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1부 – 107화
- 107 –
아까 사영과 헤어졌던 한 장소로 한참 되돌아가다가
문득 기분이 이상해서 뒤를 돌아보았다.
이미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의 거리였는데도 삼수생 왕소설은 아직도 처음과 똑같은 자세로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제기, 저건 예전에 소호루의 이화가 날 배웅하던 그 분위기잖아?
설마 왕소설은 처음 만난 날 백마 탄 왕자님쯤으로 여기고 흠모의 마음을 품게 된 걸까?
만약 그렇다면 참으로 안된 일이다.
난 백마 타고 등장한 이 나라의 고귀한 태자가 아닌 흑주타고(?) 출몰한 암흑가의 두목 극악서생인 것을…
내가 뒤를 돌아본 다음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있자 혈월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본래 약간의 소문은 있었습니다만… 정말이었던 모양입니다.”
“어떤 소문 말인가?”
“예, 왕소설 소저가 비록 학문이 출중하다고는 하나 그건 성실한 자세로 많은 책들을 읽어 외운 것이고 응용력에는 좀 문제가 있으며 차분해 보이는 용모와 달리 덤벙대는 성격이라는……”
그랬었군.
어찌 보면 소령이가 연상되기도 하지만 소령인 그래도 나은 것이, 지가 가끔 상황판단에 문제가 있다는 거 알고 옆 사람에게 물어보고 행동을 결정하려는 노력이라도 보인다.
근데 아까 그 왕소설은 불확실한 근거를 바탕으로 한 자기 판단을 철썩 같이 믿고 지 오빠까지 옆구리 찔러 내 앞에 엎드리게 했던 것이다.
세 가지가 뛰어난 미녀라고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영 아닌 것 같고, 혹시 확실한 건 생긴 용모만이 아닐까?
예쁜 여자 가수는 노래 조금 못해도 주변에서 무작정 추켜 세워주고 심지어 대학입시 혜택도 받는 20세기 어떤 나라(?)의 경우가 생각이 나는 건 좀 비약일까?
뭐, 물론… 아무래도 나와는 별로 상관없는 얘기지만 말이다.
얼마 후, 우리는 출발했던 장소로 돌아가 아까 죽은 엑스트라 여자와 그녀를 죽인 살수, 그리고 사영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아,하하- 그럼 그렇다고 춘전이라도 좀 남기시지… 공연히 이 친구만 고생시켰습니다. 그려.”
짐짓 미안한 표정으로 사영은 아까 흑주가 기절시켜 놓고 갔었던 살수의 어깨를 정겹게 두드렸다.
사영에 의해 의식을 되찾은 다음, 우리가 오기 전까지 ‘여기 있던 사람 못 봤냐’고 고문을 당하고 있었던 그 살수는 힘겹게 한 번 씨익- 웃으며 괜찮다고 하고는 픽~ 쓰러져 다시 졸도해 버렸다.
어쨌든 추가된 인원 총 12명.
그 중에서 몇 명을 정리해고(?) 하면서 나는 팀을 다시 정비했다.
흑주와 사영에게 연이어 당해서 과연 다시 활동할 수 있을지 의문시되는 그 친구와 네 명은 천인군도로 복귀시키고 나머지 혈월을 포함한 일곱 명은 내 호위를 시키기로 했다.
난 처음부터 문제시되긴 했지만 안 하느니보다 나을 것 같아, 혹시나 하고 챙겨왔던 나 진유준 본래 얼굴 닮은 인피면구를 썼고 대신 혈월과 다른 살수들은 모두 복면을 벗겨 맨 얼굴이 되게 했다.
음… 근데 벗겨보니 우리 혈랑대와는 달리 이 천인군도의 살수들은 하나같이 유순하고 평범한 인상들이었다.
특별한 케이스는 혈월이었는데, 목소리만 들었을 때는 혈랑대 대주처럼 칼자국 찌익 그어진 험상궂은 얼굴을 연상했건만 의외로 매우 핸섬하고 잘생긴 얼굴이었으며 나이도 내 또래의 젊은 청년이었다.
“흠, 자네가 요즘 내 뒤를 이을 수 있는 자로 평가받는 다는 그 혈월인가?”
“부, 부끄럽습니다. 후배는 한참 멀었습니다.”
위 아래로 훑어보며 하는 사영의 말에 얌전하게 대답하는 혈월… 아까의 그 살벌한 인상은 간데 없고 길 가다 고참 만난 해병대처럼 군기가 든 모습이었다.
살수계도 군기가 꽤 센 모양이지?
암튼, 최종적으로 이루어진 구성은 나와 사영, 흑주는 사영이 구해 온 마차 안에 들어가 있고 혈월을 중심으로 한 천인군도 살수 일동이 마차를 호위하는 무사들이 되는 것이었다.
