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림천하 : 364화
제 346 장 무골난마(2)
선공을 시작한 사람은 평수형이었다. 원래 병기를 든 무림인과 맨손고수의 싸움에서는 병기를 든 쪽이 먼저 공격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맨손의 고수는 필연적으로 접근을 해야 하는데,상대가 수비를 하고 있는 상태에서 접근전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 평수형은 그런 단계를 초월한 실력자인 데다 하동원이 좀처럼 먼저 움직일 기척이 없자 서슴없이 선제공격에 나선 것이다. 물론 그 이면에는 하동원을 실력으로 누를 확고한 자신감이 깔려 있었다.
평수형은 철장비응이라는 외호답게 강력한 장력은 물론이고 신법에 관해서도 화산파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절정의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일단 몸을 음직이기 시작하자 하동원의 눈에는 그저 뿌연 잔영만이 어른거릴뿐이었다.
‘정말 빠르군.’
하동원은 속으로 감탄하면서도 자연스런 동작으로 오른쪽으로 몸을 회전시켰다.
그의 이런 판단은 아주 정확한 것이었다. 평수형의 신형은 어느새 하동원의 좌측 옆구리 쪽으로 바짝 다가서고 있었는데, 하동원이 반대쪽으로 회전하며 자연스레 그의 공격방향에서 비켜섬과 동시에 자신이 공격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하동원은 가벼운 일검을 날렸다.
손목만을 이용한 공격이었는데,무척 빠르고 경쾌해서 쾌검의 달인을 보는 것 같았다.
평수형은 하동원의 검이 비록 빨랐지만 별다른 경력이 실리지 않았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아마생사를 다투는 결투였다면 주저하지 않고 그 일검을 무시한 채 공격을 퍼부었을지 몰랐다. 아마 그랬다면 가벼운 상처 정도는 입게 될지 몰라도 그 대신에 상대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나 지금은 그 정도로 절박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슬쩍 몸을 뒤로 물려 상대의 공격을 받아준 다음 재차 앞으로 신형을 날렸다.
하동원의 검에 별다른 위력이 없는 것과 달리 그의 동작이나 반응은 무척이나 빠르고 탁월했다. 특히 평수형이 공격하는 방향을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대응을 하는 것에는 평수형도 내심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자는 대체 얼마나 많은 상대와 싸웠기에 공격에 대한 반응이 이토록 능숙한 것일까?’
그것이 설마 사형인 성락중에게 하도 많이 패한 하동원이 나름대로의 고심 끝에 만들어낸 자신만의 고수대응법임을 평수형이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평수형은 몇 번이나 공격에 나섰다가 하동원의 예리하고 날카로운 반격에 뒤로 물러서야 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반복되자 평수형은 이내 하동원의 반격이 거의 진력이 실리지 않은 다분히 형식적인 것임을 알아차렸다.
처음에는 빠른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일부러 많은 진기를 끌어올리지 않은 것인 줄 알았는데,그뿐 아니라 하동원이 펼치는 모든 검초들이 빠르기만 할 뿐 진력이 제대로 담기지 않은 허초에 가깝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것을 알게 되자 평수형의 마음속에는 불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자가 지금 나를 농락하는 건가?’
자신과 문파의 명예를 걸고 나름비장한 결심으로 출전한 평수형으로서는 마치 장난을 하는 듯한 상대의 가벼운 반응에 실망과 분노가 동시에 일어났다.
‘침착하자. 화를 내서는 안 된다.’
평수형은 솟구쳐 오르려는 화를 억누르며 본격적으로 진력을 끌어올렸다. 상대가 자신을 희롱할 생각이었는지,아니면 원래 그런 실력밖에 되지 않는 것인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전력을 다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당장 그의 손에서 나오는 경력의 위력이 판이하게 달라졌다. 마치 뇌성이 이는 듯한 음향과 함께 세찬장력이 구름처럼 일어나자 하동원은 당장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
처음에는 제법 그럴듯한 공방(攻防)을 주고받는 듯하던 두 사람의 대결이 갑자기 일방적인 흐름이 되자 지켜보던 중인들은 옅은 실망감을 느껴야 했다.
‘신검무적의 사숙이라고 해서 기대했었는데,화산파의 장로에게는 아직 미치지 못하는 모양이군. 역시 종남파의 약점은 고수층이 너무 얕다는 것이구나.’
