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그림자 자국 – 115화


시에프리너는 유모차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유모차는 조금 전 이루릴과 왕지네, 아일페사스가 그랬듯이 허공으로 사라졌어요. 시에프리너는 놀라지 않았어요. 대신 시선을 보낼 만한 다른 것이 없나 찾듯 목을 이리저리 움직였어요. 그러자 그녀의 시야 속에 자신의 몸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했지요. 시에프리너는 목을 잔뜩 구부려 자신의 몸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드래곤이 아니라도 그녀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는 건 어렵지 않을 거예요.

한편 유모차를 밀었던 왕비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좀 나은 상태였습니다. 적어도 그녀는 생각을 할 수 있었거든요. 그걸 생각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나의 왕은? 개선식에………… 여기는 어디야? 베란다가 아니야? 콰이드레드가 궁성을 파괴했기 때문에? 여기는 궁성? 드래곤 레이디가 우리를 공 격………… 드래곤 레이디는 지골레이드에게 죽었는데?’

“미끼입니까?”

유언 같은 속삭임에 왕비는 옆을 홱 돌아보았습니다. 인간을 흉내 내고 있는 괴물처럼 보이는 예언자가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어요.

“우리 아들을 미끼로 쓴 겁니까?”

“시에프리너가 없어지면 되는 거잖아! 원래부터 없었던 드래곤의 벼락에 맞아 죽을 수는 없겠지!”

왕비는 자신의 생각에 놀라며 동시에 그것에 수긍했습니다. 그녀는 빈 손으로 예언자의 가슴을 확 떠밀고는 그림자 지우개를 들어올렸습니다. 하지 만 덮개를 열려던 왕비의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어요.

배가 잔뜩 졸리는 느낌 때문에 왕비는 숨을 거의 들이마실 수 없었죠. 그녀는 왕의 개선과 콰이드레드에 의해 부서진 궁성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경 험한 것도 아니고 상상한 것도 아닌 기억들이 그녀의 팔꿈치 아래를 단단히 부여잡고는 미소를 보냈습니다. 정말 자신 있냐고 묻는 그런 미소였지요. 떠밀린 예언자가 벽에 기대선 채 말했습니다.

“전하께서는 이미 몇 번이나 그렇게 하셨습니다.”

“내가……………”

“하셨습니다. 전 기억합니다. 시에프리너가 원래부터 없는 세상을. 전하께서도 기억하시죠? 그래서 기억들이 혼란스러운 겁니다. 존재한 적도 없는 세상에 대한 기억들이니까요. 우리는 그나마 낫습니다. 아예 없어졌던 시에프리너를 보세요. 전하 때문에 그녀는 몇 번이나 원래부터 없었던 것이 되 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세계와 타협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시에프리너는 자신의 꼬리를 흥미진진한 듯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예언자의 말이 맞았어요. 그녀는 정상적인 감각을 통해 이 세계를 느끼고 있었지 요. 하지만 자신 속에서 이 세계를 재구성하진 못하고 있었어요.

시에프리너를 멍하니 보던 왕비는 엔진음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왕이 시에프리너에게 다가오고 있었어요. 무너진 바위들 때문에 상당히 복잡한 바 이크 묘기를 부리며 그녀의 왕이 다가오고 있었어요. 왕비는 시에프리너를 지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이미 진부해진 발상이었죠. 예 언자의 말대로 그녀는 몇 번이나 그렇게 했으니까요. 그리고 시에프리너가 원래부터 없었던 세상은 몇 번이나 그녀에게,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주어 졌습니다. 경험한 것도 아니고 상상한 것도 아니지만 기억은 남아 있었죠.

하지만 언제나 무엇인가가 그 세상에 반대하고 저항했습니다. 모든 이들이 원래부터 시에프리너가 없는 세상을 받아들였을 때 오직 한 존재가 그것 을 거부했지요.

왕비가 속삭였어요.

“춤추는 성좌.”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