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2부 – 14-7화 : 낙룡파(落龍坡)(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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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2부 – 14-7화 : 낙룡파(落龍坡)(7)


2-6. 낙룡파(落龍坡)(7)

적어도 자기 나라에서는 일가를 이루고 있는 자에게 무조건 섬나라 칼잡이 운운하는 건 좀 미안한 표현이려나…? 그러나 내게는 본래도 그리 정이 가지 않는 자들인데다 지금 저 오와이마루라는 자는 그나마도 뚝 떨어지는 타입이었다.

검게 그을려 번질거리는 얼굴에 더 짙고 검은 매직으로 선을 그은 듯한 얼굴 선과 굵은 주름만으로도 비인간적인 가면을 쓴 것 같은 인상을 주었지만 거기에 가늘게 찢어진 눈에서 쏟아내는 표독함… 말을 하기 전에 얇은 입술 위쪽이 움찔대는 모양이 언제고 상대를 깔아 뭉개는 언사를 일삼을 것 같은 느낌… 액션 영화 같은데 자주 등장하는 전형적인 야쿠자 두목의 인상이랄까…? 그런 놈이 기다리기 지루했다는 듯 성큼 앞으로 나서며 대교 쪽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내 조카이며 다카쿠마 류의 후계자였던 미야시…! 그를 쓰러트린 자는 앞으로 나서라!”

대교도 천천히 앞으로 나서며 날 바라보았다.

“아까 그… 널 유혹하려던 놈이 조카래.”

내 통역을 들은 대교가 갑자기 빙긋~이 웃으며 몇 마디를 던졌다.

“이봐, 당신. 우리 비연대 대장 말씀이… 조카 교육 어떻게 시킨 거냐는 데? 싸움터에서조차 여자를 밝히니 평소 행실은 오죽 하겠느냐고 말이야.”

내 통역이 끝나자마자 야쿠자 두목은 대뜸 인상을 구기더니 괴이한 기합 소리와 함께 일본도를 뽑아 들었고 대교도 지지 않고 청명검이 내는 서늘한 파열음으로 맞받았다. 몽몽의 측정만으로 보면 양쪽의 내공 수치는 대교가 높았지만 원래 몽몽도 직접 접촉에 의하지 않는 이상 정확하게 측정이 가능한 건 아닌데다, 나도 무공의 경지가 무조건 내공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거 정도는 안다. 대교가 굳이 상대의 감정을 자극한 걸 보면 그녀도 이번 상대는 결코 가볍게 보는 것 같지는 않은데… 야쿠자 두목 역시 조카인 버터 소년과는 달랐다. 앞뒤 잴 것도 없이 무대포 돌진을 해 올 것 같았던 처음의 기세와는 달리 쉽게 공격을 시작하지 않은 채 칼날 같은 시선으로 대교의 헛점을 가늠해 보고 있었다.

10초… 20초…? 겉으로는 그저 마주 노려보고 있을 뿐인 대결의 진행을 지켜보고 있자니 내가 오히려 더 긴장한 상태였다. 천하의 대교라서 안심이 되기도 하지만 역시 나의 대교라서 걱정을 접어 두기는 어려웠던 내가 제풀에 지쳐 순간적으로 한숨을 내쉬는 순간이었다.

요오오오오~하는 듣기 거북한 기합 소리와 함께 야쿠자 두목이 먼저 앞으로 내닫기 시작했다. 미친 듯한 기세로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놈의 칼이 벼락처럼 대교의 머리 위로 내리 꽂혔다. 대교가 슬쩍 뒤로 신형을 물리며 막아내는 순간, 마치 해머로 철판을 내리치는 듯한 폭음이 터져 나왔다. 그 직후, 강렬하고 섬뜩한 굉음이 어이없을 정도로 연속으로 이어지는데 이건 마치 여러 명이 동시에 종을 치는 소리를 듣는 것 같을 정도였다. 내가 보기에도 지극히 단순한 패턴의 공격인 것 같은데도 그게 어찌나 무식하게 강하고 빠른지 대교는 제대로 반격을 펼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주춤주춤 물러서고 있었다.

