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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천하 : 371화


제 349 장 적수일만(2)

단우진은 소지산이 펼치는 검법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알지는 못했지 만,그것이 자신의 독보적인 창궁십팔검에 조금도 못지않은 절학이라는것은 피부로 생생하게 느끼고 있었다. 창궁십팔검의 전반부 여섯 초식을 모두 펼쳤음에도 좀처럼 상대에게서 우세를 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단우진은 창궁십팔검을 모두 완성한 이후 스스로의 검에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원래 창궁십팔검은 무형의 검기를 유형으로 발현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본연의 위력을 발휘하는 무공이었다. 검기가 눈으로 확연히 보일 정도로 유형화된다는 것은 검에 대한 경지가 절정에 이르러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상태에서 펼치는 창궁십팔검은 실로 무시무시한 위력을 지니고 있어서 뛰어난 실력을 지닌 고수라도 전반부 여섯 초식을 제대로 받아내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 이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소지산이 창궁십팔검의 전반부여섯 초식을 너무도 수월하게 막아내고 있으니 단우진으로서도 상대의 무공에 대해 새삼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 깊숙한 곳에서 불같은 호승심이 일어나기도 했다.

‘모처럼 창궁십팔검을 마음껏 펼쳐 볼 수 있는 상대를 만났구나. 다만 그 상대가 화산파의 제자가 아니라는 것이 정말 아쉽구나.’

단우진의 검이 한층 더 날카롭고 예리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물처럼 유연하고 부드러웠던 지금까지의 초식이 한층 빨라지며 구름 같은 기세가 피어올랐다.

그가 본격적으로 창궁십팔검의 중반부 여섯 초식을 전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반 여섯 초식들은 하나같이 창궁십팔검의 본령을 나타내는 상승의 수법들이었다.

소지산도 그에 맞서 낙하구구검의 절초들을 연거푸 펼쳐내고 있었는 데,초식과 초식의 연계가 어찌나매끄럽던지 마치 하나의 초식이 계속 이어지는 것 같았다.

특히 지금 흥하만천에서 천강은흥으로 이어지는 연환식은 그야말로 보는 이의 입을 벌리게 할 만큼 현란하고 아름다웠다. 분명 새하얀 검광임에도 사람들의 눈에는 대청 안이 붉은 노을에 물드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차차차창!

두 사람의 검이 허공에서 수십 차례 마주치며 귀청이 찢어질 듯한 음향이 거푸 터져 나왔다.

사방으로 흩날리는 검영들과 줄기 줄기 뿜어 나오는 검광의 잔해들이 중인들의 눈을 어지럽혔다. 그들의 격돌하는 여파가 어찌나 대단했던지 사람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주춤 뒤로 몇 걸음씩 물러나고 말았다.

한동안 두 사람은 격렬한 공방을 주고받았다.

두 사람의 검은 판이하게 다른 듯 하면서도 비슷한 점이 있었다.

단우진의 검은 창궁십팔검이라는 이름답게 유연하면서도 거칠 것 없이 상대를 제압하는 호탕한 기세가 담겨 있었다. 공간과 공간을 이동하는 움직임도 현묘했고,비어 있는 듯하면서도 막상 공격하려면 허점이 별로 보이지 않아 공수의 조화가 완벽에 가까웠다.

그에 비해 소지산의 검은 그야말로 보는 이의 넋을 빼앗을 만큼 화려하고 변화무쌍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그 현란함에 조금이라도 시선이 홀렸다가는 어느새 엉뚱한 쪽으로 파고드는 검세에 속절없이 쓰러지고 말게 분명했다.

외양으로는 완전히 다른 두 검법이었으나,빈틈을 찾아보기 힘들다는것은 똑같았다. 검법 자체에 화려한 공격을 뒷받침하는 탄탄한 수비가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격전은 다른 어떤 고수들의 싸움보다 격렬하고 치열했다.

단우진의 검이 창공을 가르는 한마리 매처럼 유연하게 허공을 가르며 소지산의 상반신을 위협할 때면 금시라도 소지산이 피투성이가 되어 바닥에 나뒹굴 것만 같았다. 또 소지산의 검이 벼락같은 기세로 단우진에게 짓쳐들 때면 단우진의 노구가 금방이라도 두 쪽으로 갈라져 버릴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중인들은 두 눈을 부릅뜬 채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젊고 늙은 무인들의 엄청난 싸움을 정신없이 지켜 보고 있었다. 장내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오직 검날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와 옷자락 펄럭이는 소리만이 흘러나올 뿐,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만큼 모든 사람들의 신경은 온통두 검객들이 펼치는 눈부신 검투(劍,)에 쏠려 있었다.

