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2부 – 14-1화 : 낙룡파(落龍坡)(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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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2부 – 14-1화 : 낙룡파(落龍坡)(1)


2-6. 낙룡파(落龍坡)(1)

심장이 통제를 벗어나 멋대로 요동치며 머리끝까지 혈액을 밀어붙이는 느낌이었다. 나는 사갈서생의 편지를 땅에 던져 버리고 K2를 들어 하늘을 향해 몇 번이고 방아쇠를 당겼다. 주변에 있던 이들이 내 갑작스런 행동과 K2가 뿜어내는 굉음에 놀라 물러서는 것이 느껴졌지만 나는 그 모든 것이 어쩐지 공허하게 느껴졌다.

“곡주님……?”

대교가 걱정스럽게 다가오는 걸 나는 손을 저어 거부했다. 천천히 근처 바위를 찾아 앉은 나는 K2 개머리판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이마를 손등에 댄 자세로 눈을 감았다. 진하연과는 총성을 신호로 그녀가 달려오기로 되어 있었다. 문득, 내가 사갈서생의 도발에 말려들어 진하연과의 연계 작전을 스스로 밝혀버린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차라리 그랬으면 좋으련만… 쳇~! 역시 녀석은 오지 못하는 것 같다.

얼마간을 기다린 나는 진하연이 내 신호에 응답하지 못할 상황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난 놈이 내가 마침 진하연과 헤어지게 된 것을 기회로 날 노린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돌아간 것으로 된 진하연을 남몰래 대기시켜 사갈서생의 뒤를 치게 할 계획이었던 것이다. 그게… 너무 안이한 발상이었나…? 놈은 처음부터 우리 전력을 분산시킨 후 양쪽 모두를 차례로 깨버릴 생각이었던 건가…? 하지만… 진하연이 그렇게 쉽게 놈에게 당했다니… 나 같은 사이비도 아니고, 정통 원판 극악 집안의 여자가 누구에게든 간단히 당하고 인질이 되어 있다는 건 아무래도 실감이 안 난다. 제기… 어쨌든 이렇게 되면 묘강에서의 호출, 거기부터 놈이 쓴 시나리오의 시작이라고 보는 것이 맞겠지? 놈이 묘강의 연락망을 장악했다거나… 혹은 묘강에서 발생했다는 ‘황족 소년 납치 사건’, 그 것을 실제로 벌였다거나… 어떤 경우든 사갈서생이 내 생각 이상으로 능력을 가진 놈이었다는 건가…? 아니, 아니다. 으~ 진유준, 이 바보 같으니… 어째서 배후인물을 간과한 거지? 그 인물이라면 분명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아도 그 정도 일을 추진할 능력이 있을 것이다. 양쪽의 존재를 다 눈치챘으면서도 그에 대한 대처는 각각 따로 생각하고 있었다니… 결국, 스스로의 직관력을 완전히 믿지 못하고 계속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미련을 버리지 못한 안이함이 이런 결과로 이어진 셈인가? 빌어먹을… 원판 녀석, 딴 일은 다 지나칠 정도로 야물딱지게 처리한 놈이 왜 이런 원한관계나 예비 배신자는 방치해 놓았던 거야?

“곡주님! 수하들이… 동요하고 있습니다.”

어느 사이 다시 바싹 다가온 대교가 속삭이듯 말했다. 애들이 동요… 한다고…? 당연하지. 짱이 이런 꼴을 보이고 있는데 어떤 부하가 기운이 나겠는가. 칫~! 지금 엄한 원판 원망할 때가 아니다. 정신차리자 진유준!

“대교… 경계 병력까지 남김없이 불러들여. 실시!”

“실시!”