외견상, 사람들을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면 돈 좀 있는 집 도련님 행세를 하기로 한 건데, 당장 연락할 수 있는 우리 비화곡의 월영당이나 외당 고수들을 동원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외부조직을 쓰는 것이 더 좋을 듯하여 생각한 진행이었다.
그로부터… 첨부터 그냥 이럴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썽 없는 순조로운 시간이 한동안 계속되었으나, 마차를 모는 혈월이 일대의 길을 잘 알아 방향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인적 드문 길을 골라 달리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 다음날 오전까지도 그 평온함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사영,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길가 바위에 걸터앉은 내가 퉁명스럽게 묻자 사영은 먼 산을 바라보며 어색한 헛기침을 해댔다.
“커흠, 음… 산길이 좀 험했던 모양입니다.”
“이게 험한 산길이면 지금 지나는 저 마차는 왜 아무렇지도 않지? 아니 달리는 소리도 아주 부드럽구먼.”
내가 조금 뻐근한 어깨를 내 손으로 주무르며 노려보자, 사영은 반대편 길가에 뒤집혀 져있는 우리 마차를 힐끔 보고는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불과 하루도 지나지 않아 바퀴가 빠지는 마차를 판 그 가게의 상호는 쾌유소(快遊所)였습니다. 나중에라도 멸소시킬까요?”
이 능글맞은 아저씨 같으니 끝끝내 자기가 잘 못 구해왔다는 소리는 안 한다.
정말이지 대교 파파 만 아니었어도 그냥, 으~.
“저, 곡… 아니 도련님. 아무래도 저기서 새로 마차를 구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혈월이 중재하듯 나서 말하며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약 1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객점이 하나 보였다.
제기, 이제 반나절도 안 남았다는데 이게 무슨 꼴이람?
그냥 남은 말을 직접 타고 갈까도 생각해 봤지만
말 등에 타고 그렇게 오래가는 건 내키지 않는데…
역시 마차를 또 구해야 하나?
“아참, 저 객점은 근동에서 꽤 유명합니다. 도련님께서도 한 번 들러보시는 건 어떨지요?”
혈월의 말에 의하면 저 대단치 않아 보이는 2층 객점이 유명한 것은 다름 아닌 그 곳의 물 때문이라고 한다.
객점 뒤의 바위틈에서 솟는 물이 그 맛도 맛이지 만 몸에도 좋고 특히 술 마신 다음날의 숙취해소에 아주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나?
숙취해소라, 안 그래도 지난밤에 남자로 돌아온 기념으로 한잔 마셨더니 아직 머리가 맑지 못한 것 같은데…
조금 당기는 걸? 음…
하지만 목적지 다 와서 또 말썽이 생긴 현 상황을 보았을 때, 어쩐지 저 객점에는 무슨 사건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불길한 기분이 든다.
생각해 보면, 내가 무슨 온갖 고난을 예약해 놓고 치르는 무협지 주인공이라도 되는 양 지금까지 조용히 다닌 날이 드물었다.
적어도 그런 운세라면… 말썽이 많을 것 같은 장소는 피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물맛이 그리 좋다면, 누가 가서 떠와. 그리고 마차도 구하는 대로 이쪽으로 가져오.”
내가 별로 내키지 않는 곡주티를 내며 명령을 내린 순간이었다.
“닥쳐랏! 이 흉적!”
엉뚱한 곳에서 대답이 들려와 놀라서 주변을 돌아보니 다들 우리가 왔던 길 아래쪽을 돌아보고 있었다.
우리 일행 중에 나에게 그런 소리를 할 사람이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하도 타이밍이 잘 맞아서 속으로는 좀 놀랐다.
그나저나 뭐야, 이쪽 방향으로 맹렬하게 달려오고 있는 저 인간들은?
“더러운 음적. 네놈이 기어들 곳은 하늘아래 존재하지 않는다.”
“이 살인마야. 우리 ‘화산이협(華山二俠)’이 화산파 형제들의 혈채를 받고야 말겠다.”
추가로 들려오는 외침들! 엑? 이럴 리가 없는데? 도대체 어디서 꼬리를 밟힌 거지?
“…아닙니다. 다들 맨 앞의 인물을 추적하고 있는 상황인 듯합니다.”
내가 빨리 튀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 사영을 바라보았더니 그의 대답은 그랬다.
그래…? 흉적, 음적에 살인마라… 원판 닮은 놈이 나타난 모양이지?
어… 그래, 과연 우리 앞에 도달하기도 전에 맨 앞의 인물이 갑자기 달리는 걸 멈추더니 추적자들과 한바탕 싸움을 벌이는군.
휴우~ 다행이다. 음… 평소라면 당근 열심히 쌈구경을 하겠지만 지금은 좀 불안해서 안되겠다.
