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2부 – 16-1화 : 부활의 와룡전(臥龍殿).(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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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2부 – 16-1화 : 부활의 와룡전(臥龍殿).(1)


3-1. 부활의 와룡전(臥龍殿).(1)

얼마나 시간이란 것이 흘렀을까……?
여전히 사방이… 아니, 방향이라는 개념이 존재하는 느낌조차 들지 않았다.
그냥 계속 막연하게… 어둡고 서늘한 느낌… 아니… 이걸 느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알 수 없는 감각을… 과연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아니… 그런 걸 따지는 것조차 의미 없음…인가? 난 이미… 죽었으니 말이다.

계속되는 어둠……
앞도 뒤도……
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죽는다는 것이 이런 것……?

시간이란 것의 한없는 소모……
반복되는 의미 없음……
난 문득… 불쾌해지기 시작했다.

이봐……
이봐들…! 뭐든 나와 줘야 하는 거 아냐……?
얼굴에 흰 분가루 떡칠 한 저승 사자던, 날 지지고 볶을 지옥의 냄비든… 하여간 뭐든 나와 줘야 하는 거 아냐? 이런 제기……!

어느 사이엔가부터 나는 앉아 있었다.
여전히 감을 잡기 어려운 암흑 속이긴 했지만 웬지 익숙해졌다고 할까……?
게다가 나는 차츰 느끼고 있었다. 전에 원판과 체인 지 되는 과정에서 아주 잠깐이지만 느꼈었던… 그 영혼 상태의 느낌과 지금의 상태는 뭔가 다르다는 것을…….
뭐랄까… 나 자신은 물론이고 사방의 기척이랄까… 뭔가가 느껴지고 있었다.
조금씩… 내 주위의 의미 없던 공간 속으로 무언가가 흐릿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동굴… 내가 죽었던… 그 동굴 안……?
뭐…냐. 난 내가 죽은 장소에 그대로 있었던 건가…?
여전히 밤중에 짙은 썬그라스를 쓰고 있는 것처럼 확실하게 보이는 건 없었지만… 아무래도 그 동굴 안이 맞는 것 같았다.
뭐야…! 그럼 난… 제대로 성불도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망령이 된 거란 말인가?
이… 빌,어,먹,을…! 죽었어도, 결국 영혼이 되어서도… 집에는 못 돌아가는 건가…? 이제 다시는 부모님과 형들, 모두의 얼굴조차 볼 수 없게 되는 걸까……?
대천마, 그 개… 같은 늙은이 때문이다. 아니, 잘도 멀리서 달려와 깽판 쳐 준 왜놈들 때문이다. 그래… 어떻게 든 이 상태에 익숙해지기만 하면… 날 직접 죽인 대천마는 물론이고, 사갈새끼의 손발이 되었던 개새끼들에게까지 복수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뭔가 가능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까? 죽음 직후엔 웬지 모든 것이 허무해져서… 그래서 잊고 말았던 증오심, 복수심 같은 것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내 죽음에 관련된 모든 인간들의 얼굴을 떠올릴 때마다 주변이 밝아지고 있었다. 무언가 부서지고 날리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이제는 밝아지다 못해 붉게 물들어 버린 허공을 향해 나는 악을 썼다.
으와아아아아악~!

얼마나 그렇게 발악을 했을까…? 나는 내 증오가 처음 타올랐을 때처럼 허무하게 스러지는 것을 느끼고 문득, 힘없이 웃고 말았다.
대교… 그녀가 보고 싶었다.
죽기 전에도 줄곧… 언젠가 있을 이별을 각오하고 있었기에… 죽는 순간 제일 먼저 잊으려 애썼던 존재…
그러나 한 번 떠오르는 것을 막지 못했더니 걷잡을 수가 없었다.
그녀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그 얼굴을, 그 체온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나는 몸을… 영혼을 웅크리고 울음을 터트렸다. 오래도록 멈출 수가 없었다.

어느 덧, 다시… 사방이 어두워져 있었다.
그런데… 빛……?
단 한군데에서 아주 작은 빛이 먼 곳의 촛불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천천히 그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빛과 함께 웬지 그립고 안타까운 존재가 거기 있는 것 같았다. 나 이상으로 서럽게 눈물을 흘리는 누군가… 대교…? 대교가 날 부르고 있다……?
아까와 달리 눈부신 태양 같은 빛이 내 눈 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문득 눈을 떴다가, 찌르는 듯한 아픔에 다시 감고 말았다.
우쒸~ 뭐냐. 왜 눈이 갑자기 이렇게 아픈… 응…? 아퍼…? 아프다고……?

< 주인님! 주인님! 깨어 나셨군요! 돌아 오셨군요! >

세상에~! 몽몽의 음성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 정말 반갑습니다, 주인님! >

최첨단미래울트라짱… 하여간 너무나 잘난 로봇 몽몽은… 녀석답지 않게 오래도록 호들갑을 떨었다. 나는… 나는… 아핫! 하,하… 하아, 하하……!
느닷없이 내게 주어진 ‘부활’의 기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한동안은 눈도 입도 뗄 수 없었다.
감각이 지나치면 이런 건지 내 전신이 가늘게 떨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니… 그 떨림을 포함한 모든 감각 자체가 너무나 반가웠다. 나는 생전 찾아 본 적도 없던 하느님, 부처님, 옥황상제, 몽몽님(?) 등의 이름을 찬양했다.

