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1부 – 73화
갑자기 뒤로부터 끌어 안김을 당한 나는 순간 당황, 이어 당혹, 그리고…..
“..오늘은 그냥 보내 드리기 싫습니다.”
허걱-! 대교 너 정말 왜 그래..?
- 음하하..! 뭘 망설이는 거냐, 진유준.
누, 누구냐?
- 누구겠나, 여자가 이렇게까지 나왔는데, 무시하면 남자도 아뉘지~!
그, 그래도- 대교는 아직 어린 미성년자..
- 호오- 아직도 그런 소리를..? 자네 눈엔 대교가 정말 어린아이로 보여? 솔직히 말해 보라구. 자신의 감정에 충실.. 오, 그래 지금 등 뒤로 느껴지는 대교의 뜨거운 숨결.. 이 큰 가슴….
거야, 대교 몸매 빵빵한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 응-? 꼬, 꼬드기지 마라. 왜 너만 나온 거냐..?
- 후후- 간만인데, 꽤나 섭섭한 반응이로군.
제기- 이 목소리(?) 참 오랜만이다. 언제부터였을까, 내 마음속에서 가상의 내 복잡한 마음에 각각 인격(?)을 부여했던 것이… 그래, 대충 중, 고딩 시절인 것 같다. ‘연기’ 연습 겸해서.. 뭔가 선택의 고민이 있을 때, 약간 ‘본능’적인 마음을 지금 이 놈으로.. 그리고 이성적이고 ‘양심’에 가까운 마음에도 ‘인격’을 부여하여 둘을 싸우게 하곤 했다.
이기는 쪽 결정을 따르는… 그래 봐야 결국 다 나 자신의 마음이겠지만, 하여간 한 몇 년은 어려운 선택을 할 때 그런 식으로 ‘다중 인격’의 재미를 느꼈었 다. 본래 원하던 전공이 ‘연기인’도 아니고, 어른이 되어 가며 점점 희미해졌던 이 놈이 하필 이 때 튀어 나오다니…
- 진유준, 네가 곧 나고 내가 너다. 잊었나..?
이, 잊기는… 하지만 정말 왜 너만 나온 거지? ‘이성'(?)..이는..?
- 후후- 여전하구나. 슬쩍 주제를 돌리려 하다니, 오늘의 주제는 ‘대교’. 지금 니 등 뒤에서 두 팔로 널 놓치지 않겠다는 듯 붙들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
소, 소녀..라니까..?
- 그게 무슨 상관이냐. 여긴 20세기가 아니야. 아, 그리고 넌 이미 대교보다 한 살 많을 뿐인 이화 아니 악소연과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잖은가.
그건, 모르고.. 알았더라면…
- 후후후. 사나이 진유준! 뭐가 그렇게 겁나나? 여긴, 20세기의 한국이 아니야. 한국에서도 17살이면 노처녀 취급받던 시절이 있다는 거 알잖아..?
……….안다. 그리고 겁내는 거 아니다.
- 그래, 진유준. 더 이상 망설일 필요 없다. 이번엔 니가 그녀를 느껴..보는 거다.
“곡주님-“
대교의 목소리가 어째 젖어 있다는 생각을 하며 난 그녀의 두 손을 잡았다. 두 팔이 살짝 풀리는 순간 나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마주 보는 자세가 되니 대교의 얼굴이 가슴께 정도에서 날 올려다보고 있다.
“약속, 아니 맹세를 어기는 거냐? 왜 울고있지..?”
“죄, 죄송. 소녀는.. 소녀는 곡주께서 자꾸 멀어지는 것..같아..”
“………..”
“………..”
- 확인해 줘. 오늘 니 여자로 만드는 거야.
내 강렬한(?) 시선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듯 사라락- 감기는 대교의 두 눈. 본능.. 니 승리다. YOU WIN-!
대교의 입술에 살며시 내 입술을 얹었다. 상상하던 이상으로 부드럽고 달콤한…
“곡주님..?”
내가 입술을 떼고, 그리고 뒤로 물러섰기 때문이다.
“어, 어째서…?”
“내가.. 깜박,했다.”
멍한 표정의 대교에게 어떻게 설명해 주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좀 전에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났다. 대교의 첫 키스를 원판의 육체가..?
으으- 열 받는다.
“무슨, 말씀..이신지..?”
“무슨 말씀이나마나. 난, 이 몸으로 널 안을 수 없어, 그런.. 제기-!”
몽몽 호출, 통역 중지 시켰다.
