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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천하 : 963화


군림천하 (963)

제392장 접비검무(蝶飛舞)

사효심은 점차로 힘이 부치는 것을 느꼈다.

처음에는 충분히 감당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진산월의 유운검법은 정말 놀라웠으나 사일검법으로 상대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았고, 몸놀림이나 보법의 다채로움은 자신이 더 앞서 있다고 판단했다.

물론 진산월에게는 아직 선보이지 않은 절초들이 숨어 있겠지만, 자신도 회심의 한 수를 가지고 있어 불리할 것 같지 않았다.

하나 막상 싸움이 계속 이어지자, 사효심은 자신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응경을 제대로 뚫어 내지 못하고 주위를 맴돌기 일쑤였던 진산월의 검이 야금야금 사효심의 영역을 침범해 들어왔고, 그럴수록 사효심의 움직임도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더욱 큰 문제는 진산월이 펼치는 수법이 점점 더 정교하고 예리해진다는 것이었다.

조금 전에도 앞가슴을 노리고 날아들다 갑자기 세 갈래로 갈라져 파고드는 검초의 변화에 하마터면 옆구리 쪽을 베일 뻔하지 않았는가? 사력을 다해 몸을 비틀어 옆구리가 갈라지는 것을 피하긴 했으나, 대신 그 부위의 옷자락이 잘려 맨살이 그래도 드러나 보였다.

그런 곳이 벌써 세 군데나 되었다.

이런 상태라면 앞으로 수십 초 이내에 치명적인 상황을 맞게 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사효심은 무공을 익힌 후 아직까지 남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져 본 적이 없었다. 일곱 살의 어린 나이에 사부의 손에 이끌려 점창파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부터 그는 줄곧 주위의 선망 어린 시선을 받아 왔다.

그의 재질은 너무나 독보적이어서 입문한 지 한 달 만에 사문 어른들의 관심과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존재가 되었고, 삼 년 후에는 자타가 공인하는 점창파 최고의 기재로 불릴 수 있었다.

그의 나이가 약관을 막 지났을 때는 이미 점창파 내에서 그의 적수를 찾기 어려웠고, 사문의 최고 어른 몇 사람만이 그의 상대가 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서른의 나이에 그는 점창파 최고의 고수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가 강호에 출도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강호에서도 그의 적수는 찾기 힘들었다. 처음 일 년간 사효심은 열다섯 번의 싸움을 벌여 모두 어렵지 않게 승리를 거두었다. 그때부터 그의 명성은 전 강호를 뒤흔들었고, 그는 모든 점창파 문인들의 가장 큰 자랑거리가 되었다.

그 후로 삼 년간이 그의 최전성기였다.

그 기간 동안 그는 강호를 유람하듯 돌아다니며 이름난 고수들과 비무를 계속했고, 한편으로는 적지 않은 사람들과 친분을 쌓기도 했다.

그 와중에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아 그의 명성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구쳤고, 일각에서는 화산파 장문인인 용진산과 그를 비교하기도 했다. 아마 그가 몇 년만 더 정상적으로 활동했다면 무림구봉 중 일인이라는 용진산의 지위도 상당한 위협을 받았을 것이다.

하나 강호에 출도한 지 오 년째 되는 해에 사효심은 홀연히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그로 인해 숱한 의혹이 생겨났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행방을 찾아 강호를 헤집고 다니기도 했다. 개중에는 사효심이 점창파 장문인의 복귀 명령을 무시한 벌로 점창산의 외진 곳에 갇혀 있다는 말을 진실이라고 믿고 점창산을 뒤지거나 점창파에 항의하는 자들도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오 년 이란 시간 동안 사효심은 많은 무림인들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심어 놓았고, 그에게 호감을 느낀 자들도 적지 않았다.

하나 사효심이 강호에서 모습을 감춘 것은 사람들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이유에서였다.

당시 그는 조익현의 갑작스러운 방문을 받았으며, 그에게 패한 후 자신을 꺾은 무공을 전수하겠다는 약조를 받고 쾌의당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조익현과의 만남은 사효심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조익현을 만나기 전만 해도 사효심은 자신의 실력에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있던 데다 마땅한 적수를 찾지 못해 무공에 대한 흥미를 잃어 가고 있었다. 그러다 조익현과 겨루고 나서야 비로소 하늘 위에 하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보다 높은 무공에 대한 심한 갈증을 느끼게 되었다.

그가 모습을 감추었던 십오 년의 세월은 그 갈증을 푸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지금, 사효심은 또 다른 하늘을 보게 되었다.

