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림천하 : 953화
군림천하 (953)
제388장 마인현신(魔人顯身)
그 사람은 무척이나 특이한 인상이었다.
그래서 노일은 처음 그 사람을 보았을 때 몇 번이나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하는 사람이지?’
노일은 산해루의 점원이었다.
산해루는 서안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장사가 잘되는 주루여서 늘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점심이나 저녁 시간에는 그야말로 숨 쉴 사이도 없이 손님들이 들이닥쳐서 전쟁터와도 같은 한바탕 난리법석의 대난장이 벌어지고는 했다.
일이 많고 힘들었지만, 급여도 후하고 점원들에 대한 대우도 괜찮은 편이어서 노일은 산해루의 점원 생활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지금은 점심시간이 끝나고 저녁까지 시간이 남아 있어서 하루 중 거의 유일하게 약간의 여유가 있을 때였다.
이 시간에 노일은 산해루 주방 후문의 골목 한편에 있는 작은 공터에 앉아 한숨을 돌리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게 일상이었다. 뻐근한 몸도 쉬어 주고, 간혹 안면이 있는 사람들을 보면 쓸데없는 농담도 주고받는 것이 그에게는 힘든 점원 생활의 몇 안 되는 낙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지나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비록 산해루 뒤편의 골목이라고 해도 용사혈과는 달리 제법 널찍한 데다 남문대로와 같은 방향으로 쭉 이어져 있어서 평상시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왕래하곤 했다. 서안의 토박이들은 복잡하고 인파로 붐비는 대로보다 오히려 이런 골목을 더 자주 이용하는 편이었다.
지금은 오후와 저녁 사이의 그나마 한가한 시간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평상시라면 적어도 십여 명 정도는 지나가야 했다. 그런데 벌써 일각 가까이 있었는데도 단 한 명도 눈에 띄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 저쪽에서 한 사람이 휘적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노일은 혹시나 아는 사람인가 하여 눈을 빛냈으나, 이내 시들해져 버렸다.
왜소한 키에 머리를 어깨까지 대충 늘어뜨린 그 사람은 노일이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노일은 별 관심 없이 시큰둥한 눈으로 이쪽으로 걸어오는 그 사람을 힐끔거리다가 조금씩 눈을 크게 떴다.
걸어오는 사람의 동작이 어딘지 모르게 조금 이상했던 것이다.
분명 키가 좀 작다는 것 외에는 특별할 것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걷는 모습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한참을 보고 나서야 노일은 그의 걸음걸이 자체가 특이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걸음을 옮길 때는 두 팔을 앞뒤로 흔들면서 다리를 움직이게 된다. 자연히 양쪽 어깨도 두 팔의 움직임에 따라 어느 정도의 움직임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사람은 걸어오는 동안 단 한 번도 어깨가 움직이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땅에 발바닥을 내딛는 모양도 이상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발꿈치가 먼저 땅에 닿는 것이 아니라 발의 바깥쪽 면이 먼저 닿고 이어서 발의 안쪽을 바닥에 밀착시켰다.
누구라도 그런 자세로 걸음을 걸으면 제대로 중심을 잡기도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그 사람은 아주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그런 식으로 걷고 있었다. 미동도 없는 어깨와 발바닥의 특이한 움직임 때문에 노일이 그의 걸어오는 모습에서 무언가 기이함을 느꼈던 것이다.
노일이 멍하니 보고 있는 동안에 그는 점차로 가까이 다가왔다.
노일은 무심코 그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다시 몸을 움찔거렸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그의 얼굴에는 주름살이 가득 있었다. 주름살이야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그 사람은 얼굴을 온통 뒤덮을 정도로 주름이 가득해서 마치 얼굴에 그물망을 뒤집어쓴 것 같았다.
누구라도 그런 얼굴을 보게 된다면 가슴 한구석이 섬찟해질 것이 분명했다.
그 사람이 예의 특이한 걸음으로 자신의 앞쪽으로 다가오자 노일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몸을 일으켰다. 왠지 그대로 있으면 안 될 것 같기도 했고, 그렇다고 다른 곳으로 피하자니 그건 너무나 지나친 과민반응인 것 같았다.
상대가 자신에게 아무런 짓도 안 하고 단지 걸어오고 있는데 꼬리를 말고 도망가기에는 산해루 점원으로서 위신이 서지 않았다.
