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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천하 : 373화


제 350 장 결자해지(2)

검단현의 나이는 마흔 일곱.

서안 일대에서는 주로 철혈매화라불리고 있었으나 원래의 별호는 철심혈수였다. 그렇다고 그가 수공(手功)의 고수는 아니었다. 단지 그의 손속이 너무 매서웠고 일 처리가 잔혹했기에,‘혈수’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이다.

그의 주력무공은 누가 뭐라 해도 검이었고, 특히 한세일에게서 직접전수 받은 조화무궁검법은 화산파최고의 검법 중 하나로 손꼽히는 절학이 었다.

검단현이 처음부터 한세일의 제자가 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많고 많은 삼대제자들 중의 한 명일뿐이었다. 하나 그는 곧 두각을 나타냈다. 강한 인내심과 적극적인 성격, 그리고 무엇보다 치밀하고 냉정한 심기로 동년배의 제자들에 비해 확연히 두드러진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그것을 눈여겨본 한세일의 정식 제자가 된 것은 그의 나이 불과 열여섯 살 때였다. 그의 위로는 두 명의 사형이 있었고,그들은 모두 화산파에서도 가장 촉망받는 인재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일 년 후에는 검단현의 사제이자 마지막 제자가 들어왔다.

하나 그로부터 십 년 후에 검단현은 한세일의 하나뿐인 제자가 되었다. 첫째와 둘째는 거친 성정을 이기지 못하고 강호에 출도한 지 얼마되지 않아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유일한 사제는 소림사의 고수와 충돌을 일으켜 결국 사부인 한세일이 칩거하게 되는 결과를 빚게 되자 죄책감과 좌절감에 빠져 폭음을 일삼다가 화산을 내려가던 중 절벽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제자들의 연이은 죽음과 굉수선사에게 패한 충격이 한세일로 하여금이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은거지에 칩거하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이었을 것이다.

그 후로 한세일의 모든 관심은 검단현에게 집중되었다. 검단현은 특유의 치밀함과 무공에 대한 재능으로 이내 화산파의 수뇌부에 들게 되었지만,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잔인함과 종남파의 몰살을 외치는 강경함으로 많은 적들을 만들어 결국은 장문인의 명에 의해 무기한 폐관에 들게 되었다.

하나 그것은 검단현에게는 오히려재충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어 주었다. 폐관하는 동안 한세일의 집중적인 지도를 받은 검단현의 무공은 가파르게 상승했으며,속마음을 감출 줄 아는 주도면밀함도 갖추게 되었다.

폐관은 명을 내렸던 사마원의 죽음으로 거두어졌지만,검단현은 십 년넘는 세월 동안 한세일의 곁에서 무공을 고련하며 호시탐탐 재기의 기회를 노려왔다. 그리고 마침내 신산고수의 죽음으로 자리가 비게 된 서 안 책임자로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세일의 유일한 제자라는 신분과 천절검사 단우진의 전폭적인 지원, 그리고 본인의 탁월한 능력으로 검단현은 단시일 내에 서안은 물론이고 섬서성 내에서 확고한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런 검단현이 불과 몇달 만에 뒤를 돌아볼 수도 없는 최악의 궁지로 몰리게 될 줄은 검단현자신조차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검단현은 통상적으로 하는 인사말도 없이 대뜸 검을 뽑아들고 소지산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성격이야 어찌 되었건 무공만큼은 강호에 알려진 것보다 오히려한층 더 뛰어났다. 지금도 그의 검에서 줄기줄기 뻗어 나오는 검기의 기세는 단우진의 그것보다 결코 못하지 않았다.

파파팟!

빛발 같은 검기의 다발이 소지산의 전신으로 퍼부어지듯 쏟아져 내렸다. 하나의 검에서 펼쳐지는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검광들이 줄지어 쏟아져 나오는 광경은 그야말로 보는 이의 입을 벌어지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소지산은 검광이 지척으로 다가올때까지도 그 자리에 미동도 않고 서 있다가 오른손에 들린 검을 앞으로 힘차게 내뻗었다. 새하얀 검광 한 줄기가 폭포수처럼 퍼부어지는 검광다발 사이를 유연하게 가르고 지나갔다. 낙하구구검의 첫 번째 초식인채흥서천이 펼쳐진 것이다.

