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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천하 : 972화


군림천하 (972)

서문연상은 그가 호기심에서 보는 줄 알고 그를 향해 수중의 옥 노리개를 이리저리 내보였다.

“어때? 꼬마 사형 눈에도 이게 이뻐 보여?”

유소응은 눈도 깜박이지 않은 채 그녀가 들고 있는 옥 노리개를 보고 있다가 손을 내밀었다. 그 표정이 너무도 기이해서 서문연상은 자신도 모르게 들고 있는 옥 노리개를 그의 손에 넘겨주었다.

옥 노리개를 덥석 받은 유소응의 손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유소응은 옥을 만져보다 청실과 홍실로 이루어진 술을 손가락으로 비벼 보았다. 거슬리는 부분이 하나도 없이 마치 비단으로 만든 듯 매끄럽고 손에 착 감기는 촉감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술이 매달린 매듭을 눈에 가까이 갖다 대고 유심히 살피던 유소응의 입에서 나직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으으음.”

그건 무어라고 형용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이 담긴 신음이었다. 말로 표현 못 할 애절함과 끝없이 억눌린 처절함, 그리고 마음속의 깊은 고통을 담고 있는 그 신음은 도저히 어린아이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소리에 놀라 유소응을 바라보던 서문연상과 방화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두 눈을 부릅뜬 채 옥 노리개를 노려보는 유소응의 동공에 벌건 핏줄기가 감돌고 있었던 것이다.

유소응은 손이 부서져라 옥 노리개를 움켜쥔 채 전신을 가늘게 떨고 있었다.

“꼬마 사형……”

서문연상이 놀라고 당황해서 그의 몸을 안으려 했으나 유소응은 가벼운 어깻짓으로 그녀의 손을 털어 낸 후 상점 안으로 들어갔다.

그것은 유소응에게서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생경한 모습이었다.

서문연상과 방화는 서로 마주 보고는 이내 그의 뒤를 따라 몸을 움직였다.

제지하려 했다. 상점의 주인은 처음에는 아무 생각도 없이 손님들을 상대하고 있다가 웬 어린 소년이 사람들을 밀치고 자신의 앞으로 다가오자 그를 가볍게

“순서를 기다리시오, 어린 공자.”

하나 유소응은 상점 주인과 흥정을 하던 손님을 세게 밀치며 그의 앞으로 성큼 다가섰다.

“이 노리개, 어디서 났소?”

어린 소년답지 않은 무겁게 가라앉은 음성이었다.

밀쳐졌던 손님이 항의하려다 유소응의 굳은 표정을 보고 움찔하여 입을 다물었다.

때마침 서문연상과 방화가 그의 뒤를 바짝 따라왔기에 손님은 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그들이 하나같이 인물이 준수하고 풍기는 기도가 범상치 않아서 한눈에 보아도 명문정파의 제자들임을 알아본 것이다.

“급하면 먼저 보시오. 나는 천천히 둘러봐도 되니까 말이오.”

손님이 양보하자 상점 주인도 어쩔 수 없는지 그제야 유소응을 제대로 쳐다보았다. 그는 유소응의 손에 들린 노리개와 붉게 충혈된 눈을 보고는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오래 축적된 경험으로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음을 직감한 것이다.

하나 이내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린 공자께서 마음에 꼭 드는 물건을 찾은 모양이군요. 이리 줘 보시지요. 상품을 설명해 드리고 자세한 금액도 알려 드리겠습니다.”

유소응의 표정으로 보아 금시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았는데, 의외로 유소응은 순순히 노리개를 주인에게 내주었다.

주인은 노리개를 슬쩍 보고는 자신 있는 음성으로 말했다.

“이 청홍옥완(靑紅玉玩)은 희귀한 곤륜옥(崑崙玉)으로 만든 노리개입니다. 매듭과 수실도 단순한 실이 아니라 비단의 재료인 견사(絹絲)로 이루어진 것이라 재룟값만 해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주인의 손가락이 노리개의 옥으로 이루어진 장식 부분을 쓰다듬었다.

“특히 이 정교한 세공은 무척 솜씨 좋은 장인이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깎은 것입니다. 은자로 이십 냥은 주셔야 합니다.”

서문연상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그 정도 가격은 될 거라고 예상했던 것이다.

유소응은 가만히 노리개를 보고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주인에게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아직도 눈자위가 살짝 충혈되긴 했으나, 조금 전보다는 한결 안정된 모습이었다.

그런데 눈빛은 오히려 한층 더 강해져서 주인은 절로 찔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봐도 열 살 남짓 되어 보이는데, 눈빛이나 전신에서 풍기는 기상이 보통이 아니로구나. 명문가의 후손 같긴 한데, 한편으로는 순수 중원인도 아닌 것 같고, 서장이나 변황(荒)에서 온 고관의 자식일까?’

유소응은 침착한 얼굴로 주인을 향해 나직하면서도 분명한 음성으로 말했다.

“정확히는 곤륜온옥(崑崙溫玉)으로 만들었어요. 매듭과 실은 청홍연사(靑紅延絲)라는 것으로, 특수한 염료를 써서 절대로 변색이 되지 않지요.”

