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림천하 34권 회인거인 편 :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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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천하 34권 회인거인 편 : 1화


제 331 장 구파회담(3)

대방 선사는 이번에 이런 식의 결정이 내려지게 된 뒷이야기를 차분한 어조로 설명했다.

“원래 당초의 분위기로는 무난히 종남파의 복귀가 결정될 흐름이었소. 본 사는 물론이고 여타 문파의 장문인들도 어제의 비무를 보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음은 물론이고 종남파의 저력에 대해 모두들 감탄하고 있었소.”

진산월은 묵묵히 대방 선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가부간의 결정을 하게 되자 다수의 문파에서 종남파의 복귀에 대해 난색을 표했소.”

“그들이 어느 문파인지 알 수 있습니까?”

“먼저 이의를 제기한 곳은 점창파였고,곧이어 공동파와 화산파가 그에 동조를 했소. 형산파에 특별한 흠결이 없는 상황에서 종남파의 구파 복귀를 논하기에는 아직은 시기 상조라는 의견이었소. 본 사와 아미,곤륜은 종남파의 복귀에 찬성하는 입장이어서 결국 두 의견을 놓고 격론을 벌이지 않을 수 없었소.”

“무당파는 어느 의견을 지지했습니까?”

“무당과 청성은 중립을 고수했소.

청성파는 어느 쪽으로 결정되든 따르겠다는 태도였고, 무당파는 이번모임의 주최자이니만큼 회담을 진행하는데 더 신경을 쓰는 것 같았소.”

여덟 개 문파 중 두 개 문파가 중립을 지키고 여섯 개 문파가 두 파로 나뉘어 설전을 벌인 결과가 바로 세 가지 합의였다.

그 합의 자체에는 납득하려면 납득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진산월도 다소의 아쉬움은 있을지언정 합의자체를 거부할 생각은 없었다.

문제는 합의 이후에 현령진인이 말한 제안이라는 것이었다. 형산파와의 경쟁을 노골적으로 부추기는 그제안은 종남파 입장에서는 한편으로는 모욕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불필요한 희생을 불러올 수도 있는 독소조항이었다.

진산월은 대체 그 제안이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것인지 궁금했다.

“그 제안이 어떻게 발의된 것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대방 선사의 중후한 얼굴에 한 줄기 쓴웃음이 떠올랐다.

“합의의 둘째와 셋째 조항을 놓고 의견이 분분했었소. 그러다 점창파의 대표로 참석한 백리 대협께서 당금 무림의 최대 현안인 서장 무림과의 싸움이 두 파를 위한 좋은 무대가 될 거라며 의견을 내놓았소. 그리고 공동파와 화산파는 물론이고 중립을 지키던 청성파마저 그 의견에 찬성하자 사회를 보던 현령진인께서 그걸 하나의 제안으로 확정하신 거요.”

대방 선사는 에둘러 말했지만,진 산월은 그 말 속에 숨은 뜻을 이내알아차렸다.

결국 의견 자체는 백리장손이 처음 꺼냈지만,그걸 제안으로 만든 사람은 무당파의 장문인인 현령진인이었던 것이다. 현령진인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그것이 결코 종남파에 유리한 방향은 아니라는 건 너무도 분명해 보였다.

종남파의 가장 큰 약점은 문하제자의 수가 현격하게 적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오랫동안의 쇠락으로 인한 것이어서 결코 단시일 내에 극복할수 없는 성질의 문제였다.

그런 상황에서 형산파와의 경쟁 때문에 서장 무림과의 싸움에 전력을 기울이게 된다면 가뜩이나 부족한 문하제자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어문파의 중심이 뿌리째 흔들리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진산월이 가장 우려하는 것도 바로 그 부분이었다.

그 약점을 날카롭게 찌르고 들어온제안에 대해 진산월이 경계심을 갖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대방 선사 또한 강호의 경험이 풍부하고 지혜가 뛰어난 인물이니만큼진산월의 그런 우려를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하나 그렇다고 무작정 백리장손과 현령진인이 종남파에 위해를 가할 의향이 있다고 단정 지을 수도 없었다.

