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2부 – 1-3화 : 극악(極惡) 마병기(魔兵器) 출현
- 완전무장(完全武裝).(3)
손끝으로 전해지는 단단한 금속제의 서늘함과 내 손놀림에 따라 철컥! 찰칵! 제자리를 찾아가는 부품들의 보고소리들이 내게 묘한 흥분과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이윽고 카운트되던 숫자가 51이 되었을 때 나는 K2를 내려놓으며 낮게 외쳤다.
“하사 진유준 결합완료!”
흠, 결합완료까지 51초…라. 처음보다야 많이 늘은 거고 부품 자체가 정식 규격이 아니라고는 해도 바로 어제의 기록인 43초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역시 실탄 사격을 앞두고 몸이 굳은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서서 쏴 자세를 취해 보았다. 그 동안 연습을 반복하면서 많이 익숙해지긴 했지만 개머리판의 어깨 견착 느낌부터 여전히 어색함이 앞선다. 하긴… 몸도 내 몸이 아니고 총도 2년 넘게 손에 익었던 총번 43**83의 내 총이 아닌데 쉽게 익숙해지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무엇보다 원판의 체력으로 정상적인 서서 싸 자세 자체가 무리일 듯 싶었다.
현재 내가 들고 자세를 취해보는 이 K2는 정확히 말하자면 대한민국 군대의 기본 개인화기인 그 K2가 아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대한민국 군대가 제대하는 군바리에게 기념으로 총 한 자루씩 나눠줄 만큼 정신 나간 곳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기가 슬그머니 들고나올 수 있을 만큼 총기관리가 만만한 곳도 아니다. 당삼… K1, K2 원가 빅 세일, 10정 당 30발들이 탄창 추가 증정! 이딴 게 붙어있는 PX가 있을 리도 만무하다.
사실 내가 아직 20세기에 있었다 하더라도 정상적으로 총을 손에 넣을 수 있는 루트는 거의 없었을 텐데, 1000년이나 과거로 날아온 지금이야 말할 것도 없다. 천하의 비화곡주라는 신분을 이용해 전 중국, 아니 전 세계를 뒤진다 해도 K2 소총은 고사하고 방아쇠 하나 구경할 수도 없는 것이 정상이다. 이 곳에서의 내게는 돈과 권력은 차고 넘치게 있지만 불행히도 돈만 주면 미사일도 배달해 준다는 국제 무기 업자는 고사하고 길거리 자판대에서 총기 부품이 유통된다는 소문의 한국 모 도깨비 시장도 존재하지 않는 시대인 것이다. 결국… 내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직접 만드는 것’뿐이었다.
지난 번 사갈서생이란 놈이 웬 대포를 들고 등장한 데서 알 수 있듯, 이 시대 중국은 화약의 발명과 발달이 상당히 빠른 편이고 철기 문명도 아주 원시 수준이 아니었다. 더구나 이 비화곡에는 벽력마(霹靂魔) 고석산, 철신금귀(鐵神金鬼) 정광 등 그 노하우를 가장 확실히 간직한 인재들도 많았다. 이 시대에 존재하지 않는 과학기술을 줄줄이 꽤고 있는 존재도 내게 있으니~
“당근, 초첨단신비구조경악칩셋짱첨단기능로봇선생…”
헉, 헉… 속으로 말하는데도 숨차다. 늘 신세지고 있는 녀석이라고 좋은 말(?) 많이 붙여 주려다가 좀 오버했나 보다. 하여간 무지 잘난 로봇 몽몽이 있다.
- K-2 소총을 비롯한 20세기 병기의 설계도 및 부품의 성분까지의 데이터를 모두 가지고 있는 미래 로봇 몽몽.
- 현 시대의 평균적인 기술력을 능가하는 노하우를 개인적으로 간직하고 있는 장인(匠人) 인재들.
- 알려진 중국 기술 역사에 앞서 발견되고 강호 상에서 이미 일부 사용되기도 한 특수 금속과 다양한 종류의 화약 재료들의 기존 확보 및 추가 수배도 가능한 정보망.
이상과 같은 기본적인 요건이 갖추어진 관계로 충분히 총기 제작도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을 난 사실 꽤 오래 전부터 해왔다. 그러면서도 그걸 시도조차도 않 은 건 물론이고 되도록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 노력한 것은 그런 생각 끝에 떠오른 비극적인 타임 패러독스를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설마 ‘시간(TIME)’이란 놈이 지가 쉽게(?) 예외를 허용한 한 인간의 행동 하나하나에 허무하게 망가질 정도로 허약한 체질은 아닐 거라는, 타임 패러독스의 또 다른 ‘시간의 자체 복원력 이론’도 나는 긍정하고 있기에 평소 생활에는 별로 거리낌이 없었다. 무엇보다 말 한마디, 발걸음 하나 옮기는 것마저도 두려워해야 한다면 그게 어디 사람 사는 거냐? 소위 ‘첨단 기술 유출’이라 는 깽판 만 부리지 않으면 되지 뭐…! 라는 것이 나와 시간의 타협점인 셈이었다. 물론 내 멋대로의 일방적인 협정이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러던 내가 결국 그 나마의 협정도 깨버리고, 10세기에 머물고 있는 주제에 20세기의 무기를 만들어 들고 폼잡고 있으니… 후우~ 만약 ‘시간’이란 무형의 개념적인 존재에게도 나와 의사 소통이 가능한 인격이 있다면 당연히 어이없어하며 이렇게 물을지도 모르겠다.
