표정으로 황급히 계산을 마친 후 그들의 뒤를 따라 구화반점을 벗어났다.

한낮의 햇살은 상당히 따가웠으나마적풍은 무엇이 그리도 흥이 나는지 가벼운 휘파람을 불며 덩실덩실춤을 추듯 걸음을 옮겼다.

“우선 북쪽의 팽가고택에 갔다가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예서원과 관제묘에 들리면 대충 해가 떨어지기 시작할 거요. 그때 즈음이면 강변의 노을을 보기 적당한 시간이 될 거요.”

마적풍이 신나게 입을 나불거렸으나 백의 청년은 그저 짤막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에 비해 흑의 청년은 입을 굳게 다문 채 차가운 눈빛을 뿌리고 있었는데,그 모습이 한 마리 맹수처럼 사나워 보여서 마적풍은 일부러라도 그에게는 시선을 주지 않으려 했다.

북쪽으로 뚫린 대로를 지나자 인가가 급격히 줄어들며 다소 황량한 벌판이 나타났다.

마적풍은 그 벌판의 한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기 보이는 죽림을 돌아가면 오래된 고택이 나오는데,그게 바로 팽가고택이오. 알려지기로는 아주 오래전에 그 유명한 하북팽가의 고수 한 사람이 분가해서 살았다고 하는데,지금은 그 후손들이 다시 하북성으로 돌아가고 빈 저택만 남아 있소. 하지만 보존이 잘 되어 있고,팽가의 기상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웅장하고 위풍이 있는 건물이 어서 지금도 유람객들이 찾곤 하는 곳이오.”

열심히 팽가고택에 대해 설명을 한 마적풍이 그쪽 방향을 향해 막 걸음을 옮기려 할 때였다.

백의 청년이 문득 걸음을 멈추고 그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조용한 음성으로 묻는 것이었다.

“저곳에 적금쌍마가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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