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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천하 : 962화


군림천하 (962)

먼저 출수한 사람은 사효심이었다.

그의 손에서 한 가닥 검광이 뿜어 나와 진산월의 앞가슴에 도달하기까지는 그야말로 눈 한 번 깜짝할 순간밖에 소요되지 않았다.

진산월의 허리춤에 매어져 있던 용영검이 소리도 없이 뽑혀 나와 그 검광을 후려쳐갔다. 그러자 금시라도 진산월의 앞가슴을 관통할 듯했던 검광이 두 갈래로 갈라지며 양쪽 어깨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그 변초(變招)가 어찌나 빠르고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던지 마치 처음부터 두 개의 검광이 동시에 날아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진산월의 반응 또한 신속하기 이를 데 없었다. 용영검이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잉어처럼 유연하게 허공을 가르며 움직였다.

놀랍게도 진산월의 출수가 늦었음에도 그의 검은 오히려 사효심이 발출한 검광보다 더욱 빠르게 그의 지척까지 도달해 있었다.

사효심은 한 점의 흐트러짐도 없는 냉정한 눈으로 자신의 목덜미를 향해 날아드는 용영검의 검 끝을 보고 있다가 슬쩍 상체를 옆으로 이동했다. 단순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진산월의 용영검은 아슬아슬하게 그의 목덜미 옆을 스치듯 지나갔다.

다음 순간, 사효심의 몸은 한 마리 새처럼 허공을 날아가고 있었다.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의 몸은 무섭도록 빠르고 영활했다. 마치 창공을 비행하는 한 마리 매처럼 그의 신형은 눈 깜박할 새 공간을 가로질러 진산월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점창파가 자랑하는 응조칠식경공 중의 창응박토(蒼鷹搏兎)라는 수법이었는데, 그 날아드는 속도나 기세는 가히 피할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압도적인 것이었다.

진산월도 피할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그 자리에 우뚝 선 채 용영검을 빠르게 휘둘렀다.

부우우웅.

심혼을 떨리게 하는 음향과 함께 구름 같은 검기가 일어나 그의 몸을 자욱하게 뒤덮었다. 진산월이 드디어 유운검법 중의 운해승기(雲海升起)를 펼친 것이다.

막 진산월의 머리 쪽으로 내려오던 사효심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구름같이 피어오른 검기는 너무도 순식간에 진산월의 전신을 에워싸고 있어서 지금의 자세에서는 도저히 충돌을 피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히던 사효심의 장검이 옆으로 급격하게 틀어졌다. 그와 함께 그의 몸 또한 검을 따라 미끄러지듯 이동했다.

사일검법 중의 투천환일(天換日)에 응조칠식경공의 신응등공(神鷹騰空)을 결합한 것인데, 그 수법의 절묘함은 절로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내게 할 정도였다. 용영검의 검기에 난자당할 듯하던 사효심의 몸이 검의 움직임을 따라 순식간에 삼장 밖으로 순간이동을 하듯 빠져나간 것이다.

진산월도 사효심의 이 수법에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 어린 음성을 토해 내지 않을 수 없었다.

“멋진 솜씨로군.”

사효심이 보여 준 것은 단순한 무공초식의 나열이 아니라 전혀 다른 두 초식을 완벽히 배합하여 새롭게 만들어 낸 놀라운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것은 어찌 보면 몸을 이동하는 보법 중의 최고봉이라는 이형환위(移形換位)보다 더욱 높은 수준의 무공일지도 몰랐다. 사용하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른 형태로 변환하여 무서운 위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농후했기 때문이다.

삼 장 밖으로 내려선 사효심은 다시 발바닥의 앞부분으로 땅을 차고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많았다. 웅조칠식경공은 점창산의 가파른 절벽 아래에 서식하는 매의 움직임을 보고 만든 무공이었다. 그래서 허공에 머무른 상태의 움직임이 압도적으로 자연히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공격이 주를 이루었는데, 속도나 기세는 빠르고 강력했지만 필연적으로 투로가 단조로워지는 단점이 있었다.

그 단점을 보완하는 것이 바로 대응경이었다.

대응경은 응조칠식경공을 보완하는 운기공으로 개발되었으나, 나중에는 응조칠식경공의 최고 경지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익혀야 하는 필수적인 무공으로 인식되었다.

발꿈치를 들고 발의 앞부분만을 이용하는 특이한 방식이어서인지 방향 전환이 자유롭고 속도의 가감에도 효과적이어서 다소 단조로운 응조칠식경공의 단점을 거의 완벽하게 해소해 주었다.

과거 사효심이 강호를 종횡했을 때, 응조칠식경공과 대응경을 이용한 그의 몸놀림이 너무도 신묘하여 어떤 사람들은 그에게 유령무영이란 별호까지 붙여 줄 정도였다.

지금도 발의 앞부분만을 이용해 땅을 박차고 허공을 미끄러지듯 날아오르는 사효심의 모습은 그야말로 허깨비를 보는 것처럼 신기막측하기 그지없었다.

대응경이 응조칠식경공의 단점을 보완하는 무공이라면, 빠르고 강력한 응조칠식경공의 장점을 극대화시켜 주는 무공이 바로 사일검법이었다.

사일검법은 검날을 비스듬히 기울여 펼치는 무공으로, 그 때문에 검의 움직임이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변칙적이면서도 검이 날아드는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서 응조칠식경공과 너무나 잘 어울렸다. 다만 그 변칙적이고 빠른 움직임만큼이나 제대로 익히기는 어려워서 점창파 내에서도 사일검법을 극성에 이르도록 익힌 사람은 서너 명을 넘지 않았다.

