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자국 – 64화
총성이 울려퍼지자 아기는 기겁하여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왕지네는 너무도 기가 막혀서 꼼짝도 할 수 없었죠. 놀란 병사들과 시녀들이 달려왔을 때 도 왕지네는 왕비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몰려온 사람들에게 왕비가 침착한 어조로 설명했어요.
“이 아이가 귀머거리가 맞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소. 어머니의 노파심이지. 꼼짝도 안 하는 걸 보니 확실하군. 가서 일들 보시오.”
납득이 간다면 가는 설명이지만 전체적으론 꽤 어이없는 설명이었죠. 병사들은 황당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권총과 왕자가 모두 왕비의 손에 있어서 딱히 뭔가 위험하다고 말할 것이 없었고, 또 남자 병사들은 수유중인 왕비를 그렇게 쳐다보고 있어도 되는 건지 알 수 없어서 당황했어요. 결 국 사람들은 어정쩡한 말을 남기고 사라졌지요. 문이 닫히고 조금 후 왕지네가 쥐어짜내는 목소리로 말했어요.
“아기가 있어요. 어떻게 바로 옆에서 총을……………”
“뒤를 봐.”
왕비는 총을 든 손을 팔걸이에 내려놓았지만 왕지네는 그 손에서 시선을 떼기 어려웠죠. 그래서 그녀는 곁눈질로 뒤를 보았어요. 그녀는 몸이 식는 기분을 느꼈죠. 벽에는 칼 헬턴트를 그린 상상화가 있었어요. 만약 그 고대의 현인이 그림 속 인물이 아니라 살아있는 인물이었다면 조금 전 두개골 관통상으로 사망했겠지요.
왕비는 목이 터져라 울고 있는 왕자를 이리저리 흔들며 마치 자장가를 부르듯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이 총엔 이제 총알이 다섯 발 남았어. 또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면 두 다리, 두 팔, 그리고 배 순으로 쏘겠다. 머리를 쏴서 간단히 끝내주진 않겠다 는 거야. 내 말 알아들었으면, 아가씨, 나하고 말놀이할 생각은 하지 마.”
왕지네는 독한 혐오감에 취할 것 같았어요. 그녀는 허리를 의자 팔걸이에 밀어 딱딱한 감촉을 느껴보았습니다. 그녀의 허리엔 그녀를 조사한 자들도 신경 쓰지 않고 지나간 조그마한 물건이 하나 매달려 있었지요. 새끼손가락만 한 크기의 지저분한 초가 들어 있는 작은 금속 원통은 전혀 위험해 보 이지 않았거든요. 게다가 말을 나눌 친구도 없었던 귀머거리 처녀가 어릴 때부터 혼자 가지고 놀았다는 장난감을 어떻게 뺏겠습니까.
왕비가 말했습니다.
“너는 이루릴을 위해 일하나?”
“아니오. 전하. 이루릴과는 그때 딱 한 번 같이 행동했을 뿐이에요. 그 후로는 그녀를 만난 적도 없습니다.”
“그럼 아가씨는 누굴 위해 일하지?”
“보통 자신을 위해 일해요.”
“솔베스와 이곳에 나타난 이유는?”
“그날 갱도에서 그 사람을 꺼내준 건 저였어요. 볼일이 있어서 그 갱도를 조사 중이었는데 길을 잃고 헤매는 그 사람을 발견했죠. 그래서 꺼내줬고 집에 잘 들어갔나 확인하려고 들렀던 거예요. 여기에 나타난 이유는, 그 남자가 안 하겠다던 예언을 왜 하게 되었는지 물어보기 위해서였어요.” “너는 도대체 누구지?”
“저는 왕지네라고 합니다. 벽타기꾼이지요. 우리나라와 발탄의 전쟁이 끝나고 나서 예언자가 여기저기서 치이고 다닐 때가 있었죠. 그때 저는 예언 자의 집에 들어가 예언을 훔치려고 했어요. 그렇게 모진 소리를 듣고도 내놓지 않는 것이라면 훔칠 만한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왕비는 언젠가 예언자가 자신의 침대에서 졸린 눈을 억지로 뜨며 지어보였던 표정과 비슷한 표정을 지었지요.
“하지만 알고 보니 그게 훔칠 것이 아니더군요. 예언자는 다른 사람들 생각해서 예언하지 않는 거라고 했어요.”
“예언은 폭력이다?”
“예. 왜 예언이 폭력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어쨌든 폭력을 훔친다는 건 좀 이상하잖아요. 열심히 담 넘어 들어가서 주인 깨운 다음 화끈하게 두드 려 맞고 나오는 것과 비슷하겠지요? 그래서 관두기로 했어요. 그런데 얼마 후 전하께서 그를 가두고 고문하시더군요. 그래서 때마침 만난 이루릴과 함께 그 사람을 탈출시켰어요.”
“왜지?”
“왜냐니오.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요. 다른 사람들 생각해서 예언을 안 하는 건데 고문을 받다니오. 설사 그 사람이 틀렸다 해도 그건 여전히 말이 안 돼요. 왕비 전하께 그 사람을 고문할 권리가 있었던가요? 그가 예언을 거절했다면 전하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은 마음이 바뀌면 연락 달라고 말한 다 음 잘 배웅하는 일뿐이었다고 생각해요. 그게 상식인 것 같은데요.”
“그가 무고하다는 말인가? 예언을 거절해서 왕이 패배의 고통을 맛보게 한 것이 누군데?”
왕지네는 가늘게 뜬 눈으로 왕비를 쳐다보았습니다.
“전하. 그 사람의 말에 따르면 파멸이라는 운명에 대한 바이서스의 싸움은 패배로 끝나게 되어 있죠. 그렇다면 지금 바이서스를 패배할 전쟁에 내보 내고 있는 사람은 누구죠?”
왕비는 상대방의 말이 거슬린다 해서 총격으로 대꾸할 정도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왕지네의 다리에 총을 쏘아야겠다고 결정한 것은 질문 에 질문으로 대답하면 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어요. 하지만 왕지네가 조사를 받았기 때문에 비무장일 거라 생각한 왕비는 그리 잽싸게 움 직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림자 지우개를 움켜쥐는 왕지네의 동작이 더 빨랐죠.
그녀는 그것을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