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1부 – 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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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상황은 없었습니다.
전일 주인님의 신체는 성행위 및 기타 어떠한 행동도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소령이라는 소녀는 운동능력은 일부 유지되었으나 지각능력의 상실로 탈의 후 주인님과 같은 침상에서 수면을 취한 행동은 본인도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집니다. ]
그, 그래..?
에효..! 다행이다, 다행이야.
진작에 몽몽에게 물어볼 것을 괜히 머리 박아 가며 고민했잖아?
나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기분으로,
여전히 내 침상을 차지한 채 행복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는 소령이를 바라보았다.
평소 말수도 적고 내성적이며 고지식한 소녀…
근데 설마 이런 고약한 술버릇을 가진 아이일 줄이야.
‘고지식 소녀’라기보다는 ‘돌발 소녀’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리겠다.
어쨌든, 한편으로는 감탄스럽기도 하다.
도대체가 그렇게 독한 술을 퍼마시고도 저 아인 ‘숙취’도 없나?
저렇게 편안한 얼굴로 잘 수가 있다니…
[ 체내에 알콜 분해 효소가 보통 사람보다 월등히 많은 체질로 여겨집니다.
정확한 수치를 알고 싶으시면 해당 신체를 정밀 스캔하면… ]
“됐네, 이 사람아!”
사람이 아니라 기계 로봇인가..?
하여간 소령이 술 쌘 거야 절감했고, 수치까지 알 필요는 없지.
뻑하면 여자애 신체 스캔을 하네 어쩌네.. 몽몽 이놈 정말 변태 로봇 아냐?
수상혀…
그나저나, 좀 쪽팔리다는 생각이 든다.
으… 남자들하고 술내기해도 진 적이 별로 없었는데 우째 이런 일이…
그리고 소령이, 이 맹랑한 계집애는 잘 거면 지 방 가서 자던가,
왜 내 침상 위로 기어 올라와서.. 게다가 홀랑 벗구..
으… 제기.. 그러고 보니 아무리 내가 저 애를 어쩌지 않았어도
다른 사람들은 믿어 주지 않을 것 같다.
애초에 저 애가 옷을 벗고 내 침상으로 오를 때 소교와 미령이가 끌어내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 애들은 소령이가 네 자매 중 첫 타자로 간택(?)된 것으로 여겨졌을지도..
으… 이 오해를 어떻게 푼다지..?
제기, 어쩌면.. 원판의 명성(?) 때문에 변명(?)이든 설명이든 하는 것이 더 이상할지도 모르겠다.
이곳 인간들에게 있어서, 내가 이 곳의 어떤 여자를 건드린다 해도 그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일 테니까…
하지만 이제까지 기껏 이미지 관리(?)해온 대교 자매들에게 새삼 그런 놈(?)으로 인식되는 것은 싫었다.
더구나 ‘불사파 충성 소녀’ 대교,
그녀에게는 비밀서고에서 *폼 잡고 한 말도 있는데…
후… 그렇지만 당사자인 소령이는 지 몸 상태 지가 알테고..
어제 내가 완전히 맛이 간 걸 소교나 미령이도 보았으니..
어쩌면 의외로 쉽게 이해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에… 어쨌든 긴장이 풀어져서 그런지..
내가 아직 술도 채 깨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자각하면서..
무슨 생각은커녕.. 만사가 다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오늘의 웬수 소령이 때문에 침상에 돌아갈 수는 없고..
딴 방으로 가기도 귀찮고..
에라, 그냥 대충 자자… 내가 언제.. 잠자리.. 가렸남…
..어.. 탁자 위에 엎어진 자세로 생각보다 흐뭇하게 (?) 잔 것 같다는 느낌과 함께 설핏 잠에서 깨면서..
나는 주변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낮은 소리로 두런두런 대화가 오가는 소리 같은데…
“..나도 잘 모르겠어, 언니. 기억이 안나..”
음.. 소령이 목소리 같은데..? 먼저 깼나..?
“후.. 그러기에 대교 언니와 내가 얼마나 강조했니.
우리 자매들끼리 있을 때 말고는 넌 절대 술을 입에 대서는 안 된다고..”