문득 전풍개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눈도 깜박이지 않은 채 격전을 지켜보고 있던 노해광이 의아한 얼굴로 그를 돌아보았다.

“무슨 말씀이십니까,사숙?”

전풍개의 주름진 얼굴에는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복잡한 빛이 떠올라있었다.

“나는 예전에 단우진이 무공을 펼치는 것을 본 적이 있기에 지금의 내 실력이라면 그를 충분히 상대할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지난 세월 동안 단우진의 무공은 몰라볼 정도로 발전했구나.”

“예전에는 분명 이 정도의 고수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지금의 그는 전혀 다른 고수가 되어 있구나.”

노해광은 침울한 표정의 전풍개를 위로했다.

“사숙이시라면 충분히 그와 좋은 승부를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전풍개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으나,얼굴 한구석에는 여전히 씁쓸한 빛이 감돌고 있었다.

노해광이 막 무어라고 말하려 할 때였다.

차아앙!

어느 때보다 크고 격렬한 검명이 들려왔다.

두 사람은 황급히 장내로 시선을 돌렸다.

단우진과 소지산의 검이 허공에서 맞부딪힌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들과 같은 검객들이 싸우면서 검끼리 부딪히는 것은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지금처럼 검신을 서로 맞대고 멈춰 있는 경우는 그리흔치 않았다.

두 사람의 몸은 흐르는 땀으로 흠백 젖어 있었고,옷의 여기저기가 검광에 갈라져 맨살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검을 맞댄 채 서 로를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거의 동시에 뒤로 한 걸음씩 물러났다.

몇몇 사람들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기색이었으나,검을 익힌 고수들은 사정을 알아차리고 탄성을 내질렀다.

눈 깜빡할 사이에 검의 경로가 수 십 차례나 변하는 절정 검객들 사이에서 검과 검이 서로 마주친 채 꼼짝도 않는다는 것은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하나 검술이 일정 경지 이상에 오른 고수들 사이의 결전에서는 간혹 벌어지는 일이기도했다.

서로의 검초가 같은 곳을 노리고 날아들다가 검에 실린 힘과 검초의 다음 움직임이 똑같을 때에는 지금처럼 두 개의 검이 움직임을 멈추고 잠시 마주치게 되는 것이다. 검초에 담긴 힘과 검로,다음 초식의 이동방향이 모두 일치해야 가능한 일이었고,그것은 곧 두 사람의 내공이나 검에 대한 경지가 막상막하임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했다.

서로 떨어졌던 두 사람은 더욱 맹렬하게 부딪혀갔다.

단우진은 어느새 창궁십팔검의 후반 초식들을 펼치고 있었는데, 창백해진 얼굴에 입술을 굳게 다문 모습이 전력을 다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소지산 또한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으나,두 눈에서 흘러나오는 신광은 어느 때보다 강렬했다.

잠깐의 격돌로 검이 멈춘 것은 연환식을 사용하는 그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할 여지가 있었다. 낙하구구검은 검초를 계속 연환함으로써 그 진정한 위력이 나타나는 검법이었다.

조금이라도 멈춰진다면 다시 연환될때까지 아무래도 약간의 손색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나 그러한 불리함이 오히려 소지 산의 마음속 투지를 더욱 일깨우고 있는 것 같았다.

단우진의 검이 어느 때보다 섬뜩한 빛을 뿌리며 날아들 때,소지산은 일검을 곧장 앞으로 내찔렀다. 그가 펼친 것은 낙하구구검의 후반삼절초중 하나인 홍예장공이었다. 홍예장공은 천강은흥에 이어지는 연환식으로도 위력이 뛰어났지만,지금처럼 독자적으로 펼칠 때에도 효과가 좋은 수법이었다.

차앙!

두 개의 검이 허공에서 스치듯 지나치며 상대의 몸을 향해 거침없이 다가들었다.

단우진의 검은 소지산의 검신 아래쪽을 파고들어 가슴에서 아랫배 쪽으로 파고들었고,소지산의 검은 단우진의 검날 위를 스치고 지나가며 정확하게 그의 미간을 노리고 날아갔다.

마치 양패구상이라도 하려는 듯 서 로의 치명적인 부위로 날아가는 두개의 검을 보자 주위에서 다급한 경호성이 거푸 터져 나왔다.

“아앗!”

“저…… 저런!”

하나 마지막 순간에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거의 동시에 옆으로 몸을 회전시켰다.

팟!

