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군림천하 : 383화


제 353 장 모옥괴인(茅屋怪人) (3)

단정 지어 말하는 모용단죽의 말에 진산월은 솔직히 약간의 당혹감과 짙은 의구심을 느꼈다.

“왜 저입니까?”

모용봉이 아니더라도 강호에는 무공에 특출난 재질을 지닌 기재들이 적지 않았다.

진산월은 자신이 결코 남들이 말하는 무공의 천재는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당금 무림에서 누구나가 첫손가락으로 꼽는 최고의 고수가 된 것은 그가 무림제일의 기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처절한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적지 않은 행운도 따라주었다. 두 가지의 극독에 중독되었다가 두 독의 상충 작용으로 오히려 높은 내공을 얻으면서 기사회생한 것은 그야말로 천운(天運)이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절망감을 떨치려고 올라간 절봉에서 선배 고수의 유진을 얻게 된 것 또한 쉽게 볼 수 없는 절세의 기연(奇緣)이었다.

그러한 몇 가지 운들과 석동(石洞)에서 침식을 잊고 무공수련에 매진한 각고의 세월이 뒷받침되었기에 지금의 신검무적이 있게 된 것이다.

차복승과 모용단죽이 이러한 세세한 사실들을 알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그들은 진산월의 무엇을 보고 그를 적임자라고 판단한 것일까?

그에 대한 모용단죽의 대답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그것은 자네가 종남파의 제자이기 때문일세. 보다 정확히 말하면 종남파의 무공을 대성한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이라고 해야겠군.”

진산월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를 비롯한 몇몇 사람은 지난 세월 동안 자네 같은 사람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네. 최고 수준의 무공을 지니고 있으면서 조익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인물. 또한 그러면서도 종남파의 무공에 해박한 인물을 말일세.”

“……!”

“제법 긴 이야기가 될 텐데, 차분히 들어보게.”

이어서 모용단죽의 입에서는 지금까지 상상도 하지 못했던 놀라운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백여 년 전, 누군가가 우연히 화산의 깊은 곳에서 길을 잃었다가 신비한 장소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 사람은 그곳에서 아주 오래전에 지어진 듯한 모옥을 보게 되었고, 모옥 안에 하나의 유골과 한 권의 서책, 그리고 정교하게 새겨진 세 개의 미인상(美人像)을 발견했다.

서책을 읽은 그 사람은 곧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유골의 주인은 놀랍게도 백 년 전에 강호무림 제일의 고수로 군림했던 태을검선 매종도였으며, 그 모옥은 매종도가 죽을 때까지 기거한 태을선거였던 것이다.

서책에는 매종도가 은거하면서 창안한 <천양신공>이라는 희대의 신공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서책 뒤에는 하나의 구절이 덧붙여 있었다.

매종도는 오랜 참오 끝에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무공을 집대성한 삼 초의 검법을 만들어 냈으며, 그 각각의 검초를 세 개의 미인상에 새겨놓았다는 것이다.

그 사람은 뜻밖의 행운에 기뻐하며 매종도의 유골을 잘 수습하여 모옥의 뒤편에 묻어준 후 천양신공을 익히려 했다. 하나 천양신공은 기존의 내공심법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무공이어서 다른 내공이 어느 경지 이상 접어든 자는 익힐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이미 가전(家傳)의 무공을 절정에 이르도록 익히고 있던 그 사람으로서는 그야말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그 사람은 세 개의 미인상에 담긴 절초들을 얻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 그 세 개의 미인상에서 검법을 얻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각기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는 세 개의 미인상은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조각상과 다름이 없어서 아무리 눈에 불을 켜고 살펴보아도 그 안에 무공초식을 숨겨놓았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사람은 심지어 미인상을 깨어 그 속을 확인해보려고 했으나, 그것조차 여의치 않았다. 나중에야 그 사람은 그 미인상이 무림의 전설적인 보물인 취화옥으로 만든 것이며, 그 미인상을 지니고만 있어도 절로 내공이 상승되는 최고의 기보(奇寶)임을 알고는 미인상을 파손하려는 생각을 접어야 했다.

그 후 오랜 세월이 흘러서야 그 사람은 겨우 그 미인상 중 하나의 비밀을 절반쯤 풀게 되었으나, 그때는 이미 그의 머리에는 백발이 수북했고 그의 수명 또한 그리 오래 남지 않게 되었다. 결국 그 사람은 그 미인상의 비밀을 푸는 숙제를 자신의 후예에게 맡기고는 아쉬운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 사람에게는 한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무학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일대의 기남기녀(奇男奇女)들이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큰아들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고뇌하는 모습을 지켜봐 왔기에 미인상의 비밀을 푸는 것에 자신의 평생을 바치리라 결심했다.

또한 부친이 그토록 원했던 천양신공을 익혀 부친의 숙원을 풀어주려 했다.

결국 가전의 무공은 여동생에게 전하고, 그는 우선 천양신공을 익히는 것에 매진했다. 천양신공에 입문하여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자 그는 다시 미인상의 비밀을 푸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세 개의 미인상을 한꺼번에 연구하는 일은 그로서도 불가능한 것이었기에, 그중 아버지가 어느 정도 해석해 놓은 첫 번째 미인상을 들고 폐관수련에 들어간 것이다.

