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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천하 : 926화


군림천하 (926)

와룡사는 깊은 침묵에 잠겨 있었다. 밤의 정적이 내려앉은 산사(山寺)는 아무도 살지 않는 폐허를 보는 듯 사람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와룡사는 장안의 중앙 부근에 자리하고 있는 아주 오래된 고찰(古刹)이었다.

섬서성에서 가장 먼저 생긴 불교 사원으로, 수(隋)나라 때는 복응선원이라고 불렸다가 당나라에 와서 관음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러다 송나라에 이르러 와룡선인(臥龍禪人)이라는 고승이 기거했다고 하여 다시 와룡사라고 불리게 되었다.

삼경(三更) 무렵.

짙은 어둠에 휩싸인 와룡사의 담벼락을 비호처럼 넘어가는 한 인영이 있었다. 어둠만큼이나 검은 흑의를 입은 그 인영의 동작은 표홀하기 그지없어서 제법 높은 와룡사의 담장을 넘어 안으로 들어설 때까지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와룡사는 상당히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있어서 입구에서 불전(佛殿)들이 늘어선 곳까지 상당한 거리를 걸어가야 했다. 흑의 인영은 경쾌한 동작으로 공터를 가로지르고 몇 개의 불전을 지나 후원의 어느 한 곳으로 향했다.

괴괴한 어둠에 잠겨 흐릿한 음영이 드리워진 크고 작은 건물들은 마치 길게 이어진 거대한 무덤군(群)처럼 보였다.

인영은 재빠른 동작으로 후원에 줄지어 늘어선 건물들 사이를 빠져나갔다. 그 모습이 마치 수초(草)를 헤치고 유영하는 한 마리 물고기를 보는 듯했다.

미끄러지듯 유연하게 건물 사이를 지나가던 인영의 움직임이 멈춘 곳은 후원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평범한 객방이었다.

와룡사의 후원은 주로 승려들이 숙식하는 곳이었고, 안쪽으로 와룡사를 찾아온 손님들이 머무르는 객방이 몇 개 있었다. 흑의 인영은 날카로운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고는 그중 가장 끝에 있는 방으로 가서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똑똑.

“접니다, 대형.”

불이 꺼진 방 안에서 묵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들어오너라.”

흑의 인영은 주저하지 않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은 겉에서 보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 크지 않았다. 창문가에 침상 하나가 놓여 있고, 그 앞에 작은 탁자와 두 개의 의자만이 있을 뿐이었다.

침상 위에 한 사람이 단정한 자세로 앉은 채 방 안으로 들어오는 인영을 응시하고 있었다.

자신의 손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어둠 속에서도 그 사람의 두 눈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날카롭게 빛났다.

“알아보았느냐?”

흑의 인영이 그에게 머리를 조아리고는 두 개뿐인 의자 중 하나에 앉으며 조심스러운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팔상전(八相殿)과 바로 뒤쪽에 있는 두 채의 건물들이 가장 수상합니다.”

“팔상전이 어디에 있더라……?”

“서쪽의 원통전(圓通殿)과 명부전(冥府殿) 사이에 조금 길쭉하게 세워진 건물입니다.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그린 그림 여덟 점이 늘어서 있는 불전이라, 보면 아실 겁니다.”

“아! 그렇군. 이제 기억났다.”

침대 위의 사람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번뜩이는 눈으로 흑의인을 바라보았다.

“그곳을 의심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흑의인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한결 신중해진 음성으로 말했다.

“지난 사흘 동안 와룡사에 있는 스물두 개의 불전과 마흔한 곳의 승방을 샅샅이 훑었습니다. 주위의 시선을 끌지 않기 위해 조심하느라 제법 시간이 걸렸지만, 그래도 어느 한 곳 빠뜨리지 않고 철저히 조사했다고 자신합니다.’

“최 방주가 고생했겠군.”