“아, 쓰펄-! 딴 여자는 몰라도, 저 애를 이 몸으로..? 안돼! 억울해! 누구 좋으라고! 아무리 현 거주지라도, 잰 안돼! 대교가 나중에 떠올릴 남자의 얼굴이 이 얼굴인 것도 스팀 받는데, 다른 것까지…? 우이쒸-!”
씩씩거리던 나는 정글도를 찾아 들고 바위 두어 개를 작살 내고 서야, 겨우 진정할 수가 있었다.
제기, 헥~! 헥-! 육체나 정신이나 다 숨이 차는 군.
어쨌든 진정이 되니까, 이제야 좀 전의 내 말과 행동을 대교가 어떻게 볼 것인지에 생각이 미친다.
“……….”
몽몽의 통역 재개시키고 슬며시 고개를 돌려보니, 멀찍이 떨어져 내 광란(?)을 지켜보던 대교가 이제야 천천히 이편으로 다가온다.
“…곡주님, 오늘 소녀가 곡주께 무례한 행동을 했습니다.”
뭐라고 대답해 줘야 하는데, 좀 아까 통역 중지시키기 전에 대교에게 뭐라고 했는지 잘 생각이 안 난다. 그걸 알아야 적당한 변명을….
“..곡주께서 코리아 교를 얻으신 지 오래지 않기에, 이토록 신앙심이 깊으신 줄은….”
다, 다행히 대교의 지금 표정은 거절당해서 상처받은 얼굴은 아닌 것 같은데…
“몇 년이든.. 제가 코리아 교의 교리에 어울리는 여인이 되었을 때, 그리고 곡주께서 천형의 사슬에서 벗어나셨을 때를… 기다리겠습니다.”
나도 모르게 대교의 두 손을 덥석 잡고 말았다.
“고맙다~!”
알아서 해석해 준 것도 고맙고, 상처받지 않은 것도 고맙고, 기다린다는 말 자체도 고맙고…
“곡주님..! 대교 열심히 하겠습니다. 뜻하시는 일에 누가 되지 않도록.. 원하시는 여인이 되는 것까지..”
……그렇게 말하던 대교를 보낸 지 어언- 두 달. 하필 계절이 겨울이냐, 그래. 이 곳 비화곡은 남반부에 위치한 지역적인 특성도 있고 또 본단이 있는 이 곳은 계곡 속의 교묘한 위치 선정으로 ‘겨울’이 짧다고 했다.
실제로 아직 눈도 오지 않고 있고.. 하지만 대교는 지금 열심히 지역 안 가리고 다니며 ‘실전 경험’을 쌓고 있다. 춥지 않으려나..? 옷은 든든하니 입고 다니려나..? 딸려 보낸 미염당과 월영당의 여자들이 잘 보살펴 주겠지만.. 그리고 만약을 대비해 주변 호위로 붙인 각 당, 대의 정예. 그런 저런 조치를 생각하면 조금 안심은 되지만 그래도 걱정이…..
“곡주님, 바람이 차갑습니다.”
몸이 허깨비라고 해도 아직 정신은 ‘혹한기’ 훈련 때의 기억이 남아있다. 이 정도 기온이야 뭐-라는 생각과 달리.. 춥다. 제기, 이 몸이 문제야, 몸이..!
난 미령이가 창문을 닫는 것을 말없이 지켜보다가, 슬며시 침상으로 가 누웠다. 몸이 감기 걸리면 나만 손해지, 암.
후우- 여러 가지로 춥다.
이 겨울에 주인(나)이 시키는 대로 쌈박질하러 다니는 대교, 얼음 구덩이 속의 내 본래 몸, 조금만 찬바람 맞으면 콜록거리거나 열이 올라 의화각에 일거리 늘리는 이 원판 놈의 몸…
원판의 몸은 정말 대책이 없다. 그동안 운동 좀 해보려고 몇 번 시도했었는데, 아무리 열심히 해도 진전이 없으니 기분이 안 나 못하겠고.. 한 며칠 하면 몸살이 나 누워 있어야 하니 그 것도 못 할 짓이다.
처음엔 내가 뭘 해도 그냥 보조만 하던 자매들이지 만, 근래 들어 뻑 하면 앓아 눕는 내 상태에 대해 총관에게 한 소리 들었는지 지금은 잔소리며 참견이 늘었다.
“곡주님, 탕재 드실 시간입니다.”
“………”
보약, 지겹다. 감기약도 안 먹던 내가 이게 무슨 꼴이람-! 당장 아픈 거 싫어서 먹긴 먹는다만…
“소교, 그 거 아직이니..?”
“..주류와 함께 할 수 있는 탕재는 내일부터 준비 될 예정입니다.”
