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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1부 – 93화


그로부터 약 한 시간 정도가 지난 후, 나는 그 이명환이란 젊은 청년과 한 식탁에 마주 앉게 되었다. 가까이에서 찬찬히 살펴보니 고급 비단이지만 비교적 수수한 디자인의 복장이었고, 얼굴에 귀티가 좔좔 흐르면서도 나약해 보이지는 않았다. 자리에 앉기 전에 보니까 키도 꽤 컸고 나이는 본래 나와 비슷한 20대 중반 정도? 뭐… 적어도 용모는 남자인 내가 봐도 킹카인 청년이었다. 문제는 현재 저 친구의 들떠있는 표정과 태도인데, 원판의 비정상적인 미모(?)와 화장발, 그리고 내 연기력의 삼위일체가 그만큼 완벽한지 내가 남자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러니까……”

나는 사람이라고는 양측 보디가드 사영과 류혼 밖에 없는 객점 안을 새삼 둘러보며 그렇게 입을 열었었다.

“어젯밤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이공자께서는 소녀가 가는 곳마다 앞서 가며 이렇듯 사람들을 모두 내몰으셨군요.”

내몰았다는 표현이 뜻밖이었는지 청년은 조금 당황하는 눈치였었다.

“전 다만 아가씨께서 어제처럼 잡인들 때문에 번거로운 일을 겪게 되실까 우려했을 뿐입니다. 불쾌하신 점이 있었다면 사죄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상대가 예절바르고 점잖게 나오든 말든 난 티껍다는 태도로…

“흥~! 소녀가 이번에 집을 나선 것은 넓은 세상과 사람들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는데, 덕분에 하루 종일 매우 심심했어요.”

“하하… 본인이 생각이 짧아 그만 아가씨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모양입니다. 부디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됐어요. 어쨌든 절 위해 한 일이니 감사의 뜻으로 식사 한끼 대접할게요. 됐죠?”

함께 식사하자고 하니까 무지하게 기대를 하고 나왔다가 내 삐딱한 반응에 놀라 민망함을 감추지 못하는 이명환. 이 후 이어지는 나의 연타 공격!

“오머머~! 맛있어 보이는 닭고기네?”

우선 닭다리는 이렇게 통째로 들고 뜯어먹는 것이 제맛! 찌익-! 우적-! 우적! 쩝! 쩝! 효과음 죽이고~! 음하하! 이거, 며칠 만에 여자다울(?) 필요 없는 자리라고 생각하니까 더 음식 맛이 나는 것 같군. 국수는 후루룩! 후루룩! 예전의 혈랑대 백상처럼 만두는 한 입에 날름! 우물우물- 꿀꺽!

“꺼억~! 어… 이봐요. 내가 사는 거라니까요. 왜 남 먹는 거 구경만 하고 있어요?”

“예? 아, 전 그, 그냥……”

소개팅 나왔다가 폭탄 맞은 표정이 되어 가는 이명환 앞에서 한껏 요염한 포즈를 취하며 연초대를 피워 물고 연기를 그의 얼굴에 푸욱-! 또 이어 혼자 뜬금없이 퍼 마신 술에 취해 휭설수설하기 시작하는 날 감당하지 못하고는 갑자기 급한 볼일이 생겼다며 서둘러 객점을 떠나는 이명환……! 뭐… 대충 이런 진행이 본래 내 계획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사람들을 내몰았냐고 추궁 아닌 추궁을 한 직후부터 아무 말도, 행동도 취할 수가 없었다. 별안간 허공에 몽몽이 문자 메시지를 띄워 알린 ‘돌발상황’에 대한 분석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저, 진소저께서는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어째서 보기만 하고 드시지 않는지요.”

불면 날아갈까 싶다는 듯 조심스레 물어보는 이명환을 나는 가만히 응시하며 말했다.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아니고 일반 객점치고는 고급 요리가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래도 이공자께서는 주방에까지 손을 쓰신 모양이네요.”