이제는 조익현을 제외한 누구라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자신했건만, 진산월의 검은 그의 그런 자신감을 철저히 부숴 놓고 있었다.

사효심은 무당산에서 벌어진 악산대전에서 진산월과 고진의 대결을 두 눈으로 생생하게 보았기 때문에 진산월의 무공이 어떠한 경지에 올라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오늘 선뜻 그의 앞에 나선 것은 그래도 자신이 승리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직접 검을 맞대고 보니 진산월의 검은 멀리서 본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날카로웠다.

무엇보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검이 빨라지고 변화무쌍해진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어쩌면 그가 아직 자신의 실력을 전부 발휘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뇌리에 엄습했던 것이다.

사효심이 숨겨 두었던 한 수를 선뜻 꺼내지 못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설마 내가 고진보다 못하다는 말인가?’

사효심은 고진이 진산월과 마지막까지 거의 대등한 싸움을 벌였음을 눈으로 직접 보았기에 자신의 실력에 대해 순간적으로 회의감이 들었다. ‘아니면 신검무적의 솜씨가 그사이에 더욱 늘어나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진산월 정도의 고수라면 결코 단시일 내에 실력을 끌어 올릴 수 없다.

그건 사효심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무공에 관한 한 천부적인 재질을 가지고 있다는 사효심조차도 무려 십오 년이나 각고한 끝에야 비로소 성취를 이루게 되었지 않은가?

쉬앗!

또 다시 진산월의 용영검이 공간을 유연하게 가르며 사효심의 상반신 전체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사효심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검 끝이 끊임없이 가늘게 떨리는 것을 보고는 가슴 한구석이 싸늘하게 식어 갔다. 그 흔들리는 검이 마지막으로 어느 부위를 노려올지 전혀 짐작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빠른 속도로만 비교해 보자면 사효심의 사일검법은 결코 진산월에 뒤지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더욱 빠르고 매서운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처음 격돌했을 때는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팽팽하게 맞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싸움이 계속되면서 진산월의 검이 펼쳐 내는 무궁무진한 변화에 사효심의 빠르고 강력한 공격이 조금씩 무뎌져 가더니 지금에 와서는 누가 보기에도 사효심이 열세에 처해 있음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사효심은 결연한 각오가 느껴지는 얼굴로 분연히 앞으로 한 걸음 성큼 내디뎠다. 단순한 한 걸음이었으나, 그 걸음 안에는 응조칠식경공의 최고 수법과 대응경의 묘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야말로 사효심의 모든 정수가 담긴 걸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파앗!

끊임없이 흔들리며 다가오던 진산월의 검이 아슬아슬하게 사효심의 목덜미를 스쳐 지나갔다.

사효심은 눈도 깜박이지 않고 몸을 뒤로 굽히며 수중의 검을 앞으로 내찔렀다.

쭈아악!

마치 비단이 갈라지는 듯한 음향과 함께 강력하기 이를 데 없는 검광이 무서운 기세로 뻗어 나왔다.

전신이 활처럼 휘어진 상태에서 발출되는 그 검광은 마치 뇌전을 머금은 화살처럼 진산월의 미간을 노리고 날아갔다. 그 초식의 기세와 속도는 그야말로 가공스러운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점창파가 자랑하는 사일검법의 최고 수법인 후예사일(后羿射日)이었다.

사효심이 한 걸음 내디디면서 펼친 지금의 한 수는 가히 완벽한 보법에 이어지는 완벽한 반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하의 진산월도 이때만큼은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진산월의 몸이 한 차례 흔들리더니 앞으로 휘청거리며 움직였다.

얼핏 보기에는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하는 동작 같았으나, 기이하게도 무질서해 보이는 그 동작에 사효심이 발출한 검광이 헛되이 허공을 가르고 지나갔다.

마치 산책이라도 나온 것처럼 방만해 보이는 그 걸음이야말로 이백 년전 천하를 독보했던 비선 조심향의 무염보였던 것이다.

진산월은 다가서던 동작을 그대로 유지하며 용영검을 앞으로 내뻗었다.

검에서 발출된 것이라고 믿기지 않는 거대한 검광이 뻗어 나오며 벽력음이 울렸다.

꽈릉!

마치 커다란 기둥을 연상케 하는 그 검광은 다름 아닌 유운검봉이었다. 그 검봉이 모두 서른두 개의 검광들이 모여 이루어진 것임은 누구도 알지 못했다.