일단 본격적으로 전력을 기울이기 시작한 평수형의 공격은 정말 무서 워서 제법 넓은 대청 안이 삽시간에 그의 손에서 흘러나오는 경기에 휩쓸려 버릴 것만 같았다. 그에 비해하동원은 이리저리 몸을 피하기에 급급했는데,그나마 간간이 보이던 반격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그가 쓰러지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지금 평수형이 펼치고 있는 것은 태을미리장으로,복잡하고 현묘한 가운데 날카로운 위력을 담고 있는 절학이었다. 평수형은 이 태을미리장으로 상대의 눈을 현혹한 다음 자신의 장기인 뛰어난 보법으로 상대의 사각 지역으로 파고들어 죽엽수로 승부를 보는 수법을 즐겨 사용했는데, 지금은 태을미리장만으로 충분하다고 판단했는지 그 외의 다른 무공은 펼칠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만큼 태을미리장에 담긴 그의 공력은 맹렬하고 강력했다. 변화무쌍함을 특징으로 하는 태을미리장이었지만,일단 평수형이 전력을 기울이 자 그 위력은 화산파 최고의 장공이라는 자하신장에 못지않았다.
금시라도 쓰러질 듯 위태롭던 하동원의 반응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때부터였다. 거의 제대로 휘두르지도 못하고 있던 장검을 바닥에 집어 던지더니 뒤로 물러서기는 커녕 오히려 평수형의 앞으로 바짝다가서는 것이었다.
그 동작이 어찌나 빠르고 민첩하던지 지금까지 일방적으로 몰리고 있던 자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평수형은 상대의 접근을 뻔히 보았으면서도 피하거나 꺼려 하지 않고 오히려 내심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렇지. 숨겨둔 수가 몇 개쯤 있을 줄 알았다.’
본격적으로 접근전을 펼친다면 수 공에 뛰어난 자신에게 절대적인 승산이 있음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더구나 검법의 고수가 검을 버리고 맨손으로 달려든다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좋지 못하다는 방증이었다.
평수형은 내뻗던 손을 일부러 거두어들여 상대가 좀 더 자신에게 가까이 접근하게끔 허용한 다음 간격이 좁혀지자 다시 질풍처럼 장력을 휘둘렀다. 아예 가까이 오게 해서 다시 뒤로 물러서고 싶어도 도망치지 못하게끔 하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상황은 그의 예상과는 조금다르게 진행되었다.
수공에는 별다른 조예가 없을 줄알았던 하동원이 양손을 교묘하게 음직여 평수형의 손목 부위를 공격한 것이다. 그 바람에 평수형은 마음먹은 대로 장력을 펼치기 힘들었다.
일부러 그런 것인지 우연인지 모르지만 그가 손바닥을 내뻗으려는 부위마다 하동원의 손이 먼저 다가와 그의 손목이나 팔목 부위를 가격하고 있었다. 그것을 피하려고 팔을 거두어들이면 어느새 하동원이 바짝다가오며 어깨를 들이밀었다. 그 바람에 평수형은 공격에 유리한 위치를 자꾸 빼앗기고 말았다.
평수형의 눈꼬리가 꿈틀거렸다. 하동원의 동작이나 위치를 선점하는 방식이 아주 교묘하면서도 체계적인 것임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종남파에 이런 식의 접근전 무공이 있었던가?’
당초 예상으로는 어렵지 않게 상대의 몸에 장력을 격중 시켜 승부를 냈어야 했는데, 상대의 묘한 동작에 계속 제대로 된 공격을 펼치지 못하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우스꽝스러운 것 같아도 하동원의 동작에 독특한 현오함이 있음을 알아차린 평수형은 흐트러지려는 마음을 바짝가다듬으며 태을미리장 본연의 복잡하고 정교한 위력을 되찾으려 했다.
하나 좀처럼 평상시의 모습을 찾기 힘들었다.
그것은 하동원이 너무 바짝 붙어있는 데다 그가 내뻗는 손길마다 평수형의 공격 흐름을 교묘하게 끊어놓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가끔씩 어깨와 몸통으로 밀쳐올 때마다 평수형의 중심이 흔들려서 제대로 된공격을 하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언뜻언뜻 몸이 서로 닿을 때마다 느껴지는 하동원의 몸은 금강동인처럼 단단하면서도 탄력이 넘치는 것이어서 적어도 신체의 단련과 내가공력에 있어서만큼은 결코 자신에게 뒤처지는것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과연 믿는 구석이 있구나.’