이건 소교 목소리고.. 흠…
이미 깨긴 했지만, 웬지 불쑥 눈을 뜨고 일어나기가 민망해서
나는 본의 아니게(?) 자는 자세를 유지한 채 자매들 간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곡주님께서 마시라고 명령하셔서…”
“‘백일취’는 호걸연 하는 사내들도 꺼려하는 독한 술이거늘,
네가 여자의 몸으로 그걸 마시고 견딜 수 없다고 곡주께 아뢰는 요령이 있었다면..
후.. 그래, 안다. 우리 소령인 거짓말을 못하지…”
소교에게서 가벼운 한숨이 새어 나왔다.
“…네가 곡주님을 모신 것은 기뻐할 일이지만,
하필 네가 그렇게 만취하여 간밤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니…”
“그, 그게.. 저, 나, 난.. 잘 모르겠지만..
저.. 아무래도 나.. 아직 처녀인 것 같아…”
“..하긴, 네 ‘수궁사(守宮砂)’도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고..
후- 역시 곡주께서도 너무 만취하셔서 그런 모양이다.”
“미, 미안해 언니. 난 바보 같아서 항상 언니들 곤란하게 만 하고…”
“이런, 이런..!”
웬지 소교의 음성에 웃음기가 섞인 것 같았다.
“우리 자매들 중 네가 가장 먼저 곡주님 눈에 들었으니
넌 오히려 자랑스러워해야 마땅할 것이야. 어쨌거나…”
“우이쒸-! 느그들 지금 뭔 소리하는 거야?” 하며 몸을 일으킬 생각이었는데,
소교의 ‘어쨌거나..’라는 말의 다음이 궁금해서 참았다.
“아까 보니, 곡주께서도 간밤의 일을 무척 아쉬워 하시는 듯 하니,
소령이 넌 오늘밤 특별히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고 준비토록 해야 할 것이야.”
으윽..!
내가 뭘 아쉬워 해..?
이 것들이 갈수록..
“저.. 언니 실은.. 어젠 술에 취해서 몰랐는데..
실은 나.. 너무 무서워…”
“후… 네 심정은 이해한다만 어차피 우린 모두 곡주님의 소유.
그러니 마음 단단히 먹고…”
이런 제기.. 몇 번 깨어날(?) 타이밍을 놓쳤더니 분위기가 점점
내가 눈뜨기 어려운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치이- 소령 언닌 정말 너무해!”
미령이..? 부상이 빨리 회복된 건 다행이다만, 왜 또 삐진 음성이지?
“대교 언니는.. 대교 언니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건 소교 언니도 있는데 순서도 어기고,
그러면서 왜 그렇게 빼는 척을 해?”
어이구… 넌 한 술 더 뜨는구나. 웬 순서..?
“얘, 미령아! 언니에게 무슨 말버릇이니? 어서 사과하도록 해.”
대교가 없는 지금 가장 큰언니인 소교가 낮지만 엄한 음성으로
미령이를 야단쳤다.
그러나 여전히 미령이의 뭐라 꿍시렁 거리는 소리는 이어지고..
뜻밖에(?) 소령이는 동생에게 뭐라 대꾸도 못하는 것 같다.
“후… 대교 언니가 없다고 미령이 네가 너무 버릇이 없어졌구나.
지난번에는 감히 곡주님께 대죄를 범하더니 이젠 언니들도 우습게 알고 있으니…
대교 언니가 너의 이런 행동을 알면 어떻게 생각하겠니.”
“어, 언니 난 그런 것이 아니라…”
뜻밖에 미령이의 음성에 물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라-?
소교가 큰언니 대교를 언급한 한방에(?) 분위기가 역전,
미령이가 먼저 홀짝이며 소령이에게 ‘언니 미안해’ 어쩌구 하고
소령이도 흑,흑 거리고..
소교가 둘을 다독거리는 기색…
순식간에(?) ‘신파극’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호오- 대교의 존재가 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생각보다 상당하네..?
…뭐, 그건 그렇고 더 이상의 관람 아니 청취도 무의미 한 것 같고,
결정적으로 나는 ‘신파’가 싫다.
끄응- 소리를 먼저 낸 다음 부시시 고개를 들었다.
흐릿한 눈을 껌벅이며 천천히 주변을 두리 번 거리는 내 시선에
황급히 눈물을 닦고 옷매무새며 표정을 가다듬는 세 자매가 들어왔다.
나는 깨긴 깼는데, 아직 제 정신이 아니라는 태도로
뒷머리를 극적으로 했다.
난… 이런 연기는 좀 되는 편이다.