다만 사효심은 그 검광의 모습이 무당산에서 고진을 상대할 때 마지막으로 펼친 것과 비슷한 모양임을 알아보았다. 놀랍게도 진산월은 서른두 개의 검광을 하나로 모으는 동작마저 생략한 채 단숨에 유운삼십이봉을 전개한 것이다.

‘이토록 빨리 실력이 늘어날 수도 있단 말인가?’

경악한 와중에도 사효심은 오히려 눈을 빛내며 수중의 장검을 유연하게 휘둘러 갔다.

우우웅!

얼핏 보기에는 그리 빨라 보이지 않았으나, 그의 검이 움직이는 순간 진산월의 전신이 검세하에 그대로 노출되어 버렸다. 그것은 마치 검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바다가 삽시간에 진산월을 송두리째 뒤덮어 버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진산월은 한눈에 그 검초가 어딘지 눈에 익다는 것을 깨달았다.

놀랍게도 지금 사효심의 검초는 고진이 마지막 순간에 펼쳤던 대라검해와 몹시 유사해 보였던 것이다.

한 가지 차이점이라면 고진의 검초에 있었던 작은 틈 같은 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대신 질식할 듯한 검의 기세는 그때보다 오히려 강력해 보였다.

당시 진산월은 그 작은 틈을 향해 유운삼십이봉을 찔러 넣어 극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하나 지금 사효심이 펼친 것은 그러한 허점이 보이지 않았으니 무작정 유운검봉을 찔러 넣을 수도 없었다.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두 검초는 같은 초식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 분명했다.

사실 사효심이 조익현에게 전수받은 것은 고진과 같은 대라검해의 절반이었다.

그는 고진과 다른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나머지 비어 있는 요결을 채워나갔다. 그 기간이 무려 십오 년이나 소요되었던 것이다.

익힌 무공도 다르고, 나머지를 보충하는 방식 또한 달랐기에 그의 검초는 고진과는 많은 면에서 차이가 났다.

고진은 빠진 후반부를 메꾸기 위해 형산파의 모든 검법들을 연구하여 다양한 변화를 집어넣으려고 애를 썼다. 그래서 결국 초식을 완성하긴 했으나, 이질적인 부분에 틈이 생겨 반쪽짜리 대라검해가 되고 말았다.

사효심의 접근 방법은 고진과는 전혀 달랐다.

그는 변화보다는 대라검해 자체가 가지고 있는 기세와 가공할 위력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그래서 후반으로 갈수록 더 강력한 기세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으나, 인고의 나날을 보낸 끝에 마침내 끝까지 기세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완성되긴 했으나 빈틈이 남아 있는 고진의 방식과 변화 자체는 미흡해도 처음의 기세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사효심의 방식.

똑같은 초식에서 파생된 전혀 다른 두 초식이 모두 진산월 한 사람을 상대로 펼쳐진 것은 단순히 우연이라기 하기에는 너무도 공교로운 일이었다. 진산월이 뿜어낸 유운삼십이봉은 거대한 기세로 휘몰아쳐 오는 사효심의 검초와 정면으로 격돌했다.

꽈르르릉!

엄청난 굉음과 함께 주위 사방이 검광의 파편에 휩쓸려 박살이 났다. 각양각색의 화원들로 이루어진 정원은 단 한 군데도 원래의 형상을 유지하는 곳이 없어 말 그대로 폐허처럼 변해 버렸고, 휘몰아친 경기에 휩쓸린 흙먼지들이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사방을 무섭게 휩쓸었던 검기의 소용돌이가 점차로 가라앉으며 부서져 버린 꽃들의 파편이 허공에 흩날렸다. 그리고 그 꽃의 잔해들 속을 은밀히 날아오는 나비 하나가 있었다.

그 나비는 용케도 흩뿌려져 내리는 꽃 더미와 자욱한 흙먼지 사이를 헤치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곧 나비의 앞에 폐허 속에 휘청거리며 간신히 신형을 유지하고 있는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사람은 입고 있던 백의가 여기저기 찢어지고 갈라져 있었고, 특히 가슴 부위가 피범벅이 되어 부상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그가 서 있는 일대의 땅이 다른 곳보다 한 뼘 이상이나 움푹 꺼져 있어, 조금 전의 격돌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나비가 지척에 다가갈 때까지도 그 백의인은 그 자리에 선 채로 몸을 비틀거리고 있었다. 수중에 들린 검 또한 계속 흔들리고 있어 금시라도 손에서 떨어질 것만 같았다.

나비는 이내 허공을 소리도 없이 유영하여 그 사람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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