순식간에 검단현이 뿜어낸 수많은 검광의 다발을 끊어버린 소지산의 검은 뒤이어 세로로 움직이며 주위일대를 온통 자신의 영역으로 삼켜 버렸다. 낙하구구검의 두 번째 초식인 반천흥염이었다.

검단현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주저하지 않고 소지산의 검세 속으로 뛰어들었다.

파앗!

잘려진 옷자락이 사방으로 흩날리는 가운데 검단현의 검은 소지산의 목덜미를 곧장 찔러갔다. 조화무궁검법 중에서도 살기가 짙기로 유명한 일지선과(_枝仙果)라는 초식이었다.

원래 조화무궁검법은 조화검법(造化劍法)과 무궁십이검이라는 두 가지의 상승 절학을 합친무공이 었다.

조화검법은 현오막측하고 정심하기 이를 데 없었으나,적을 제압하기보다는 수신을 위한 성격이 짙은 무공이었다. 반면에 무궁십이검은 파괴적인 위력을 지니고 있었으나,명문정파의 검법답지 않게 잔인하고 살기가 너무 짙어서 익히기가 꺼려지는 무공이었다.

이 두 가지 무공의 장점만을 규합하기 위해 많은 화산파의 고수들이 오랜 시간 동안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왔으며,그 결과 만들어진 것이 바로 조화무궁검법이었다.

이름 그대로 한 자루 검만으로 끝없는 조화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상대는 어떻게 막아야 할지 망설이다쓰러지고야 마는 놀라운 절학이었다. 하나 화산파 내에서도 최고의 비전으로 정했기에 특별히 선정된 인물 외에는 누구도 익힐 수 없게 규제하고 있었다.

주변에 적이 많은 검단현으로서는 사부인 한세일이 아니었으면 절대로 이 검법을 익히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검단현이 펼친 일지선과는 얼핏 보기에는 무모하게 상대의 검세속을 뛰어들어 일직선으로 공격해들어가는 것 같았으나,실제로는 그속에 정교하게 계획된 수법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어 당하는 입장에서는 어떻게 피해야 할지 막막한 심정이 되고 말았다. 거대한 칼날이 무풍지대처럼 자신의 공세 속을 뚫고 자신의 정면으로 날아드는 것 같은 기분에 제대로 몸을 움직여 피할엄두도 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소지산은 검을 앞으로 곧장 내뻗었다. 반천흥염에서 경흥섬전으로 이어지는 초식의 변화가 어찌나 자연스러웠던지 넓게 퍼져있던 검광이 순식간에 하나로 화해 허공을 가르는 것 같았다.

그 검광은 검단현이 내찌른 일검과 정면으로 격돌했다.

따앙!

대청 안이 온통 검끼리 마주치는 격렬한 음향에 휩싸여 버렸다. 그음향이 어찌나 강력했던지 격전을 구경하던 중인들 중 상당수가 인상을 찌푸린 채 귀를 틀어막고 있었다.

검단현과 소지산의 신형이 거의 동시에 휘청거렸다. 검단현은 손아귀가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억지로 눌러 참으며 재차 소지산을 향해 삼검을 거푸 내질렀다.

팟팟팟!

찌른 건 세 번이었는데,검광의 끝이 이리저리 흔들려 마치 수십 개의 검이 소지산의 상반신 전체를 뒤덮을 듯 날아오는 것 같았다. 조화무극검법 중의 난점이화라는 초식인데,현묘함 속에 살수를 숨기고 있는 무서운 수법이었다.

“아!”

“허업!”

여기저기서 복잡한 음향들이 거푸흘러나왔다. 난점이화의 절묘함에 자신들도 모르게 탄성과 경악성을 내지른 것이다. 만약 자신들이었다면 두서없이 흔들리며 날아드는 저검광들을 어떻게 막아야 할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하나 소지산은 그 자리에 못 박힌 둣 우뚝 선 채로 수중의 검을 질풍처럼 휘두르고 있었다. 그와 함께 이제껏 보지 못했던 찬란한 검광이 주위를 송두리째 뒤덮었다.

중인들은 미처 알지 못했지만,난점이화가 날아드는 그 짧은 순간에 소지산은 낙하구구검의 초식들을 세개나 거푸 전개했던 것이다.