“넌 너로 인해 일어날지도 모를 역사의 혼란을 경계한다고 했으면서, 그 동안 너로 인해 발생한 희생자들에게 죄책감을 잊지 않았다고 하면서… 어떻게 그런 위험한 물건을 만들 생각을 했는가. 결국 그 모든 걸 무시한 채, 너 하나 살겠다고 역사를 초월한 살인마가 되려는 것인가?”
그래… 20세기 살인 병기를 확보한 내 행동은 누가 봐도 내가 드디어 살짝 미쳐서 폭주모드에 들어간 것으로 보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아직 미친 건 아니며 나름대로 수많은 고민을 거듭한 끝에 현재의 결론에 도달했다. 역사를 바꿀 만한 기술이 유출될 위험을 안고서라도 나는 최소한 내 몸 하나라도 스스로 지킬 수 있는 무기가 필요했다. 아주 절실하게……!
“…곡주님! 곡주님?”
시간이라는 가상의 존재와 대화에 들어가려던 내 의식을 깨운 건 문밖에서 들려온 대교의 음성이었다.
“준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아냐. 내가 나가지.”
시간인지, 내 양심인지, 이성인지 모를 가상의 존재와의 대화는 잠시 미루어야겠다. 지금은 끝에 뭐가 기다리고 있든 내가 선택한 길로 계속 걸어가야 할 때이다.
창천각을 나서 준비된 가마로 향하는 동안 내 모습을 발견한 시비들과 가마 옆에서 대기 중이던 비연대 여자무사들의 얼굴에 놀라는 표정이 표나게 드러나고 있었다. 내 군복 차림과 등에 맨 K2 소총은 대교자매들 외의 사람들에게는 처음으로 공개되는 것이어서 그 특이함이 눈에 띌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 좀 이상해 뵈냐?”
비연대들에게 묻자 다들 두 손을 모으며 고개를 저었다.
“오늘따라 유독 늠름하고 힘이 넘쳐 보이십니다~!”
대교에게 교육받은 애들이라 좀 다를 줄 알았더니… 아니, 이번엔 아주 입바른 소리들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워낙에 늠름, 씩씩 이런 단어들과는 거리가 먼 원판의 용모인지라 평소에는 아부하는 칭찬도 아름다움과 지적인 면을 강조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역시 군복이란 시대를 초월해 어딘지 강인(혹은 무식?)해 보이는 걸까?
단독군장이 보기엔 어떤지 몰라도 슈퍼맨이나 배트맨처럼 변신까지 해주는 아이템은 아니어서 나는 얌전히 가마에 올라 목적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곳은 전에 대교와 내가 강호 출두를 앞두고 특훈을 쌓기 위해 머물던 숲이다. 그동안 비밀리에 화약 조제 실험 같은 거 하느라 몇 번 더 가본 곳이지만 실제 사격 테스트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임시 사격장으로 꾸며진 장소에 다가갈수록 나는 다시 기분이 착잡해지고 있었다. 음… 지금 내 무릎 옆에 세워져 있는 총, 길이 97CM의 개인 화기를 손에 넣기 위해 나는 꽤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했다. 달리 붙일 만한 이름도 없고 해서 그냥 익숙한 K2라 부르기로 한 이 무늬만 K2를 만들어내는 데 소요된 기간은 약 4개월. 대교가 돌아온 직후 일을 벌이기 시작해 제대로 된 물건이 완성된 건 며칠 되지도 않았다. 후우~ 확실히 그동안 이거 만드느라 몸 고생, 맘 고생한 생각을 하면 만들어낸 것 자체의 잘잘못을 떠나 스스로 대견한 생각이 앞선다. 물론~ 전 중국을 뒤지다시피 하여 고성능 화약 재료와 총기 제작에 사용해도 좋을 정도의 강도를 가진 금속을 구해 오는 등의 육체적으로 뺑이 치는 일들은 다 남 시킨 거긴 해도 나도 화약을 다루는 위험한 작업 등을 직접 해냈으므로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고 자평하고 있다.