뜻밖의 말에 주인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의 시선이 유소응에게 집중되었다.

유소응은 중인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도 전혀 표정의 변화가 없이 담담한 모습을 유지했다.

“노리개를 만든 사람은 부쿠 메르겐, 그는 사랑하는 딸의 결혼식 선물을 마련하기 위해 곤륜산까지 직접 가서 온옥을 구해 한 달 동안 직접 한 점 한 점 온옥을 파 들어갔어요. 손이 부르트고, 허리가 부러질 듯 아파 왔으나 그는 미련스럽게도 계속 칼로 노리개의 조각을 새겨 나갔어요.”

유소응은 품속에서 작은 칼 하나를 꺼냈다. 그가 칼집에서 칼을 뽑자 날카로운 날이 번뜩였다.

“헉!”

주인이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으나, 유소응은 손이 베일 듯 날카로운 칼을 들고도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바로 이것이 부쿠 메르겐이 그 노리개를 만들 때 쓰던 칼이에요.’

중인들은 무언가에 홀린 사람들처럼 유소응이 손에 쥐고 있는 작고 예리한 칼을 바라보았다.

유소응은 칼을 다시 칼집에 넣어 품속에 잘 보관했다.

“메르겐이 온옥을 다듬는 동안, 그의 딸과 사위는 견사 중에서도 가장 좋은 걸 구해서 연청과 연홍 염료로 물들였어요. 몇 번이나 탈색과 염색을 거듭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마침내 청홍연사가 완성되자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담아 메르겐이 만든 온옥 조각에 매듭을 지었지요.”

그의 음성은 그리 크지 않았으나, 상점 안의 모든 사람들의 귀에는 너무도 선명하게 들렸다. 모두들 그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남자는 푸른 연사로 튼튼한 매듭을 만들고 그 안에 작게 <천(天)>이라는 글자를 넣었어요. 여자는 붉은 연사로 정성스럽게 만든 매듭에 <란(蘭)>이라는 글자를 숨겨 넣었지요. 그건 두 사람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온 것으로, 서로의 몸과 마음이 그 두 개의 매듭처럼 언제까지고 하나로 묶여 있기를 바라는 기원이 담겨 있어요.”

주인이 노리개를 들고 주저하자 서문연상이 재빨리 그의 손에서 노리개를 빼앗듯 잡아들고는 매듭을 풀어헤쳐 보았다.

그러자 과연 푸른 매듭의 안쪽에 <천>이라고 쓰인 깨알같이 작은 글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 붉은 매듭에도 <란>이란 글자가 나타나자 누군가의 입에서 탄성인지 탄식인지 모를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서문연상은 매듭에서 나온 글자를 확인하고는 조심스럽고 신중한 음성으로 물었다.

“이분들의 함자는?”

유소응은 어느 때보다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남자는 유천상이고, 여자는 쿨란 알타니예요.”

쿨란은 몽골어로 ‘야생마’라는 뜻이며, 한자로 홀란(忽蘭)이라고 썼다.

“그럼 그 두 분은…….”

“그분들은 제 부모님이세요. 몇 년 전에 도적들이 두 분을 해치고 이 노리개를 가져갔죠.”

유소응의 말이 여기까지 이어지자 사람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상점 주인은 아예 얼굴이 시퍼렇게 변한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도리질을 했다.

“아니, 그…… 그 말을 어떻게 믿는단 말이오?”

서문연상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이걸 보고도 믿지 못하겠단 말이에요?”

그녀가 옥 노리개를 흔들어 보이자 상점 주인은 그녀와 유소응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저런 어린아이의 말만 듣고 이게 도난당한 물건이라고 할 수는 없소.”

서문연상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지며 냉엄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어린아이? 저 소년이 누구인지 알고 감히 그런 말을 지껄이는 거냐?”

말투 또한 사나워지며 그녀의 전신에서 추상과도 같은 기세가 뿜어 나오자, 상점 주인은 창백하게 굳은 얼굴에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쉬지 못했다.

때마침 방화가 나서지 않았다면 상점 주인은 분노한 서문연상에게 커다란 낭패를 당했을지 몰랐다.

“이보시오, 주인장. 우리는 종남파의 제자들이오. 그러니 순순히 말해 주시오. 저 노리개는 어디서 입수한 거요?”

종남파라는 말에 상점 주인은 물론이고 한쪽에서 흥미로운 얼굴로 사태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해연히 놀라 눈을 부릅떴다.

종남파!

당금 강호에서 그야말로 최고의 성세를 누리고 있는 거대 문파가 아닌가?

몇 년 전만 해도 멸문을 당했다는 소문마저 감돌았던 종남파는 초가보를 격파하여 그들이 아직 건재했음을 나타내더니 올해에 장문인인 신검무적을 비롯한 일행들이 비무행을 시작하면서 강호 무림 전체에 그야말로 거대한 태풍을 일으켰다.