평수형은 두 사람이 너무 바짝 붙어 있어서 오히려 공격을 펼치기 힘들다고 판단하고 거리를 떼어놓으려했으나,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평수형이 움직이려 할 때마다 엉겨붙다시피 바짝 붙어 있는 하동원의 몸이 슬쩍슬쩍 진로를 방해해서 도저히 제대로 된 신법을 펼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자랑하는 빠른 신법이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 결과
‘비응’이라는 외호가 무색하게 평수형은 하동원과 바짝 붙어서 계속된드잡이질을 해야 했다.
평수형은 진땀을 뻘지 몰라도 보는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화산파의 장로와 종남파 장문인의 사숙 간의 대결이 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볼품없는 대결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치 무공을 전혀 모르는 시정잡배들이 서로 덕살을 붙잡고 싸우듯이 바짝 붙어 있는 두 사람이 계속 헛손질만 하고 있으니,진정한 고수들 간의 수준 높은 격전을 기대했던 중인들로서는 실망감이 들 수 밖에 없었다.
그중에서도 검단현은 다른 누구보다도 잔뜩 인상이 구겨져 있었다.
검단현은 평수형의 꼴사나운 모습에 처음에는 화가 났으나 이내 그보다는 하동원의 수법이 무척이나 교묘하고 뛰어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저런 식의 지근거리에서의 박투술은 처음 보는군. 평 장로가 생각을 잘못했어. 애초부터 저자의 접근을 허용하는 게 아니었어.’
저런 무공이 있는 줄 알았다면 평수형도 선뜻 접근전을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 둔하고 순진해 보이는 하동원에게 이런 특이한 무공이 있을 줄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평수형의 몸은 어느새 땀으로 흠백젖어 있었다.
제대로 공격도 안 되고 그렇다고 떨어뜨릴 수도 없는 묘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보니 어느새 적지 않은 공력을 소모한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하동원에게는 조금도 타격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하동원이 일방적으로 우세한 것도 아니었다.
하동원의 얼굴도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공격은 아예 신경도 쓰지 않고 오직 상대의 손과 발이 움직일 공간을 선점하는 이 방식은 고도의 집중력과 체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어서 그의 공력과 체력 소모는 세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하동원이 계속 버틸 수 있는 것은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특이한 행공법과 평상시에 부단하게 연마한 강인한 체력 덕분이었다.
언뜻 보기에는 뚱뚱하고 둔한 몸매같아도 하동원의 전신은 고무공 같은 탄력과 질긴 근육으로 뒤덮여져있었다. 우연히라도 그의 벗은 몸을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도로 발달되고 압축될 대로 압축된 강인한 근육으로 덮인 그의 엄청난 몸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동원은 그런 식으로라도 성락중같은 기재에 비해 뒤떨어지는 자신의 재질을 보완하려 했던 것이다.
그의 그런 노력은 훌륭히 보상을 받고 있었다.
벌써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평수형은 하동원에게 단 한 번의 공격도 성공시키지 못하고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하동원 또한 땀으로 목욕을 한 상태였으나,그의 두 눈은 여전히 밝게 빛나고 있었고,얼굴 표정 또한 처음과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중인들은 난생처음 보는 기이한 형태의 대결에 처음에는 실망의 기색을 보였으나,시간이 흐를수록 생각이 달라지더니 나중에는 감탄하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제아무리 놀라운 무공을 지닌 고수라 해도 하동원의 이런 수법에 걸려들면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깨달았던 것이다.
하동원의 수법은 그 특이함만큼이나 절묘한 묘용이 있었다. 물론 그수법이 통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접근해야하는 단점이 있지만,일단 접근에 성공하기만 하면 그 어떤 고수라도 그를 쓰러뜨리기는 쉽지 않다는 걸 이곳에 모인 모든 고수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반각의 시간이 흐르자 이제는 누가 보아도 평수형이 완전히 지쳐서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하동원의 처지도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으나,그래도 평수형보다는 안색이나 표정이 나아 보였다.
그때 소요일사 유장현이 헛기침을 하고는 주위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홈. 더 이상의 대결은 무의미한것 같군. 나는 이번 일전을 무승부로 하고 싶은데,다른 의견이 있는 사람이 있소?”
