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2부 – 16-2화 : 부활의 와룡전(臥龍殿).(2)
3-1. 부활의 와룡전(臥龍殿).(2)
뭐… 분명히 그 복수란 걸 할 생각이긴 하지만, 내가 ‘오직 그 사람’이라고 하면 좀 부담이… 으음~ 하여간 그건 나중 문제고… 원판몽몽은 그 후 세부 실행 사항까지 자세히 전달했다고 하는데, 그걸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진하연은 묘강으로 돌아가 대기.
- 대교를 제외한 모든 비화곡 병력은 ‘곡주 살해범 추적’을 명분으로 내세워 진짜 추적, 혹은 아무 곳에나 짱 박힐 것.
- 내가 끽~ 함과 동시에 내 손목의 팔찌를 분리, 대교가 착용할 것.
- 대교만 비화곡으로 돌아가 사건 보고 후, 적당한 핑계로 와룡전으로 향할 것.
- 와룡전 입구의 ‘기관 변경 비밀 장치(실은 그냥 바위에 난 구멍)’에 팔찌를 넣을 것.
- 장치에 반응하여 형태 변화를(예전 대교가 장청란과의 대결 준비할 때 머리에 쓰고 가상현실을 체험했던 형태.) 이룬 팔찌의 안내대로 와룡전 안으로 들어가 진유준을 두들겨 깨울 것.
뭐… 대충 위와 같은데, 원판몽몽으로서는 가장 유력한 루트로 구성한 작전이었겠지만 사실 4번 항목은 몽몽으로서도 ‘모험’이었을 것이다. 그 부분은 순전히 대교의 능력에 달렸으니 말이다. 물론, 우리 이쁜 대교는 원판몽몽의 기대에 충분히 부응하여 무난히 여러 난관을 극복했다고 한다.
가장 힘든 상황은 당근, ‘곡주를 지키지 못한 책임 추궁’이었는데… 대교는 사건 보고를 마치자 곡주의 유언을 곡주의 의형에게 전달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장로진에서 허락만 해 준다면 복수까지 마친 후 역시 자결하겠다는… 그런 비장한 맹세를 했다고 한다. 유언을 전달하라는 것 자체도 유언이므로 충분한 명분이 있었고, 더구나 뜻밖의 인물이 책임 추궁을 뒤로 미룬다는 의견을 내세워 줌으로써 대교는 뜻을 이룰 수가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대교의 편을 들어 준 뜻밖의 인물이란 다름 아닌 대장로이자 대천마 사문학 노인… 바로 그였다 나?
“흠… 역시 그렇군.”
[ …주인님께서는 그 인물의 행동에 대한 근거를 알고 계십니까? ]
“뭐, 나도 짐작일 뿐이지만… 대천마는 패도광협의 무공을 탐내고 있을 거야. 내가… 아니 원판이 사망한 현재, 생사금마도결(生死金魔刀訣)의 전승자는 대교가 유일하니까 말이야.”
[ 그렇다면 대천마가 주인님… 아니 원판을 살해할 때 패도광협의 무공을 쓴 것도 같은 이유가 되겠군요. ]
“그렇겠지. 대천마는 광협의 광팬이고… 전에 내가 사갈 새끼를 처음 만났을 때의 동굴처럼 패도광협의 진전이 일부라도 남아 있던 장소에서 설악…산인지 뭔지 하는 무공도 얻었을 거야. 그걸 쓴 건 아마도 적당한 때 대교를 ‘곡주 살해범’으로 몰아서 후환을 없앰과 동시에 그녀를 확보, 생사금마도결의 비전을 실토시키는… 뭐, 그런 식의 계획이었을 거야. 설악산수법(?)이 본래 어떤 고수도 알아보기 어려운 은밀한 수법이라니까, 대교를 모함할 시기를 조절하기도 수월할 테고 말 이야.”
