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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1부 – 27화


  • 27 –

문득, 눈을 떴다.

왜 떴는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떴다.

몇 번 눈을 껌벅이는 가운데, 머리 속은 멍했으며

비정상적인 몽롱함마저 느낄 수 있었다.

술이.. 채 깨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아직 본격적인(?) 아침인 것 같지는 않았지만,

천장의 사각형 무늬가 보일 정도로 방안은 어슴프레 밝아져 있다.

보통.. 어제처럼 과도하게 퍼마신 다음날은 늦잠을 자게 마련인데,

왜 이런 신 새벽에 잠이 깼는지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웬지 평소보다 몸이 좀 불편한 느낌..

음..? 한쪽 팔과 그리고 가슴과 다리 쪽에도 묵직한 것이 얹혀 있는 듯한..

그리고 코끝을 스치는 이 향기…

에..? 서, 설마..?

나는 다소 황당한 기분으로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내가 누워있는 침상을 살펴보았다.

첫 번째로 시선에 들어 온 것은 내 오른팔을 베고,

낮게 색색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는 단발머리 소녀…

나는 다시 천장을 향해 머리를 누이고 눈을 감았다.

…꿈이겠지..? 꿈..일거야….

불행히도.. 내 오른팔은 점점 더 감각을 찾아가며

‘무거워..’라고 호소하기 시작했다.

얇은 비단 이불로 덮여져 보이지 않았던 두 다리 쪽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보아, 소령이로 추정되는(내 시선으로는 그녀의 위쪽 머리카락 밖에 보이지 않았었다.) 소녀는

내 다리에 지 다리를 터억 걸치고 있는 모양이다.

더더욱 끔찍한 것은… 내 몸을 조금 움찔거려 보았을 때의 감촉이다.

그 것은.. 맨살이 스치는 촉감….

얼마간 더 그렇게 억지로 이어가던 나의 현실 도피성 딴청은

낮게 들려 오는 소령이의 음성에 깨어지고 말았다.

“으음- 흐응.. 곡주..님… 쩝쩝…”

입맛(?)을 다시면서 소령이는 고개와 상체를 더욱 바싹 내 가슴에 밀착시켜왔다.

나는 눈을 뜨고, 자유로운 왼손으로 괜히 가려워지는 옆머리를

몇 번 긁은 다음 내 가슴과 소령이의 목 부근까지 덮인 비단 이불을

슬며시 들추어보았다.

음….

예상대로 알몸이군.

그래.. 소령이가 알몸으로 날 바싹 끌어안고 잠들어 있군.

그렇군, 현실이야.

…좋아, 일단 팔을 먼저 빼내야겠는데 잠을 깨우긴 싫고..

왼손으로 소령이의 머리를 살며시 받히고 오른팔을 살짝..

흠.. 생각보다 무난히 내 팔을 빼냈고,

가슴에 얹혀진 소령이의 팔은.. 음.. 약간의 저항..

에..? 더욱 엉겨붙으려고..?

그건 안되지..! 음.. 얘도 아직 잠과 술에 취해있군.

팔을 힘주어 들어낸 다음 내가 상체를 일으키는 동안

약간의 신음과 입맛 다시는 소리만을 낼 뿐 깨어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다리도 살짝 들고 몸을 빼내려고 했는데,

지가 먼저 ‘으음..’하는 소리와 함께 몸을 뒤척이는..

그래 그 순간, 잽싸게 몸을 빼내어..

휴우… 애를 깨우지 않고 무사히 신체의 자유를 되찾았다.

침상 밑에 있는 군용 팔팔 담배를 빼 들고 창가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담뱃불을 붙였다.

흐-음…. 후우우–!

길게 담배 연기를 뿜어낸 다음 침상 위로 시선을 돌렸다.

소령이는 침상에 옆으로 길게 누운 자세로

지금은 지가 지 손을 베개 삼아 편안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다.

이렇게 보니 평소 보이시-한 인상보다 훨씬 ‘여자’답고 또 성숙해 보인다.

나는 창 밖의 하늘을 물끄러미 보다가,

그 다음엔 곡 내의 풍경..

이미 건물들 사이를 싸리비로 쓸며 청소하는 이들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음.. 다들 부지런하군.

아.. 건너편 건물 지붕에 새가 한 마리.. 종달새..?

아니 다른 종류의 새인가..?

음.. 지금 그런 것이 뭐가 중요하지..?

…….서울에 계신 부모님 죄송합니다.

두 분의 잘난 아들이 드디어 로리타, 왕변태가 되어 버린 모양입니다.

아무리 술김이고 기억도 없다지만,

어떻게 15살 짜리 미성년자를…

오 노~! 오 마이 갓..! 쿵!쿵!(창틀에 머리 찧는 소리)

으으으-! 난 ‘원조교제’하는 몰상식한 아저씨들을 비난할 도덕적 자격을 상실했으며..

쿵!쿵! 대교는 또 어떻게 볼 것이며..

쿵!쿵!쿵!

으… 이번엔 진짜 아팠다.

“고, 곡주님..?”

