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자국 – 145화
프로타이스의 보석과 보물은 대부분 떨어져 나갔습니다. 하지만 사방에서 번갯불이 칠 때마다 프로타이스의 새카만 몸은 검은 섬광으로 이루어진 드래곤인 양 번득였어요. 광활하다는 표현이 적절할 듯한 날개를 좍 펼친 채 피투성이 드래곤의 목덜미를 물고 하늘에 떠 있는 그의 모습은 고대의 온갖 신비와 경이를 몸소 경험했던 이루릴에게도 숨이 막히는 모습이었습니다.
“프로타이스, 네가 기어코!”
드래곤 레이디는 참을 수 없었어요. 그날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을. 드래곤의 알이 인간에게 깨어지더니 이제 그 어미가 드래곤에게 살해당했습니다. 물론 역사상 인간을 가장 많이 죽인 것이 인간이듯 드래곤을 가장 많이 죽인 것은 드래곤일 겁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일페사스는 프로타 이스를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의 눈엔 프로타이스가 드래곤으로 보이지 않았거든요. 모든 보석과 보물이 떨어져나간 채 바이서스 임 펠의 하늘 위에 떠 있는 그 시커먼 형상은 아일페사스의 눈에 바이서스 인이었습니다.
산사태 같은 굉음으로 도전을 선고한 아일페사스는 그대로 프로타이스에게 돌진하려 했습니다.
그때 요란한 천둥소리가 나더니 시에프리너의 머리가 홱 움직였습니다. 깜짝 놀란 아일페사스가 바라보는 가운데 시에프리너의 좍 벌린 입이 프로 타이스의 목으로 날아들었어요. 그녀의 날카로운 이빨이 프로타이스의 목에 박히는 순간 시에프리너는 그대로 벼락을 토해냈습니다.
시에프리너의 입과 프로타이스의 목 사이에서 벼락이 폭발했습니다. 서로 목을 문 드래곤의 잔영이 그대로 하늘에 박혀버렸어요. 아일페사스는 엉 겁결에 눈을 감았지만 그 잔영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혼란에 빠진 그녀에게 이루릴의 마음이 다가왔습니다.
‘죽인 것이 아니에요. 추락하지 않도록 붙들고 있었던 거예요.’
‘뭐?”
‘붙잡고 있었다고요.’
‘이런 맙소사.. 안 돼! 시에프리너. 하지 마!’
눈을 뜬 아일페사스는 정말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독액을 주입하는 독사였죠. 시에프리너는 강철 덫처럼 프로타이스의 목을 문 채 그를 벼락으로 채우겠다는 듯이 계속해 서 그의 상처 속으로 벼락을 쑤셔 넣었어요. 하지만 아일페사스를 놀라게 한 건 그 참혹한 공격이 아니었습니다. 보는 쪽이 통증을 느낄 만큼 끔찍한 공격을 당하면서도 시에프리너를 문 입을 벌리지 않는 프로타이스의 모습이었지요.
프로타이스는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분노에 눈이 먼 드래곤이 목을 꽉 깨문 채 연속적으로 벼락을 폭발시키고 있는데도 프로타이스는 거침없이 날개를 움직였습니다. 그것은 날갯짓이 라기보다 몸부림이었고 그것은 비행이라기보다 앞을 향한 추락 같았지만, 그 전진 자체는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정신을 수습한 아일페사스는 억지로 라도 시에프리너를 떼어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아슬아슬한 비행이었습니다. 자칫 잘못하여 아일페사스까지 엉킬 경우 파멸적인 결 과가 일어날 것은 자명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아일페사스는 시에프리너의 정신에 다가섰습니다.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하지만 시에프리너의 정신은 벼락의 격류였어요. 아일페사스가 애타게 던진 제지의 말들은 순식간에 급류에 휩쓸려 불타버렸지요. 프로타이스가 바이서스 임펠의 상공에 서 멀찌감치 떨어질 때까지 아일페사스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온힘을 다해 시에프리너의 추락에 저항하던 프로타이스가 서서히 내려앉았습니다. 추락이라 불릴 여지를 조금도 주지 않겠다는 듯한 완만한 하강이 었지요.
바이서스 임펠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내려앉은 프로타이스는 그제야 시에프리너의 목을 문 입을 벌렸습니다. 시에프리너도 프로타이스의 목을 놓고 흙파도를 일으키며 물러났지요. 프로타이스는 머리를 축 늘어뜨려 턱을 땅에 대었습니다. 그 눈엔 장난기 같기도 하고 비웃음 같기도 한 빛이 떠돌았 습니다. 프로타이스가 말했어요.
“추락하지 마. 당신도 깨질라.”
프로타이스는 그대로 졸도했습니다. 장대한 졸도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