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1부 – 49화
근데… 식인왕이라는 명호는 데이터에 없는 모양인지 몽몽이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몽몽에게 입력되어 있는 강호인명록(江湖人名錄)이라는 열 권짜리 책에 나와 있지 않은 이름이라면, 점소이가 거짓말로 꾸민 인물이거나, 최근 10년 정도 사이에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라는 의미였다.
강호인명록… 빨리 수정 재판하도록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너희들 혹시 식인왕이라는 놈 알아?”
내가 묻자 백상이 먼저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답했다.
“본래 명호는 미식마(美食魔)였던 마도인이라고 들었습니다. 그가 강호에 처음 등장했던 것은 12년 전으로 알려져 있고… 누군가와 시비가 붙으면 먼저 자신이 만든 요리를 대접한 후에야 싸워서 죽이곤 했다는 괴인이라지요.”
아주 웃기는 놈이었나 보다. 자기가 만든 음식이 맛없다고 안 먹어서 싸운다면 또 몰라도, 싸울 상대에게 음식을 대접한다고…?
미식마… 음… 그 데이터는 있었는지. 내 시야 아래쪽 허공에 띠리리~ 문자가 새겨진다.
< 미식마(美食魔) 오두명, 추정 연령 현 43세. 독문절기, 어육인참살도법(魚肉人斬殺刀法). 추정 무공 수위, 혈랑검대 백인장 수준. 특기 사항, 요리 도구를 병기(兵器)로 사용. 독물(毒物) 사용 능력도 높다고 추정. >
“나도 누구 말하는 건지 알겠군. 독문절기는 어육인참살도법… 도법이 꽤 길고 웃기는군.”
나는 그제야 기억이 난 척을 하며 웃었다. 요리사 겸 마두 다운 무공이라고는 해도 너무 노골적이어서 그런지 유치한 느낌이 앞서는 것 같다.
내 말에 다른 이들도 피식거리고 웃었지만 황성은 곧 진지한 표정이 돼서 말했다.
“무공명은 다소 괴상해도 상당히 무서운 도법이라고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살인 후 인육을 탐하기 시작해, 식인왕이라고 불리기 시작한 그가 피해자들의 가족과 친구들의 추적에 쫓겨 비화곡에 피신해 들어온 것이 2년 전이라고 들었습니다. 이 가경촌에 자리잡고 있다는 소문도 얼핏 들었습니다만… 설마 이런 식당을 운영하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제야 미령이도 안색을 굳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이곳에서는 누구도 병기를 소지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긴 하지만, 이 자는 본래의 자기 병기를 항상 지닐 수 있을 것이고 위아래를 몰라보는 괴팍한 성격이라고 하니, 어쩐지 이 식당 안에 있는 것이 불안하네요.”
백상은 음식 냄새가 사방에서 나는 것을 흐뭇한 표정으로 즐기느라 별 생각 없는 것 같았고, 황성도 주의는 해야겠지만 까짓 거… 정도로 여기는 것 같다.
불안하고 찝찝한 기분인 건 미령이와 나인데, 나도 명색이 천하의 ‘극악…’ 신분인 이상 티내고 싶지 않아 애써 태연한 척을 하고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점소이가 다른 하인 한 명과 함께 싱글거리며 다가와 음식 접시들을 내려놓았다.
음… 국수는 각자 하나씩이지만, 고기 만두는 황성 한 접시, 백상 세 접시 분량으로 주문된 것이었다.
백상은 맞은편의 미령이가 눈살을 찌푸리거나 말거나 후루룩! 게눈 감추듯 국수 그릇을 비웠다. 내가 딱 두 젓가락째 먹었을 때였다.
국수는 생각보다 맛있었지만 미령이는 아예 젓가락질을 멈추고 백상이 먹는 걸 구경(?) 하기 시작했다.
