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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자국 – 30화


저 하늘 위가 아니라 이 지상에도 무엇이든 아는 전지적 능력을 가진 이들이 있지요. 저 유명한 ‘친구의 친구’가 바로 그들입니다.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도 그들을 가리키는 명예로운 호칭이지요. 예언자도 그들의 지혜로운 말씀을 남부럽지 않게 들었지요. 다행스럽게도 그 중에는 ‘내 친구가 친구 한테 들었다는데 코볼드들은…………’으로 시작하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 정보에 따르면 코볼드들의 비밀문은 너무도 정교해서 일단 닫히면 주변의 벽과 구분할 수 없다고 합니다. 예언자는 그 말이 사실이길 바랐어요. 그 말이 거짓이라면 거기엔 비밀문이 없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거든요. 그다지 복 잡하지 않은 굴 어디에도 문처럼 보이는 곳이 없었어요.

물론 시에프리너가 이용하는 커다란 통로는 몇 군데 있었습니다만 그것들은 모두 단단히, 그러니까 닫거나 잠그는 수준이 아니라 폐쇄하는 수준으 로 막혀 있었지요. 예언자가 찾는 코볼드가 이용함직한 크기의 문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문 안쪽’에 있다는 것을 떠올린 예언자는 거의 포기 할 뻔했지요. 비밀문은 외부인들에게 들키지 않는 것이 목적이잖아요. 안쪽에서도 찾기 힘들게 만들 필요는 별로 없죠.

잠깐. 그런데 그가 정말 ‘안쪽’에 있는 것일까요? 물론 물리적인 의미에서 예언자는 분명 레어 안쪽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에프리너는 드래곤이 죠. 옛날이야기에서나 벌어지는 일이고 시에프리너가 그런 일을 할 것 같지도 않지만, 드래곤이 어여쁜 공주님을 납치하는 경우를 가정해 보지요. 만 약 출입구가 훤히 드러나는 곳에 있다면 공주는 기사가 오기도 전에 도망쳐서 드래곤과 기사 모두를 당혹시킬 수 있겠지요? 꼭 그렇게 동화 같은 이 야기가 아니라도 드래곤의 레어에 지성이 있는 포로가 들어올 여지는 충분히 있습니다. 예언자 자신부터가 그런 포로니까요. 그렇다면 문을 비밀스 럽게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는 거지요. 예언자는 겨우 자신감을 회복했어요.

하지만 자신감은 감정이지 능력이 아닙니다. 또한 시력도 아니지요.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 그 존재조차 불확실한 비밀문을 찾아낼 수는 없었습니 다. 게다가 보다 세밀한 조사는 불가능했습니다. 예언자는 벽을 두드리거나 더듬어보는 자신을 보며 시에프리너가 무슨 표정을 지을지 생각하고 싶 지도 않았습니다. 그 레어는 구조가 단순한 편이었기에 시에프리너는 머리를 조금씩 움직이는 것만으로 예언자를 시야에 가둬둘 수 있었지요.

하지만 시에프리너가 볼 수 있는 건 현재의 나뿐이지.’

예언자는 갑자기 떠올린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자신의 멱살을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뭔가 대단히 전망 있어 보이는 말이었거든요. 예언자는 호흡을 거의 멈춘 채 그 말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시에프리너는 미래의 나를 볼 수는 없지. 그런데 나는 볼 수 있어.’

‘그만둬. 미래는 보지 않아!’

‘누가 미래를 본다고 했어? 예언을 한다는 것이 아니야. 알잖아. 나는 볼 수 있어. 코볼드가 그 통로를 이용하는 과거의 모습을.’

충격 때문에 예언자는 현기증을 느꼈습니다. 예, 미래를 볼 수 있는 그는 과거도 볼 수 있었습니다. 한 번도 시도해 본 적이 없지만 예언자는 자신이 그럴 수 있다는 것을 확신했어요. 과거를 보는 것을 예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예언자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엄밀하게 말하면 예언이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마침내 예언자는 과거를 보는 것 또한 예언이라는 결론을 내릴까봐, 그래서 아무것도 못하게 될까봐 두려워져서 황급히 과거로 눈길을 보냈습니다. 생전 처음 해보는 일이었어요. 잘 안 될 가능성이 높았죠. 만약 그 코볼드 통로라는 것이 왕지네의 발랄한 상상에 불과한 것이라면, 역시 예언자는 아 무것도 볼 수 없을 거예요. 예언자는 비관적 전망으로 자신을 안심시키며 과거를 보았습니다.

다음 순간 예언자는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드래곤은 평상시에도 긴장한 고양이만큼이나 민첩하지요. 하늘을 날 수 있을 만큼 몸이 가벼워서 그런 건지도 몰라요(상대적으로 가볍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드래곤과 고양이 사이에는 차이가 있지요. 이를 테면, 평범한 고양이라면 예언자가 벽을 후려치며 통곡하기 위해 달려간다는 생각 같은 건 못 했을 겁니다. 하지만 벽에 도달한 예언자가 실제로 팔을 휘두를 때 시에프리너는 위로의 말을 떠올리고 있었지요. 예. 드래곤에겐 감정이입의 능력이 있지요. 가장 열정적인 애묘인들도 자기 고양이가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지는 못하는 그 능력 말입니다.

하지만 예언자가 정확히 휘두른 팔이 얼핏 봐선 잘 보이지 않는 바위 틈 사이로 사라졌을 때 시에프리너는 움찔했죠. 급격한 불안감에 시에프리너가 입을 열었을 때 예언자 앞쪽의 벽에서 비밀문 또한 열렸습니다. 예언자가 그 현상에 깜짝 놀랐다면 시에프리너는 그를 붙잡을 수 있었을 거예요. 하 지만 예언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문 안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 사실이 가리키는 바는 자명했죠. 시에프리너는 분노보다 좌절감에 휩싸인 채 비밀문 에 머리를 들이받았습니다.

그 충격은 가장 둔한 자들을 제외한 솔베스의 주민들 대부분이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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