‘내가 다른 사람이 걸어오는 걸 보고 꽁무니를 뺐다고 하면 하규, 그 빌어먹을 녀석이 두고두고 놀릴 게 분명해.’
그래도 마음 한구석이 찝찝한 것은 어쩔 수 없는지 노일은 슬그머니 벽 쪽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가까이 다가올수록 노일의 시선은 못 박히듯 그 사람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그 사람의 얼굴에 있는 주름살은 너무나 지독해서 원래의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이마뿐 아니라 거의 얼굴 전체가 자잘한 주름에 덮여 있어서 나이를 추측하기도 힘들었다.
얼핏 보기에는 사십 대의 중년으로도 보였고, 달리 보면 육십이 훨씬 넘은 노인의 얼굴 같기도 했다.
노일은 그 주름살 중에는 상처나 흉터도 제법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무심코 그 사람의 눈을 마주 보게 되었다.
그 순간, 노일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전신의 피가 싸늘하게 식어서 그대로 굳어 버린 듯한 충격을 받았다.
얼굴 전체에 덮인 주름살 사이로 두 개의 얼음장 같은 눈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은 정말 한 점의 감정도 담기지 않은 극도로 무심하고 차가운 눈빛이었다.
노일은 지금까지 제법 많은 사람을 보아 왔고, 개중에는 강호에서 명성을 날린 고수들도 적지 않았다. 하나 그들 중 누구도 이런 눈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이건 사람이 사람을 보는 눈이 아니었다. 마치 도부(屠夫)가 도살장의 벽에 걸린 고기를 보는 듯한 눈이었다. 적어도 조금의 감정이라도 지니고 있는 인간이라면 같은 인간을 그러한 눈으로 볼 수 없었다.
노일은 감히 그 눈을 다시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그 사람이 자신의 앞을 어서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벽에 몸을 바짝 붙인 채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던 노일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어째서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 거지?’
그 사람의 걷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발걸음 소리는커녕 옷자락이 펄럭이거나 사람이 움직이는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노일은 잠깐이나마 자신의 귀가 이상해진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 멀리 대로에서 사람들의 북적이는 소리는 정상적으로 들리는 것으로 보아 귀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사람이 걸어오면서 일절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었다.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걸을 수 있는가?
노일이 의아해하든 말든 그 사람은 노일의 앞으로 다가왔다. 노일은 여전히 고개를 바닥으로 향한 채 벽에 바짝 붙은 자세로 서 있었다.
그 사람이 다가올수록 노일의 몸은 알 수 없는 긴장감으로 바짝 굳어져 갔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노일은 자신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져서 석상처럼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져 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그 사람의 체취마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거리가 가까워지자 노일의 몸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버렸다.
‘제발 그냥 지나가라. 제발……..
다행히 그 사람의 목적은 노일이 아닌지 그의 앞을 스치듯 지나쳐 계속 걸어가고 있었다.
노일은 계속 뻣뻣한 자세로 벽에 바짝 붙어 있다가 그 사람과 거리가 충분히 떨어졌다고 생각하자 그제야 슬그머니 고개를 쳐들었다.
삼장쯤 떨어진 곳에서 앞으로 걷고 있는 그 사람의 등이 보였다.
뒤에서 보니 그리 크지 않은 체구이지만 어깨가 딱 바라진 데다 허리는 여인의 그것처럼 가늘어서 절로 감탄이 터져 나올 정도였다. ‘앞에서 볼 때는 얼굴 때문에 미처 몰랐는데, 뒤에서 보니 몸이 정말 어마어마하구나. 저런 사람이 주먹이라도 휘두르면 무시무시하겠는걸.’ 그러고 보니 옷 아래 감춰져 있기는 하지만 살짝 드러난 팔과 다리는 보통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람하고 탄탄해 보였다. 키가 작은 건 전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노일은 그 사람의 건장하다 못해 철탑 같은 몸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릴 정도로 두려우면서도 저런 몸이 한번 움직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한 생각도 들었다.
노일이 한참 그 사람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바라보고 있을 때, 돌연 앞으로 걷고 있던 그 사람의 몸이 우뚝 멈춰 섰다.
노일은 절로 찔끔하여 숨을 들이켰다.
‘뭐야, 내가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것을 알았나?’