나는 진하연이 떠났던 방향을 잠시 더 지켜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빠르게 집합 완료된 수하들의 앞에 섰다. 하나같이 날 지켜보며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제군들! 조금 전까지의 일은 모두… 잊어 주라! 나는… 조금… 여유가 있는 줄 알았다. 적을 너무 얕보았던 거야. 그런데… 아닌 것 같다. 그래… 확실하게 말하겠다! …우린 지금 적의 함정에 빠졌다. 적은 아마도 우리보다 수도 많고 강하며 많은 준비를 해 놓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여기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적다!”

우리 새됐어,라는 말을 하면서 나는 조금 웃어 보였다. 막상 모두에게 그런 선언을 하고 나니 오히려 진심으로 웃을 수가 있다니… 아무래도 나 오늘 사고치지 싶다.

“그래서… 난 오히려 ‘정면돌파’를 할 생각이다. 잘 들어라! 무슨 일이 있어도 사갈서생은 내가 잡는다! 그때까지 나머지 떨거지들은 너희들이 좀 막아 줘야겠다.”

이 비리 한 육체로는 꽤나 실감 안 나는 대사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다행히 내 말에 전체적으로 호응하는 분위기라는 느낌이 온다.

“제군들~! 할 수 있겠나~?”

“할 수 있습니다~!”

조금 약한 듯… 그래도 일단 어느 정도는 반응이… 음…? 맨 앞줄에 서 있던 백상이 갑자기 몸을 돌려 자신의 동료들과 마주 서는가 싶더니 이어 검과 한 손을 번쩍 치켜올린 백상의 입에서 우렁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우리의 검과! 우리의 피로! 곡주님의 앞길을 연다~! 우린 혈랑대다! 혈랑대란 말이닷!”

한 순간, 나는 온몸의 솜털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백상의 외침에 호응한 수십 명의 함성이 주변의 공기를 쩌렁쩌렁 울렸기 때문이었다. 백상이 다시 몸을 돌려 나를 보았고 나는 녀석에게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나는 흥분된 것에 비하면 꽤나 냉정하고 빠르게 분위기를 가늠해 보았다. 나 자신의 연설(?)도 그랬지만, 백상의 외침도 사실 평소라면 속으로 ‘아이 유치해라’라고 중얼거렸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원색적인 선동은 군대처럼 한 가지 목적으로 구축된 단체에서라면 상당한 효과가 있다. 좋아, 일단 부대의 사기는 되살린 것 같지…? 그래… 어차피 예정되어 있던 싸움이다. 지금 와서 자책감이나 심지어 원판을 원망하는 따위의 생각은 그야말로 부질없다. 하사 진유준! 지금부터는 확실한 전투 모드로 가는 거다.

“대교! 지금부터 내가 지시하는 곳으로 이동한다. 선발대는 필요 없고 모든 병력은 내 마차를 중심으로 포진한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니까 말을 탄 쪽이 속도를 늦추면 끝까지 모두 함께 이동할 수 있을 거야. 소교가 선두에 서고, 대교 네가 후미를 맡아. 아마도… 사갈서생은 자기 손으로 직접 날 처치하고 싶을 거야. 그러니 적은 내가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나보다 너희들을 노릴 거고… 모두에게 각자 자신의 안전을 먼저 챙길 것을 주지시켜. 그리고 한 가지… 적의 습격이 있을 때, 몇 명은 죽은 척을 한다던지 해서 뒤에 남도록 지시 해 둬. 무슨 뜻인지 알겠지?”

“…여기서 또 다시 그런 수를… 알겠습니다.”

사갈서생 녀석, 붉은 모란 어쩌고 하는 말로 보아 자기가 지정한 장소에 가기까지 간헐적인 습격으로 우리의 병력을 야금야금 없애겠다는 거다. 그렇다면 거기에 맞춰 우리의 수를 줄여 줄 생각이다. 단, 진하연에 이어 또 녀석의 뒤통수를 칠 병력으로서 남기는 거지만 말이다. 야구로 치자면, 더블 홈 스틸 작전쯤 되려나?