더구나 저 인간들 얽혀 싸우는 장소가 조금씩 이쪽으로 이동하는 흐름인 것도 같고……
“화산이협이라면 상당한 고수들이고 다른 인물들도 만만치 않은 고수들로 여겨지는데, 저 젊은이 정말 대단하군요.”
어이- 사영. 자꾸 구경하고 싶게 만들지 마쇼.
“지금 그런 거 구경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공연히 귀찮아지기 전에 자리를 피하자구.”
내 말에 따라 우리 일행은 객점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는데 사영은 계속 아쉬운지 간간이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곤 했다.
“아, 이런-!”
사영이 왜 그런 소리를 내나 싶어 돌아보려는 순간, 머리 위로 휘익~하는 바람소리가 스쳐갔다.
어느 사이 포위망을 뚫었는지 원판 닮은 놈이 우리 머리 위를 넘어서 달려나간 것이었다.
이어 그 뒤를 쫓아 우르르 달려온 자들도 똑같이 머리 위로 휙!휙!휙! 지나간다.
음… 이 것들, 사람 머리를 막 넘어가고 난리라니, 괜히 기분 나쁜 걸?
어찌 되었든 날 치려는 자들이 아니어서 다행이긴 하지만… 다행… 제기, 다행이 아니잖아?
“단단히 걸렸군요. 저 젊은이.”
같은 계열이라고 생각하는지 사영이 원판 닮은 놈을 부르는 호칭에는 악의가 없는 것 같았다.
아무튼 우리 머리 위를 넘어간 원판 닮은 놈은 얼마 못 가 앞을 가로막는 다른 추적자들을 만난 모양인데, 조금 전과는 달리 포위망이 완벽해져서 그런지 추적자들도 단번에 덤벼들지 않고 서서 원판 닮은 놈을 노려보고 있었다.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는 이들은 언젠가 그림으로 본 화산파 특유의 매화무늬가 새겨진 복장의 두 명과 나이 지긋한 여승, 긴 머리채를 뒤로 묶어 내린 젊은 여인, 회의(灰衣)의 노도사(老道師), 전에 본 모용각과 비슷한 무림맹의 제복을 입은 청년, 마지막으로 지저분하고 낡은 청의를 걸치고 있는 청년.
모두 여섯 명이었다.
원판 닮은 놈은 냉소를 띤 채 사람들을 노려보더니 갑자기 일일이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경황중에 인사도 못 드렸군요. 아미파의 무연대사님과 그 제자 분이 오셨군요. 그리고 화산이협, 무림맹의 홍검(紅劍) 종사진 공자……”
견식 넓은 것 자랑하듯 지껄이던 그였지만, 노도사만은 신분이 짐작이 가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하였다.
“노선배께선 혹시……”
“허허-!”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노도사는 손에 든 은빛 철채를 흔들며 웃음소리를 냈다.
“이 늙은이는 그다지 대단한 인물이 아니오. 지레 짐작하지 말구려.”
헌데 원판 닮은 놈은 뭔가 알았는지 매우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후배의 짐작이 맞다면 노선배께선 무당파(武當派) 삼대장로중의 한 분이신 영기진인(嶺基眞人)이시군요.”
“허허……”
영기진인과 다른 포위 인들의 얼굴에 감탄의 표정이 떠오르고 있었다.
“흠… 이 영기진인은 분명 무당의 삼대장로 중의 한 사람으로 성승과 함께 그 무공의 깊이를 측정키 어렵다는 전대고수입니다. 말 그대로 전대 즉, 100여세를 헤아리는 그 연배나 활동 시기, 더구나 이미 20년 동안을 은거해오며 저런 젊은 고수들과는 일면식 조차 없었을 텐데… 안목이 지극히 높은 친구로군요.”
사영의 친절한 설명이었다.
“이놈, 아직 눈은 멀지 않아 전대 고인을 알아보는구나.”
생긴 것에 비해 성질이 급한 듯 먼저 나서 외치는 것은 무연대사라고 불리웠던 늙은 비구니였다.
“전대고인은 무슨… 대사께선 보잘것없이 늙은 도사를 지나치게 올리셨소.”
“후… 이 백룡군, 무림동도들에게 오늘 아주 사치스런 대접을 받는군요.”
백룡군…? 어? 그 명호는 나도 안다. 저 친구 그럼 정파잖아? 왜 같은 정파인들끼리 저 난리인 거지?
“이놈. 누가 네놈의 동도라느냐. 네놈의 악행은 모든 무림인의 수치이니 이 무연이 이 자리에서 죽여주겠다.”
무연대사는 당장 먼저 손을 쓸듯 쌍장을 들어 자세를 취했는데, 어디선가 또 다른 음성이 들려왔다.