그래, 알았다. 술은 하루 더 참는 수밖에.
난 슬며시 이불을 싸안고 누웠다. 역시 스트레스가 문제일까..? 처음 한 동안 보다 더 약해진 느낌이 든다. 그리고 무공을 못 익히는 건 그렇다 해도 이렇게까지 허약하다니….
톡, 톡, 톡
“이 몸.. 원판의 신체에 대해 좀 말해 볼래..? 무공을 못 익히고 허약 체질이라는 건 알고 있으니까. 좀 더 자세한 사항을 말해봐.”
[ ..그간 축적된 주인님의 현재 신체에 대한 데이터 분석 결과, 최소 지난 15년의 세월 동안 총 183 종의 질병과 427 종류의 합병증을 앓았습니다. 때문에 항체 보유율은 높으나 감기와 같은 신종 발생 빈도가 높은 바이러스에 가장 취약합니다. ]
독 같은 것도 그렇더니, 병도 마루타였냐..? 일부러 그렇게 걸리려고 해도 힘들었겠다.
[ 천형오음절맥은 이 시대 난치병 중 상위 1% 안에 드는 복합질병으로, 선천성 에너지 통로 다수 손상 및 부재와 주인님 시대의 ‘백혈병(白血病)’의 복합… 추정 사망 예정 시기는 육체 나이 14세… ]
놀랄 기운도 없다. 이 빌어먹을..!
[ 이 시대 각종 영약과 상위 의술 등으로 에너지 통로, 혈맥의 일부 복구와 백혈병 진행을 멈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후 백혈병 증상의 재발 가능성 34.2%. 추가 의료 행위가 없을 시, 사망 추정 연령 31세. ]
“몽몽…!”
[ 말씀하십시오. ]
“너, 말야. 이제 그런 정도(?)는 안 물어 봐도 가르쳐 줘야 하는 거 아닐까..?”
[ 주인님의 사용자 등급 조정은 사용자 최소 착용시간과… ]
“닥쳐 줄래..?”
[ ……….]
빌어먹을 놈. 이 허깨비, 부실 공사, 마루타 몸으로 어떻게 살아가라고.. 아니 그래도 말은 해 줘야 할 거 아냐. 마음의 대비이든 실제 대비이든 하게.
[ …본 사용자 ‘진’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견딜 수 있을 것으로 계산되었습니다. 오류 범위 추정과 경고는 상황 발생 73시간 안에 시도될 예정이었습니다. ]
..쳇-! 니가 그렇게 말하니 나도 할 말없군. 하긴 내 몸 아니라고 나도 너무 무심한 면도 있었다. 그저 약하다고 투덜거리기만 하고….
“…혹시 미래의 의술로 이 몸의 체질 개선이 가능하지 않니..?”
[ 몇 가지 의료 장비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제 기능으로는 각종 질병 진행 방지에 필요한 데이터 제공과 혈도 복구 작업에 관한 시도까지 가능합니다만, 두 번째 혈도 복구 작업은 위험도가 85.3%로써 권장 사항이 아닙니다.]
“…질병 진행 방지 방법이라도 먼저 말해 봐.”
[ 현재 이 곳 의료진이 제공하는 약재상용과 육체의 본래 사용자가 사용한 ‘채음보양’의 수법을 병행하는 것이 현재로써는 가장 유용한 진행입니다. ]
“그거, 채음..”
[ 채음보양(採陰補陽). 여성의 신체에 축적된 pme 91-96 계열의 에너지를 인위적으로 흡수, 축적한 후 이를 신체 대사 저하와 노화 방지에 응용하는 기법입니다. ]
이번엔 아주 몰라서 말을 꺼낸 것이 아니었다. 그 왜, 누구라도(?) 무협지 보다가 야한 장면이나 용어가 나오면 읽는 진행이 다소(?) 느려지는 것이 보통 아닌가..!
그래서 이 용어는 아주 낯익다. ‘채음보양’… 몽몽의 표현은 다소 점잖았지만, 말이 그렇지 여자와 ‘응 응응-‘하면서 음기를 갈취, 자신의 양기를 오히려 높이는 ‘사악한 기법’이 아닌가.
과장법 즐겨 쓰는 무협지에서 사악한 사파나 마파의 고수에게 음기를 흡수당한 미녀가 파파 할머니, 내지 는 중국제 미이라가 되어 죽는 그 수법…
원판 녀석, 그래서 그렇게 ‘여자’를 밝혔던 건가?
에- 그럼 최근 나 진유준이 너무 ‘금욕’을 해서, 현재 원판 녀석의 몸이 망가졌다는 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