거의 미령이 주먹만 한 크기의 만두를 한 입에 날름 삼키고 두어 번 우물우물… 또 날름! 우물우물, 날름!
우… 이 인간, 만두 먹는 기계 아냐?
“후후-? 그렇게 먹다간 며칠이 못 가서 돼지들이 친구라고 따라 나서겠네요.”
미령이가 기어이 풀썩 웃으며 말을 걸었지만, 백상은 그녀에게 힐끗 한 번 시선을 주었을 뿐 대꾸도 없이 계속 먹는 데만 열중한다.
결국 국수 한 그릇인 나와, 거기에 고기 만두 한 접시인 황성, 세 접시 더 먹는 백상의 식사시간이 거의 비슷하게 소요되었다. 미령인 아직 국수 한 그릇 다 못 먹었다.
이런… 제일 평범한 인상이긴 한데 이딴 걸로 주목받는 녀석이었군. 게다가 백상은 아직도 아쉬운 얼굴로 입맛을 다시고 있다.
“…더 시켜주리?”
“하하! 아닙니다. 더 이상 먹으면 몸이 둔해질 것 같습니다.”
질렸다는 표정이 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주변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이 편을 힐끗거리고 있었고, 그중에는 재미있다는 듯 키득대고 웃는 자들도 있었다.
“헤헤… 정말 멋진 식성을 가진 분이군요. 도대체 어디서 온 분들이죠?”
어느 사이 점소이가 다가와 친한 척을 했다. 뭐, 별로 대화하고 싶은 대상은 아니지만 기왕에 준비해 놓은 가짜 신분도 있고 해서 대답해 주었다.
“아, 난 이틀 전에 이곳에 새로 들어온 진유준이라고 하네. 본래는 지방 관리를 아버지로 두었는데, 운이 나빠 죄를 짓고 이곳으로 도망쳐 들어왔지. 이쪽은 내 의제(義弟)들… 날 항상 도와주는 강호의 호걸들이지.”
“의형제를 따라 이 비화곡까지 들어오다니 정말 의리가 있는 분들이군요. 존경스럽습니다.”
점소이는 황성과 백상, 미령이를 향해 과장된 몸짓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보였다. 녀석의 교활해 보이는 시선이 미령이에게서 좀 오래 머무는 것 같아 어째 불안하다.
“음.. 이만 일어서야겠군. 계산하고 가지, 아우들!”
나는 서둘러 식당을 나섰고, 다시 관광을 시작했다. 조금 전 식당에서 살짝 분위기가 깨지긴 했지만, 동네 전체 분위기는 처음의 인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조금씩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황성과 백상은 별다른 티를 내지 않고 내 경호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미령이 역시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있었지만, 재미있는 구경거리나 예쁜 장신구 같은 것을 보면 잠시 동안 나를 잊고 관심을 보였다. 그녀의 행동이 밉지는 않았지만, 보디가드로서는 실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강호에 나가기 전까지 ‘특훈’을 통해 달라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우리는 꽤 오랫동안 돌아다니며 포장마차 같은 곳에서 호떡을 먹기도 하고, 미령이와 함께 집에서 기다릴 자매들을 위한 장신구 쇼핑도 했다. 또 화살을 많이 던져 넣으면 경품을 타는 놀이도 했다.
황성과 백상의 경호는 어느새 ‘나’에서 ‘나와 미령이’로 바뀌었고, 미령이가 혼자 움직이면 한 명은 미령이 가까이로 이동했다. 두 혈랑은 내가 이 조그마한 소녀와 데이트를 하러 나온 것으로 결론을 내린 것 같았다.
“후후… 예쁘죠?”
미령이가 신나서 노점상에서 화사한 꽃 한 송이를 뽑아 자기 귓가에 꽂았다.
“넌 남자야, 임마!”
내 지적에 그제야 깨닫고 귀에서 꽃을 뽑았지만, 마음에 들었는지 결국 꽃을 사고 말았다. 노점상 사내가 듣기 좋으라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 누나에게 사다 주려고 그래요.”