지시를 받은 대교를 수하들 쪽으로 보내고 마차로 들어온 나는 몽몽을 불렀다.

“몽몽… 너, 지금부터 통역 기능만 빼고 모든 기능을 우리 이동로의 스캔으로 집중시켜. 폭발물과 독물, 적 병력 탐지로만 말야.”

[ 저의 구조를 말씀하신 용도로만 변경 구성할 경우, 평시보다 약 3.8배의 거리를 더 스캔 할 수 있습니다. 단, 모드 복구 코드를 미리 지정해 주셔야 합니다. ]

“그렇다고 했었지…? 음… 그냥 ‘수색작전종료’ 정도로 하자.”

이것도 최근에 알게 된 거지만, 몽몽의 기능 구현 형태는 ‘블록’같다고 할까…? 작고 단순한 모양의 장난감 블록을 끼워 맞추어 다양한 건물이며, 차며, 로봇 같은 형태를 만들어 낼 수 있듯 몽몽은 구조 변경을 통해 한 가지 기능을 특화 시킬 수가 있다. 문제는 그런 경우 인공지능까지 거의 정지해 버리므로 모드를 해제하라는 의미의 아주 ‘단순한 명령어’를 미리 지정해 두어야 하는 것이다.

[ 알겠습니다. 이번 패턴을 ‘수색작전’으로 명명하여 등록해 두겠습니다. ‘개시’와 ‘종료’를 명령코드로 이용해 주십시오. 그리고 주인님… 작전개시 전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

“…뭔데?”

[ 현재의 상황전개로 보아, 이번에 주인님은 직접 ‘살인’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

“…그래, 거의… 확실히… 그럴 거야.”

[ 전시에서의 불가피한 살인에 대한 정신교육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

“…됐어, 몽몽. 나, 그래도 명색이 대한민국 군인이었어. 아니, 이거 만들 때부터 이미, 아직 제대하지 않았다는 각오로 지내기로 한 거고……”

나는 K2를 들어올리며 새삼 이 살인무기의 무게를 느껴보았다. 정말 이걸로 사람을 겨누게 되는 순간을 떠올려보면 그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쳤다. 그러나…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나는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전에 소대장과 함께 외국 파병 지원을 심각하게 의논했었던 당시… 나는 몇 번이고 꿈속에서 전쟁터를 달렸었다. 그런 날 아침이면 눈을 뜨고도 한동안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써야 했었다. 문제는… 아무리 꿈속에서 라지만,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전쟁터에 적응을 해 버렸다는 점이다.

“정말 살인이라는 끔찍한 일에도 적응해 버린다면… 나도 결국 원판과 다를 바 없는 놈이라는 거겠지. 뭐 어… 비록 지금까지는 꿈속에서였을 뿐이지만 말야.”

[ 다행이로군요. ]

“뭐?”

[ 주인님은 마인드 콘트롤에 능한 타입입니다. 이미 가상으로 체험한 일이 있다면 실제 상황에서의 정신적 충격도 우려할 정도는 아닐 것으로 추정됩니다. ]

“몽몽… 격려 비슷한 말 같은데… 어째 욕먹은 기분이 드는 걸?”

[ 주인님은 결코 인명을 경시하는 타입이 아닙니다. 단지 위기 상황에서의 결단력이 좋은 것입니다. ]

“칭찬은 고맙다만… 근데 너, 너야말로 너희 시대에는 로봇이 사용자의 범죄를 부추겨도 되는 거냐?”

[ 평시에는 인명보호가 모든 프로그램에 우선합니다. 단, ‘전쟁 수행’시에는 예외입니다. ]

흠… 나보다도 몽몽 이 녀석이 먼저 전투 모드로 들어가 있었던 거군. 꼭 그렇지 않더라도 이 녀석의 인공지능은 어딘가 수상한 구석이 많은 것 같지만… 뭐, 지금은 그거 따질 때가 아니지.

“암튼, 좋아 몽몽. 수색작전개시!”

