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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천하 : 925화


군림천하 (925)

제376장 미륵현신(彌勒顯身)

뿌연 안개가 산자락을 휘감고 있었다.

안개에 뒤섞인 종남산의 아침 공기는 유달리 신선했다. 청명하면서도 무언지 모를 묘한 향기가 감도는 그 공기를 가슴 가득 들이마시면 서늘한 기운과 함께 전신이 바람을 타고 푸른 하늘 어딘가로 날아가 버릴 듯한 상쾌함이 진하게 느껴졌다.

매상은 심호흡을 하며 그 공기를 폐 속 깊숙이 담아내려 애썼다.

예전 종남파에 있을 때부터 매상은 종남산의 아침 공기를 좋아했다. 여름으로 막 진입하는 초하(初夏)의 종남산은 유난히 공기가 깨끗했으며, 서서히 더워지는 지열이 뒤섞인 아침 안개는 그러한 공기를 가득 머금고 있어서인지 아무리 들이마셔도 개운하기 그지없었다.

이곳의 풍광은 특히 각별했다.

높다란 능선에서 조금 빠져나온 암반 지대였는데, 제법 커다란 암반 덕분에 울창한 수림이 시선을 막지 않아서 아주 멀리까지 볼 수 있었다. 고개를 내리면 고색창연한 종남파의 전각들이 한눈에 들어왔고, 주위를 둘러보면 우거진 신록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종남산의 절경이 시야 가득 들어찼다.

문득 고개를 들어 보니 오늘따라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청명한 날이어서인지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매상은 종남 제자의 신분이었던 때에도 하루에 한 번은 꼭 이곳에 올라와서 잠깐이라도 시간을 보내곤 했다. 탁 트인 시야와 눈이 시릴 듯 파란 하늘이 암울한 문파의 상황과 답답한 현실을 잠시라도 잊게 해 주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종남파는 예전처럼 암울하지도 않고, 하루하루 목숨을 걱정할 만큼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도 아니다. 그럼에도 매상은 거대한 추를 매단 듯한 갑갑함을 느끼고 있었다.

“흐음.”

마음속의 무거운 짐이 내뱉는 호흡을 따라 빠져나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매상은 몇 번이나 깊은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그때 누군가의 퉁명스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정말 말 안 듣는 놈이로군. 그리 크게 숨을 몰아쉬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느냐? 그러다 간신히 붙여 놓은 갈비뼈와 아랫배가 터지기라도 하면 대라신선이 와도 네놈을 살릴 수 없을 게다.”

매상은 나타난 사람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한차례 깊은숨을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쉬었다.

나타난 사람은 제갈외였다. 제갈외는 못마땅하다는 눈으로 매상의 그런 모습을 심통스럽게 쳐다보다가 참지 못하고 다시 거친 음성을 내뱉었다.

“그렇게 죽고 싶어서 안달이 났으면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도록 해라. 정신 사납게 눈앞에서 얼쩡거리지 말고.”

매상은 무심한 음성으로 대꾸했다.

“여기는 원래 내가 연공(功)하던 곳이었소. 아주 오래전부터 …………….”

매상의 말꼬리가 흐릿해졌다. 맺고 끊는 게 누구보다 분명했던 그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제갈외는 냉랭한 코웃음을 날렸다.

“흥. 네 녀석이 종남파의 제자였다는 말은 들었다. 하지만 노부가 이곳에 온 후, 이 자리는 항상 노부의 차지였다. 이곳의 풍광이 그런대로 마음에 들어 벌써 몇 달 동안이나 터를 닦아 놓았는데, 언제 떠났는지도 모르는 놈이 이제 와서 네 자리라고 주장하는 거냐?”

매상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을 일으키는 단순한 동작조차도 힘이 드는지 이마에 땀이 솟았고, 혈색 또한 핼쑥해졌다. 하나 그는 비록 느리지만 꾸준히 몸을 움직여 그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제갈외는 그런 매상의 모습을 잔뜩 찌푸린 얼굴로 보고 있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직 찬 바람 쐬기에는 이르다. 몸이 빨리 낫고 싶으면 갑갑해도 경내를 벗어나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어른이 말을 하면 듣는 시늉이라도 해라, 이 망할 놈아!”

유달리 긴 소맷자락을 휘적거리며 걷는 매상의 모습은 어찌 보면 아직도 부상이 낫지 않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힘겨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제갈외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손사래를 치는 것 같기도 했다.

막 암반을 벗어나 수림 사이의 샛길로 사라지려던 매상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알아듣기 힘든 나직한 음성으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동안 고마웠소. 언제고 이 신세를 갚을 날이 있으리라 생각하오.”