예상 밖의 전개에 당황한 나는 순간적으로 K2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설마 이걸 써서 대교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건 아니겠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다시 야쿠자 두목의 끔직하게 듣기 싫은 기합 소리가 이어지며 대교 주변의 땅이 폭발(?)했다.

아니… 땅이 폭발할 정도는 아니고 야쿠자 두목의 칼이 내려꽂힌 땅에서 폭발하듯 흙먼지가 솟았다고 해야겠지만… 하여간 그 안개처럼 피어올랐던 흙먼지가 천천히 가라앉는 것을 보며 나도 천천히 손에서 힘을 뺄 수 있었다.

흙먼지가 솟는 것과 동시에, 아니 그 전의 어느 순간인가 이미 대교의 신형을 놓친 모양인 야쿠자 두목은 움직임을 멈춘 채 재빨리 주위의 기를 살피는 기색이었다. 그런 그의 등 뒤에서 대교가 낮게 중얼거렸다.

“…거칠군요. 예상보다 더……”

야쿠자 두목은 이를 악물며 발작적으로 뒤쪽을 향해 검을 퍼 올렸다. 여전히 굉장한 기세였지만 이번에는 그저 허공을 갈랐을 뿐이었다. 가볍게 옆으로 경공을 펼치는 대교에게서 처음의 여유가 다시 느껴지고 있었다. 대교 녀석, 처음에는 일부러 밀리는 척하며 적의 역량을 가늠해 보았던 건가? 이 녀석, 보는 사람 기분도 좀… 에효오~ 어쨌건 다행이다. 역시 대교가 한 수 위인 것 같군.

야쿠자 두목의 입에서 연신 터져 나오던 기합도 어느 사이 평정을 잃고 있었다. 하긴, 주위로부터 ‘공포의 대상’으로 카리스마를 뿌리고 다녔던 만큼 적에게, 그것도 어린 나이의 여자를 상대로 이길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꽤나 치명적일 것 같았다. 그래서 일까…? 나는 웬지 야쿠자 두목의 얼굴에 점점 비장한 표정이 떠오르는 것이 불안했다.

비교적 조용히 비무를 지켜보던 양쪽 진영에서 낮게 탄성 소리가 흘러나왔다. 얼마간 상대의 공세를 침착하게 막아내기만 하던 대교가 그가 내려치는 칼의 괘적을 읽어 냈는지 그것을 가볍게 밑으로 쳐 내렸고, 그 직후 칼의 등을 발로 밟아 칼끝을 땅바닥에 박아 넣는… 묘기 같은 상황을 연출해 냈던 것이다.

헌데, 적의 무기를 제압한 채 찔러 들어간 대교의 청명검도 야쿠자 두목의 왼쪽 어깨를 꽤 뚫었을 뿐이었다. 대교가 사정을 봐 준 것이 아니라 놈이 순간적으로 급소를 피한 모양이었다. 결국 대교의 청명검도 야쿠자 두목의 어깨 근육과 왼 손에 잡혀 버린 꼴이었고 야쿠자 두목은 대교에게 밟혀 있는 칼을 주저 없이 놓아 버리고는 허리춤의 짧은 칼 하나를 더 뽑아 들었다. 이런 젠장! 막판에 X됐… 아~!

다음 순간, 대교는 땅을 박차고 뛰어 오르며 야쿠자 두목의 두 번째 칼을 피함과 동시에 허공에서 핑그르 몸을 회전시켰다. 그런 동작이 자신의 청명검을 놓지 않은 채 이루어졌기 때문에 대교는 청명검을 중심으로 반 바퀴 정도 몸을 돌려 허공에 떠 있는… 아니, 야쿠자 두목의 어깨를 밟고 비스듬히 서 있는 형태가 되었다.

“크아악~!”

처음으로 야쿠자 두목이 비명을 질렀다. 그의 어깨를 디딤대로 써 청명검을 뽑아 내면서 몸을 날린 대교가 사뿐하게 땅으로 내려섰다. 쓰러진 채 어깨와 손에서 피를 쏟아 내고 있는 야쿠자 두목의 악에 받힌 모습과 상대를 그렇게 만들어 놓고도 여전히 평온하고도 우아한 자태를 잃지 않고 있는 대교가 너무나 대조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으아아~ 아직! 아직 끝나지 않았다아~!”