사효심은 응조칠식경공과 사일검법에 관한 한 당대뿐 아니라 최근 수십 년간 점창파의 고수들 중 최고의 경지에 올라 있는 인물이었다. 그래서인지 허공을 자유자재로 날아 진산월을 향해 맹렬한 기세로 달려드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경세(驚世)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산월은 피하지 않고 본격적으로 유운검법의 절초들을 펼쳐 사효심의 검에 맞서 갔다.

장창창!

귓청을 찢을 듯 날카로운 금속음이 거푸 터져 나왔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진산월의 용영검과 사효심의 검은 몇 번이고 정면으로 부딪쳤는데, 그때마다 장내의 공기를 갈가리 찢어 놓을 듯한 무시무시한 음향이 이어졌다.

수십, 수백 개의 검광이 줄지어 뿜어져 나왔고, 시퍼런 검기 다발이 여기저기 휘몰아치며 주위 바닥을 산산이 헤쳐 놓았다.

진산월의 용영검이 움직일 때면 삼엄한 검기가 장내를 온통 휘감았고, 사효심의 검이 번뜩이면 구름이 햇살에 사라지듯 검기의 장막이 갈라져 나갔다.

온갖 기이한 절초들과 가공할 위력을 지닌 검기들이 천지사방을 휩쓸었고, 그 사이를 누비는 두 사람의 움직임은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그야말로 용호상박이 따로 없었다.

섭소심은 눈도 깜박이지 않은 채 그 살벌하기 그지없는 광경을 정신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참지 못하고 옆에 있는 위지립을 향해 낮은 음성으로 속삭이듯 물었다.

“지금 누가 더 우세한 거 같아요?”

위지립은 평소의 여유만만한 모습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딱딱하게 굳어진 표정으로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아직은 누가 우세한지 알 수 없는 팽팽한 백중세요. 하지만….”

“하지만 뭐예요?”

“아무래도 이제는 슬슬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소.”

섭소심의 아미가 살짝 찌푸려졌다.

“백중세라면서요?”

“사효심은 벌써 본인의 장기를 대부분 사용했소. 하지만 신검무적은 아직 유운검법 외에는 다른 무공들을 펼치지 않았소.”

“하지만 사효심도 비장의 숨겨 놓은 한 수가 있잖아요?”

“물론 그 한 수로 신검무적을 잡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신검무적이라고 숨겨 둔 수가 없겠소?”

섭소심의 안색도 덩달아 무거워졌다.

“그러고 보니 신검무적에게 검정중원이라는 최고의 무공이 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군요.

“물론 검정중원도 무섭지만, 무당산의 악산대전에서 펼쳤던 절학도 무시할 수 없소. 형산파가 최초로 배출해 낸 육결검객 고진을 쓰러뜨린 무공 말이오. 그 외에 또 어떤 절학들을 숨기고 있는지 지금으로선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오.”

섭소심은 위지립의 말을 들을수록 표정이 좋지 않게 변했다.

“역시 인중용왕만으로는 안 되나 보군요. 그래도 그에게 상당한 기대를 했었는데.”

“어차피 각오한 일 아니겠소? 더 늦기 전에 준비를 하는 게 좋겠소. 자칫 사효심이 덜컥 쓰러지기라도 하면 우리로서는 감당하기 힘드니 말이오.” 섭소심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내가 이런 신세가 될 줄은 몰랐군요.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나이 어린 젊은 녀석에게 암습을 해야 하다니…….”

장내의 격전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던 위지립이 문득 고개를 돌려 섭소심을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차갑고 냉랭한 음성을 내뱉었다.

“지금 그런 나약한 마음은 필요 없소. 이번에 그를 끝장내지 못한다면 다음에 쓰러지는 건 우리가 될 거요.”

섭소심은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지더니 이내 쌀쌀한 음성으로 말했다.

“알고 있어요.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테니 당신이나 확실히 하도록 해요.”

“물론이오.”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은 다시 장내의 격전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섭소심은 일부러 감종간이 있는 곳으로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

감종간은 알아서 자기의 일을 할 사람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그녀는 눈앞에서 가공할 실력을 뿜어내고 있는 신검무적도 두려웠지만, 감종간도 그에 못지않게 경원하고 있었다.

지난 세월 동안 같은 조직에서 일을 하면서 알게 된 감종간은 정말 무서운 인물이었다. 그의 치밀하고 냉정한 심계와 일단 손을 쓰면 결코 상대를 살려두지 않는 잔인한 손속,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서슴없이 저지르는 심성은 그녀에게 경계심을 넘어 약간의 두려운 마음까지 들게 했다.

감종간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일을 해치울 것이다.

그녀는 마음을 가다듬고 천천히 오른손으로 머리에 꽂은 장신구 하나를 뽑아 들었다.

그녀의 손에 쥐어진 작은 나비 모양의 장신구는 어찌나 생생하게 조각되어 있는지 금시라도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그 장신구의 촉감이 손가락 끝에 느껴지자, 비로소 그녀는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었다.

‘내 선녀호접표는 아직 단 한 번도 빗나간 적이 없다. 오늘도 그렇게 될 것이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공할 싸움에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머지않아 반드시 자신의 선녀호접표가 날아갈 기회가 생길 거라고 확신하며.

‘한순간이면 된다. 단 한순간의 틈만 있다면.

그녀는 그 한순간을 찾기 위해 눈도 깜박이지 않은 채 두 사람의 결투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기다림은 마침내 결실을 맺게 되었다.

얼마 후, 선녀호접표를 발출할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오른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한 마리 나비가 기척도 없이 허공을 유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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