그 사람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노일은 다시 벽 쪽으로 몸을 붙인 채 엉뚱한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행여라도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수명이 단축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참으로 이상했다.
분명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했는데 노일은 그 사람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든 느낌이었다. 한 마리 사나운 맹수가 접근할 때 피식자가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바로 그 느낌! 노일은 그 맹수가 이번에도 그냥 자신의 앞을 지나치기를 간절히 바랐다.
안타깝게도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사람은 노일의 앞까지 다가와서 걸음을 멈추었다.
“한 가지 묻지.”
그리 크지 않은 나직한 음성이었다.
하나 그 음성을 듣는 순간 노일은 거미줄에 걸린 나방처럼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몸이 덜덜 떨리고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려서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노일은 다른 곳을 보고 있던 자세 그대로 꼼짝도 하지 못했다.
다시 음성이 들려왔다.
“귀머거리인가?”
노일은 그 사람이 그렇게 생각해 주고 그냥 떠나기만을 바랐으나, 그의 소망은 이번에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니면 내 말이 말 같지 않아서 무시하는 건가?”
그 사람의 음성은 여전히 나직했으나, 노일은 귀에 벼락이라도 친 것처럼 몸을 세차게 떨더니 사력을 다해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에게 묻는지 미처 몰랐습니다.”
“그런가? 그래서 그렇게 다른 곳을 보고 있나?”
노일은 황급히 시선을 돌려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사람의 눈과 마주치자 자신도 모르게 진저리를 쳤다.
정말 무서운 눈이었다. 지척에서 바라보니 더욱 공포감이 전신을 짓눌렀다.
그 사람은 그런 눈으로 물끄러미 노일을 응시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야 말할 분위기가 되었군. 말을 할 때는 지금처럼 사람의 얼굴을 보고 있어야 하네.’
“며,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예의 바른 친구로군. 내가 묻고 싶은 건…….”
노일은 마른침을 꼴깍 삼킨 채 그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 근처에 괜찮은 주루가 있느냐 하는 걸세. 마침 배가 출출해서 말이지.”
노일은 자신이 잘못 들었나 하여 눈을 크게 뜨다가 그 사람과 시선이 마주치자 황급히 입을 놀렸다.
“이 있습니다.”
“어디인가?”
노일은 반사적으로 등 뒤를 가리켰다.
“제 뒤쪽에 있는 산해루가 이 일대에서는 제일 유명한 주루입니다.”
“오, 산해루! 좋은 이름이군.”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온 ‘좋다’는 말이 왠지 전혀 그런 의미로 들리지 않았다.
“자네가 추천하는 곳이니 기대해 보겠네.”
그 사람은 노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자신의 몸에 그의 손이 닿자 노일은 확연히 알 수 있을 정도로 몸을 떨었다. 그 사람은 아는지 모르는지 휑하니 몸을 돌려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의 걸음은 산해루를 향해 있었다.
노일은 여전히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
그 사람의 몸이 산해루 쪽으로 완전히 사라진 후에도 그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노일의 몸이 움직인 것은 그로부터 일각 가까이 시간이 흐른 후였다.
“후우!”
일단 몸을 움직이자 노일은 무거운 한숨부터 내쉬었다.
“정말 지독한 기운이로군. 아주 살짝 들어온 것 같은데, 풀어내는 데 이토록 힘이 들다니.”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잔뜩 배어나 있었다.
노일은 이마의 땀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다시 한차례 진저리를 쳤다.
“으. 하마터면 바짝 쫀 상태로 시체가 될 뻔했군. 이런 모습으로 죽었다면 얼마나 창피 막심한 꼴이 되었을까? 하규, 그놈이 얼마나 한심하게 생각할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구나.”
노일은 두려움이 가시지 않은 눈으로 그 사람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다.
“소마라고 주위에서 하도 떠들기에 과장이 심하다고 생각했는데, 소문이 오히려 못한 것이로군. 노 대형께선 저런 괴물을 어떻게 상대하시려는지 짐작도 안 가는구나.”
노해광과 같은 성씨라서 자신이 첫 번째 수하라고 강조하며 이름까지 일(-)로 바꾼 자칭 노일, 진정한 정체는 흑선방에서 다섯 명밖에 없는 당주 중 하나인 파락수(破落獸) 노장평(長平)은 걱정과 우려가 가득 담긴 표정으로 한참이나 그 자리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