돌아서는 대교에게 악을 쓰는 야쿠자 두목을 다른 사무라이들이 만류하며 간신히 끌어내고 있었다. 우리 쪽에서 비로소 승리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다녀왔습니다, 곡주님.”

“그래, 수고했다.”

내게 가볍게 포권하며 보고하는 대교… 음핫하~! 그래, 넌 역시 울트라짱멋지고사랑스러우면서강하고이쁘고… 에… 마음속에서야 뭐, 그렇게 팔불출처럼 칭찬해 주고 싶었지만, 사갈 새끼 앞에서 티내기 싫어서 나도 그냥 가볍게 고개만을 끄덕여 주었다. 그리고 ‘계집애한테 깨졌으니 썅~ 나 할복할래~!’ 그런 전개가 이어지지 않을까 싶어 조금 더 야쿠자 두목을 지켜봤지만,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았고 대신 부하들에게 응급 처치를 받으면서도 계속 짐승처럼 씩씩대며 대교를 노려보고 있었다. 음… 그러고 보니 지금은 아직 일본의 할복 문화가 대중화(?) 되지 않은 때인가…? 무사도니 할복이니 하는 것도 본래 있기는 있었는데, 정작 대중화되어서 오래 전부터 일본인은 다들 그랬던 것처럼 정신 교육(?)이 시작된 건 잘해야 100년 정도(20세기 기준) 전이라 는 얘기를 들은 것 같다. 뭐, 그런 건 아무래도 나와는 별 상관없겠고… 내가 지금 진짜 신경 쓰이는 일은… 꽤 어수선해진 사무라이들의 분위기와 반대로 정작 저 빌어먹을 사갈 새끼가 자기편의 패배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표정이라는 점이었다.

“…어때, 사갈! 약속대로 두 시진이 지난 후에 2차 비무를 시작할까? 아니면 바로 이어서 할래? 응?”

“후후~ 2차 비무도 바로 시작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제가 정말 보고 싶었던 싸움은 바로 그 것이었으니까요.”

사갈 새끼는 비로소 만면에 기분 나쁜 웃음기를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 우리 쪽 비무자는 고려무사… ‘신정안’입니다. 후후후…….”

“뭐……?”

고려무사의 이름이 신정안…이라고? 아니, 지금 이름 같은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설마 이 자식…….

“비무 장소는 지금 그가 매복하고 있는 저 낙룡파의 깊숙한 곳… 물론, 상대는 흑주입니다.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큭큭, 자신의 정체를 제대로 밝히지도 못할 흑주, 말입니다.”

“너, 이 새끼……”

“아아~ 벌써 흥분하지 마십시오. 당신을 위해 준비된 선물은 이제 겨우 시작이니까요. 내가 원하는 것은 당신과…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고통… 후후~ 정말 기대되는군요. 흑주는 과연 그를, 자신의 진정한 과거와 부모의 행방을 알고 있는 자를 죽일 수 있을까요…? 아니, 당신이 흑주에게 그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릴 수 있을까요? 큭큭~!”

사갈 새끼는 키득대며 웃다가 몇 마디를 덧붙였다.

“장담하는데, 신정안을 곱게 생포할 수 있는 자는 당금 무림에 없습니다.”