짐짓…이라기보다 매우 노골적으로 떠 본 건데, 이명환은 알아주어서 고맙다는 듯 기뻐하는 표정으로 대답한다.

“아, 그건 다행히 오늘 이 마을에 요리의 명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하-! 제가 운이 좋아 진소저께 생색을 낼 수 있게 되었군요.”

흠, 아무래도 ‘손을 썼다’라는, 주로 나쁜 뜻으로 쓰이는 강호식 표현도 잘 모르는 것 같지…? 역시 사영이 처음 판단한 대로 강호 경험이 별로 없는 민간인 도련님이 맞는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역시 조심하는 것이 좋겠지? 음… 일단 의심의 단계를 6개로 나누어 이 친구가 그 관문을 모두 통과하는지 보기로 할까?

“호호~! 진공자께서 잘 알지도 못하는 소녀를 위해 이토록 신경을 써주시니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영화 속 미녀들의 표정을 흉내내려고 상당히 신경 써서 예쁜 척하며 말했더니 이명환은 당장에 얼굴을 붉히며 버벅대기 시작했다.

“하핫~! 벼,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전 소저를 기쁘게 해드릴 수 있다면 뭐든… 아, 으, 음식이 식겠습니다. 드, 드십시다.”

내 뒤에 서있는 사영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신경 쓰이는 것은 물론이고 나 자신이 전신에 닭살이 돋아 벅벅 대패질을 하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꾸욱 눌러 참으며 다시 말했다.

“저어… 성의는 감사하나, 소녀는 본래 비린 것을 좋아하지 않아 이 유어배면(溜魚焙面)은 먹지 않겠습니다. 부디…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런! 이 지방에서 보기 힘든 요리라 시켰는데 제가 실수를 했군요.”

제기, 실수는 임마, 내가 잉어를 얼마나 좋아하는 데… 에효- 어쨌건 내가 싫다니까 아예 그릇 자체를 치우라고 사람을 부르는 걸 보니 1차 관문 통과.

“그러실 필요 없어요. 공자께서 좋아하신다면 그냥 드세요.”

“…그, 그럴까요?”

사실은 무지하게 먹고 싶었는데 내가 그릇을 자신 앞에 밀어주자 못이기는 척, 먹기 시작한다. 2차 관문 통과.

“저는 낙양가연채(洛陽燕菜)를 먹고 난 후에는 항상 하늘을 나는 제비에게 미안함을 느끼곤 하지요.”

몽몽에게 입력되어 있는 어떤 중국 미식가의 문장을 인용해 유식한 척을 해봤다. 풀이하면, 낙양가연채는 무우, 닭 고기, 새우 살 등이 주원료인 요리지만 최고급 요리로 손꼽히는 ‘제비집’과도 비견되는 엄청 맛난 요리라는 말로써… 결국 ‘너도 먹어봐’라는 뜻이다. 이명환이 내 심오한(?) 뜻을 이해했는지 어쨌는지 몰라도 낙양가연채를 대뜸 먹는 거 보니 3차 관문 통과.

얼마 지나지 않아 이명환은 나… 아니 초절정, 섹시, 우아, 현기증 미녀 진하연이 유도하는 대로 4차, 5차, 6차 관문까지 주저 없이 통과해 버렸다. 참 내… 아무리 예쁜 여자가 권하는 요리라 해도 그렇지, 그냥 한입씩만 요령 있게 먹어도 될 것을 몇 젓가락씩 꾸역꾸역 먹어대고는 짐짓 호탕하게 웃는다.

“하하-! 이제 보니 진소저의 식성이 저와 공통점이 많습니다, 그려. 하하핫~!”

이 정도면 의심을 풀어도 될 것 같아서 나는 조금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뭐, 그럴 수도 있겠죠. 헌데 그보다… 이공자께서는 주변에서 원한을 산 일이 있으신가 봐요.”

“예? 무슨 말씀이신지……?”

“예를 들어, 지금 드신 음식에 독(毒)을 섞어 목숨을 노릴 정도의 원한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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