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그림자 자국 – 43화


예언자는 어떤 중년의 여인을 향해 말했습니다.

“부인. 아드님에게 더 신경 쓰셨어야죠. 본인은 잘 하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아드님이 그런 식으로 황당하게 죽으면 부군께서 부인께 뭐라 하겠습니 까. 뭐, 부군이 할 어떤 말보다 부인이 스스로에게 할 말이 더 참혹할 테니 상관없으려나. 아, 참. 힘들고 짜증나겠지만 자살 시도는 세 번 하세요. 처 음 두 번은 실패하거든요.”

여인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더니 갑자기 휘청거렸습니다. 곁에 있던 노인이 황급히 그녀를 부축했지요. 하얀 수염에 깡마른 얼굴의, 펜촉 꽤 뭉개 봤을 듯한 노인이었지요. 예언자의 다음 말은 바로 그 노인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거기 학자님도 한 분 있군요. 스스로 꽤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겠지만 당신의 그 ‘평생의 업적은 쓰레기에요. 죽을 때까지 뭐가 잘못됐는지 고민 해도 답은 못 얻을 겁니다. 그 이론은 정말 끔찍할 정도로 박살나기 때문에 당신 제자들은 창피해서 유고록도 안 만들어줄 겁니다.”

노학자는 눈을 크게 떴습니다만 뭘 보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조금 후 그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죠. 여인을 지탱하지 못한 노인은 여인과 함께 주저앉았습니다.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던 군중 사이에서 어떤 중년 남자가 왈칵 화를 내며 예언자에게 고함을 질렀습니다. 정의와 보편 적 윤리관에 관한 교훈적인 내용이 제법 담긴 비난을 듣던 예언자가 나른하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얼마 후에 살해당합니다. 범인은 끝내 알려지지 않을 예정이기 때문에 나도 알려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결혼식 피로연에서 따님께 무 슨 말을 할지 고민하는 건 관둬요. 피로연에서 한 마디 하기는커녕 따님의 결혼식에도 참석할 수 없으니까.”

중년 남자는 얼굴이 허옇게 변하더니 갑자기 꾸르륵 소리를 내며 쓰러졌어요. 예언자의 공허한 눈에는 기절한 남자에 대한 털끝만큼의 관심도 떠오 르지 않았습니다.

“아, 이건 범인에게 보내는 응원이 될 수도 있겠군요. 이봐요, 예비 살인범. 잘 들었죠? 그 계획대로 하면 절대로 탄로나지 않아요. 걱정 말고 해치워 요. 범죄 역사상 가장 특이한 범인이 된 당신에게 경의를 담아 이걸 보냅니다.” 예언자는 저속한 손짓을 해보였어요. “당신 양심이야 당신이 챙길 문 제니 내 알 바 아니고.”

예언자는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지적하며 무시무시한 예언을 남발했습니다.

그 기적에 대해 군중은 정적으로 화답했지요. 양쪽에서 붙잡고 힘을 준 유리판 같은 아슬아슬한 정적이었어요. 깨지기 직전까지도 멀쩡해 보이지만 그 직후 요란하게, 너무도 순식간에 깨져버리는 그런 유리판 말입니다.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베란다 뒤편에서는 왕비가 딱딱하게 굳은 채 예언자의 등을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예언자를 제지해야 된다고 계속 되뇌고 있 었지만 그녀는 움직일 수도, 그녀의 명령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말을 할 수도 없었어요. 언젠가 자신의 손가락이 머물렀던 등을 보며 왕비는 무슨 말 을 웅얼거렸지요. 아무도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어요.

예언자가 말했습니다.

“한 명씩 하기 귀찮군요. 여러분 모두에게 한꺼번에 말하겠습니다. 두 번 말하지 않을 테니 잘 들으세요.”

예언자의 입에서 노래 같기도, 흐느낌 같기도 한 말이 흘러나왔어요. 알아듣기 어려워야 할 터이지만 거기서 그 말을 못 알아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 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가장 높이 날 것이다.

그의 누이는 가장 뜨거운 불을 뿜을 것이다. 

그의 딸은 천 년 동안 세계를 제패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바이서스를 파멸시킬 것이다.

예언을 끝낸 예언자는 마치 박수를 기다리듯 군중을 둘러보았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완전한 침묵뿐이었죠. 예언자는 지친 듯한 얼굴로 몸을 돌려 궁성 안으로 사라졌습니다.

잠시 후 천둥 같은 비명과 함께 바이서스 임펠 역사상 최악의 집단 소요가 벌어졌습니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