몽몽을 고성능 지뢰 탐지 및 레이더로 만들어 놓은 후, 나는 내가 가진 무기들을 하나씩 점검해 보았다. 챙겨 온 탄약 중 남은 게 100발 조금 넘으니까 화력은 충분할 듯 싶었다. 수류탄도 다섯 개… 근데, 한 개만 진짜고 나머지는 화약을 왕창 덜어낸 위협용이다. 이거 사용은 좀 신중해야겠군. 그리고 사갈새끼(이제부터는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도 이미 이 무기들의 위력을 어느 정도 숙지하고 있을 테니 뭔가 대책을 세웠을지도 모른다. 역시 놈에게는 아직까지 한 번도 남에게 보이지 않았던 비밀무기를 써야할 것 같았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군복을 입고 싶었지만 비밀무기를 쓰려면 상의는 소매가 풍성한 현재 복장이 나을 것이고… 음… 소매 속에 감춘 작은 총이라는 건 꽤나 고전적인 느낌이지만, 어디…

키릭, 촤악~! 철컥!
좋아, 작동 이상 무. 나는 20세기 전투복 바지에 이 시대 윗도리를 걸친 묘한 복장으로 몇 번 더 소형 총의 작동 실험 겸 연습을 해 보았다. 내 예상으로는 목야평에서처럼 사갈서생의 부하들은 십중팔구 중원인이 아닐 것이다. 왜구나 혹은 묘강 출신도 있으려나? 암튼 돈으로 고용된 외국 용병들이 끝까지 의리를 지킬 것 같지는 않고… 어떻게든 기회를 잡아 놈만 해치우면 그걸로 상황을 종료시킬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다. 가만있자… 왜구라… 이 시대에서 왜구라 하면 일본에서 직접 원정 오는 해적들을 말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일본 출신은 출신이다. 독립운동가로 활약하시다가 놈들의 고문으로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하면… 음… 이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 일인지 모르겠다만, 사갈새끼나 왜구들이나 내 마음의 제어를 풀기가 수월한 대상들인 셈이다. 좋아… 각오들 하라구.

얼마 후, 나와 나의 부대는 전열을 정비를 마치고 적진으로의 이동을 시작했다. 적이 아예 대놓고 ‘나 여기 함정 파 놨소~!’라고 지껄이는 장소에 스스로 찾아가는 한심한 상황인데도 적어도 기세만은 당당한 출발이었다.
사갈서생이 진하연을 인질로 잡은 채 날 기다리겠다 고 한 장소의 지명은 낙룡파(落龍坡)이다. 삼국지에서 제갈공명과 쌍벽을 이루던 천재 방통이 죽음을 당하는 장소와 비슷한 이름… 장소 선정부터 날 거기에 묻겠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낙룡파라는 곳으로 향한 지 한 30분 정도 지났을까? 나는 다급하게 외쳤다.

“전군 정지! 그리고 모두 뒤로 물러섰-!”

마차 창으로 상체를 내민 나는 K2를 들어 전방을 겨냥했다. 목표는 약 50미터 정도 떨어진 길 한 복판… 물론 우리가 지날 예정인 곳이다. 내가 방아쇠를 당기고 총탄이 땅바닥에 박히는 순간 굉장한 폭음과 함께 흙무더기가 허공으로 솟구쳤고, 이어 짙은 연기가 뭉클거리며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날 죽일 생각도 아닐 텐데 길에 폭약이 설치되어 있다면, 그걸 타이밍 맞춰 터트리려던 놈도 있다는 얘기… 나는 재빨리 길 옆 언덕 위로 총구를 옮겼고 조준선 안으로 아까 편지질을 했던 놈 같은 형체가 들어오자마자 방아쇠를 당겼다.

꽝! 꽝~!
칫…! 놓쳤나? 화살 같은 원거리 무기가 특기인 놈은 먼저 잡아 놓고 싶었는데……

“자, 전군 다시 전진~!”