흑의 인영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최 방주님만이 아니라 삼묘 세 분도 애를 많이 쓰셨습니다. 덕분에 와룡사의 땡중들과 참배객들의 눈을 피해 무사히 조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침상 위의 사람은 다름 아닌 노해광이었고, 흑의인은 그의 수하인 상로객 지일환이었다.

소문삼살의 둘째인 괴살 도인수에게서 와룡사라는 절 이름이 언급된 후 노해광은 와룡사 일대의 수색에 자신의 전력을 기울였다. 최동이 이끄는 흑선방은 물론이고, 삼묘, 지일환과 마정기 등 그의 수족들이 모두 동원되다시피 했다. 그렇게 했음에도 사흘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작은 실마리 하나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팔상전은 부처의 행적을 그린 불화들을 모아 놓은 곳이라 그림을 관리하는 소수의 인원 외에는 사람들의 출입이 거의 없습니다. 원래 그곳을 관리하는 책임자는 지도(道)라는 승려인데, 며칠 전에 고향에 일이 생겨 귀향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팔상전 뒤쪽으로 외부인들의 모습이 간헐적으로 보인다고 하더군요. 가뜩이나 평상시에도 인적이 드문 곳에 지금은 관리자도 없는데 오히려 누군가가 꾸준히 출입하고 있다니 충분히 의심해 볼 만하지 않겠습니까?”

“흠.”

노해광은 지일환의 보고를 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일환의 말대로 결정적인 증거는 아니지만 의심해 볼 여지는 분명히 있었다.

“좋다. 말이 나온 김에 바로 처리하자. 준비된 인원들을 불러라.”

“지금 당장 말입니까?”

“이미 너무 오래 지체되었다. 더 시간을 끌다가는 왠지 꺼진 불씨가 되살아날 것 같아 불안하구나.”

검단현이 종남파 본산의 습격을 지시하고 행적이 묘연해진 지 벌써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는 것이 노해광에게 상당한 부담감을 주었다. 노해광으로서는 어떤 식으로든 검단현과의 악연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종남파의 상황을 안정시키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알겠습니다, 대형.”

지일환도 같은 심정인 듯 빠르게 대답하고 날렵한 몸놀림으로 방을 빠져나갔다.

그로부터 일각 정도 시간이 흐른 후, 노해광은 느릿한 걸음으로 팔상전의 문을 열고 있었다.

삐걱!

밤이 깊어서인지 문 열리는 소리가 제법 크게 울렸으나 노해광은 전혀 표정의 변화 없이 차분한 손길로 문을 다 열고 팔상전 안을 둘러보았다.

정면으로 석가모니와 다양한 형상의 불상들이 줄지어 앉아 있고 불상 뒤편 벽으로부터 사방으로 불화(佛畵)가 가득 그려져 있는 팔상전은 짙은 어둠에 잠겨 왠지 모르게 섬뜩한 느낌이 들게 했다. 불상과 불화가 뒤섞여 만들어 낸 칠흑 같은 공간은 누구라도 선뜻 들어서기 망설여질 만한 것이었다.

노해광 또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한동안 팔상전의 입구에 우뚝 선 채 불전 안을 묵묵히 보고만 있었다. 그러다 천천히 한 걸음을 내디뎌 실내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오니 기이한 중압감이 주위를 더욱 무겁게 짓누르는 것 같았다.

노해광이 다시 불전의 중앙을 향해 한 걸음 내디뎠을 때, 갑자기 어디선가 낮게 가라앉은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시간에 여기를 오다니 배짱이 대단하군.”

여러 형상의 불상들과 어지러울 정도로 가득 펼쳐진 다양한 불화들, 그리고 실내를 휘감은 무거운 어둠 속에서 느닷없이 들려온 음성에는 듣는 이의 모골을 송연하게 하는 묘한 힘이 담겨 있었다.

노해광은 빠르게 실내를 두리번거렸으나, 소리가 들려온 곳이 어디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당황할 법도 하건만 노해광은 한차례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대수롭지 않은 듯 태연한 음성을 내뱉었다.