혼자 남게 된 여동생은 당시 천하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거부(巨富)의 아내가 되었으며, 그와의 사이에 두 명의 자식까지 보게 되었다.

그녀의 남편은 좋은 남자였으나, 단 한 가지의 단점이 있었다. 무공에 대한 집착이 강한 희대의 무공광(武功狂)이었던 것이다.

강북제일의 거부가 무공에 미쳐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 일이지만, 실제로 그는 무공에 빠져 가업(家業)마저 소홀히 할 정도였다. 어려서부터 무공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던 그는 돈을 버는 일보다는 무공을 익히는 일에 더욱 큰 재미를 느끼게 되었고, 보다 높은 무공을 얻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려고 했다.

그의 그런 무공에 대한 갈증은 점점 더 강해져서 나중에는 그들 사이의 부부생활에마저 심각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그가 그녀의 가전무공까지 탐을 내며 그녀를 닦달하자, 차마 자신의 가전무공을 줄 수 없었던 그녀는 그를 조금씩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때 그녀의 일생을 뒤바꿔 버리는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폐관수련에 들어간 그녀의 오빠에게는 어려서부터 결혼을 약속한 정혼녀가 있었는데, 그 정혼녀가 우연히 그녀를 찾아왔다가 그녀의 남편과 눈이 맞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은 그녀의 눈을 피해 밀회를 즐겼으며, 정혼녀에게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머지않아 그녀의 남편이 그녀를 찾아왔다.

“당신 오빠가 남긴 무공비급이 있다며?”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그건 당신 가전의 무공이 아니니 나에게 한 번쯤 보여줘도 되지 않겠소?”

“그건…….”

그녀는 몇 번이고 망설였으나, 그의 집요하리만치 거듭된 요구에 결국 어쩔 수 없이 천양신공의 비급을 그에게 보여주고 말았다.

그는 단번에 천양신공이 희대의 신공절학임을 알아보았다. 다행히 그동안 마음에 드는 내공심법이 없어 어떠한 내공도 절정까지 익히지 않았던 그는 어렵지 않게 천양신공에 입문할 수 있었으며, 그 진경은 가히 놀랄 정도였다.

하나 문제는 천양신공이 아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천양신공과 함께 있는 미인상을 거론한 그는 미인상을 보여 달라며 그녀에게 애원했고, 결국 미인상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미인상을 본 그녀의 남편은 그때부터 사람이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오직 그 미인상을 앞에 놓고 끝도 없는 참오를 계속하는 것이다.

그녀뿐 아니라 오빠의 정혼녀까지 몇 번이고 그를 찾아왔다가 헛걸음을 하기 일쑤였다. 그녀의 남편은 주위의 모든 것에도 신경 쓰지 않고 오직 미인상에만 미친 듯이 빠져 있었다.

그제야 그녀는 무공광인 자신의 남편에게 결코 그 미인상을 보여주어서는 안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으나, 그것은 너무 늦은 판단이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마친 모용단죽은 굳어 있는 표정의 진산월을 가만히 응시하더니 살짝 화제를 바꾸었다.

“자네는 그들이 누구인지 아는 모양이군.”

진산월은 주저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태을선거를 처음 찾은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그 외의 사람들은 알겠군요. 아들이 조익현이고 딸은 철혈홍안, 그리고 그녀의 남편은 석동이며, 조익현의 정혼녀는 바로 백모란이 아닙니까?”

“잘 알고 있군. 그들에 대한 말은 누구에게서 들었나?”

“단봉공주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녀가 말한 내용과는 세부적인 면에서 조금씩 달랐다. 하나 진산월은 다른 것에 신경이 집중되어 있기에 그 점에 대해서는 그리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모용단죽은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리라 짐작했네. 그렇다면 그 후의 이야기도 알고 있겠군?”

“폐관에서 돌아온 조익현이 사실을 알고 석동과 커다란 싸움을 벌였으며, 철혈홍안이 크게 분노하여 그들을 두 번 다시 낙양으로 오지 못하게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렇지. 그 후에 그들이 어떠한 길을 걸어왔는지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네. 그건 오늘 이 자리에서 꺼낼 이야기는 아니니 말일세. 중요한 건 따로 있지.”

진산월의 얼굴은 여전히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모용단죽은 진산월을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표정이로군.”

진산월의 음성은 담담했으나, 그 안에는 억눌린 무언가가 가득 담겨 있었다.

“천양신공이 본 파의 무공이었군요.”

모용단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확히 말하세. 천양신공은 종남파의 무공이 아니라 태을검선의 무공일세. 그분이 남긴 유진(遺眞)에 그 무공을 종남파에 전하라거나 종남파의 소유로 하라는 말이 없었네.”

“…….”

“그분의 유진을 읽어보면 천양신공을 종남파의 무공과는 별개인 단순한 자신의 창작물로 여기는 의미가 짙게 배어 있네. 선대(先代)의 인물들이 그것을 종남파에 전하지 않은 것은 단순히 그 무공이 욕심나서 억지를 부린 것만은 아니라는 말일세.”

진산월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으나, 모용단죽은 그의 표정만으로도 지금 그의 심정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내 말이 만족스럽지 못한 모양이군. 하지만 이 말을 듣고 나면 조금 생각이 달라질 걸세. 천양신공은 완성된 무공이 아닐세. 치명적인 단점이 있지.”


랜덤 이미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