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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자국 – 51화


드래곤 네 마리가 솔베스를 향해 날아갔습니다. 아메르파라, 실키즈레이, 콰이드레드, 티할라카드가 그들의 이름이었어요. 드래곤은 한 마리만 머리 위에 떠도 피가 식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데 네 마리가 나란히 날아가니 장관도 그런 장관이 없었지요. 심지어 그 네 드래곤들도 자신의 모습에 놀라 고 있었어요. 드래곤들의 편대 비행이라는 건 사실 대단히 드래곤답지 않은 일이니까요.

그 전대미문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는 드래곤들을, 이루릴이라면 어리다고 표현했을 겁니다. 그들은 모두 드래곤 라자가 사라진 후에 태어난 드래곤 들이었지요. 평소 인간에겐 별 관심도 없었어요. 만약 인간들에게 마법이 남아 있었다면 최소한의 주의는 보냈겠지만 그렇지도 않았으니까요. 그들 이 ‘들판에 인간들이 있네.’라고 말할 땐 인간들이 ‘산에 다람쥐와 토끼들이 뛰어다니네.’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어조인 셈이지요. 그런 그들이 인 간에게 처음 보내는 적극적 감정이 분노라는 것은 인간의 입장에선 꽤 끔찍한 일이었죠. 젊지만 그래서 편대 비행이라는 엉뚱한 일도 할 수 있고 정 의감이라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하는 그들은 시에프리너가 처한 처지에 분노를 느꼈어요.

‘감히’. 그들이 사용할 수 있는 부사어는 그것뿐이었지요. 감히 인간 따위가? 여러분들이 누워 있는 아기에게 다가가는 바퀴벌레를 보았을 때 느끼 는 감정을 적절히 부풀린다면 그들이 느끼는 감정의 근사치 정도는 될 거예요. 그 분노 다음에 그들이 마주하게 된 것은 짜증이었지요. 바이서스가 미래의 위험이라는 이유로 시에프리너를 공격한다면, 언젠가 다른 드래곤들에게도 같은 짓을 할지 모르죠. 그것은 정말 짜증나는 이야기였지요. 나 이가 젊은 그 드래곤들은 아직 그리 대단한 일을 한 적도 없었기 때문에 더 짜증스러웠고요. ‘난 인간들한테 별로 한 일도 없는데? 그런데 내가 앞으 로 할 짓 때문에 나를 공격할지도 모른다? 뭐 이런 것들이 다 있냐.’ 그리고 그 짜증 다음에 그들을 찾아온 것은 놀라움이었지요. 그들은 필요하다면 다른 드래곤과 힘을 합칠 수도 있다는 황당한 생각을 품고 있는 드래곤이 자신 외에 셋이나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랐어요.

지금 그들은 그들 넷이 시에프리너를 지켜주겠다고 말했을 때 그녀가 보일 반응, 그리고 그 반응을 보며 그들이 느낄 감정을 생각하며 잔뜩 고조되 어 있었어요. 그 때문에 그들은 비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관심을 제외하면 지상에 눈길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드래곤들은 지상에서 한 인간 여자가 그들을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죠.

그 여자는 상당히 잘 숨어 있기도 했어요. 위쪽에서 보면 그림자 때문에 보기 힘든 바위 틈 사이에 몸을 숨긴 그녀는 나이프로 옆의 바위에 4라는 숫 자를 새기고 있었어요. 나이프를 갈무리한 여자는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네 마리의 드래곤은 한쪽이 더 긴 쐐기꼴을 한 채 날아가고 있었죠. 숨 이 멎을 만큼 무시무시한 그 모습은 인간에 대한 우주의 부정 같았습니다. 여자는 이를 악물고는 발작적으로 어떤 행동을 했습니다.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늘에는 세 마리의 드래곤이 거칠 것 없는 기세로 날아가고 있었죠. 그들의 뒤편으로 하늘이 찢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였어요. 여자는 바위 벽에 새겨진 3이라는 숫자를 보고는 이를 악물었습니다. 그러고는 발작적으로 어떤 행동을 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 행동을 하기 직전 그녀는 세 마리의 드래곤이 이루고 있는 거대한 삼각형이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좌우 대칭이 완벽한 쐐기꼴이 었지요. 여자는 진저리를 치고는 하려던 행동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러고는 의혹이 가득한 눈으로 바위 벽에 새겨놓은 3이라는 숫자를 보았어요. 잘 못되거나 이상한 점은 없었어요. 그 숫자는 조금 전 그녀가 새겨놓은 그대로였습니다.

그녀는 당장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드래곤들을 쳐다보았습니다.

지상에 어떤 인간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도 못한 채 아메르파라, 콰이드레드, 그리고 티할라카드는 영광에 찬 모습으로 위엄 있게 하늘을 가로질렀 습니다. 그들은 그들 셋이 시에프리너를 지켜주겠다고 말했을 때 그녀가 보일 반응, 그리고 그 반응을 보며 그들이 느낄 감정을 생각하며 흥분하고 있었지요. 그들 각자는 자신과 같은 뜻을 품고 있는 드래곤을 둘이나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에 아직도 놀라워 하며 힘차게 솔베스를 향해 날아갔어 요.

정말 장엄한 광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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