걷잡을 수 없이 스팀 받고 있던 내 머리 속이 녀석의 그 말에 살짝 정지 버튼이 눌러지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이 새끼, 신정안의 부상… 그가 내게 총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거 아닌가…? 그도 어차피 용병, 대가가 필요해서 이번 일에 참여한 것일 테고, 공을 세우기 위해 부상을 숨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사갈 새끼가 의도하는 것처럼 서로 해치기 싫은 사람들끼리 최악의 사태에 이르지 않고도 흑주가 의외로 쉽게 신정안을 생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음… 내 머리가 내친김에(?) 더 팍팍 돌아가 주는 건가…? 다른 사항들도 속속 정리가 되기 시작하네? 사갈 새끼는 이 근방에 엄청 많은 병력을 배치해 천라지망(天羅地網)이라도 펼치고 있다는 식으로 말했었다. 하지만 그건 엄청 뻥일 가능성이 높다. 지금이 아무리 약체 국방으로 명성 높은 송나라 시대라 해도… 지금까지의 병력만 봐도 결코 적은 수가 아닌데, 그 이상… 더구나 몽몽의 탐지 거리를 벗어난 대규모의 천라지망을 펼칠 수 있을 정도의 외국 병력이 태연히 중국 영토를 활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 물론 내가 이미 탄약을 거의 다 소모한 이상, 현재 우리 병력으로는 눈앞에 나타난 녀석들만 상대하는 것도 벅차기는 했다.

“어쩌시겠습니까, 두 번째 비무를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아니면… 이대로 희망 없는 살육전으로 넘어가 버리시렵니까.”

사갈 새끼의 도발에 나는 쓰게 웃었다.

“글세… 어떨까, 난 둘 다 싫은데…? 그냥 이대로 도망쳐 버리는 건 어떨까?”

내 반응에 사갈 새끼가 조금 움찔하는 것 같았다.

“후후… 설마… 천하의 비화곡주께서 소생 앞에서 추한 꼴을 보이시겠다는 건… 아닐 테지요?”

“뭐, 어때. 36계야말로 최상의 병법이란 것도 몰라?”

“…당신께서 아까 퇴로 확보를 위해 보낸 자들에게서 소식이 없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늘 이 낙룡파에서 우리의 천라지망을 뚫고 달아날 자가 있을 줄 아십니까?”

“그건… 확실히 내 실수였어. 정찰 보낸 그 두 명을 빨리 복귀시키거나 애초에 네 놈의 비무 제의 따위를 받아들이지 않는 거였는데… 덕분에 또 아까운 부하들을 잃은 것 같아.”

나는 그들에게 정말 미안해서 길게 한숨을 몰아 쉰 다음 말을 이었다.

“그래, 비무로 시간을 끈 다음 몇 명이나 보냈나? 세 명…? 네 명…? 어차피 그럴듯한 천라지망을 펼칠 인원까지는 없다는 건 알아, 이 재수 없는 쥐새끼야!”

사갈새끼가 처음으로 내 말에 제대로 대꾸를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내 추측이 대충 맞는 것 같긴 한데, 그래서 탈출이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된 건 좋지만… 드디어 내키는 대로 욕을 한 번 하고 났더니, 오히려 참아 왔던 빡이 급속도로 돌아버리기 시작했다. 끄으~ 여기까지 와서 저 싸가지를 없애지도 못하고 내 쪽에 서 튄다고…? 쓰바~ 작전이고 나발이고 그냥 확 엎어버려…? 썅~ 제기, 저 XX를 뽑아서 줄넘기를 해버리고 싶은 놈 때문에 벌써 몇 명이나 죽은 거냔 말이야……? 으~ 제대하면 절대로 쓰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욕까지 떠올리고 말았는데, 그런 나의 표정이 너무 적나라 했던 모양이다.

“곡주님…! 더 이상 저희들 때문에 참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특히… 저 자의 목은 반드시 제가 취하여 곡주님께 바치겠습니다.”

대교가 이미지 손상 입기 쉬운 대사와 함께 앞으로 나서자 그 밑의 동생들은 물론이고 다른 병력들도 일제히 살기 등등 한 모습으로 검을 뽑아 들었다. 그와 동시에 사갈새끼는 정말 쥐새끼처럼 잽싸게 뒤로 물러섰고 적 병력도 일제히 전투태세로 돌입해 갔지만… 정작 나는 한숨을 포옥~ 내쉬며 손을 저어 대교를 말렸다. 대교의 ‘저희들 때문에…’라는 말이 오히려 내 돌아버린 머리를 원상 복구 시켰던 것이다. 총알도 다 떨어져 가고, 진하연이 합세하여 압도적인 전력이 되지 못한 이상… 결국 부하들의 희생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는 내가 아무리 빡 돌아도 참고 이대로 일단 퇴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문제는 흑주와 고려인 신정안인데… 저 사갈 새끼가 쓴 시나리오대로 그 둘을 싸우게 해…? 물론 신정안을 구하게 되면야 이 짜증나는 싸움에서 가장 큰 성과가 되겠고……

“…좋아, 싸가지 사갈. 끝까지 놀아 주지.”