제갈외가 입을 반쯤 벌리고 있는 사이, 매상은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고 다시 흐느적거리는 걸음으로 수림 속으로 걸어갔다. 제갈외는 그의 껑충하고 비쩍 마른 신형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다가 고래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말 종남파 놈들은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어. 말도 지지리 안 듣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게 어쩜 저리도 똑같은지! 종남파에는 의원 말 들으면 큰일 난다는 문규라도 있는 건지 모르겠구먼.”

투덜거리면서도 조금 전 매상이 앉았던 자리로 다가간 제갈외는 그곳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고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탄성을 토해 냈다.

“이곳의 풍광은 보면 볼수록 정말 멋지구나. 이런 명소를 용케도 찾아냈다니 그놈이 보기완 달리 안목이 제법 높은 모양이지.”

사실 이 장소를 알게 된 것은 제갈외도 불과 며칠 되지 않았다.

진료를 하러 매상의 방에 갔던 그가 방이 비어 있는 것을 보고 놀란 마음에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다가, 정상 부근의 암반 지대에 있을 거라는 소지산의 말을 듣고 산에 올라 우연히 발견한 것이었다. 부상이 심해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몸으로 여기까지 올라온 매상을 보고 불같이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으나, 이내 이 일대의 풍경이 기가 막힌 것을 알고는 그를 찾는다는 핑계로 수시로 이곳을 찾게 되었다.

제갈외는 한동안 그 자리에 멍하니 선 채 신록으로 물들어 가는 종남의 산자락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든 생각에 안색이 가볍게 변했다.

“가만, 그러고 보니 그놈이 웅얼거린 말이 꼭 작별 인사라도 하는 것 같지 않았나?”

제갈외는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며 거친 숨을 내뱉었다.

“이 망할 놈이 설마 그런 몸으로 길을 떠나려는 건 아니겠지? 아직 배때기를 꿰맨 자국도 제대로 아물지 않았거늘.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짐작이 맞는 것 같자 제갈외는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매상이 사라진 산길로 몸을 날리려 했다. 하나 채 걸음을 떼기도 전에 우뚝 멈춰 섰다.

“내가 먼저 나서서 괜히 안달할 필요가 없지. 그놈이 죽고 싶어 환장을 했다면 누가 말리겠는가? 어차피 종남파 문하들은 하나같이 제 목숨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종자들이 아닌가?”

제갈외는 연신 투덜거리며 자리에 앉으려다 그대로 다시 몸을 일으켰다.

“에이, 모처럼 날씨가 좋기에 멋진 풍광이나 보려고 했더니 완전히 기분이 잡쳐 버렸네. 진짜 이놈의 문파에는 마음에 드는 놈이 하나도 없다니까. 소응, 그 녀석만 아니었어도 진즉에 이곳을 떠나는 건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잔뜩 찌푸려 있던 제갈외의 얼굴에 갑자기 훈훈한 미소가 감돌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소응이 녀석, 불과 몇 개월 만에 부쩍 여물어진 것 같았지? 가뜩이나 귀여움이라고는 별로 없던 녀석이 한층 더 과묵해진 게 좀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기초가 제법 잘 다듬어져서 정말 훗날이 기대된단 말이야. 이럴 게 아니라 소응에게 먹일 약초라도 찾아봐야겠다.”

제갈외는 날카로운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다 이내 신형을 날렸다.

종남산을 내려가는 길은 상당히 험했다.

예전 같으면 눈을 감고도 갈 수 있을 만큼 익숙한 길이건만, 지금 매상의 몸 상태로는 천산의 험산준로를 걷는 것처럼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전신은 이미 흐르는 땀으로 흠뻑 젖은 지 오래였고, 팔다리는 후들거리다 못해 가늘게 경련마저 일어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잠깐이라도 길가에 앉아 쉬고 싶었으나, 지금 주저앉는다면 다시는 몸을 일으키지 못할 것 같은 기분에 매상은 억지라도 계속 두 다리를 움직였다.

얼마나 걸었을까?

가파른 능선을 따라 이어져 있는 계곡 하나를 막 지나려 할 때였다.

계곡가 커다란 바위 위에 한 사람이 걸터앉은 채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 사람과 시선이 마주치자 매상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근처의 바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사람은 비 오듯 땀을 흘리면서도 유난히 창백한 매상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기만 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흘러나오는 그자의 눈빛이 이상하리만치 무겁게 느껴졌다.

“이렇게 가는 거요?”

