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자국 – 143화
아일페사스는 당연하게도 왕지네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하지만 왕자가 왕의 친자가 아니라는 이야기 덕분에 아일페사스는 자신이 보고 들 었던 것을 다른 시각으로 해석해 볼 수 있었죠.
‘대신 왕자를 주겠다.’
아일페사스는 입매를 비틀어 거대한 이빨들을 드러내었습니다. 왕이 제안했던 거래에 공정함은 없었어요. 비뚤어진 증오와 사악한 교활함이 있을 뿐이었지요. 배신감에 사로잡힌 채 왕은 자기 핏줄도 아닌 왕자에게서 쓸모를 발견했다고 좋아했을지도 모르지요. 이루릴이라면 그것을 사악하다고 말하기에 앞서 슬프다고 말했을지 모르지만, 아일페사스는 이루릴이 아니었지요.
왕에 대한 반감 때문에 아일페사스는 왕자를 더욱 동정하게 되었어요. 시에프리너의 레어에서 느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동정심이었죠. 순간 아일페 사스는 자신도 모르게 말했어요.
“그 아이는 바이서스 인을 먹지 않아도 돼.”
왕지네는 어차피 먹지도 못한다고 악을 쓰고 싶었어요. 아일페사스는 자신의 뒤통수를 바라보는 이루릴의 시선을 본 것처럼 말했어요.
“용서할지 말지를 결정할 권리는 나에게도 있어. 나는 시에프리너 때문에 내 권리를 포기하진 않아. 나는 그들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결정했어.” “드래곤 레이디.”
“그래. 나는 드래곤 레이디야. 그리고 이것은 드래곤에게 저질러진 폭력이야. 드래곤의 자존심 문제라고. 살해보다 더 끔찍한 폭력은 한 가지뿐이 야. 자식을 살해하는 거지. 번식을 막는 거지! 그들이 드래곤에게 한 짓이 바로 그것이야. 번식을 통제당하면서 가만 있을 순 없어! 그 누구도 드래곤 을 도축장의 칼날을 기다리는 돼지로 만들진 못해!”
이루릴은 말하고 싶었어요. 가치는 약속에서 나오는 것이지 위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 말의 무게가 얼마이든 아일페사스의 닻이 되 긴 어려울 것 같았죠. 이루릴은 왕지네에게 주의를 돌렸죠.
“왕지네. 조금 전의 그 말이 사실인가요? 정말 이 아이가 아버지 없이 태어났나요?”
절망감에 숨쉬기조차 힘들어하던 왕지네는 조금 후에야 대답할 수 있었어요.
“확실해요.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왕비의 모습을 당신도 봤어야 해요. 왕을 지극히 사랑하는 왕비에게 그보다 더 큰 저주는 없었어요. 사실을 말해도 절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테니 그보다 더 억울할 수가 없잖아요. 제가 오히려 묻고 싶어요. 그건 시에프리너의 마법이나 저주 아니었 어요? 솔베스를 탐색하는 것을 괘씸하게 여겨서…..”
“시에프리너에겐 그럴 능력도 없거니와 그런 능력이 있다 해도 그런 일을 하진 않았을 거예요.”
왕지네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계속 질문했지만 이루릴은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습니다. 그러곤 왕자를 뚫어지게 바라보았어요. 왕자는 기분 좋은 것 같았습니다. 아직 상황 판단을 할 수 없어서 그런 것일지 모르지만 왕자는 격분한 시에프리너 앞에서도, 그리고 드래곤 레이디의 등에 실려서 하 늘을 날고 있는 지금도 불만이라곤 조금도 보이지 않았어요. 곁에 어머니도 없는데 말이에요.
왕비를 생각한 이루릴은 다시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어요. 왕지네의 말이 사실이라면 왕비의 최근 나날은 정말 끔찍했겠지요. 이루릴은 권총 으로 자신의 머리를 쏜 왕비의 행동에 찬성할 순 없었지만 납득할 순 있었어요.
몇 시간 후 이루릴은 완전히 반대되는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어요. 그녀는 눈앞의 광경을 납득할 순 없지만 어쩐지 찬성하고 싶다고 느꼈지요. 아일 페사스가 완전히 경악한 목소리로 외쳤어요.
“프로타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