“내가 생긴 건 이래도 제법 독실한 신자라서 말이오.”

“부처를 만나기에는 적당한 시간이 아니지 않나?”

“예불하는데 정성이 중요하지, 시간이 무어 그리 중요하겠소?”

음산한 목소리의 주인은 노해광의 천연덕스러운 반응에 나직한 웃음을 흘렸다.

“흐흐. 과연 듣던 대로 입심이 제법이군.’

“내가 누군지 알고 있소?”

“요즘 서안에서 제일 잘나가는 인물이라고 들었지. 잔꾀도 많고 수단도 좋아서 벌써 여럿이 당했다더군.”

“호, 이 시간에 불쑥 찾아온 나를 한눈에 알아보다니 마치 내가 올 것을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것 같구려.”

“그래, 틀린 말은 아니야.”

의외로 그 사람이 부인하지 않자 노해광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줄 알았다면 진즉에 찾아올 걸 그랬군. 무슨 일로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요?”

“자네가 짐작하는 그 일이지.”

“내가 짐작하는 일이라. 한 가지밖에 안 떠오르는군.”

“그럼 바로 그걸 테지.”

노해광은 잠시 침음하다가 돌연 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면에서 우측으로 조금 치우쳐 자리한 불단에는 다양한 모습의 불상들이 놓여 있었는데, 그중 유난히 배가 튀어나온 미륵불 모습의 불상에 그의 시선이 고정되었다. 투실한 가슴과 통통한 배를 반쯤 드러낸 채 알 듯 모를 듯 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 미륵불상은 해학적이면서도 보는 이로 하여금 왠지 섬뜩한 느낌이 들게 했다.

노해광은 그 미륵불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고 있다가 낮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당신을 보니 불현듯 생각나는 사람이 있군.”

웃음 지은 채 고정되어 있던 미륵불의 얼굴이 미묘하게 꿈틀거리더니 입가와 미간에 떠올라 있는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실로 기괴스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제 보니 불상인 줄 알았던 미륵불은 살아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인간의 몸으로 불상과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닮아 보인다는 것은 눈으로 보고도 쉽게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그가 누군가?”

분명 눈과 얼굴은 활짝 웃고 있는데, 사람의 마음을 억죄는 듯한 섬뜩한 느낌이 오히려 한층 더 강해졌다.

노해광은 눈도 깜박이지 않고 그를 응시했다.

“아미파에서도 무공이 고강하기로 유명한 흑미륵 원정 대사의 사형인 원당(圓堂)이란 인물이오. 원래는 유력한 차기 장문인 후보 중 하나였는데, 어느 순간 혈기를 이기지 못하고 아미산 인근을 돌아다니며 하룻밤 사이에 무고한 사람 수백 명을 살해하여 파문당한 희대의 살인마라고 하오.’

“…….”

“평소에 잘 웃고 다녀 소미륵(彌勒)이란 별호가 있었는데, 그 혈겁 이후 다들 혈미륵(血彌勒)이라고 부른다고 하더구려. 그가 사문을 뛰쳐나간 후 아미파에서 그를 잡기 위해 몇 번이나 고수들을 파견했으나 대부분 주살당해, 문파 내부에서는 지금도 그 이름을 입에 올리는 걸 금기시한다고 들었소.”

혈미륵 원당!

한때 아미산 부근은 물론이고 사천성 일대를 온통 뒤흔들어 놓았던 이름이다.

전도양양한 아미파의 고수가 어느 날 갑자기 살인귀로 돌변하여 무림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무참히 살해하는 끔찍한 혈사를 벌였으니 세간의 이목이 몰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더구나 아미파에서는 쉬쉬하고 있었지만, 그를 쫓다 오히려 희생당한 추격대에 장로급 고승들도 몇 사람 포함되었다는 소문은 무림의 정보 조직들을 통해 사실로 확인되기도 했다.

그 후로 상당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원당의 모습은 강호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노해광의 입에서 모처럼 그의 이름이 거론된 것이다.