“곡주님, 곤히 주시는 듯하여 감히 깨우지 못했습니 다.
침상에 드셔서 더 단잠을 즐기시는 것이…”
“아냐.. 실컷 잤어. 아-하~~암!”
난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일어나서 애들이 챙겨놓은 물로 세수하고
옷 챙겨 입고 난 후, 커피 한 잔에 담배 한 까치….
그러는 동안 가끔씩 눈치를 보니 소령이는 아직까지 내 앞에서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하고, 막내 미령이는 조금 샐쭉한 표정이다.
나는 알게 모르게 어색한 이 분위기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태도로
미령이에게 물었다.
“흠.. 미령이는 움직일 만 하니? 아직 불편한데 있으면 더 쉬도록 해.”
“아닙니다, 곡주님! 곡주님이 신경 써주셔서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깜짝이야. 기집애가 참, 씩씩하게도 대답한다.
그러고 보니 어젯밤도 인사하러 왔었다고 했지?
그런 부상을 입고도 하루 만에 저렇게 말짱(?) 해지다니,
내 명령대로 의화각주가 신경 좀 썼나보다.
“그리고 소령인..”
“예-?”
소령이는 지 이름이 나오자마자 제풀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툭 떨군다.
하루밤 사이에 소녀가 여인이 된.. 아니 소년이 소녀가 되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여하간, 뭐가 되었든 해 줄 말은 해야겠지?
“…술 좀 줄여.”
얼굴을 붉히고 어쩔 줄 몰라하는 소령이에게 나는
가혹하게(?) 덧붙였다.
“나.. 너 따라 마시다가 죽는 줄 알았다.”
소교가 옆에서 걱정스러운 표정이 되었다가
장난기 어린 내 표정을 보고 안심하는 듯 했다.
음… 오해를 풀고 내 입장을 표명하는 건 이따가 하기로 하자.
얼마나 퍼질러 잤는지, 벌써 정오가 살짝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대교한테 갔다 오려면 오늘 일정 빨리 진행해야겠다.
식량은 어제 며칠 분을 미리 가져갔고, 영약 먹을
스케줄도 삼일 정도 후에나 다음 단계가 진행될 것이다.
하지만 어제 일도 있고, 장시간 걔 혼자 놔두는 건 불안했다.
나는 우선 총관을 내 방으로 불러 상황을 다시 확인해 보았다.
내 명령대로 장청란에게 ‘도전장’을 전할 사자(使者)가
오늘 아침 이미 떠났는데, 별다른 문제가 없으면 이틀 정도 후에
돌아올 것 같다고 했다.
전에 몽몽이 말한 해남파와 이 곳의 거리는 매우 가까운 편이었다.
그러나 그건 이 곳의 최고 절정고수들의 경공으로도 통과하기 어려운
산악지대를 직선거리로 주파했을 때 얘기고, 좀(?) 돌아가다 보면
말 타고도 하루는 걸린다고 한다.
글고…
문제의 천이단과는 다행히 아직 접촉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총관은 내가 잠에서 깨면 다시 세세한 명령을 확인하려고 기다렸다고 하지만,
눈치를 보니 아직도 총관은 천이단에게 나의 엉뚱한(?) 제의를 전하는 것이
꺼려지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어제, 천이단에게 열 배의 대금 지불을 제의하라고 하셨는데..
장청란 같은 거물에 대한 의뢰라면, 못해도 금화 50냥 정도를 요구할 것입니다.
열 배라 하시면 금화 500냥.. 한 건 의뢰에 이런 전례를 남기는 것은 좀…”
어제는 정신없어서 깜박했는데 아무래도 들어가는 돈도 장난이 아니다..
재고하길 바란다.. 대충 그런 의미의 표정과 설명이었다.
총관이 꽤 알뜰한 살림꾼이라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지만,
성질 더러운 주인의 분노를 각오하고 자꾸 집적대는(?) 것을 보면
액수가 크긴 큰 모양이다.
흠… 금화 500냥이 어느 정도인지.. ?
톡,톡,톡…
[ 주인님 시대와 국가의 화폐가치와 비교하면, 금화 1냥은 200만원,
은전 20만원, 동전 1냥 1만원, 1닢 1천 원 정도입니다. ]
흠, 난 수학은 꽝이지만, 산수(?)는 좀 한다.
1냥이 200만원이면, 50냥은 1억..
열 배면 10억.. 끄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