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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1부 – 124화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아차, 표절하는 주제에 무심코 원곡의 톤으로 노래를 불렀다.

커험! 험! 목소리 좀 가다듬고 시를 읊조리는 모습이라도 잘 연출하자. 우리 시대 대한민국에는 노래할 때 립싱크 하는 것도 한 장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다. 까짓 거……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한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바람이 부는 날은 바람으로
비 오면 비에 젖어 사는 거지 그런 거지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 건졌잖소
우리네 헛짚는 인생살이
한세상 걱정조차 없이 살면
무슨 재미 그런 게 덤이잖소

“네-가 나를 모르는데에~ 난들 너를 알겠느냐~ 한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룰루루~ 바로 이런 재미 때문에 우리 시대의 표절 작곡가나 립싱크 가수들이 제 버릇을 못 버리나 보다. 나름대로 고민하고 머리를 썼다고는 해도, 정말 천재도 아닌 내가 불과 몇 분을 투자해 최고 엘리트로 꼽히는 신수성녀의 시 작문 시험을 통과하여 배에 오르고 있는 참이고, 게다가 이번엔 지난 번 소호루에서처럼 민망함으로 괴로워하기보다 뻔뻔하게 원작을 흥얼거리며 결과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흠… 백아, 혹은 비호선(飛虎船)이라고 불린다는 이 배를 멀리서 봤을 때는 딴 배보다 예쁘장하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는데 직접 타면서 찬찬히 보니 외 갑판의(용어가 맞나?) 크기를 줄이고 그만큼의 외부 공간을 물고기의 등처럼 부드럽게 처리한 것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우리 시대 잠수함이나 SF 만화 영화 속의 우주 전함이 연상되는 디자인이어서 특별한 느낌이 들었다.

배의 크기도 상당히 커서 우리 일행이 모두 올라타도 널럴할 것 같았는데 신수성녀의 허락을 받은 것은 나와 두 명의 수행자뿐이었다. 한 명은 당근 흑주였고 다른 한 명으로 나는 혈월을 선택했다. 대교와 그 일행들은 본래 일정대로 움직이는 편이 나을 테고 다른 이들 중에서 고르려니까 역시 얼마간 생사를 같이 한 전우 혈월이 좋을 것 같았던 것이다.

“성녀께서는 현재 급한 환자를 돌보시느라 나오지 못하십니다. 특별한 손님이 오셨는데도 마중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하셨습니다. 험한 여정이었다고 들었는데, 거처로 드시어 쉬고 계시지요.”

잘난 여자라고 튕기는 거냐, 손님이 왔는데도 코빼기도 안내밀어…? 라고 말하고 싶은 맘도 없지 않았으나 나는 대표 의녀에게 얌전히 고개를 저어 보였다.

“난 개의치 말고 당신도 중한 일을 보시오. 강바람이 쾌적하니 선실에는 조금 있다가 들어가도록 하겠소.”

애초에 주인이 바쁘다고 마중 안 나온다는 것도 그랬지만 종업원(?)도 내 말을 듣고는 간단하게 고개만을 끄덕인 다음 돌아서 선실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아무래도 여기선 비화곡의 짱이라는 간판도 별로 내세울 것이 못되는 모양이다.

쳇-! 그동안 나도 알게 모르게 권위주의 같은 것에 물들었던 건가? 이 정도 일에 괜히 삐지고 싶은 기분이 들다니…

정신차려라 진유준. 의사가 환자 보느라 바쁘시다잖아. 게다가 이렇게 바쁜 병원의 간호사에게 커피 서빙을 바라기라도 했다면 넌 원판처럼 나쁜 놈이라구. 그래, 그토록 아득바득 별의별 일을 다 헤치고 달려와 결국 신수성녀의 배에 올라타는데 성공한 기분이나 즐겨자구.

…음, 근데 방금 떠올랐던 생각을 글로 표현하면 좀 야하겠다. 뭐에… 올라타?

좋은 건 좋은 건데, 좀 지루하군. 배는 한식경 정도 더 있다가 출발한다고 했는데 아직 대기 중인 대교 일행과 좀 더 놀다 탈 걸 그랬나? 사실 배 안의 이모저모를 점검할 겸해서 먼저 탄 거지만 정작 정찰 능력을 갖춘 흑주가 나설 생각을 않아 그건 생략된 셈이고 갑판 위의 정경도 별로 볼 것이 없었다. 그 많다는 중환자들은 모두 선실 안에만 있는 듯 갑판엔 덜렁 나와 흑주, 혈월 뿐이었다.