[ 주인님… 본래 이랬습니까? ]
응? 뭔 소리야 갑자기? …가만, 이 자식 이거!
“야 이~ 호로말코… XX를 KY한 다음 TIB는 XXX 할 놈아!”
나는 살려 준 은혜도 잠시 잊고,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몽몽에게 퍼붇고 말았다. 너무 끔찍해서 만약 18세 미만의 독자를 가진 책 같은데 활자화 한다면 X같은 전천후 만능 대명사로 바꾸어야 할 정도의 욕설을 말이다.
“…이쒸…! 너 내 진짜 두뇌를 아주 뻘 봤구나! 나도 원래 이 정도 추리는 할 줄 아는 사람이야. 이거 왜 이래-?”
[ 죄송합니다. 제 1형태 모드를 응용한 ‘농담’이었습니다만, 불쾌하셨다면 용서를……. ]
“험! 커험~! 아니, 나도 좀 미안하다. 괜히 흥분을… 음, 솔직히 나도 최신형 CPU(원판 두뇌) 쓰다가 다시 저가형 CPU(내 본래 두뇌) 쓰려니까 좀 찝찝하긴 해. 그러니… 괜히 아픈데 찌르지 마라? 다친다? 응?”
[ 명심하겠습니다. ]
“흠… 하여간, 어디까지 얘기하고 있었더라…? 아, 그랬다. 대천마의 속셈… 음… 근데 그게 돌발 사태로 좀 애매해 졌다며?”
[ 예. 그런 계획이었다면 원판의 시신이 필요했는데, 현재 원판의 시신은 진하연이 강제적 수단으로 확보하여 묘강으로 가져간 상태입니다. ]
그랬단다. 대교도 그걸 막지 못한 건… 진하연이 반쯤, 아니 그 이상 미친 듯한 모습으로 외치는 소리 때문이었다고 했다.
“누가 오라버니를 죽여! 못 죽여! 누구도! 하늘도 못 죽여! 내가 살릴 거야! 다시 만날 거야! 날 방해하면 다 죽일 거야!”
으~ 몽몽이 녹음해 놓은 거 괜히 틀어 보라고 했다.
뭐라 표현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슬픔과 분노가 피처럼 배어 있는 진하연의 음성은… 우쒸~! 이젠 원판의 몸도 아닌데 왜 내 가슴속에까지 가시처럼 파고드는 거야……?
[ 이 시대 의료 수준으로는 원판의 몸을 회생시킬 방도가 없습니다. 저희 시대에서도 세포 단위의 재구성이 가능한 특수 장비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합니다. 더구나…… ]
“하아~ 그래. 결정적으로 ‘알맹이’가 없지. 원본은 ‘며느리도 몰라~’ 수준으로 사라졌고… 그나마의 짝퉁 유사본(?)도 이젠 없으니…….”
그런 사실까지는 몰라도, 하여간 당장 누가 봐도 이미 죽은 시체를… 진하연은 제 목숨처럼 소중하게 챙겨 갔다고 한다. 후우~ 인간 진유준. 모진 놈 하나가 엄한 시대에 와서 여러 사람 울리는 구나.
[ 주인님……? ]
“아… 난 괜찮아. 음… 조금 쉬었다가 계속하자.”
약 30분 정도 후.
나는 비록 간신히, 이기는 했지만 내 힘으로 몸을 일으켜 앉을 수가 있었다. 과연 1년이 넘게 퍼질러 잤던 몸답게 사방에서 끊임없이 두두둑, 두득, 끼리릭~!(?)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그 사이 다시 시작된 몽몽의 보고도 거의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 …그리하여, 현재까지 최소한 대교님 이하, 이번 강호행의 일행들 안전은 확보된 상태입니다. ]
“흠… 그래, 그 건 정말 잘했다. 아니, 처음부터 끝까지… 훗~! 녀석, 네가 나보다 훨 낫다 야. 그냥 니가 나 해라.”