그러나 나는 보았다. 노점상 사내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남장한 미령이와 나를 번갈아 힐끔거리는 것을… 으으… 미령이가 나를 소년까지 탐하는 놈이라는 오해를 받게 만들다니. 계속 귀엽다 하니, 정말…
귀엽군.
쳇-! 이래서 ‘막내’를 야단치지 못하는 건가?
미령이는 계속 나에게 이것저것 구경하자, 저것도 사달라고 귀찮게 했다. 그녀를 보니 어렸을 때 여동생을 갖고 싶다고 어머니에게 조르던 기억이 났다. 그때는 내게 예쁜 여동생이 생기면 뭐든 다 해주고 싶었다.
이렇게 남장을 하고 까불대는 여동생을 바란 건 아니었지만… 후후… 오빠가 된 기분도 나쁘지는 않군.
여자 꼬셔 건수 올리기는 물 건너갔지만, 사람들과 함께 거리를 구경하고 다니는 것도 나름대로 나쁘지 않았다. 언젠가는 대교와도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대인, 대인!”
응…? 처음 보는 꾀죄죄한 차림의 이 꼬마가 날 부른 건가?
종이를 내밀고 서 있는 그 꼬마를 의심하며 주의를 주는 혈랑들을 무시하고 나는 쪽지를 받아 펼쳤다.
< 당신들은 이미 극독에 중독 되었다. 그 꼬마를 따라오지 않으면 해독할 수 없다. >
내참! 갑자기 이러니까 놀랍기보다 어이가 없군.
쪽지를 보여주자 혈랑들과 미령이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백상이 먼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이럴 수가! 조금 전부터 약간의 복통이 있어 이상하긴 했지만, 도대체 어느 틈에…?”
이어 황성과 미령이도 눈살을 찌푸리며 아랫배를 매만졌다. 그러고 보니 나도 조금 아프다. 응…? 나도 배가 아파..?
“절 따라 오세요, 대인들…”
꼬마는 앞서 걸음을 옮겼지만, 혈랑들은 내 앞을 가로막았다.
“곡주님, 곡주께선 만독불침이시니 굳이 흉수의 뜻대로 움직이실 필요가 없습니다. 만에 하나의 사태가 우려되니 이대로 가경촌을 벗어날 때까지 저희가 호위하겠습니다.”
“안 가면 너희들은 어떻게 할 건데…?”
“저희들이 어리석어 곡주님의 신변에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는데, 무슨 면목으로 살길을 도모하겠습니까.”
비장한 각오를 한 황성의 표정… 윽, 지금 엉뚱한 생각할 때가 아니지..?
“험..! 내게 생각이 있으니까, 그냥 저 꼬마 따라가자구. 이건 명령이니까 군말 없이 따라와.”
“고, 곡주님..?”
나는 꼬마를 놓칠까 봐 다급하게 걸음을 옮겼고, 결국 우리 일행 모두는 그 꾀죄죄한 차림의 꼬마를 따라가게 되었다.
우리는 번잡한 거리를 빠져나와 한산한 골목으로 접어들었고, 꼬마는 창고 같은 허름한 목조 건물의 입구를 손가락으로 가리킨 후 어디론가 달아났다.
끼-이-이~~!! 매우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열린 입구.
황성이 먼저 조심스럽게 사방을 살피며 들어갔고, 나도 다른 두 명의 호위를 받으며 들어갔다.
우리 일행이 모두 들어가자, 예상대로 끼익-! 철컹! 소리와 함께 입구가 재빨리 닫혔다. 원시적이지만 나름대로 머리를 쓴 잠금 장치였다.