“사가지? 그게 무슨……”

의아해 하는 사갈새끼를 씹은 채 나는 흑주를 돌아보았다. 천천히 고개를 젓는 흑주를 나는 수화로 설득했다.

<미안하지만, 널 위해서 만은 아니야. 이 상황에서는 우리가 퇴각하게 될 경우에도 신정안이 우리에게 가장 위험한 존재라서 그러는 거야. 그리고… 넌 굳이 그와 싸울 필요 없어. 알겠어? 이 쪽으로 최대한 가까이 유인하란 말이야.>

사갈새끼는 내가 신정안에게 사실을 알리는 것에 대비해 상당히 먼 곳에 대기 시켜 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대교의 내공이라면 상당히 먼 거리까지 목소리를 보낼 수가 있다. 물론 신정안의 위치를 구체적으로 알 수만 있다면 전음을 쓸 수도 있겠고 말이다. 내 설득이 먹혔는지, 아니면 자신도 신정안을 만나고 싶었던 건지… 결국 흑주는 천천히 몸을 돌리고는 길옆의 숲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본래 특기인 휘릭~ 사라지기가 아닌 걸 보면 흑주도 꽤 복잡한 심경인 듯……

아, 잠깐…! 나 지금 뭔가 실수하는 것 같은데…? 우선, 퇴각할 때 신정안의 화살 공격이 가장 위험하다는 판단은, 신정안이 우리 쪽으로 접근했을 때의 경우이다. 그럼 굳이 지금 흑주가 유인작전을 펼 필요도 없는… 아니, 아니~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 불길한 느낌은… 사갈새끼, 저 새끼가 과연 둘의 싸움만을 원하고 있는 걸까…? 뭔가… 뭔가 다른 함정이 있는 건……

[경고! 뭔가 이상합니다, 주인님! 뒤를……]

간만에 들려 온 몽몽의 기계적인 경고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 빨리 흑주를 막아야……

“흑… 어?”

뭐…어…야…? 뒤를… 이라고 했니 몽몽…? 좀… 빨리 말하지… 젠장……!

나는 갑작스럽게 전신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면서 먼저 K2를 툭, 하고 땅바닥에 떨구고 말았다.

“곡주님!”

대교와 다른 부하들이 경악하여 외치는 소리는 귀청이 터져 나갈 것처럼 생생했지만, 나는 이미 ‘혈도를 제압 당한 사람답게’ 손가락 하나 제대로 까닥할 수가 없었다.

“호초! 미쳤느냐? 이게 무슨 짓이냐!”

음… 소령이의 고함소리대로라면, ‘호초’…라는 이름의 비연대 여자 대원이었군. 이제껏 내 근처에서 날 호위하고 있다가 뜬금없이 뒤에서 내 혈도를 잡고… 그리고 지금 내 목에 칼을 들이밀고 있는 자가… 말이 다. 가끔 여자 대원들끼리 수군댈 때 들어 본 것도 같은 목소리가 뒤에서 낮게 속삭이는군.

“죄송…합니다.”

…빌어먹을, 배신자를 찾으려고 호위대들의 거짓말 탐지를 했을 때… 백상 때문에 끝에서 몇 명 빠트렸었는데 그 중에 이 녀석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그렇지, 이래도 되는 거야…? 반전도 좋지만, 이렇게 존재감도 없었던 여자가 뜬금없이 뒤통수를 쳐도 되는 거야? …에효~ 나 지금 뭔 생각을 한 거냐. 미리 암시를 해주는 소설이나 영화도 아니고… 이런 게 현실이겠지. 사갈새끼가 갑자기 미친놈처럼 칼칼대며 웃음을 터뜨린다. 제기, 아무리 그래도 하필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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