그자의 질문에, 매상은 대답 대신 몇 차례 가쁜 숨을 몰아쉬다가 음울하리만치 낮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되물었다.

“어떻게 알았느냐?”

“평상시와 달리 침구가 잘 정리되어 있더군. 그래서 혹시나 하여 사형이 자주 가는 장소에서 산 아래로 내려올 만한 길에 나와 있었소.”

“매일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거냐?”

“사년 전처럼 또 그렇게 훌쩍 떠나 버릴 거 같아서 말이오.”

매상은 더 이상 아무 대꾸도 없이 입을 굳게 다물었다. 가뜩이나 얄팍한 입술이 핏기 한 점 없이 유난히 창백해서인지 금시라도 숨이 끊어질 듯한 환자를 보는 것 같았다.

그 사람은 매상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다시 조용한 음성을 내뱉었다.

“갈 때 가더라도 언제쯤 다시 올지 기약이라도 해 주시오. 최소한 장문 사형이 물어보면 대답할 말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소?”

그 말에 매상의 어깨가 한차례 흔들리며 매섭게 번뜩였던 눈빛이 살짝 흐려졌다.

“그래・・・・・・ 그를 못 보고 가게 됐군.”

“말도 없이 그냥 간 걸 알면 장문 사형이 꽤나 서운해할 거요. 그렇잖아도 그동안 몇 번이나 매 사형 얘기를 하면서 소식을 몰라 답답해했소.”

“내 욕깨나 했겠군.”

“장문 사형이 뒤에서 남을 험담하는 성격이 아니라는 건 매 사형도 잘 알고 있지 않소?”

매상은 그 말에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눈앞의 사내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매상이 아무 말도 없이 자신을 빤히 보고만 있자 그 사람, 소지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요?”

매상은 한참이나 소지산의 얼굴을 이리저리 훑어보더니 낮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이제는 정말 고수의 풍모가 확연히 느껴지는구나.”

소지산이 그답지 않게 피식 웃었다.

“생뚱맞게 그게 무슨 소리요?”

“예전에도 네 재질이 제법 좋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나보다 뛰어난 고수가 될 수 있을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지금은 아무리 봐도 내 아래가 아닌 것 같아서 말이지.”

“작은 성취가 있기는 했지만 아직 멀었소. 그리고 제자들의 말을 들으니 일전에 보여 준 매 사형의 검법은 정말 놀라웠다고 하더구려. 소문삼살의 그 장병기를 제거할 실력을 지녔으면서 무슨 엄살을 피우는 거요?”

“이번에 화산파와의 회람연에서 네가 화산파 고수 세 명을 연거푸 물리쳤다고 들었다. 그들 중에는 천절검사 단우진도 있었다고 하던데,

단우진이라면 나로서도 이긴다고 자신할 수 없는 절세의 검객이다. 네가 단우진을 꺾었다는 게 정녕 사실이냐?”

“운이 좀 따랐소.”

소지산이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으나, 매상의 표정과 눈빛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단우진과 검단현은 운만으로는 이길 수 없는 자들이지. 지난 사 년 동안 나 나름대로는 험하고 거칠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너는 그보다 더한 세월을 보낸 모양이구나.”

소지산은 잠시 침음하다 조용한 음성을 내뱉었다.

“확실히 쉽지 않은 시간이었소.”

매상은 눈도 깜박이지 않고 소지산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초가보와 싸울 때는 어땠느냐?”

“힘들고 고통스러웠소.”

“그때…… 옆에 없는 내가 원망스럽지 않았느냐?”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소. 그저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느라 정신없었지. 그리고 우리는 끝내 살아남았소.”

매상의 얼굴에 별다른 표정의 변화는 없었다. 그럼에도 소지산은 그의 눈빛이 왠지 조금 전보다 훨씬 더 흐릿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매상은 그런 눈으로 물끄러미 소지산을 보고 있다가 고개를 돌렸다.

“나도…….”

매상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입속으로 우물거리듯 나오려던 말을 삼켰으나, 소지산은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나도 그 힘들고 고통스러웠을 시간을 너희와 함께 보내고 싶었다.’

매상이 종남파를 떠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틀림없이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는 상황이 암울하거나 상대가 강하다고 해서 피하는 성격이 아니었으니 반드시 그리했을 것이다.

그때의 종남파는 정말 금시라도 무너질 듯 위태로웠고 제자들도 하나같이 나약했지만, 그들 사이의 끈은 탄탄하고도 질겼다. 그랬던 그들도 두기춘이 만년삼정을 훔쳐 달아나고, 소림사로 집회를 떠났던 진산월 일행이 별다른 성과 없이 오히려 임영옥마저 두고 돌아온 후로 많이 흔들리고 약해졌다.