간혹 가다 의녀들이 갑판에 나왔다 들어가기는 하지만 내가 백의의 천사들에게 휘파람 불어대며 헛짓거리를 시도하는 양아치도 아닌데 그녀들에게 흥미가 생길 리도 없었다. 뭐, 그동안 대교 자매들을 비롯한 특급 미녀들에게 익숙해져 눈만 고급이 된 탓도 있을 것이다.

하여간 지금은 저 아래 선착장에서 어슬렁대는 이들을 보는 것이 그나마 나은 구경거리가 되고 있었다.

각파에서 신수성녀 호위대로 파견 나온 고수들…

그러고 보니 전부 남자인 것 같고 또 젊은 청년들이다. 그 것만으로 저 녀석들 모두 신수성녀 미스 조와 스캔들이라도 나고 싶어 자원에서 온 건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건 좀 비뚤어진 발상일까?

음… 이렇게 가만히 내려보고 있자니 좀 미안한 생각도 든다. 대교 일행도 물론 내 안전에 대해 안심하지 못하는 눈치였지만 신수성녀 친위대(이 말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녀석들도 잔뜩 긴장하여 대교 일행을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한 모습이었다. 그동안 여신 같은 여자와 그 밑의 천사 같은 여자들 지키는 재미로 지내온 그들에게 대교 일행은 뜬금없이 날아 와 평화를 위협하는 악마들, 난 사악한 대마왕 쯤으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하긴, 애초에 별명도 극악…….

“곡주님! 저길 보십시오.”

혈월이 별안간 그렇게 말하는 바람에 엄한 생각에서 깨어난 나는 그가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긴 아까 우리가 왔던 언덕길 위쪽인데…

윽, 뭐야 저 인간들은? 어디서 갑자기 저렇게 떼거지로 나타난 거지?

“이쪽과, 저쪽도 보십시오. 그리고…….”

제기, 혈월이 말하는 대로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니 이거 장난이 아니다. 우리가 왔던 길 말고도 마을로 통하는 길마다 몰려들고 있는 인파의 규모를 보면 전쟁이 나서 쫓겨 내려오고 있는 피난민의 행렬이 연상될 정도였지만 문제는 아무래도 저들은 피난민이 아니라 침략군의 분위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정면의 동쪽은 선두에 호남의 사파 연합인 흑련(黑聯)의 기(旗)가 있는 것으로 보아 적이 아닙니다. 하지만… 동북쪽에 나타난 자들은 아미파(峨嵋派)의 비구니들과 곤륜파(崑崙派)의 도사들 무리입니다. 그리고 동남쪽은 개방의 거지 떼… 강 건너편의 서북쪽은 광동 지방의 밤거리를 평정했다는 일백마군(一白魔軍)… 서남쪽은…….”

으- 처음 비화곡을 나서기 전에 걱정했던 사태가 지금 벌어지기 시작한 모양이다. 손한성을 만났던 마을과는 달리 저건 그야말로 콕 찝어서 내가 있다는 걸 알고 오는 건데…

제기, 도착하자마자 최대한 빨리 배에 오르기 위해 척후병들에게 먼저 신수성녀 측에 접촉하라는 명령을 내릴 때 약간 걱정하긴 했지만 아무리 정보가 유출되었다고 해도 벌써 저 정도 규모의 인파가 몰려들 줄은 나도 예상하지 못했다.

“…생각보다 입이 가벼운 분들이었군요.”

뒤쪽에서 들려온 것은 가벼운 한숨이 섞인 여자의 음성이었다. 흠칫하여 돌아보니 배 중앙의 문이 열려져 있었고 그 앞에 처음 보는 여자가 의녀들을 대동한 채 서있었다.

음… 개떼처럼 몰려들고 있는 정파와 사마외도의 인물들 이상으로 예상을 초월한 것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신수성녀도 마찬가지였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도 그냥 좀 기품이 있는 예쁜 여자 정도를 예상하고 있었던 내게 저 여자는 단순히 아름답다는 느낌을 넘어선 충격 같은 것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나를(원판의 외모를) 처음 대하는 그녀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그래서 우린 서로를 마주 보고 선 채 먼저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저!”

“저! 아, 아니… 성녀께서 먼저 말씀하시지요.”

“아… 그건…….”

다시 잠시의 침묵이 추가되었다. 그런 우리의 웬지 민망하면서도 반가운 감정을 동반한 첫 만남의 분위기를 깬 것은 배 바깥에서 들려온 거친 함성들 때문이었다.

워낙에 양쪽 다 쪽수가 많다 보니 아직 서로의 눈치를 보느라 바로 쌈이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양쪽은 우선 우리 편 여기 붙어라~ 하는 식으로 같은 부류끼리 진형을 짜기 시작하고 있었다.