모, 뭐야? 소교..?

으.. 언제 소리도 없이 문이 열렸지?

“죄송합니다. 아직 주무시는 줄 알고…”

소교는 예의 ‘숙취해소용 음료’가 담긴 사발을 쟁반에 받혀 들고

조심스럽게 방안으로 들어왔다.

소교는 소령이가 잠들어있는 침상과 군용 팬티 한 장 덜렁 걸치고 창가에 앉아 있는 나를

재빨리 살피더니 살짝 얼굴을 붉혔다.

소령이와 내가 밤새 응응응을 응응응한 다음,

응응응과 응응응을 응응응해서…

대충 그런(?) 장면을 연상했나보다.

으… 쪽팔려…

소교가 쟁반을 탁자 위에.. 응..? 그러고 보니

탁자 위가 말끔히 치워져 있다.

확실하진 않지만, 내가 어젯밤 그릇도 하나 깨먹은 것 같은데 그런 흔적도 없었다.

“저기.. 소교야.”

“예, 곡주님.”

“어젯밤.. 여기 어질러진 거, 니가.. 치웠니?”

정작 묻고 싶은 것은 방 치우러 와서 뭐 본 거(?) 있냐는 것이었지만

구체적으로 묻기는 뭐해서…

“예, 저와.. 그리고 미령이가 상세가 좋아져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약간 머뭇대며 또 살짝 얼굴을 붉힌다.

으… 설마 소교와 미령이가 보는 대서 내가 소령이와 그 짓을..?

오~! 마이~ 가트!! 쿵~!쿵-!!

“곡주님?”

다가서려는 소교에게 손을 저어 못 오게 한 다음,

나는 갑작스런 갈증을 소교가 가져온 사발의 음료를

벌컥 벌컥 들이켜서 달래야 했다.

“커어-어.. 핫! 하하… 아- 내가 어제 좀 취했지?”

“아, 예.. 조금 과하셨던 듯.. 곡주님을 침상에 모신 것은 저와 미령이었습니다. 소령이는.. 소령인…”

“하핫..! 그래, 소령이도 취했고.. 그래.. 취했어…. 허헛..”

아아.. 어색해라..

“..부끄럽습니다. 제 동생 소령이는 한 번 술잔을 입에 대면 자제를 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대교언니와 제가 자주 주의를 주었습니다만…”

“아, 아냐. 나도 그런데 뭐… 아핫핫!”

“곡주님..?”

“왜..? 아, 아니.. 저 그래.. 나 잠시 좀 혼자.. 있 고 싶거든?”

“예, 소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소교야.”

“예, 곡주님.”

“에.. 그러니까 어젯밤.. 에.. 근께.. 아니다. 가 봐, 필요하면 부를게.”

차마.. 소교에게 어젯밤 일을 자세히 물어 볼 수가 없었다.

소교를 그냥 내보내고 난 다음,

나는 푸욱-! 바닥이 꺼지고 탁자가 뒤집혀라 한숨을 쉬었다.

으으으.. 아무리 취해도 저지르는 일에는 항상 한도 (?)가 있던 내가 어째서 어제 밤에는..

어째서.. 으으.. 어째서….

다시 창가로 가 창틀을 부여잡고 부르르 떨고 있던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예외..라는 것이 있을 수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술 먹고 사고 친 것 중에 이런 ‘대형’은 없었다.

그리고 과연 어제처럼 퍼마시고 과연 ‘그 짓’이 가능했을까…?

…톡!톡!톡!

“몽몽.. 어젯밤 상황을 녹화 해 놓지는 않았지?”

[ 주인님이 내린 유일한 명령은 ‘닥쳐, 몽몽’이었습니다. ]

….로봇이 삐질리도 없는데 어쩐지 그런 기분이 든다.

“음.. 그건 미안했고, 녹화는 안 해놨더라도 상황은 알려 줄 수 있지?”

[ 가상 화면을 구성해 재현할 수 있습니다. ]

“아, 뭐 화면까지야… 그냥 말로 해봐, 어제..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 주인님은 전일 오후 22시 20분에서 23시 사이에 과도한 알콜 섭취로 인해 신진대사의 급격한 저하와 신경계 마비로 코마 상태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주인님 신체의 항독 작용과 저의 신경계 유지 보수에 의해 최소한의 호흡과 신진대사가 약 2시간 22분 정도 유지되었고 이 후 정상적인 수면 및 회복 단계로 접어들었습니다. ]

…..정리하면, 난 어제 거의 위독(?)할 정도로 맛이 갔었다는 얘기다.

우.. 새삼 소령이가 무서워진다.

암튼, 그건 그렇고…

“…내가 그냥 잠만 잤다는 얘기지? 그러니까.. 내가 소령이를 거 뭐냐.. 소령이를 어쩌지는 않았지?”

[ 질문의 요지가 명확하지 못합니다. ]

“우이쒸-! 대충 알아들을 것이지, 따지기는.. 거 뭐냐, 남녀 관계.. 그거.. 몰라?”

[ 성 관계, SEX를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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