예상대로 폭약은 그리 많은 양이 아니었던지 폭발이 있었던 자리를 피해 마차가 지나갈 여유가 있었다. 그걸로 호위대의 수를 좀 줄여 볼 생각이었을 텐데, 이젠 어떻게 나오려나…? 활을 가진 놈이 계속 언덕을 따라 오며 알짱거리는 것이 거슬렸지만, 한 놈 정도라면 놈이 다시 몸을 드러냈을 때 내가 한 수 빠르게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은 그보다……

“곡주님, 전방에 다수의 일인들이 나타났습니다.”

대교의 보고가 있기 전부터 물론 적들은 레이더에 잡혀 있었다. 다만 내가 바로 대처 방안을 떠올리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전군의 이동을 멈추고 대기시킨 다음 나도 천천히 마차에서 내렸다. 뜻밖인 것은 두 가지… 하나는 나타난 자들이 왜구가 아니라 제대로 사무라이 복장을 갖춘 무리라는 점이고, 또 하나는 그들이 기습의 형태가 아니라 정면에서 길을 막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몽몽, 수색작전 종료.”

나는 몽몽의 레이더로 현재 언덕 위의 궁수 놈과 6, 70미터 정도 밖의 저 사무라이들 말고는 주변에 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몽몽을 복구시켰고 몽몽은 기능을 회복하자마자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멈추자 천천히 이 편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한 사무라이 무리들… 수는 46명… 각자의 내공은 대교를 제외한 자매들보다 약간 아래 정도…? 하나같이 살기 등등한 모습이었지만 제기… 그래도 정면대결로 나오는 놈들에게 미리 총을 쏴대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이대로 우리편과 엉겨 난전 양상이 되어 버리면 그때부터는 쏘고 싶어도 함부로 쏘지도 못할 테고… 사갈새끼, 이런 걸 노린 건가? 그럼 변해버린 극악의 성격까지 파악하고 있다는 건데… 으~ 썅~! 모르겠다. 난 지금 전쟁 중…! 정정당당이고 나발이고 적의 수를 줄일 수 있을 때 줄이자.
그렇게 모질게 마음먹은 나는, 재수없는 복장과 쌍판의 사무라이들에게 총구를 겨냥하기 시작했다. 흠칫 긴장한 사무라이들이 다급하게 눈빛을 교환하는 것 같더니 갑자기 상체를 낮추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병신들, 그런 자세면 나도 다리 같은 곳을 노리기가 더 어렵잖아. 치이~ 이건 너희들이 자초한……

[ 주인님. 주의하십시오. 좌측 언덕 위로부터 활 공격이 예상됩니다. ]

쳇-! 이 자식! 방해하려는 거냐? 응…? 뭐야?
나는 재빨리 총구를 옮겼지만 뜻밖의 사태에 놀라 먼저 방아쇠를 당기지를 못했다. 내가 주춤하는 사이 쐐액~하는 섬뜩한 소리가 엄습했다. 아차, 하는 순간 흑주에게 떠밀리면서 얼결에 방아쇠가 당겨졌고, 궁수의 뒤쪽 바위에 불꽃이 튀었다. 다시 빠르게 몸을 돌려 바위 뒤로 몸을 숨기는 그의 뒷모습… 나는 순간적으로 날 밀쳐 화살을 피하게 했던 흑주의 부축을 받아 몸을 가누며 거칠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썅~! 뭐야, 저 인간! 하필! 하필이면~!”

처음으로 멀지 않은 거리에서 제대로 전신을 드러냈던 궁수… 그의 복장은 분명 중원인도 왜구도, 묘강인도 아니었다. 빌어먹을…! 왜 이런데서 우리 ‘고려인’이 등장하는 거야? 이 시대에 온 이후 동족과의 첫 만남이 하필이면 이런 식이라니… 으으~ 나보고 어쩌라고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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