신수성녀 조예린은 다시 한숨을 내쉬며 다가오더니 내 옆의 갑판 가에서 주변의 상황을 천천히 살피며 입을 열었다.

“후~ 소문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군요.”

“음… 그래서 성녀님께 도움을 청한 것 아니겠소.”

조예린은 내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로써는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살생을 피하려고 아녀자의 치마폭에 숨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을 정도의 의지를 지닌 남자가… 그리고 몇 배의 인생을 살아 온 노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명문을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많은 사람들의 원망을 한 몸에 받을 수 있는 걸까요?”

말끝에 날 돌아보는 조예린에게 우선 씨익- 웃어 주었다.

“그래도 한 반쯤은 내 편이오. 그게 오히려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건… 아, 벌써?”

조예린이 시선을 던진 건 우리편과 좋은 편(웬지 찝찝하다.)의 진형이 서로 인접한 곳이었는데 거기서 산발적인 시비가 일고 있었다.

실제 내용은 그렇다 치고 분위기는 대충 아래와 같았다.

이 천하의 악종들, 네 놈들 수괴가 나타났다고 기가 살았구나.

이 정파 꼰대야! 꼬우면 엉겨봐, 응? 쫄았니?

에잇-! 죽엇! 퍽!

우이쒸~! 씁새가 선빵을 날려? 뒤질래~?

퍽!퍽!으악!뻑~!

한쪽에서 시작을 해버리자 어영부영 다른 곳에서도 죽이네 살리네 치고받는 사태가 속출고 평화스럽던 강가 마을은 순식간에 강호인들의 집단 패싸움 장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조예린은 눈살을 찌푸리며 황급히 손을 치켜들었고 그것을 신호로 그녀의 친위대인 젊은 청년 고수들이 일제히 혼전 속으로 뛰어들었다.

나도 뒤질세라 대교 일행에게 손짓을 해 보였고 대교의 2차 명령에 따라 우리 쪽 고수들도 수습에 들어갔다.

음… 사실 패싸움 말리는 것이 그리 쉬울 것 같지는 않았는데 우려에 비해 수월하게, 아니 신기할 정도로 빠르게 패싸움의 뜨거운 열기가 가라앉고 있었다.

현 강호에서 최고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두 젊은 남녀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짧게 끝난 패싸움이었지만 그 사이 생긴 사상자들을 보며 안타까워하던 조예린이 결국 내게 차가운 시선을 던져왔다.

“당신은… 정말 위험한 인물이로군요. 후우~ 어쩌자고…….”

조예린은 한숨을 몰아내며 고개를 젖더니 잠시 갈등하는 표정으로 망설인 끝에야 말을 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세요. 만나게 해 드릴 분이 계세요.”

음? 누구…? 나, 아니 원판을 아는 환자가 있다는 말인가? 혹시 아까 그 시의 원씨 노인?

“당신은 그분을 모르겠지만, 그분은 당신을… 아니, 어쨌든 어서 따라 오세요.”

궁금증을 유발시키며 앞서 뒤쪽 갑판으로 향하는 조예린… 웬지 불길한 예감이 들긴 했지만 하는 수 없이 그녀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안내한 곳은 배 건물 뒤쪽의 조그만 쪽문 앞이었는데 때마침 안쪽으로부터 매우 낯익은 남자가 문을 열고 나오는 중이었다.

“처음 뵙습니다, 진공자님!”

“아, 안녕하시오.”

절도 있게 인사를 해오는 상대에게 엉겹결에 답례를 하고 나서야 나는 이 남자가 누군지 생각해 냈다.

“류… 아, 아니 암 것도 아니오. 하핫~!”

순간적으로 아는 체 하려다가 무지 어색하게 얼버무리며 천천히 선실 안으로 발걸음을 떼었다. 솔직히… 재빨리 뒤돌아서 갑판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죽기 싫어서 참았다.

“오-! 어서 오시오. 반갑소이다.”

으…! 예상대로다. 선실 안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은……

“하하핫~! 본인은 이명환이란 자올시다.”

…그래, 알아. 내 여장 모습에 반했던 스토커 청년 황족…! 문 밖에서 만난 친구는 보디가드 류혼이었다. 제기, 이 인간들이 왜 여기서 나타나는 거야?

“음… 초면에 놀라게 해드렸나 봅니다, 그려. 전 바깥의 괴한들과 달리 진공자에게 해를 끼칠 사람이 아니니 안심하고 이 쪽으로 앉으시지요.”