미륵불은 얼굴이 일그러지도록 활짝 웃었다. 도금이라도 했는지 온몸은 물론이고 이까지 금색으로 누렇게 빛나는 불상이 입을 벌린 채 웃고 있는 모습은 기괴함을 넘어 공포스러워 보였다.

“그래, 맞아. 내가 바로 원당이네. 용케도 아직까지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었군.”

“어렵지 않은 일이었소. 내가 장성에 있을 때 당신에 대한 소문을 몇 가지 들은 게 있거든.”

“무슨 소문 말인가?”

“구대문파 중 하나에서 쫓겨난 괴승이 흥안령 쪽으로 왔다가 그 일대를 피바다로 만들었다든가, 혈겁을 저지르고 다니던 그 괴승이 자신보다 더 괴물 같은 자에게 굴복하여 그의 수하가 되었다든가…….”

듣기에 따라서는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한데, 원당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계속 웃고 있었다.

“흐흐. 용케도 그런 소문을 들었군.”

“당시에는 제법 장성 일대를 시끄럽게 했던 사건이었소. 그 근처에 살던 사람들은 혹시라도 그 피에 굶주린 괴승이 자기들 쪽으로 오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오.”

“피에 굶주렸다.・・・・・라. 그래, 그렇게 보일 법도 했겠군.’

“그때도 정말 궁금했는데, 대체 왜 갑자기 인명을 무차별로 해치고 다녔던 거요?”

노해광의 물음에 원당의 금빛이 감도는 얼굴에 묘한 미소가 내걸렸다. 보기에 따라서는 자조 섞인 조소 같기도 했고, 흥분을 억누르는 살소 같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그게 벌써 십 년도 훨씬 전의 일이군. 세월이 정말 빨라. 그때는 나도 젊은 혈기 같은 게 있었지.”

노해광이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단순히 젊은 혈기로 그런 살겁을 저질렀단 말이오?”

“단순한 건 아니지. 그때의 나는 늘 웃고 다녔고, 착하고 인내심 많은 사람으로 주위에 알려져 있었네. 그렇게 사는 삶에 특별한 불만도 없었고,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가슴이 답답해지고 기운이 나지 않는 거야. 아무리 불공을 드리고 심법을 수련해도 갑갑함이 풀리지 않았어. 가슴속에 응어리 같은 게 있긴 했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지.”

괴괴한 어둠에 잠겨 들려오는 그의 낮게 가라앉은 음성은 마치 지옥에서 흘러나오는, 사신(死神)의 중얼거림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지나가던 노인 부부가 나를 보더니 공손하게 절을 하더군. 그래서 왜 내게 절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웃는 내 모습이 꼭 살아 있는 부처를 보는 것 같다며 멀리 사는 자식의 복을 비는 마음으로 치성을 드린 거라고 했네.”

원당의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떠올라 있었지만, 가늘게 찢어진 두 눈에서 흘러나오는 눈빛이 점차로 강렬해지더니 이내 기이한 이글거림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 깊숙한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불쑥 치밀어 오르더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두 부부는 전신이 으스러진 채 쓰러져 있고, 내 양손은 피로 물들어 있었지. 처음에는 놀라고 당황했는데, 그들의 피로 범벅이 된 내 손을 보니 갑자기 형용할 수 없는 상쾌함이 전신으로 퍼져 나가는 거야. 그건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한 기분이었네.”

배를 드러낸 채 웃고 있는 원당의 모습은 영락없는 미륵불의 현신(身) 같았으나 노해광의 눈에는 피로 물든 희대의 살인광으로 보였다.

“그때 비로소 깨달았지, 내가 타고난 살성(星)이라는 것을! 천부적인 살성이 짙은 살심(心)을 줄곧 억누르고 살았으니 가슴이 답답하고 속에 응어리가 생길 수밖에.”

“그래서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이고 다녔다는 거요?”