그래도 시간이 조금 더 흘렀다면 다시 예전처럼 힘겹게라도 상황을 이어 나가고 그들 사이도 자연스레 다시 굳건해졌을 것이다.

하나 매상은 진산월 일행이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돌연 종남파를 훌쩍 떠났고, 매종도의 비학을 찾겠다고 나선 진산월마저 행방이 묘연해졌다. 그 후에는 그야말로 지옥 같은 나날의 연속이었다. 남은 종남파의 제자들은 하루하루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며 악전고투를 벌여야 했다. 한 치 앞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는 암담하고 위태로운 상황이 계속되었고, 결국은 본산마저 빼앗긴 채 뿔뿔이 흩어져 숨어 지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당시의 기억이 어찌나 고통스러웠던지 소지산은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식은땀이 전신에 흐르곤 했다.

그때 그들이 용케도 죽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운이 좋았다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기적 같은 일이었다.

당시의 초가보는 정말 강했다.

그들은 수많은 절정 고수들을 보유하고 있었고, 정체를 숨긴 뛰어난 고수들이 즐비했다.

그에 비해 종남파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몇 년이나 쫓겨 다니느라 정상적인 몸 상태가 아니었고, 믿을 만한 고수라고는 오직 뒤늦게 돌아온 진산월 한 사람뿐이었다. 누가 보아도 전혀 상대가 되지 않는, 종남파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종남파의 제자들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움을 이어 나갔다.

그 힘들었던 시절, 그들이 가끔 종남파를 떠난 사람들을 떠올린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맏형으로서 제자들을 이끌어야 할 상황에서 문파를 등진 악자화, 장문인에게 가야 할 영약을 빼돌리고 사라진 두기춘, 두기춘에게 얻어맞고 말도없이 훌쩍 떠나 버린 매상, 강호행을 나섰다가 서장의 습격으로 심각한 부상을 당해 돌아오지 못한 임영옥 그리고 진산월.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추억하고 그리워하며 종남파의 제자들은 외롭고 힘든 고통의 시간을 악착같이 견뎌 냈다.

소지산이 담담하면서도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우리 중 떠난 사람들을 욕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소. 걱정은 조금 했지만, 그래도 다들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을 거라고 믿었지. 언제고 그들이 다시 돌아온다면 쉴 자리쯤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없던 힘까지 쥐어짜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또 버텨 냈소.”

평소 말이 거의 없는 소지산으로서는 드물게 보는 모습이었다.

“장문 사형이 돌아오고, 초가보와 흉험한 싸움을 계속하면서도 우리는 한시도 마음을 늦춘 적이 없었소. 그리고 본산을 되찾았을 때, 이제는 당신들이 돌아와도 편안히 머무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비로소 마음 놓고 잠들 수 있었지.”

매상은 목이 멘 사람처럼 굳은 표정으로 있다가 쥐어짜듯 음성을 내뱉었다.

“그렇게 계속 기다리고 있었던 거냐?”

“언제고 돌아올 거라 믿었으니까.”

“미련스러운 놈들・・・・・・・

소지산이 하얀 이를 살짝 드러내며 웃었다.

“그래도 우리 생각이 맞지 않았소? 떠난 사람들이 하나둘씩 돌아오고 있으니 말이오.”

“난 돌아온 게 아니다. 그냥…….”

“그냥 잠시 들렀다 가는 거라고?”

“……”

“그럼 이렇게 들른 것처럼 다음에도 또 들르시오. 그리고 그때는 좀 더 오래 머물렀다 가시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아주 돌아오게 되지 않겠소?”

매상은 입을 굳게 다문 채 철천지원수라도 되는 것처럼 무서운 눈으로 소지산을 쏘아보았다.

소지산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아무 사심도 없는 듯한 그 웃음이 매상에게는 다른 어떤 질책보다 무서운 것으로 보였다.

매상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몸을 돌렸다. 여전히 휘청거리기는 했으나, 매상은 단 한 번도 걸음을 멈추거나 돌리지 않고 산을 내려갔다. 소지산은 매상의 몸이 산길 사이로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도 그 자리에 가만히 선 채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멀어져 가는 그의 뒷등에서 소지산은 매상이 미처 내뱉지 못한 음성을 들은 것만 같았다.

‘언젠가는 반드시・・・・・・’

그래서 자신도 소리 없는 대답을 마음속으로 토해 냈다.

‘다음에는 건강한 모습으로 볼 수 있길 바라겠소. 우린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 있지만, 그렇다고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는 마시오, 매 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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