예의 바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권하니 할 수 없이 앉았지만, 머리 속이 엄청 복잡해져서 산에서 아카시아 나무 가지 위에 앉은 듯이 불편하기만 했다. 그런 나와 달리 이명환은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조예린과 우리 측 흑주를 나가도록 종용했다. 배 주인인 조예린은 얌전히 그의 요구대로 밖으로 나가서 날 놀라게 했고 흑주는 게기고 안 나가서 이명환을 놀라게 했다.

“흠…! 좋소이다. 이미 알고 있는 인물이니 굳이 비키라고 하진 않겠소이다.”

씁쓸한, 아니 은근히 아니꼬운 눈치였지만 끝내 억지로 흑주를 나가라고 하지 않아서 조금 안심이 되었다. 아니, 가만…! 이명환이 지난번 만났던 복면이 이 흑주라는 걸 알아본다는 건 내 정체도 알고 있다는 거 아닌가. 쳇, 오래 전에 한 쪽만 본 사람이라면 몰라도 최근에 양쪽 다 본 사람에게 화장했던 거만 달랑 지운 채 못 알아보길 바란 건 무리였나 보다.

“본인이 진공자를 부른 것은 몇 가지를 묻기 위함이오. 나나 진공자에게도 일생이 걸린 중대한 문제요.”

“무슨……?”

“후후~ 모른 척 하시기요? 그게 아니면……?”

모른 척 하냐는 말까지는 장난기가 실려있었는데 뒷말에는 은근한 분노가 느껴져 왔다.

“아, 아니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난 그냥…….”

“진공자-!”

헛! 별안간 이명환이 탁자 너머로 손을 뻗어 내 손을 움켜쥐었다.

“진공자는 세상과 날 속일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하늘 아래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이오.”

으… 그래, 속인 건 미안하다. 근데 왜 이렇게 끈적하게 젖은 손으로 내 손을 쥐고 말하는 거냐, 응?

“진공자, 본인의 소원은 오직 진공자만이 들어 줄 수 있는 것이오. 사실… 난 평범한 신분을 가진 사람이 아니오.”

“아, 그, 그건… 이건 좀 놓고…….”

아이고 설마, 방금 떠오른 생각이 맞는 건 아니겠지?

“진공자! 잘 들으시오. 내 이름은 이명환이 아니라 조명환이오!”

염병~! 나쁜 예감은 꼭 맞는다니까. 전에 삼수생 왕소설을 만났을 때 그녀가 날 이 나라의 세 번째 태자로 착각한 이유 중의 하나가 근방에 삼태자가 등장했다는 사실이었다. 당시에도 내 생각에는 여러모로 이명환이 의심스러웠지만 말 그대로 에이 설마~ 그러며 잊고 있었는데……

“지금 들은 말은 이 방을 나가면 바로 잊으셔야 하오. 진공자도 알다시피 난 최근 정적(政敵)들에게 신변의 위협을 받고 있소.”

인간아, 부탁하는 사람이 그렇게 눈을 부릅뜨고 손아귀에 힘을 주면서 하냐? 제길, 이 나라 태자를 흑주에게 처리시키고 튀었다가는 비화곡 전체가 위험해질 수도 있겠지? 근데 문제는 내 정체를 알면서도 지금 내게 하는 이 태도… 으… 황족 중에는 동성연애자가 많다는 말이 있던데 이 자식도 혹시 그거 아냐? X됐다.

“진공자… 내 소원이오. 제발……!”

으… 이 자식, 내 손을 잡은 손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가고 있고 날 보는 두 눈에는 열정이 가득하다. 으아아~ 이 씁쌔! 후환이고 나발이고 들이받아 버려야겠다.

“진공자! 제발, 동생을 내게 주시오!”

“아- 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다가 의자에서 엉덩이만 살짝 뗀 애매한 자세로 나는 굳어졌다.

“진소저는 비인사기라는 천민들에게 습격을 받은 직후 행방불명이 되었소이다. 그러나 저 류혼 조차 시체를 찾지 못했고 그녀는 결코 단명할 상이 아니었소.”

“그, 그래…요?”

“제발 모르는 체 좀 하지 마시오. 그녀는 죽지 않았소! 진공자는 진소저의 유일한 혈육이니 그녀의 행방을 알고 있을 것이오!”

“그야 당연…….”

아차차, 박력에 밀려서 실언했다.

“오오~ 과연, 그랬었구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이명환, 아니 조명환은 그동안 속으로는 무지 걱정하고 있었는지, 길에서 주운 따따블 복권이 당첨되기라도 한 듯한 표정으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나 참. 자다가 엄한 남의 다리 긁는 타입이었구나, 이 나라 삼태자께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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