가장 기본인 화약. 이곳의 기록으로는 이미 3세기 무렵부터 화약이 발명된 이 중국에서는 그동안 온갖 형태의 실험이 이루어져 그 종류가 내 상상을 초월했다. 물론 강호에서 독보적인 화약 전문가 벽력마 고석산 같은 경우도 우리 시대 화약과 같은 위력의 화약을 만들어내진 못했고 그의 독창적인 폭탄들에 비한다면 강호의 일반적인 수준은 훨씬 더 떨어진다. 그래도 어쨌든 그와 그가 관리하고 있는 비화곡의 공방에는 내가 필요한 재료가 거의 다 갖추어져 있었다. 난 그걸 몽몽의 지시대로 조합하여 작약, 폭파약, 추진약 및 점화점 폭약 등 군용화약으로써의 성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것들을 만들어내야 했는데, 작업의 난이도는 둘째치고 작업 환경이 열악한 탓에 무엇보다도 너무나 위험한 작업이었다. 재료의 혼합 과정과 화학 반응의 진행을 민감하게 감시하던 몽몽이 위험한 일이 발생하기 전에 재빨리 경고해 주곤 해서 위기를 모면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결국 원하던 걸 다 만들어냈을 때, 내 가슴속에는 뿌듯한 보람과 함께 우리나라의 위대한 위인 중 한 분인 최무선 장군에 대한 존경심이 가득한 상태였다. 몽몽 같은 고성능 경보기도 없는 상태에서 무수한 화약 실험을 단행, 결국엔 당시 창궐하던 왜구를 물리칠 수 있는 각종 화기를 만들어 낸 그 분의 고귀한 의지와 무대포 정신을 우리 위인전에는 너무 작게 다루고 있는 거 아닌가 싶다.
화약은 그렇게 재료 조달만 받았으므로 보안에 문제가 없을 듯했지만 제조 기간도 예상보다 빨랐지만 금속 부품들의 제작은 그보다 문제가 많았다. 본래의 내 몸으로도 제대로 배우기 전에는 불가능할 망치질이나 풀무질 같은 대장간 작업은 원판의 육체로는 아예 꿈도 꾸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머리를 굴린 건 부품 하나하나를 모두 다른 이들에게 만들도록 하는 방법이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단 한 사람에게 모두 시키고 나중에 그를 없애버리는 것이 되겠지만 그런 짓은 하기는 싫으니 어쩔 수 없이 정 반대의 방법을 택하기로 한 것이다. 나는 우선 비화곡 내는 물론이고 비화곡 바깥에서도 유능한 기술자들을 가능한 한 많이 찾아내어 그들이 사는 위치, 물건을 만들게 할 시기도 고려하며 신중하게 대상을 선택해야 했다. 그보다 앞서 제조에 쓰일 금속을 구하는 것이 선결 과제겠지만 다행히 쓸만한 것들이 대부분 비화곡 내에 있었다.
우선 현철. 이건 무협지에서 주로 엄청나게 강한 보검의 재료로 등장하곤 하며 대표적인 예로 의천도룡기에서 의천검과 도룡도가 이 현철을 주조해 만들었다고 한다. 몽몽의 분석 결과 현철은 텅스텐 광석을 말하는 것으로 텅스텐은 철갑탄을 만들 때도 쓰이는 것이다. 내가 비밀 서고로 부르던 비화곡의 성지에는 현철로 주조된 검 두 자루, 철퇴 하나가 있었다. 철퇴는 모르겠지만 검은 의천검, 도룡도는 아니라도 그야말로 명검인 것 같아서 한참 망설이다 결국 철퇴만 재료로 쓰게 되었다.
현철과 비슷한 수준으로 알려져 있는 만년한철. 이건 무기뿐 아니라 지옥전에서 중죄인을 묶어두는 족쇄와 쇠사슬로도 쓰이고 있었는데 몽몽의 분석 결과 마텐자이트화 된 강철이었다. 우리 시대에서도 다른 금속을 자르거나 깎는 공구로 쓰일 만큼 초강력 강철이라고 할까?
운철이란 것도 있었는데 이건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에서 나온 광석을 통칭하는 거라 그런지 실제로는 조금씩 다른 몇 종류가 있었다. 여기선 대체로 만년한철과 동일시되는 것 같았지만 그 중에는 인성, 즉 좀 질긴 성질이 강한 강인강으로 분류될 것도 있었다. 이건 톱니바퀴 같은 형태의 부품 제작에 쓰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렇게 막상 특수 금속들을 확보하고 나니 오히려 그 것을 다룰 수 있는 수준의 장인들이 많지 않다는 점이 문제였다. 몽몽이 부품들에 위에 열거한 정도 수준의 금속이 다 쓰일 필요는 없다고 해서 결국 총신이나 몸통처럼 나중에 완제품을 보기만 해도 그 용도를 알 수 있는 부분은 그리 유명하지 않은 외부 장인에게 맡길 수 있는 수준의 금속을 쓰게 되었다. 그게 좀 아쉽기는 했지만 하는 수 없었다. 그렇게 나사 하나, 스프링 하나까지 모두 다른 이들에게 만들어지도록 했고 그 것은 주문과 운반을 맡은 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후우우~ 이렇게 기억을 되새겨보니 이 K2가 새삼 대단한 물건이라는 기분이 온다. 비록 20세기에 대량 생산된 소총들과 형태는 유사하지만 나사 하나, 고정핀 하나 모두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세계 유일의 K2인 것이다. 뭐… 좀 유치하지만 총번 들어갈 자리에 내 군번을 새겨 넣게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너, 세계 유일의 수제 K2! 기왕에 탄생했으니 오늘 그 성능을 마음껏 발휘하게 해주마. 네 주인인 나 하사 진유준, 비록 길지 않은 몇 개월뿐이었으나 저격수 교육을 받았던 자로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