2, 30평 정도 되어 보이는 실내는 조명도 흐리고 매우 음침했다. 입구 맞은편 벽 앞에만 등잔불이 몇 개 더 켜져 있었는데, 그것은 아마도 그 벽에 걸린 각종 요리용 칼과 금속 갈고리, 그리고 벽 앞 탁자에 놓인 커다란 나무 도마를 돋보이게 하려는 연출인 듯했다.
중국 음식에 필수적인 사각형의 둔탁해 보이는 칼을 쥔 기괴한 분위기의 사내가 어둠 속에서 소름 끼치는 음성으로 웃었다.
“흐흐흐…! 잘 왔다. 내 싱싱한 요리 재료들..!”
내 옆에 서있는 미령이가 낮게 신음성을 삼킨다.
상황 진행으로 보아 저 자가 바로 그 ‘식인왕’인 모양이다.
아까 식당에서 우릴 요리 재료로 점찍고 음식에 약을 탄 모양이고…
“식인왕! 네 놈이 지금 어떤 분께 무례한지 알고 있느냐?”
황성의 노한 외침에 비웃음 섞인 대답이 들려왔다.
“크크큭..! 바깥에선 얼마나 대단한 고관 자제였는지 몰라도, 이 비화곡 안에서야 권력도 소용이 없지. 흐흐.. 소녀에게 남장을 시킨 것을 보면 비화곡 안에서 별로 내세울 처지도 못되는 자 일터…”
“이 어리석은 놈! 감히..”
“아, 아.. 됐어. 공연히 힘 빼지마 황성. 호흡이나 조심하라구, 실내에 산공분(散功粉, 내공을 상실하게 하는 가루..)이 뿌려져 있으니까.”
내 경고에 놀란 황성과 백상, 미령이가 황급히 옷자락으로 각자의 코와 입을 막고 있었다.
나, ‘극악..’의 육체야 애시당초 내공 같은 게 없으니 상관없고..
경험이 적은 미령이는 그렇다 치고 혈랑대의 황성과 백상도 아직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있는 듯 했다.
자신들이 이미 독에 중독 되었다고 생각해 판단력이 흐려졌나..? 하지만 나는 저 괴인이 하는 수작에 그저 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나 참.. 3류 컬트 무협영화 찍냐? 어설픈 무대 꾸며 놓고 유치한 대사하는 꼬라지라니… 여기보다는 차라리 대교가 있는 지하 창고 가는 길이 더 리얼하고 무섭다.
몽몽의 스캔 기능으로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이미 상황 파악이 완료되었기에 나는 코웃음을 치며 앞으로 나섰다.
“네 놈.. 네 놈이 먼저 고기 만두가 되겠느냐?”
짐짓 큰 소리는 치지만 이미 식인왕의 음성에는 자신감이 없었다.
하는 짓이 너무 치사하고 비열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신랄하게 대꾸했다.
“놀고 있네. 그럴 실력이나 되냐? 니가 여기 이 여자애 하나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식인왕의 에너지(내공) 그래프는 1갑자에서도 한참 모자란다. 알려진 것처럼 혈랑대 백인장은 커녕, 미령이 하나 상대하기도 벅찬 놈이다.
“네, 네 놈들은…”
“극독에 중독 되어있기 때문에 지옥과도 같은 고통에 시달리다가 죽게 될 것이다. 그러니 얌전히 내 음식을 먹고 고통 없이 죽어라. 이 말 하려고 그랬지?”
“헛~??!!”
디게 놀라는 거 보니 정말 비슷한 대사를 하려 했나 보군.
“너, 이 새끼!”
일단 욕을 내 뱉으니까 팍 도는 거 같다.
“으.. 정말 욕 나오게 만드네! 넌 새꺄! 쌈도 지지리 못하는 것이 괜히 병 깨서 팔뚝 긁는 삼류 깡패 같은 놈이야. 무공이 안되면 얌전히 살기나 할 것이지 잔머리 굴려서 고수들을 해쳐? 에이- 썅! 저 병신을 앞으로 끌어 내. 흑주(黑蛛)..!”