“그냥 살성으로 사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이제라도 좀 느끼고 싶었을 뿐이네. 그런데 제대로 만끽해 보기도 전에 천지사방에서 나를 쫓아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몸을 피해야만 했지.”

원당은 대수롭지 않은 듯 가볍게 말했으나, 노해광은 당시 원당의 살행을 저지하려다 오히려 그에게 살해당한 고수들의 숫자가 수십 명에

달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중에는 원당의 사문인 아미파의 제자들도 상당수 포함되었다. 원당이 흥안령 일대에서 종적을 감추지 않았다면 아미파는 문파의 법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를 제거하려고 엄청난 출혈을 감당해야 했을 것이다.

노해광은 살기 어린 미소를 짓고 있는 원당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무심한 음성을 내뱉었다.

“그런 살성도 자기보다 더한 살성을 만나면 한 마리 순한 양처럼 얌전해지는 모양이구려.”

원당의 얼굴에 걸려 있던 미소가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하지만 원당은 이내 이를 드러내며 다시 웃었다. 조금 전보다 한층 더 살벌하고 살기 짙은 미소였다.

“흐흐, 격장지계치곤 유치하군. 확실히 대형(大兄)을 만나고 난 뒤로 내가 얌전해지긴 했지.”

원당이 선뜻 자신이 다른 사람의 휘하로 들어갔음을 인정하자 노해광은 오히려 마음이 무거워졌다. 원당 같은 인물이 순순히 인정할 정도로 대형이란 자가 무시무시한 존재라는 의미이기 때문이었다.

“당신이 이곳에서 나를 기다린 것도 그 대형이란 자의 지시인 거요?”

“지시라기보다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일이었지.”

“그게 무슨 뜻이오?”

원당의 시선이 노해광의 두 눈에 빤히 고정되었다. 원당의 얼굴 가득 떠올라 있는 미소는 어찌 보면 유희를 즐기는 어린아이의 천진한 모습 같기도 했고, 마음속에 흉심을 숨긴 채 득의만면한 악한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자네가 사람 하나를 간절히 찾는다는 걸 알고 있네. 벌써 며칠째 이 절 주위를 쥐새끼처럼 구석구석 빠지지 않고 살펴보더군. 그래서 조만간 자네가 이쪽으로 올 거라고 생각했지. 내 예상보다는 조금 늦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수하들의 능력이 아주 준수한 편이라고 할 수 있겠네.”

자신을 조롱하는 듯한 말에도 노해광은 전혀 화내지 않고 침착한 어조로 대꾸했다.

“내 사정을 그렇게 잘 알고 있다니 말하기 편하겠군. 내가 찾는 그자를 당신이 데리고 있소?”

원당이 히죽거리며 웃었다.

“철면호는 눈치가 빠르고 재주가 비상하다던데, 한번 맞혀 보게. 자네가 찾는 자가 나에게 있겠나?”

노해광은 원당의 얼굴을 뚫어지게 응시하다가 신중한 음성을 내뱉었다.

“당신이 그를 데리고 있다는 건 알겠군. 하지만 지금 이곳에 있지는 않은 모양이구려.”

“왜 그렇게 생각하나?”

“그는 부상이 너무 심각해서 그동안 아무리 치료를 잘 받았다고 해도 약 없이는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는 상태일 거요. 그런데 여기서는 어떠한 약 냄새도 나질 않소.”

“게다가 오늘 이곳에서는 아무래도 흉험한 일이 벌어질 듯한데, 제 몸 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자를 데리고 왔을 것 같지도 않구려.

엷은 미소를 지은 채 가만히 노해광의 말을 듣고 있던 원당이 갑자기 입을 크게 벌리며 얼굴이 온통 일그러지도록 활짝 웃었다.

“자네의 말 중 적어도 한 가지는 정확하게 맞았네.”

“그게 무엇이오?”

“오늘 이곳에서 흉험한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이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불단 위에 못 박힌 듯 앉아 있던 원당의 몸이 앉은 자세 그대로 쏜살같이 노해광의 코앞으로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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