[ 헤헤~ 칭찬이시죠? ]
음… 보고가 끝나자 바로 요정 모드로 돌아간 몽몽의 이런 모습… 웬지 이건 이거대로 좀 무섭다는 생각도 든다. 자꾸만 녀석이 로봇이란 사실을 잊게 되니… 참 대단한 초 미래형 특급 다·중·인·격· 로봇이다.
암튼, 원판모드의 몽몽이 녀석과는 별 관계없다고 할 수 있는 대교 자매들과 다른 부하들까지 챙겨 놓았다는 것이 특히 기특했다. 후~ 가끔 속으로만 외치던 말을 이번엔 직접 해 줘야겠다.
“몽몽… 내가 너 땜에 산다.”
[ 그야 사용자 보호는 저의 최상위 의무이며, 다른 사람들의 보호가 차후 주인님의 생존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
“몽모옹~! 그렇게 딱 꼬집어 말하면 정 떨어지지… 그럴 땐 그냥 ‘나 잘했죠?’ 그러면 되는 거야. 응… 그래. 그렇게 손가락으로 V자도 그리면서… 흐흐~ 귀여운 것!”
어째 닭살 주인과 요정 분위기가… 음… 그나저나 이제 나와 ‘원조(?)닭살커플’이었던 대교… 그녀를 다시 만날 일이 걱정이군.
하아~ 몽몽과 함께 나의 부활에 가장 큰 역할을 한 대교는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장소로부터 불과 몇 십 미터 떨어진… 같은 와룡전 안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내게 그 거리는 우주 공간만큼이나 너무나 멀게만 느껴지고 있었다.
몽몽이 부활 준비 과정에서 보여 준 세심한 요소 중 하나는 ‘대교에게 아직까지 대천마가 바로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대교가 혹시라도 대천마 앞에서 빡 돌아 버릴지도 모를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 건 이제 내가 말해 주면 되긴 하지만 설득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 같았다. 대교의 보기보다 격렬한 면모를 생각하면, 녀석이 범인을 아는 순간 이성을 잃고 달려나가 대천마와 동귀어진(同歸於盡, 일명 너 죽고 나 죽자)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근데… 내가 지금 녀석을 만나러 가는 것을 자꾸 망설이게 되는 건,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진유준이 사실은 얼마 전까지 대교가 사랑했던 남자라는 사실을 밝힐 것인가, 말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스스로 일어서서 걸어 다닐 수 있게 될 정도가 되기까지 끈기 있게 몸을 가다듬으며 계속 그 것을 고민해야만 했다.
내가 간신히 좀비 영화 속의 살아있는 시체처럼 비적거리며 걷는 것에 성공했을 때는 두 시간이 넘게 흐른 후였다. 처음엔 대교가 챙겨 온 모양인 내 정글도, 아니 정굴도(正屈刀)를 지팡이 삼아야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거 없이도 그럭저럭 걸어 다닐 만은 하게 되었다.
그 때까지도 아직 그리 배가 고프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슬슬 영양 보충이 필요할 것 같아서 원판이 짱 박아 놓았던 비상 식량 중 육포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근데… 막상 입에 넣으니까 비로소 단숨에 삼켜 버리고 싶은 욕구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으~ 그래도 나는 초인적인 인내로 참아 내며 육포를 침에 불려 즙을 빨아먹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으으~ 몽몽이 입체 영상을 켠 것도 아닌데, 먹고 싶은 음식이 줄지어 허공에 떠올라 방긋 방긋 웃었다. 천하제일미녀의 각선미를 능가하는 저 닭다리! 꿈처럼 모락모락 피어나는 중화만두! 혀를 녹일 듯이 달콤할 것이 분명한 저 눈부신 국수 가락…! 우워어~! 소화 기능이 회복되기만 하면 내 저것들을 당장~!