내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창고의 천장 쪽에서 검은 그림자가 소리 없는 벼락처럼 식인왕의 머리위로 엄습했다.
식인왕의 입에서는 작은 비명소리조차 나올 틈이 없는 것 같았다.
미리 알고 보고있던 나도 뭐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정확하게 목격할 수가 없었다.
흑주.. 평소엔 내 처소의 천장 위, 그밖에 내가 어딜 가든 주변 어둠 속에 짱 박혀 있는 살수가 빠르긴 빠른 모양이다.
간만에 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검은 차림에 두 눈만이 드러나 있는 ‘흑주(검은 거미..?)’가 어딜 어떻게 공격당했는지 추욱 늘어진 식인왕의 머리끄댕이를 잡고 질질 끌어다가 내 앞에 팽개친다.
“..으.. 제, 제가…”
“눈이 멀어 고인을 몰라 뵈었습니다. 부디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라고 할 거였지?”
“헛-!”
“끝까지 참신함이 없는 등장 인물이군. 으.. 짜증나.”
“으흑… 다, 당신은 도대체…”
“이 비화곡에서 무공을 못쓰면서도 자신은 만독불침(萬毒不侵)에 이런 고수들을 줄줄이 달고 다니는 인물이 누구일 것 같아?”
“마, 맙소사..!”
“황성과 백상은 이 작자 옷 뒤져서 해약 찾아 먹고, 그리고 이 창고 안 뒤져서 흑주가 기절시킨 놈들 전부 끌고 와.”
“존명!”
흑주에게 혈도를 제압 당하기도 했겠지만, 내 정체를 안 충격 때문인지 식인왕은 거의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원판 ‘극악..’은 비록 무공은 전혀 못 하지만, 무수한 독극물을 다루면서 지 자신이 마루타가 되어 결국엔 만독불침이라는 매우 편리한(?) 몸이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뭐라더라..?
만독당의 독수라가 죽일 수 없는 인물이라면 그게 ‘극악..’이다, 라는 말도 있다던가?
하여간 이번엔 그런 원판의 육체가 상황 파악의 열쇠였었다.
다른 일행이 배가 아프다고 할 때 나도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는 점..!
심각한 위기가 아니면 내가 묻기 전까지 알려 주지도 않는
무심한 로봇 몽몽에게서 특별히 경고가 없었던 것도 그렇고..
만독불침인 몸까지 이상이 있다면 그건 독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식인왕 놈이 항상 한다는 행동, 싸우기 전에 상대에게 자신의 요리를 먹이는 것은….
음, 생각 잠시 중단.
“곡주님! 식인왕이 제 정신이 아니라 해약을 구분할 수가..”
황성은 복통이 심해졌는지 약간 눈살을 찌푸린 채 수십 개의 약병과 작은 상자를 바닥에 늘어놓았다.
저 작자, 독이며 해약이며 참 많이도 가지고 다녔군.
음… 윈도우에서 자주 보는 마우스 커서가 허공에서 스윽 이동하더니 작은 상자 하나를 콕 찍는다.
땡큐, 몽몽.
“이거, 난 괜찮으니까 미령이 먼저 먹여.”
“존명!”
내가 골라 준 약상자를 집어드는 황성의 얼굴에 비로소 안심하는 표정이 떠오른다.
원판의 육체는 독이 아닌 약품에도 비교적 내성이 있는지
그리 심하게 아프지 않았지만, 먹은 사람이 극독에 중독 되었다고 느낄 정도여야 하니까 꽤 심한 통증을 유발하는 약일 것이다.
한 터프하는 혈랑들은 잘 참는 거 같지만, 제기.. 미령이가 식은땀을 흘리며 간신히 서있는 건 정말 보기도 안쓰럽군.
식인왕인지 뭔지 하는 저 놈하고 그 패거리들, 각오들 좀 하셔야겠어.
나.. 열 받았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