서로의 검이 옆으로 스치듯 지나가 자 그들의 신형이 회전하는 기세를 살려 서로에게 맹렬한 기세로 돌진 해 들어갔다.

단우진은 화산파의 독보적인 보법인 회선표(M旋,0를 이용해 소지산의 오른쪽 방향으로 날아가며 오른손을 세차게 흔들어댔다.

파스스!

마치 대나무숲을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는 듯한 음향이 울리며 푸르스름한 검광이 안개처럼 자욱하게 소지산의 상반신을 뒤덮어갔다. 이것이 바로 창궁십팔검의 후반 육초식중에서도 절초 중의 절초인 천공운해 (天空雲海) 였다.

소지산은 와선보를 밟으며 단우진의 왼쪽 옆구리를 향해 비스듬히 검을 움직여갔다.

차차창!

두 사람의 검이 허공에서 수십 차례 맞부딪히며 핏물이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중인들이 놀라 보니 단우진의 옆구리가 쩌억 갈라져 시뻘건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소지산 또한 무사하지는 못했다.

그는 비록 낙하구구검의 여덟 번째초식인 서천낙조로 단우진의 옆구리를 갈라놓았으나,자신 또한 왼쪽 어깨와 앞가슴이 검날에 스쳐 상반신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하나 둘 중 누구도 뒤로 물러나는 사람은 없었다.

단우진은 이를 악물고 소지산을 향해 한 마리 비응처럼 날아가며 세차게 검을 휘둘렀다.

좌아아아!

하늘이 두 쪽으로 갈라지는 듯한 엄청난 검광이 폭포수처럼 흘러나왔다. 창궁십팔검의 최절초인 검단청천(劍斷靑天)이 가공할 기세로 소지 산을 향해 퍼부어졌다.

그때 소지산은 검을 내밀고 있는 동작 그대로 몸을 멈추었다. 언뜻보기에는 노도와 같은 기세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검세에 압도당한 듯한 모습이었다.

하나 몸은 가만히 있었으나,그의 검은 여느 때보다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우우옹!

마치 벌떼가 우는 듯한 음향이 들려오며 멈춰선 그의 검에서 노을 같은 검광 한 줄기가 피어올랐다. 그검광은 그의 몸을 휩쓸어 버릴 듯하던 푸르스름한 검광 한복판을 그대로 가르고 지나갔다.

주위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토록 맹렬하게 움직이던 단우진 과 소지산은 서로를 바라본 채 우뚝서 있었다. 문득 단우진이 굳게 다물어진 입술을 살짝 열었다.

“이 초식의 이름이 뭔가?”

소지산은 담담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자하천래라고 합니다.”

“자하천래라. 정말 멋진 이름이군.

이것도 종남의 무공인가?”

“낙하구구검의 한 초식입니다.”

단우진은 잠시 허공을 응시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본 것도 같군. 오래전에 절전되었다고 알고 있었는데,아닌 모양이군.”

소지산은 그 말에 굳이 답하지 않았다.

“좋은 승부였네.”

그 말을 끝으로 단우진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아앗!”

화산파의 고수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단우진의 아랫배가 쩌억 갈라지며 시뻘건 핏물이 샘솟듯 뿜어 나왔던 것이다.

몇 사람이 황급히 단우진에게 날아왔다.

“경거망동하지 마라.”

단우진은 자신의 상세를 보며 어쩔줄 몰라 하는 그들에게 오히려 호통을 쳤다. 그리고는 스스로 피가 흘러나오는 몇 군데 혈도를 지혈했다.

하나 워낙 상처가 깊어서 그의 하반신은 온통 피로 범벅이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단우진은 눈살 한 번 찡그리지 않은 채 자신을 부축하려는 제자들의 손을 뿌리치고 스스로의 힘으로 화산파 진영까지 걸어갔다.

화산파 제자들 중 의술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 황급히 그의 상처를 봉합하기 위해 그를 후원으로 데리고 사라진 다음에야 중인들의 시선은 소지산에게로 향했다.

소지산의 몸도 정상은 아니었다.

그의 왼쪽 팔에는 뼈가 드러나 보일정도로 깊은 검흔이 나 있었고,앞가슴 또한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하나 그는 승자였다. 무심한 표정으로 대청 한복판에 우뚝 서 있는 그의 모습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철탑을 보는 듯했다.

소지산이 단우진에게 득수할 수 있었던 것은 초식을 연환할수록 위력이 강해지는 낙하구구검 특유의 효능 덕분이었다. 특히 후반삼절초는 그 자체만으로도 연환을 할 수 있기 에,흥예장공과 서천낙조에 이어 펼쳐진 자하천래가 본연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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