< …주인님의 본래 육체는 재 기동 이후, 71시간 25분이 지난 후에야 주인님의 영체와 결합했기 때문에 안정되는 것에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합니다. 추정 소요 시간은…… >

에…? 아직 감각이 다 돌아오지 않아서 몰랐는데, 몽몽의 말에 의하면 난 지금 원판의 육체가 아니라 본래의 몸으로 돌아온 모양이다.
물론, 반갑고 기쁘기는 했지만… 한 편으로는 그동안 신세졌던 원판의 몸이 결국 기동 정지(몽몽의 표현.) 되었다는 사실은 좀… 뭐랄까, 조금 섭섭하기도 하고 무지 미안하기도 하고…….

< 주인님의 기적적인 생환에 제가 잠시 흥분했었던 모양입니다. 상황 설명은 나중에 드릴 테니 주인님도 지금은 육체와 영체의 안정에 집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

사실… 내가 어떻게 해야 육체와 영체가 안정되는지 알 리도 없었고, 내가 죽어 있는(?) 동안 뭔 일이 어떻 게 돌아간 건지 궁금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지 만… 나는 억지로 모든 충동을 꾹꾹 눌러 참았다.
섣불리 행동했다가는 신이 잠시 변덕을 부려 던져 준 이 부활의 찬스가 무산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조금 전까지의 사후 체험…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거, 묘하네……?
후우~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며칠 전 꾼 꿈처럼 아득한 느낌이 드는 건지 모르겠다.
육체를 떠난 영혼은 그만큼 존재감이 약한 걸까? 아니… 그 반대인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막상 죽었을 때는 살아 있던 시기가 실감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했고… 아… 근데 어느 순간 감정이 폭주했을 때는 죽기 전보다 더 심했던 것 같기도 했다.
대천마와 야쿠자 칼잡이들 떠올리고 열 받았을 때… 아…! 그러고 보니 아까 그 빡 돈 상태로 보면 난 원귀(怨鬼)나 심하면 요괴(妖怪)… 뭐 그런 걸로 변신하기 직전까지 갔던 거 아냐……?
으으~ 나 정말 X될 뻔했었구나. 어렸을 때부터 영화나 소설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요괴 사냥꾼’이 되는 상상은 해 봤어도 ‘사냥 당하는 쪽’이 되는 건 생각도 안 해 봤었는데 말이다.
…제기, 그 것도 전부 그 웬수들 때문에다. 특히 대천마 사문학 이 노인네…! 아무리 음흉의 대가인 당신이라도 설마 내가 스페어 타이어… 아니, 육체가 있었다는 건 몰랐겠지? 흐… 이제 각오… 음…? 아니, 잠깐… 이게 지금 본체니까 전에 쓰던 원판 몸이 스페어냐…? 아니, 이 동네는 본래 원판 동네니까 원판 육체에 내 영혼이 스페어라는 게 맞는 걸까…? 아니, 그래도 주도권은 나니까 스페어는 어디까지나…….

“훗~! 흐흐흐~!”

나는 나도 모르게 조금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내 특기(?)인 ‘엄한 주제로 삽질하기’를 하자니까 갑자기 내가 나이고, 그럼으로써 ‘살아 있다’라는 것이 새삼 실감났던 것이다.

[ …주인님. 신체 활성도의 진행으로 보아 이제 재활 운동을 시작해도 될 것 같습니다. 킥~! ]

“헤? 에……?”

뭐라 반문하려던 나는 다시 얼마간을 크흠, 커헉~ 소리를 내가며 목소리 시운전을 해야만 했다.
하긴, 1년이 넘게 짱 박아 놓은 몸이니 목에 녹이 슬거나 거미줄이(?) 칠 만도 하지만… 근데, 몽몽 녀석 방금 말 뒤끝에 웃은 거 맞지?

[ 후훗~! 어때요, 지금 기분이? 자그마치 482시간 28분 42초의 임사체험(臨死體驗, 죽음에 직면하거나 죽어가는 체험… 내지는 나처럼 아예 진짜로 죽었다 살아나는 경험.)을 겪은 기분이 말이에요? ]

간만에 본다 싶은 요정 몽몽이 호르릉~하는 날개 소리와 함께 눈앞으로 날아오며 그렇게 지껄였다.

“뭐, 뭣? 482시간…? 말도 안돼! 내가 그렇게 오래 죽어 있었다고? 그럼 대체… 아, 482 나누기 24는… 에… 근까…….”

