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1부 – 78화
“아미타불-!”
“아미타불..!”
뭐, 어머니 따라 절에 다니 적도 있고 방학 때 절에서 스님들과 한 동안 지낸 경험도 있고 해서 합장하며 인사하는 정도야 나도 그리 어색하지 않다.
명성과 연륜을 합치면 현 비화곡주를 능가할 정도의 초 거물 소림 성승…. 막상 보니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다.
성승 옆에 서 있던 고화옥과는 평소처럼 포권으로 인사를 나누었는데, 별말은 없었지만 ‘오호홋-!! 어떠냐, 성승 정도 되는 거물을 데려 올 줄은 몰랐을 거다. 나 한 인맥하지..?’라는 뜻의 표정이 여실했다.
“고여협께서 이토록 신경을 써 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소이다. 덕분에 이렇게 성승의 존안도 뵙고 이번 강호행에서는 쓸데없는 피를 보지 않아도 좋을 듯하니 더욱 기쁘군요.”
내 정중한(정말이지 말투에 신경 썼다.) 감사의 말에 고화옥은 빙긋이 짓궂은 미소를 떠올린다. 어째 좀 불안해지는걸..?
“제가 운이 좋아 성승께 부탁 드릴 기회는 얻었지만, 성승께서 곡주와 함께 형주의 목야평까지 가시는 문제는 성승께서 이제부터 직접 결정하실 문제라…”
말끝을 흐리며 슬며시 뒤로 물러나는 고화옥.
뭐야 이거. 나와 함께 강호에 나가 우리 일행과 원판에 원한을 품은 자들 간의 싸움 말리는 거, 그걸 해 주겠다고 결정하지도 않았으면 뭐 하러 왔다는 거야?
우이쒸-!
처음 아미타불 한 마디 하고 끝, 계속 아무 말 없이 불상처럼 지극히 인자하고 초월적인 미소를 머금고 날 바라보고만 있는 ‘성승’.
그리고 그 약간 뒤쪽에서 얄궂은 표정으로 나와 성승의 동정을 살피는 고화옥.
이거 아무래도 성승이 내 관상을 살핀다거나 모종의 방법으로 테스트 해 본다거나 해서 내가 어떤 인간인지 알아보고 동행을 결정하겠다는 그런 뜻 같은데..?
일났군.
나도 말빨로 상대를 설득하거나 헷갈리게(?) 하는 건 자신이 있는 편이지만 스님, 특히 유명하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인된(?) 고승(高僧)들은 솔직히 무섭다.
음…..
보통의 경우(?), 자식들이 조금 대가리가 크면 부모님들과의 대화가 줄어들기 마련이다. 생각하는 방식에서 소위 ‘세대 차이’ 때문에 관심사도 많이 틀리기 때문이다.
무뚝뚝으로 유명한 우리 아버지와는 최근 ‘군대 이야기’라는 세대 초월, 만국공통(?)의 화재가 생겼지만, 불교 신자이신 어머니와의 대화에는 노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난 부대의 도서실(상병 때 부임 온 신임 대대장님이 만든)에서 불교 관련 서적을 찾아 틈틈이(주로 훈련 없는 날 밤) 읽어보곤 했고 고승들의 재미있는 일화 같은 것이 있으면 기억해 두었다가 휴가 나갔을 때 어머니께 들려 드리곤 했었다.
그 덕에 난 꽤 많은 고승들의 일화와 뜻 모를 선문답(禪門答)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말 그대로 ‘뜻 모를’ 이야기들이 태반이라, 그런 이야기 기억하고 있는 정도로 과연 눈앞의 이 당대의 고승을 상대할 수 있을지…
고승들이 ‘천하무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의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첫 번째 사례.
양나라 무제가 저 유명한 달마 대사를 금릉에 초대하여 물었다고 한다.
“짐은 즉위한 이래 절을 짓고 불상을 만들고 경전을 간행하고 스님을 모신 것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공덕이 어느 정도나 됩니까..?”
달마 대사 왈.
“무공덕(無功德, 해석 – 공덕은 개뿔이..).”
쬐금(?) 불쾌해진 무제가 인상을 긁으며 반문했다.
“내 이토록 불법을 위해 온 힘을 다했는데도 아무 공덕이 없단 말입니까?”
“공덕을 자랑하거나, 은혜 베풀었다고 생각하거나, 칭송과 숭배 받기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공덕이 될 수 없습니다.”
뭐… 이쯤에서 무제가 뭔가 깨달음을 얻고 감사했다는 썰(?)도 있고, 열 받은 무제가 달마 대사 암살을 지시했으나 당근 휘황 찬란.. 아, 그건 아니고 신출귀몰, 신비막측한 능력의 달마 대사는 여유 있게 암살자들을 따돌렸다는 전설도 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이상과 같은 이야기를 사람들은 무조건 무제는 우매한 자, 달마 대사는 역시 뭔가 아는 분..으로 해석하여 전해 내려오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난 교훈을 얻었다. 고승이 하시는 말씀은 황제도 얌전히 들어야 한다. 왜..? 고승들은 본래 심오하고 훌륭한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라는 것이 일반인들의 상식(?)이니까!!