사실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고 했지 만,회담 자체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한 편이었다. 각 파의 수뇌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이게 된 만큼 서로의 안부를 묻고 정담을 나누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각 파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지 않는 한,구파회동의 대부분은 그와 유사한 분위기에서 치러지곤했다. 물론 친근하게 웃고 있는 미소나 부드러운 음성 밑바닥에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냉정한 판단과 손익계산이 포함되어 있지만,겉으로 드러나는 분위기는 오랜만에 만난친한 동료들의 모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종남파의 복귀는 그들로서는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흥분하거나 서로 얼굴을 붉힐 만한 사안이 아니었다.

당사자인 종남파와 형산파로서는 그야말로 문파의 미래가 걸린 중차대한 일이겠으나, 다른 팔 개 문파에서는 어느 파가 구대문파의 한 자리로 들어서든 크게 상관없는 문제였다.

둘 중 어느 문파가 된다고 해도 구대문파의 위상이 변하거나 다른 문파가 피해를 입을 가능성은 전무했다. 그러니 사안의 중대성에 비해각 문파가 임하는 자세는 다소 느긋할 수밖에 없었다.

종남파의 복귀를 찬성하는 문파들도, 아직 시기상조라고 주장하는 문파들도 실제로는 부드럽고 완곡하게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했을 따름이었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어느 한 문파에서 다소 강하게 주장하면 여타문파들은 특별한 거부감이 없는 한 그 문파의 의견에 동조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백리장손의 제안도 그런 분위기에서 나온 것이어서 다른 문파에서 쉽게 동의했던 것이다.

아마 그들 대부분은 이 제안이 당연히 받아들여질 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진산월의 반응에 오히려 상당한 당혹감을 느꼈을지도 몰랐다.

별다른 위기감이나 이해득실에 따른 몰입은 없지만 상당히 흥미를 끄는 타 문파의 문제.

이것이 구대문파가 종남파의 복귀를 바라보는 냉정한 시각이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자신이 먼저종남파의 복귀를 제안하고 구체적으로 그것을 위해 활발히 활동한 대방선사가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진산월이 상념에 잠겨 있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고 있던 대방 선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빈승이 진 장문인을 보자고 한 건 그 외에 긴히 드릴 말이 있어서요.”

“말씀하시지요.”

대방 선사의 맑고 정기가 번뜩이는 눈이 진산월의 얼굴에 못 박히듯 고정되 었다.

“진 장문인은 이제 곧 선반의 반주로서 무림맹의 선봉에 서게 될 것이오. 혹시 진 장문인께선 어느 곳을 가장 첫 번째 목표로 삼을지 정해두신 곳이 있소?”

선반은 무림맹의 최일선에서 서장무림과 격돌을 하는 곳이다. 당연히 선반의 목표는 외부로 유출되어서는 곤란한 기밀 중의 기밀이었다.

하나 진산월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대방 선사가 그것을 모르고 질문을 했을 리는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의 질문에는 필연적인 곡절이 있을 것이다.

“저는 흑갈방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대방 선사는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빈승도 그러리라고 짐작했소. 확실히 흑갈방은 현재 알려진 서장 세력 중 가장 강력하면서도 외부로 드러나 있는 곳이지.”

“방장께선 제 생각이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그런 건 아니오. 빈승도 서장 무림과의 싸움을 앞두고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서라도 흑갈방을 없애는것은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대방 선사의 얼굴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문제는 흑갈방의 세력이 겉으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는 것이오. 아마 진 장문인이 예상하고 있는 그 이상일 것이오.”

진산월도 흑갈방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

흑갈방은 원래 섬서성 동관 일대에서 활동하던 흑도의 군소방파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무섭게 세를 확산하여 섬서성 일대를 장악하더니 지금은 하남성과 하북성을 넘어 강북 무림 전체에서 가장 거대한 흑도방파가 되어 버렸다.

그 배후에 서장의 세력이 있다는것은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었다.