화산파에서는 당연히 반대가 있을리 없었다. 종남파의 고수들 또한 이런 식의 승리를 원하지 않았기에 그의 말에 찬성을 했다.
“이번 일전은 무승부요.”
유장현의 선언이 있고 나서야 비로 소 하동원의 몸이 평수형에게서 떨어졌다. 그렇게도 평수형이 벗어나고 싶었던 하동원과의 밀착된 간격이 비로소 벌어지게 된 것이다.
“헉헉……
평수형은 허리를 숙인 채 몇 차례나 거친 숨을 몰아쉬고 나서야 간신히 어느 정도 신색을 회복했다.
“그게…… 무슨 무공인지 알 수 있겠소?”
하동원은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에 엷은 미소를 지었다.
“무골난마(無骨亂麻)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창안한 무공이오?”
하동원은 계면쩍은 웃음을 홀렸다.
“사형에게 하도 많이 패해서 억울한 마음에 엉겨 붙기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만든 겁니다. 원래는 철골난마라고 이름 붙였으나,사형께서 뼈 있는 사내가 쓸무공이 아니라며 무골이라고 바꾸셨습니다. 치졸한 수법이라고 비웃으셔도 할 말이 없군요.”
평수형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눈을 속이는 것도 아니고,사파(邪派)의 수법을 쓴 것도 아닌데 치졸한 무공이 어디 있소?”
“그렇게 보아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평수형은 승리를 자신했던 자신이 상대의 기이한 수법에 당해 무승부를 이루었다는 것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그는 다른 것이 궁금한 표정이었다.
“당신이 말하는 사형이 형산파의 오결검객을 꺾었다는 그 무영검군이 란 분이시오?”
“그렇습니다.”
“그 무공을 펼쳐서 귀 사형에게도 효과를 보았소?”
하동원의 얼굴에 천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개구쟁이를 보는 듯한 멈지 않은 미소였다.
“물론입니다. 사형께서 진저리를 치시며 그 뒤로는 두 번 다시 저와 비무 하려 하지 않더군요.”
“귀 사형과 나를 비교하면 어떨 것같소?”
하동원은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두 분 모두 상대하기 까다로웠습니다. 저로서는 그저 운이 좋았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마터면 제가 먼저 지쳐서 나자빠질 뻔했으니 말입니다.”
하나 평수형은 그의 말과는 달리 그가 자신보다 먼저 쓰러지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만약 귀 사형과 내가 겨룬다면?”
하동원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두 분은 좋은 상대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저 같은 하수로서는 감히 두 분의 승패를 예상할 수 없지만 말입니다.”
평수형은 한동안 하동원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혼잣말처럼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하수라고 할 수는 없지.”
이어 그는 검단현을 돌아보았다.
검단현의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보자 평수형은 의외로 조용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이번에도 자네의 기대를 어겼으니 면목이 없네. 나는 화산으로 돌아가 있겠네.”
그는 검단현의 대답도 듣지 않고 휑하니 몸을 돌려 대청 밖을 향해걸어갔다.
문을 열고 나오자 유난히 파란 하늘이 그의 시선을 찔렀다.
그제야 평수형은 오늘이 무척 좋은 날씨임을 깨달았다. 한동안 우두커니 선 채로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던 평수형은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렇게 좋은 날을 다른 문파와의 싸움으로 보내야 하다니……
갑자기 평수형은 왜 화산파가 굳이 종남파와 이런 드잡이질을 해야 하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도 예전에는 두 문파 사이가 돈독해서 곧잘왕래를 하던 적도 있다고 들었다.
물론 그건 아주 오래전의 일이었다. 까마득히 오래전에는 두 문파사이에 왕래도 잦았고,친하게 지내는 제자들도 적지 않았다고 했다.
하나 언제부터인가 두 문파는 서로 등을 돌린 채 적도 친구도 아닌 불편한 관계가 되어 버렸다.
평수형은 언제부터 그런 관계가 되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건 아마도 신검 조일화 조
사…….,
더 이상의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만 평수형은 문득 조금 전에 상대했던 종남파의 고수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직 얼굴도 보지 못한 그의 사형도 궁금해졌다.
“좋은 상대가 될 수 있을 거라고했지. 흐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토록 그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던 승부에 대한 부담감은 어느새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평수형은 나직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화산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