사례 two.
첫 번째 사례의 대화는 약과다. 그나마 달마 대사가 어떤 뜻으로 이야기했는지 보통 사람들도 조금은 감이 잡힌다. 그러나….
어느 날 한 수행승이 조주(趙州) 선사란 분에게 물었다고 한다.
“달마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뜰 앞의 잣나무니라.”
“선사께서는 비유를 들어 말하지 마십시오.”
“나는 비유를 들어 말하지 않는다.”
“달마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뜰 앞의 잣나무니라.”
이 선문답에 숨겨진 의미는 그렇다 치고, 기본은 역시 수행승은 깨달음이 부족하고 조주 선사란 분은 무지 도통한 분이다..라는 개념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다.
나는 여기서도 교훈을 얻었다. 고승께 말대꾸 해봤자, 지만 씹힌다. 왜..? 고승이시니까!!
사례 3.
어느 날 법상(역시 스님이겠지 뭐..)이란 분이 마조 선사에게 물었다고 한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마음이 곧 부처지.”
또 다른 날은 학인(사람 이름인지 공부하는 사람이란 뜻인지는 잘 모르겠음.)이 마조 선사에게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
사례 two에서의 조주 선사(당나라 때 유명한 분이며 120세까지 엄청 장수했다는 분.)라는 분도 수행승들이 “개(犬,dog)에게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어떤 수행승에게는 ‘없다(無)’라고 하고 또 다른 수행승에게는 ‘있다(有)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후 조주 선사의 무(無)자 화두는 참선하는 수행 승들에게 주어지는 최초의 공안(公案, 話頭 : 풀어야 할 문제)이 되었다던가…?
이건 정말 중요한(?) 교훈이다. 고승께서 말씀을 이랬다 저랬다 해도 결국 다른 깊은 의미가 있을 것이라 고 알아서(?) 해석해야 한다. 왜..? 고승이니까!!
이상과 같은 몇 가지 진유준 식 교훈을 종합한 결론은, 말빨로 고승을 이기겠다는 건 군대에서 ‘인사계’가 당직인 날 밤에 내무반에서 라면 끓여 먹으려는 시도만큼이나 무모하고 위험한 시도라는 것이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느라 말을 못했지만, 성승은 과연 무슨 생각으로 계속 침묵인 걸까..?
꽤 시간이 지난 듯하여 내가 먼저 아무 말이나 꺼내 볼까 어쩔까 망설이고 있는데, 다행히 성승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진시주께서는 눈이 참 맑구려.”
나는 웬지 기뻐서 비죽이 웃었다. 뜬금없는 칭찬이긴 했어도 어쨌든 성승이 ‘뜰 앞의 잣나무’ 운운하는 아예 뭔 소린지 모를 말을 꺼내지 않은 것이 기쁜 것이다.
“그래, 어쩌자고 활을 들고 숲 속을 거닐려는 것이오.”
으윽-! 방심했나..? 갑자기 기습당했다. 제기, 몽몽도 ‘직역’뿐 불교식 ‘의역’은 불가능한 듯 아무 말 없이 잠잠하고…
그그극-! 그윽! 그윽-!! (간만에 내 맷돌 굴리는 소리..)
가만, 가만있자. 혹시 내가 강호에 나가는 걸 비유한 건 아닐까..? 피 흘리는 싸움이 일어날 걸 알면서 왜 싸돌아다니려는 거냐.. 이 해석이 그럴 듯한 걸..?
그럼 난 뭐라고 대꾸할까? ‘꼭 가야 하는 장소와 해야 할 일이 있어서’라는 뜻을 휘돌려 치기(?)로 표현하면…
‘숲에서 짐승을 만나기 위함이 아니라 숲을 통과해 약속 장소로…’ 이건 너무 늘어지는 표현인 것 같다.
‘낸들 별 수 있소? 하늘을 나는 재주가 없으니..’ 라고 하면 ‘장난 치냐..?’라는 소릴 들을 것 같고…
‘숲 너머에 고향이 있기 때문이오.’ 어, 이게 가장 무난하면서도 그럴 듯한걸..?
준비한 말을 하려고 만면의 웃음과 함께 입을 여는 순간이었다. 머리 속에 섬광처럼 다른 말이 떠올랐다.
준비된 말과 비슷한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그건 좀.. 그러나 이미 작동(?)을 시작한 내 입은 그 말을 지껄이고 있었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에구, 이 놈의 입이 방정이다.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으니 나는 그저 슬그머니 성승과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살필 수밖에 없었다.
성승은 알겠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는데 비웃는 기색이 없었고 고화옥은 조금 놀라는 눈치, 총관 등 우리 측 사람들은 매우 흐뭇한(?) 표정….
휴우~ 다행이다. 이 동네 사람들은 ‘하늘을 봐야 별을 딴다’는 말의 진짜 의미(?)를 모르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