진산월은 그들의 최고 수뇌가 서장의 제일기인이었던 천애치수 단목초의 제자들인 위태심과 백석기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진산월이 흑갈방을 선반의 최초 대상으로 삼은 것도 바로 그런 연유에 서였다.

진산월은 아무리 위태심을 비롯한 흑갈방의 세력이 강력하다고 해도 자신을 보조해줄 고수들만 있다면 충분히 그들을 무너뜨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방 선사는 그의 그런 생각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흑갈방은 섬서성을 장악한 후 줄곧 하남성 일대로 세력을 확대시키고 있소. 그래서 본 사도 그들에 대해 자세히 조사하지 않을 수 없었대방 선사는 자신이 알고 있는 흑갈방의 세력에 대해 말해 주었다.

흑갈방의 방주는 흑의사신 위태심이고,부방주는 그의 사제인 화면신사 백석기였다. 그들 외에도 서장의 최고고수들이라는 서장십이기 중 네명과 십육사 중 다섯 명이 있으며,오래전부터 강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전대의 노마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 중에는 수십 년 전에 북만주일대의 패자로 군림했던 팔황일독(A荒一獨) 표성락과 흥안령(興安複)의 괴물 낭아신검(浪奸神劍) 채병익,대막 일대를 공포에 떨게 했던 혈전사마(血戰0魔) 노씨형제 같은 무시무시한 고수들도 있었다.

하나 무엇보다도 대방 선사를 걱정스럽게 한 것은 흑갈방의 봉공(奉公)으로 있는 두 명의 괴인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나이를 추측하기 어려운 백발의 노인들인데,일신의 공력이 하늘에 도달해 있어서 그 콧대높은 서장십이기조차도 그들 앞에서는 감히 머리를 세우고 다니지 못한 다고 하오. 흑갈방 내에서는 그들을 천지쌍노라고 부르고 있진산월은 머리를 굴려 보았으나 그런 이름을 들은 기억이 없었다.

그의 강호경험이 비록 평생을 강호에서 살아온 노강호들보다는 못해도 대방 선사를 걱정스럽게 할 정도의 고수들이라면 모를 리가 없는데,천지쌍노는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이었다.

대방 선사의 이어지는 말은 점입가 경이었다.

“얼마 전에 비밀리에 들어온 소식에 의하면,최근 흑갈방이 하북성을 진출하는 과정에서 검보와의 충돌이 있었다고 하오. 그때 검보의 전대보주였던 검왕 서문 대협께서 흑갈방을 막아섰는데,천지쌍노 중의 한 사람의 손에 불과 십여 초 만에 패하고 말았다는 것이오.”

좀처럼 평정을 잃지 않던 진산월도 그 말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서문 대협이 말입니까?”

“그렇소. 워낙 은밀히 벌어진 일이라 강호에는 아직 소식이 제대로 퍼지지 않았지만,본 사에서는 계속흑갈방을 주시하고 있었는지라 곧바로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소.”

검보는 한때 강북삼보의 하나로 명성을 멸치던 하복성 제일의 문파였다. 검왕 서문동회는 이미 십여 년전에 보주의 자리를 아들인 서문장천에게 넘기고 은거했지만,지금도 그의 영향력은 시들지 않고 있었다.

더구나 그는 종남파의 제자인 서문연상의 할아버지가 아닌가?

강호 무림 전체를 놓고 보아도 열손가락 안에 능히 꼽힐 최절정의 검객인 서문동회가 십여 초 만에 패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검보가 흑갈방의 세력확장을 막지 못했다는 것은 더욱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진산월은 무림의 안위를 위해,그리고 서문연상을 위해서도 검보의 일이 우려되었다.

“그 후의 과정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검보는 일단 자기들의 본거지에 웅크린 채 힘을 모으고 있다고 하오. 흑갈방 또한 섣부른 세력확장을 자제한 채 검보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머지않아 그들이 본격적으로 부딪히게 될 거라는 게 많은 사람들의 한결같은 생각이오.”