비무행이 거듭될수록 그들의 명성은 높아져만 갔고, 마침내 무당산에서 벌어진 악산대전에서 구대문파 중에서도 수위를 다툰다는 형산파를 격파하면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당금 무림의 최고 문파가 되었다.

게다가 서안 일대에서 그들의 지위는 더욱 각별했다.

그들은 오랜 숙적인 화산파와의 치열한 물밑 경쟁에서 앞서 나가더니 회람연에서 화산파를 격파하면서 서안의 패자로 우뚝 서게 되었다. 그런 종남파의 제자들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되니 중인들이 모두 놀라고 흥분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어쩐지. 하나같이 신태비범하고 인물이 뛰어나다고 했더니 대종남파의 제자들이었구나.”

“우와, 나 종남파의 제자는 처음 봐. 종남산에만 머무르며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다던 종남파의 제자들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는 만큼 상점 주인의 안색도 점점 더 핼쑥하게 변했다.

서문연상이 주인을 막아서고 있는 방화의 옆으로 다가섰다.

“사형, 좋은 말로 할 거 없어요. 이자를 당장 끌고 산해루로 가자고요. 사숙조라면 일각도 되지 않아 이자의 입에서 모든 사실을 알아낼 수 있을 거예요.”

가뜩이나 창백하게 질려 있던 상점 주인은 산해루라는 말을 듣자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산해루라면 지금 서안의 최고 실력자인 철면호 노해광의 주루가 아닌가? 노해광이 어떤 인물인지 소문으로 듣던 것의 반의반만 되어도 그는 제대로 된 몰골로 산해루를 나오지 못할 게 분명했다.

“마・・・・・・ 말하겠습니다. 그건 며칠 전에 만복당(滿福堂)에서 넘어 온 물건입니다.”

“만복당?”

방화가 처음 듣는 이름인지 고개를 갸웃거리자 서문연상이 낮게 속삭였다.

“이곳 삼층에 있는 도박장이에요.”

“도박장의 물건이 왜 이곳에 있단 말이오?”

방화의 물음에 상점 주인이 재빨리 대답했다.

“원래 만복당에서는 물건을 맡기고 돈을 빌려 가는 손님들이 많습니다. 삼 일 내로 물건을 찾아가지 않으면 소유권이 만복당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넘어온 물건을 저희가 인수하곤 합니다.”

“그렇다면 이 물건을 넘긴 자는 삼 일 전까지는 만복당에 있었다는 말이로군.”

방화의 말에 서문연상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그런 도박꾼일수록 돈이 떨어질 때까지 도박장에 버티고 있을 거예요.’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 보고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복당으로 가야겠군.”

서문연상은 상점 주인의 눈앞에 옥 노리개를 흔들어 보였다.

“이건 도난품이니 압수하겠어요. 불만이 있으면 본 파로 찾아와 항의하세요.’

상점 주인은 그저 머리를 조아릴 뿐이었다.

“불만이라니요. 그럴 리 있습니까? 그런 물건이라면 의당 원래 주인에게 돌아가는 게 맞지요.”

서문연상은 옥 노리개를 유소응에게 내밀었다.

“들었지? 이건 이제 꼬마 사형 거야.”

유소응은 옥 노리개를 들고 만지작거리다가 상점 주인에게 인사를 했다.

“제가 흥분해서 결례를 범했습니다. 범인을 잡아서 전후 사정이 확실해지면 그때 정식으로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가히 명문정파의 제자다운 모습에 상점 주인은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이고, 보상이라니 당치 않습니다. 부모님의 유품이라면 당연히 공자께서 가지셔야죠. 모쪼록 공자의 일이 잘 이루어지기를 바라겠습니다.”

유소응은 옥 노리개를 품속에 넣고는 서슴없이 몸을 돌렸다.

그 결연한 모습에 서문연상이 황급히 그를 따라가며 방화에게 소곤거렸다.

“꼬마 사형은 너무 어려서 만복당에서 쉽게 들여보내 주지 않을 거예요.”

“그러면 어쩌지? 지금 유사형의 얼굴을 보니 절대로 그냥 물러서지 않을 거 같은데.”

“당연히 우리가 함께 가야지요. 무슨 일이 있어도 흉수를 알기 전에 꼬마 사형이 먼저 손을 쓰게 해서는 안 돼요. 자칫 흉수가 숨어 버리거나 종적을 놓치게 되면 공연히 종남파 제자들이 행패를 부렸다는 억측만 사게 될 테니.”

그녀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방화가 지금까지의 다소 유약하던 모습과는 달리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행패라니? 이건 작게는 유사형 가문의 원수를 처단하는 일이며, 크게는 본 파의 위신을 지키는 일이야. 그 누구도 종남파 제자를 건드리고 무사할 수는 없어.”

그 결연한 모습에 서문연상은 배시시 웃었다.

‘모처럼 마음에 드는 말을 하는군요. 꼬마 사형의 원수라면 곧 우리의 원수예요. 원수를 처단하려 어서 가지요. ‘

두 사람은 유소응의 뒤를 따라 인파 속으로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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