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자국 – 34화
예언자가 바이서스 임펠을 목전에 둘 때까지 감시의 눈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예언자는 아랫입술을 씹으며 바이서스 임펠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도시 안에서는 틀림없이 천리안이 쓸모가 없을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아서 감시자를 찾는 건 건초 더미에서 바늘 찾기일 텐데 천리안은 더 많은 건초 더미를 제공할 뿐이죠. 다행히 그런 불리함은 양쪽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예언자는 자신 또한 바늘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바이서스 임펠에 들어선 예언자는 자신의 기대가 예상 이상으로 적중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도의 거리는 사람으로 미어터질 것 같았어요. 창문과 가로등은 꽃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반쯤 실성한 아이들이 어른들의 허벅지를 마구 들이받고 있었죠. 곳곳에서 웃음소리와 음악 소리가 들려왔고 평상시엔 참배객에게도 공개하지 않는 각 교단의 귀중한 보물들이 화려한 가마나 수레에 실려 대로를 행진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바이서스 임펠은 축제 중인 것 같았습니다.
수도 토박이임에도 불구하고 예언자는 그게 무슨 축제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모든 신전의 보물들이 한꺼번에 공개되는 축제는 들어본 적도 없었거 든요. 하지만 물어볼 수도 없었어요. 예언자는 패전을 예언하지 않았던 것 때문에 악명이 높았지요.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자신의 얼굴을 알 고 있을 가능성을 예언자는 간과할 수 없었습니다. 예언자는 되도록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하며 한산한 뒷골목을 통해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궁성으로 다가가면 갈수록 인파는 점점 불어났습니다. 예언자가 어떤 길로 접어들어도 곧 군중이 그를 가로막았어요. 급기야 예언자는 마음 대로 움직일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거대한 사람들의 무리가 궁성으로 향했고 예언자는 거기에 휩쓸려갈 수밖에 없었죠. 할 수 없이 예언자는 모자를 깊이 내려쓴 채 주위 사람들과 보조를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지요.
떠들썩한 고함 소리 가운데서 선물이라는 말이 들렸고 축복이라는 말도 들렸습니다. 그 외에도 긍정적인 단어들이 범람하고 있었죠. 아무래도 뭔가 경사스러운 일이 있어서 벌어진 축제인 것 같았습니다. 예언자가 수도를 비운 동안 바이서스가 전쟁에 이기기라도 한 걸까요? 하지만 그런 경우라면 종단들이 전부 참가하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전쟁을 비롯하여 모든 폭력을 싫어하는 종단도 있었거든요. 예언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궁 금했습니다. 그러다가 예언자는 왕자라는 단어를 들었습니다.
예언자는 어리둥절했습니다. 그가 기억하기로 바이서스의 왕가엔 왕자가 없었어요. 거창한 패전과 그 이후의 책임 논란에도 불구하고 왕위가 안정 적이었던 것은 왕자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왕을 쫓아낼 땐 쫓아내더라도 일단 왕자는 보고 난 후에 그래야 했거든요.
‘왕자를 보고 나서……… 아, 그랬던 것이군.’
그것은 왕자 탄생 축하였습니다. 예, 예언자가 무슨 축제인지 알 수 없었던 것은 그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종단이 함께 축하하는 것도 그 때문이죠. 왕실은 패전을 잊기 위해서라도 왕자 탄생을 대대적으로 경축해야 했을 겁니다. 몇 마디를 더 엿들은 예언자는 사람들이 왜 궁성으로 몰려드는지도 짐작했습니다. 오늘 궁성 임펠리아의 베란다에서 왕자의 모습이 공개된다는군요.
예언자는 자신도 어머니가 되었으면서 남의 자식을 가지고 인질극을 벌인 왕비를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혹시 왕자의 장래가 궁금했던 걸까요? 예 언자의 얼굴이 싸늘해졌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인생 전부를 도둑질당하면 왕자가 퍽도 감사하겠다. 내 자식에겐 절대로………………
예언자의 무릎이 휘청였습니다.
열기 가득한 인파 한가운데서 예언자는 겨울 호수에 빠진 듯한 오한을 느꼈습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귀를 찌르고 피부를 할퀴는 것 같았습니다. 예언을 가능하게 하는 상상력, 그 상상력이 인정사정없이 예언자를 나락으로 밀어붙이고 있었지요.
예언자가 쓰러지지 않은 것은 사방에서 그를 밀어붙이고 있는 군중 때문이었어요. 궁성을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보기 위해 사람들은 앞쪽에 있는 사 람을 뚫고 지나갈듯이 밀어대고 있었지요. 물론 같은 현재에 있는 그들은 광산의 유령들과 달리 서로를 뚫지 못했지요.
예언자는 밀집한 사람들의 숨소리에 귀가 멀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고개를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