내가 죽어 있었던 시간이 그렇게 길었다는 게 너무 뜻밖이었던 데다, 본래 숫자에 약한 내가 버벅대기 시작하자, 몽몽 녀석은 갑자기 내 눈앞에서 혀를 내밀고 메롱~! 했다.
어이가 없어서 잠시 말을 잃은 내 앞에 서 요정 몽몽은 다시 지 손으로 지 입과 눈을 양쪽으로 좌악 늘려 괴상한 얼굴을 만들어 보인다거나, 입술을 모아 얼레꼴레리~ 하는 등… ‘약 올리기 신공’을 펼쳐 보였다.
뭐, 뭐야! 설마… 나와 떨어져 있는 사이 이 녀석 작동에 뭔가 문제가 생긴 거 아냐? 그런 걱정이 들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기 미칫나. 죽을래?”

에? 이게… 아니던가?

“아, 무심코 그만… 야 임마, 하여간 너 왜 그래?”

[ 꺄아~ 다행이다. 다행이다-! 완전히 본래로 돌아왔어~! ]

요정 몽몽은 꿈에도 그리던 아이돌 스타를 눈앞에 목격한 십대 소녀처럼 소리를 지르며 정신없이 허공을 날았다. 몽몽, 저 자식……!

“야! 몽몽!”

[ 넵~! 부르셨습니까? ]

“에……”

생각해 보면, 내 사망과 동시에 다른 임시 사용자를 찾아도 되었을 텐데 끝까지 날 포기하지 않은 것도 그렇고 자기 나름대로 내 부활을 기뻐해 주는 방금의 모습도 그렇고 고마운 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막상 그걸 구체적으로 표현하려니까 웬지 좀 쑥쓰러웠다.

“고맙다. 이 것 저 것… 그러니까, 무지막지 졸라 고맙다고 임마.”

[ 후후~ 별 말씀을… 그보다, 임사체험 후에는 인격의 변화가 심한 경우가 많아서 걱정했었습니다. ]

“나… 별로 안 변한 거 같니?”

[ 인간의 심리란 단순한 것이 아니니, 1차 상황에서의 반응 테스트만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저의 ‘제 1 구현 형태’에서의 판단은 ‘확실히 주인님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

소위 ‘1차 상황’이란 게 좀 전 몽몽의 ‘메롱~’이란 말인가? 원 별……
그보다 솔직히 나는 웬지 지금 뭔가 살짝 들뜬 것 이, 어째 죽기 전보다 더 가벼워진 기분이 들지만… 뭐, 그런 건 조금 더 있다가 한가할 때 생각하자. 난 지금 막연한 인격인지 성격인지 보다, 원초적인 몸의 상태와 그간의 상황 변화… 하여간 알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
우선, 현재 내가 두껍고 따스한 비단 모포에 쌓여 누워 있는 이 곳은 본래 내 몸이 동태 꼴로 누워 있던 얼음 구덩이가 있던 장소는 아니었다. 물론 여기도 원판의 개인 아지트 와룡전(臥龍殿) 안의 한 곳이 틀림없기는 한 것 같은데……

“이제, 그간의 얘기를 자세히 좀 들어야겠다.”

나는 차츰 정말 내 것으로 돌아왔다는 실감이 나기 시작하는 내 몸을 조금씩 움직여 보며 몽몽의 보고를 듣기 시작했다. 헌데…….

[ …사고 발생 당시, 대천마 사문학이 주인님의 임시 사용 육체 파괴에 쓴 공격법은 패도광협(刀狂俠)의 독문 내가중수법(內家重手法)의 하나로, 명칭은 설악종 원봉선(雪惡終援封禪). 이 수법의 특징은 치명적인 살상을 목적으로 하면서도 외상이 거의 없는 것으로, 주인님의 경우 그 일장에 에너지 통로의 최소 90%, 내부 장기의 50%가 순간적으로 파괴되었습니다. 이는 주인님 신체의 자체 수복 능력은 물론이고 저의 의료 활동 영역도 벗어난……. ]

이 녀석, 요정 모드를 접자마자 바로 초기의 주구장창 설명 모드로 들어가다니…….

“몽몽…! 명령 수정할게. 좀… 압축해 줄래? 자세한 사항이 궁금한 건 내가 다시 물어볼 테니까 말이야.”

[ …알겠습니다. 그럼 중요한 진행 사항 위주로 진행하겠습니다. …주인님의 영체가 육체를 이탈했음이 확신된 후 약 20분의 시간이 지났을 때, 진하연과 대교 등의 주인님 일행이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

…뒤늦게 극악.. 살해 사건 현장에 도착한 진하연과 대교… 근데, 처음에는 모두들 내가 아직 ‘죽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몽몽은 이미 완전히 작동 불능 된 원판 육체의 신경 조직을 조종해서 조금이나마 움직임으로써 일단 그렇게 믿게 한 후, 원판의 목소리로 모두에게 내 ‘유언’을 전달했던 것이다. 요괴 몽몽이 달라붙은 원판 강시 모드였다고 할까…? 생각하기에 따라 상당히 섬뜩한 상황이었겠지만, 하여간 원판몽몽(?)은 그런 방법으로 내 부활 준비 작업에 들어갔던 것이다.
원판몽몽이 대교들에게 내린 첫 번째 명령은 ‘와룡전의 진유준을 되살리는 것’,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나?

“내 복수를 해 줄 수 있는 이는, 오직 그 사람 진유준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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