복잡하면서도 그 속에 정교한 살수를 숨기고 있던 난점이화는 폭발하듯 쉬지 않고 날아드는 낙하구구검의 초식들을 헤치고 나아가다 결국은 끝없이 몰려드는 검광을 견디지 못하고 소멸되고 말았다.

완벽히 펼쳐진 난점이화가 채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봉쇄되는 충격에 검단현이 멈칫거릴 때,소지산의 검은 낙하구구검의 후반삼절초로 이어지고 있었다.

검단현은 쉬임없이 연환하는 소지 산의 검을 막기 위해 조화무궁검법중의 절초들을 계속 펼치며 맞서 나갔다. 하나 일단 연환되기 시작한 낙하구구검의 기세는 가히 놀라워서 검단현은 조금씩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초식과 초식 사이에는 아무래도 약간의 틈이 존재하게 되는데,낙하구구검에는 그러한 단점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오히려 상대의 검초가 바뀌는 미묘한 순간을 날카롭게 파고들어 압박해 들어오고 있었다.

더구나 연환되는 검초의 위력은 갈수록 강해져서 세 번째 펼쳐지는 채 흥서천은 도저히 처음의 그것과 같은 초식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날카롭고 예리했다.

이제는 검단현도 마지막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더 지체했다가는 그런 시도조차 해보지 못하고 패하고 말지도 몰랐다.

검단현의 검이 지금까지와는 완연히 다른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공수의 조화가 완벽할 정도로 잘 이루어졌던 검이 거칠고 투박하게 변했다. 공수의 조화가 흐트러지며 몸의 곳곳에 허점이 드러났으나,그만큼 검초의 변화가 파격적이고 살기 등등해서 흡사 마도 고수의 검을 보는 것 같았다.

그것은 조화무궁검법의 삼대살초 중 하나인 건곤화우(乾神花雨)였다. 삼대살초는 위급한 순간에 상황을 일거에 역전시키기 위해 만든 초식들로,조화검법의 현묘함보다는 무궁십이검의 강맹함에 더비중을 두었기에 수비는 도외시한 채 오직 상대를 쓰러뜨리는 데 주력하는 수법이었다.

그중 건곤화우는 무궁십이검의 건 곤혈우(乾神血雨)를 변화시킨 것으로,자신의 몸에 여러 군데 허점을 만들어 상대의 검을 유인하고는 단숨에 상대의 목숨을 끊어버리는 가공할 살인초식이었다. 그야말로 살을 내주고 뼈를 깎는 이런 식의 검법은 명문정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검단현도 한세일에게 이 초식들을 배울 때 최후의 순간에나 사용하는 구명절초이니 공개된 자리에서는 절대로 펼치지 말라는 당부의 말을 몇 번이나 들었었다.

그럼에도 검단현이 중인환시리에 이 초식을 펼친 것은 그만큼 그가 필사의 각오로 승부를 걸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소지산 또한 한눈에 검단현이 펼치는 초식의 무서움을 알아보았다.

몇 군데 눈에 훤히 보이는 허점들을 공격한다면 검단현에게 적지 않은 부상을 입힐 수 있겠지만,상대가 자신의 공격을 무시하고 계속 검초를 전개한다면 자신은 더욱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되리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다고 뒤로 물러났다가는 겨우잡은 승기를 놓치게 될 뿐 아니라,간신히 두 번이나 연환해서 세 번째로 접어들면서 한층 강력해진 낙하구구검의 위력을 상실하게 될 게 분명했다. 한 번 잃은 승기를 다시 되찾는 것도 어렵지만,그 와중에 낙하구구검을 처음부터 다시 연환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기에 소지 산은 순간적으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송인혁과 단우진과의 거듭된비무로 상당한 체력과 내공을 소모한 소지산으로서는 더 이상 승부를 길게 끌고 가기에 어려운 점이 적지 않았다. 임독양맥을 타통한 후 끊일줄 몰랐던 내력이 점차로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고,오른팔의 근력도 많이 떨어져 검초를 펼치는 것조차 조금씩 힘들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승부를 걸어온다면 기꺼이 맞서주지.’

무심한 듯 깊게 가라앉아 있던 소지산의 두 눈이 여느 때보다 날카롭게 번뜩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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