진산월은 아직 검보가 무너지거나 절대적인 위기에 처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 그만큼 흑갈방과 두 명의 봉공에 대한 의구심이 더욱 커졌다.

“서문 대협을 일패도지 시킬 만한 실력의 고수는 결코 많지 않을 텐데,제가 과문해서인지 천지쌍노라는 이름의 고수가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군요. 방장께서는 혹시 그들의 이름을 아십니까?”

“빈승도 처음 듣는 이름이었소. 그래서 본 사의 제자들을 풀어 좀 더그들에 대해 알아오게 했소. 서문대협을 상대한 자는 천노라는 인물인데,단지 한 쌍의 육장만을 사용했다고 하오.”

장력으로 서문동회를 꺾을 만한 고수가 누구인지 떠올려 보았으나 쉽게 예상할 수 없었다.

당금 무림에서 장력의 최고수는 무림구봉 중의 일인이며 현재 무림맹주를 맡고 있는 일장개천지 위지립이었다. 하나 위지립이라 할지라도 과연 서문동회를 십여 초 만에 꺾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단지 그것만으로는 그들의 정체를 파악할 수 없었소. 다행히 파견 나갔던 제자들 중 하나가 아주 귀한 정보를 입수해 왔소. 몇 달 전에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되었던 운문세가의 가주 천룡신군 운대방의 죽음 또한 그들의 솜씨라는 것이었소.”

“ ? ”

진산월은 침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운대방의 죽음이라면 그와도 아주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없었다. 운대방의 시신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 바로 그를 비롯한 종남파의 제자들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두 번째 강호행을 나온 지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다.

위남에서 난데없는 흑갈방의 공격을 피해 배를 타고 위수를 따라 이동했다가 내린 강변 근처의 관도에서 여덟 마리의 한혈마가 이끄는 운룡신거를 발견했던 것이다.

그 운룡신거의 안에는 운문세가의 당대가주인 운대방의 시신이 놓여있었다.

당시 운대방의 사인은 왼쪽 가슴에나 있는 작은 구멍이었는데, 진산월은 한눈에 그것이 순전히 손가락의 힘으로 뚫어낸 흔적임을 알아보았다.

위남 일대의 패자인 운대방의 처참한 죽음에 허무함을 느꼈을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던 일이 오늘에서야 다시 거론되었으니 진산월은 운명의 우여곡절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운대방의 시신에는 강력한 지공의 흔적이 남아 있었소. 그것을 보자 빈승의 뇌리에는 문득 아주 오래전에 들은 하나의 노랫자락이 떠올랐소. ‘손바닥이 움직이면 하늘이 피로 물들고,손가락이 날아오르면 땅이 피에 젖는다’는……

진산월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는 처음 듣는 노래로군요.”

“진 장문인은 모를 수도 있겠구려.

서장,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천산(天UJ) 일대에서는 울던 어린아이도 이 노래를 들으면 울음을 멈춘다는 전설이 있었소.”

“천산? 그럼 그들이 서장의 고수란말입니까?”

“그렇소. 천산의 두 악마들,서장에서는 천산이괴라고 부르는 그들이 바로 그 천지쌍노가 아닐까 빈승은 그렇게 의심하고 있소.”

천산이 괴!

그 이름은 진산월도 들은 적이 있었다.

서장제일기인이었던 천애치수 단목초가 중원의 일령삼성에 능히 견줄만하다고 자랑했던 이괴사불 중의 이괴가 바로 천산이괴였다.

그들은 아난대활불 시대부터 천산일대를 공포에 떨게 한 무서운 인물들이었으며, 단목초가 야율척을 제외하고 서장의 최고고수들이라고 공인한 절대의 고수들이었다.

이제야 비로소 진산월은 대방 선사가 일부러 자신을 불러 흑갈방에 대한 이야기를 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만약 대방 선사의 짐작대로 흑갈방의 봉공들이 천산이괴라면 진산월은 서장 무림과의 첫 싸움부터 실로 무시무시한 적을 상대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닌 두 명의 적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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