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자국 – 12화
예언자의 탈옥은 예언자만의 기쁨은 아니었습니다. 바이서스의 왕도 그 탈옥에 기뻐했죠. 왕에게 필요한 건 책임자였고 도망친 예언자는 책임자 역 할에 안성맞춤이었거든요. 들어보세요. 배배 꼬인 심성 때문에 패전을 예언하지 않았던 예언자는 질책을 당하자 반성하는 대신 적국을 위해 예언하 겠다고 결심하게 된 거죠. 자기는 원래 바이서스를 싫어했다고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말이에요. 그러다가 멍청하게도 적국으로 도망치던 도중 사고 로 죽은 거예요. 제법 괜찮죠?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예언자를 다 파악했다고 믿게 만들기 딱 적당한 정도죠.
예언자가 멀쩡히 살아서 솔베스로 향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바이서스 사람들은 더욱 격렬하게 혀를 찰 수 있었을 겁니다. 솔베스는 한 때 시에 프리너의 영토로 불렸던 바로 그 땅입니다. 여러 모로 봤을 때 적절한 선택이죠. 낯선 사람이 나타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장소이면서 대도시와 달 리 행정력이 강력하지 않은 장소니까요. 그리고 솔베스를 차지하고 있는 적국은 바이서스 인들의 유입을 적극적으로 차단하진 않았습니다. 어쨌든 그곳은 불과 얼마 전까지 시에프리너의 땅이었지요. 대규모 전쟁이 벌어져도 시에프리너가 나타나지 않았으니 안전하다 말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해 묵은 공포가 쉽사리 사그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찾아오는 개척민이 아직 적다 보니 바이서스에서 도망쳐 온 바이서스 인이라 해서 특별히 마다할 것 은 없었어요. 적국의 호적을 받고 납세와 기타 등등의 의무를 지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예언자는 그것을 전부 받아들였지요. 직업을 구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보석 세공인이었던 예언자는 광산에서 광물 전문가 자리를 얻을 수 있 었지요. 싱글싱글 웃으며 예언자의 정착을 관조하던 왕지네는 예언자의 생활이 그럭저럭 안정되자 짐을 꾸린 다음 미안한 듯 웃었습니다.
“아직까지 당신이 왜 예언을 싫어하는 건지 모르겠어. 이젠 더 들을 시간도 없네.”
“바이서스로 돌아갈 거야?”
“아마 그럴 것 같아. 당신 죽은 걸로 되어 있으니 가족한테 안부 전해주진 못하겠네. 몰래 귀띔이라도 해줄까?”
“필요 없어. 위험하니까 그러지 마.”
왕지네는 미소로 대답한 다음 몸을 돌렸습니다. 그녀가 발을 뗐을 때였습니다.
“예언 하나 해줄까?”
왕지네는 기가 막히다는 얼굴로 예언자를 돌아보았죠. 예언자는 그녀의 눈길을 피한 채 말했습니다.
“추락하지 않는 드래곤이 언제 깨어날지 알려줄 수 있어.”
“하?”
“이 나라에서든 바이서스에서든 괜찮은 값으로 팔 수 있는 정보일 거야. 이 나라에 팔면 수많은 사람들 목숨을 구할 수도 있겠지. 그리고 잠에서 깨 는 것은, 그러니까 시에프리너의 의지라기보다는…..”
“사람 바보 만들래?”
예언자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예언자의 정강이를 한 번 걷어차 줄까, 아니면 그 코를 잡고 비틀어 줄까 고민하던 왕지네는 결정하기 귀찮아져서 그 냥 둘 다 해버렸지요. 그러곤 끙끙거리는 예언자를 비웃어주고는 몸을 휙 돌렸습니다. 예언자는 눈물이 그렁한 채 멀어져가는 왕지네의 등을 향해 말 했죠.
“너무 높은 벽은 타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