“대사께선 잠시 손을 멈춰주십시오.”
나선 것은 예의 지저분한 옷을 걸친 청년이었는데, 그가 나서자 무연대사는 왠지 미묘한 표정으로 손을 내리고 있었다.
“아무도 끼어 들지 마십시오. 그의 목숨은 이 흑기룡(黑奇龍)의 것입니다.”
차림새는 그래도 어깨에 턱 걸치고 있는 도(刀)나 창백한 안색의 얼굴이 어쩐지 심상치가 않은 분위기라 했더니 저 친구는 또 흑기룡이야?
“백룡군…. 한때 내가 벗이라 부르던 너……”
침착하던 백룡군의 얼굴이 이내 일그러져 침통한 표정이 떠오르고 있었다. 저 청의 청년이 백룡군과 함께 남북쌍룡이라 불리는 그가 맞다면… 저 둘은 생사를 함께 하기로 맹세한 절친한 친구로 유명한데 왜 저런 사이가 된 거지?
“…이번엔 내가 묻겠다. 너… 그녀가 내 여인임을 알고 한 짓인가?”
백룡군의 굵은 입술이 파르르 떨려왔다.
“그… 그것이 사실이었나? 진정 여랑이 자네의… 그럼 그때의 말이……”
“이 간악한자야. 네놈은 오히려 진소저가 저 유대협의 약혼녀임을 알고서 간살(姦殺, 범하고 죽임.)한 것 이 아니냐. 더러운 질투심으로……”
이때 격분한 어조로 끼어든 것은 무림맹의 청년이었다. 순간, 백룡군의 눈꼬리가 꿈틀, 경련을 일으켰다. 그는 격렬하게 외쳤다.
“닥쳐라 홍사진! 나 이형소가 친구의 행복에 질투심 따위를 가질 위인이란 말이냐? 나 이형소는 그런 소인배가 아니다.”
“파렴치한자 끝까지 자신의 패악을 뇌우치지 않는구나.”
포위자들이 모두 격분하여 일제히 손을 쓰려는 순간, 뜻밖에도 이형소는 아랑곳 않고 획 등을 돌려 흑기룡을 향했다. 그의 비통한 목소리가 주변을 쩌렁쩌렁 울렸다.
“자네도 인가? 자네도 나 이형소를 그따위 위인으로 보았는가?”
아- 놀래라. 목청도 크지.
“닥쳐! 나도… 나도 널 죽이리라!”
훗-! 목소리 큰 걸로 남북쌍룡인가? 저 친구도 목소리가 만만치가 않네 그려? 하여간 마주 고함을 침과 동시에 흑기룡은 맹렬한 기세로 백룡군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병기가 부딪치는 순간 쩌엉!하는 굉장한 소리가 터져 나왔고 그 것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우… 검과 도가 부딪치는 소리에 이 거리의 나까지 귀가 아플 정도라니……
“난감하군요. 사연은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저들의 일이 끝나기 전에는 누구도 저 길을 통과하지 못하겠습니다.”
사영의 말에는 나도 동감이었다. 몇 명 안 되는 인원긴 했지만 하나같이 강호인명록의 무공 서열 50위 이상의 고수들이다. 더구나 영기진인이라는 저 도사 노인네는 소림의 성승과도 비견될 정도… 으- 저들이 만약 날 치러 온 거였으면 정말 뭐 될 뻔했다.
“일단, 객점 안으로 들어가 계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혹시라도 저들 중에 우리를 의심하는 이가 있으면 곤란할 듯합니다.”
역시 동감하고 나는 털래털래 기운 없는 걸음으로 객점 입구로 향했다. 객점 안에서도 이 바깥의 난리를 알았는지 사람들이 하나 둘 고개를 내밀거나 아예 밖으로 나와보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우린 반대로 객점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나는 곧 뒷걸음질로 어색하게 다시 바깥으로 나와야 했다.
“도련님…? 왜 그러십니까?”
“그게… 무대가, 저 안에 여자…가 있네?”
“예?”
“아, 그러니까, 있을 리가 없는… 여자가 있네. 미치겠군. 저 여자가 왜 여기 있는 거지?”
“누구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혹시, 소호루의 이화라고 알아요?”
“…설마 곡 내의 그……”
사영의 말에 나는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호루의 이화… 화산파 장문인의 손녀 악소연. 소호루에서 내게 알몸 공세를 펼치며 집요하게 달려들던 그 가엾고, 무섭고, 하여간 나로서는 대하기 매우 껄끄러운 여자. 비화곡 안에 있어야할 그녀가 왜 여기 나타난 거지? 으으~ 난 웬지 누군가가 걸어놓은 음모에 빠진 기분이 되어 잠시 멍하니 서 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