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그림자 자국 – 21화


왕지네는 겸양의 미덕 같은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마음껏 먹고 마셨습니다. 그러고는 자신의 발상에 도취되어 계속 떠들었습니다. 코볼드 의 보물이라면 드래곤의 보물보다 격이 떨어지기야 하지만 동시에 더 안전하기도 하다는 것이 왕지네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인 것 같았어요. 예언자 는 존재하는지도 알 수 없는 가상의 보물을 가지고 어떻게 저리 흥분할 수 있나 신기했습니다. 그는 왕지네를 향해 미소를 지었어요. 그러자 왕지네 는 탁자에 팔꿈치를 얹고 예언자를 똑바로 바라보았습니다.

“왜 울어?”

예언자는 왕지네가 말을 실수했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왕지네는 심각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어요. 예언자는 눈가를 훔쳤습니다. 손끝이 젖어들었 죠. 예언자는 몹시 당혹하여 자신의 손과 왕지네를 번갈아 쳐다보았습니다.

“왜 또 우는 거야. 누가 당신 재주 가지고 또 뭐라고 그래?”

예언자는 눈을 세게 비비고 심호흡을 했습니다.

“당신한테 할 말이 아닌 것 같지만, 나 또 어딘가에 갇혀야 할 모양이야. 한 3년 동안. 미안해.”

“뭐야?”

“3년 안에 무슨 큰일이 벌어지나봐. 그 일을 준비하는 사람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일이 미리 발각되지 않길 바라는 누군가가 있어. 정 체는 모르지만 아주 힘이 센가봐. 그 자가 내 입을 단속하기 위해 나한테 어디 좀 갇혀 있지 않겠냐고 제안했어. 내가 설령 예언을 한다 해도 아무도 듣지 못하도록.”

“뭐야, 어, 그러니까 이번엔 예언을 하지 말라고 가두는 거야?”

“정확하게는 ‘예언을 해도 쓸모가 없도록’이라고 해야겠지만, 맞아. 3년 동안 잘 먹여주고 잘 재워주겠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좀 편집증 같아. 예언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하는 정도로도 충분할 것 같은데 자기 손 닿는 곳에 가둬둬야 안심하겠다니. 아니면 그 일이 정말 엄청난 것 인지도 모르지.”

“잠깐만! 그러면 혹시 듣기 좋은 말로 데려가서 어떻게 하려는 것 아냐?”

“그건 아닌 것 같아. 원래는 죽일 생각이었겠지만 이루릴이 끼어들어 수감으로 타협을 본 것 같거든.”

“이루릴이?”

예언자는 이루릴의 방문과 그녀가 전달한 말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왕지네는 의혹을 풀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그 말을 생각해 보았어요. 곧 그녀는 화가 치밀었습니다.

“정말 너무들 하네. 하기 싫다는 짓 하라고 고문하는 쪽이나, 그렇게 몸 상해가며 증명한 신조를 못 믿겠다고 이렇게 대놓고 무시하는 쪽이나 심하 잖아, 이거. 왜 이렇게 제멋대로야. 당신 어쩔 거야? 그 감옥살이 받아들이는 건 ‘나 의지도 끈기도 없소.’ 하고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건 알 “지?”

“받아들이지 않으면 내가 아닌 누군가가 다쳐.”

“아, 진짜!”

왕지네는 폭발했습니다. 술기운이 제법 오른 탓도 있었죠. 그녀는 탁자에 엎드려 엉엉 울기 시작했습니다. 예언자는 한참 후에야 쉰 목소리로 울지 말라고 말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시끄러워.”였죠. 예언자는 어떻게 해야겠다는 계획도 없이 엉거주춤 의자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때 왕지네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녀의 눈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죠.

“그 작자가 힘이 세다고?”

“센 것 같아. 이루릴은 왕비의 죄수를 빼내는 일을 새둥우리에서 알 꺼내는 것처럼 취급했잖아. 그런데도 그 작자하고는 교섭하는 것이 낫다고 믿었 던 것 같으니까.”

“좋아. 힘으로 패악 부리는 놈은 힘으로 때려 눌러야지.”

예언자는 그 선언에 대한 설명을 요구할 수 없었습니다. 말을 끝내자마자 왕지네는 들어설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뛰쳐나가버렸거든요.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