[ 주인님… 그만 뱉으시죠! 지금 삼키시려고 했죠? ]
“으… 몽몽,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는데…….”
[ 당분간 주인님의 영향 섭취 방법은 제가 관리하겠습니다. 필수 의료 행위이니만큼, 반드시 따라 주셔야 합니다. ]
제기… 그래, 참자 참아! 그 난리를 겪으며 부활해 놓고 뭐 먹다가 덜컥 다시 쓰러지기라도 하면 세상에 그렇게 X팔린 일도 드물 것이다. 에효~ 그래. 허기지는 것도 잊을 겸 재활 운동이나 더 해야겠다.
음… 그나저나… 만약에 내가 대교에게 ‘내가 네가 사랑하는 진하운의 탈을 쓰고 있던 진유준이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바로 알맹이다(좀 썰렁한가?)’라는 고백을 한다고 해서 설마 대교가 이러진 않겠지?
“아아~ 기껏 깨워 놓은 게 미친놈이었네! 곡주님~ 희망을 잃은 대교도 이만 뒤를 따르겠습니다!”
대충 그렇게 외치며 우선 미친 놈(나) 먼저 청명검으로 쓱싹~! 음… 가능성 있다.
뭐… 그러기 전에 먼저 요령 있게 잘 설명을 하면 대교를 납득시킬 수도 있긴 할 것이다. 내게는 둘 만이 알고 있는, 우리 둘 만의 기억을 너무나 많이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헌데… 그럴 경우 대교가 이럴 가능성도 있으려나……?
“…그, 그러니까. 곡주님이 끝내 이런 용모로 변신…? 아아~ 안 들려요. 방금 뭐라 그러셨죠? 못 들었어요! 어머, 손이 미끄러졌네!”
그러면서 역시 날 쓱싹~! 으… 내가 떠놀려 놓고도 나 자신이 비참해지는… 북풍한설 몰아치는 빙판 길에서 미끄럼 타던 펭귄이 뒤로 자빠지고도 쌍코피 터트리는 수준의 상상이었다.
“빌어먹을! 썅~! 일단 직접 부딪치자, 진유준!”
더 이상 상상만 했다가는 스스로 망가져 버릴 것 같아 나는 비장한(?) 각오를 다지며 대교가 있다는 장소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와룡전의 무수한 밀실 중 하나… 나와 원판의 처음이자 마지막 화려한(?) 접촉이 있었던 장소. 그리고 나 진유준의 몸이 1년 넘게 짱 박혀 있던 얼음 구덩이가 있는 곳… 얼어 있던 물은 마화신수라는 특수 용액에 의해 녹아 지금은 물구덩이가 되어 있었다. 아니.. 아직도 빙염마령액의 효과가 일부 남아 있는 건지 물 속에 아직 얼음 조각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으니 얼음 물…이라고 해야 할까? 제기…!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그 얼음 물 속에 그녀, 대교가 들어앉아 있다는 점이었다.
거의 목 부근까지 얼음물에 몸을 담근 채 눈을 감고 결가부좌 자세의 대교… 고행하는 수도승의 분위기이면서도 그만큼 더 인간사를 초월한 아름다움이 눈처럼 덮여 있었다. 나는 안타깝고, 감탄스럽고, 답답하면서도 반가운… 어지러운 심정이 되어 잠시 움직일 수도 없었다. 무공 상승을 위한 수련의 의미라면 좋겠지만, 지금 내 눈에 보이는 대교는 그저 사랑하는 이를 잃고 몸과 마음의 온기마저 함께 얼어붙은… 그런 모습이었다. 빌…어 먹을!
“대교……!”
낮게 부르는 내 음성에 대교의 눈이 천천히 뜨여졌고, 이어 수면에 투명한 파장이 일어나 번졌다. 서늘한 와룡전의 돌 바닥 위에 젖은 발자국을 찍으며 내 앞으로 걸어 온 대교가 하얀 입김을 뿜어냈다. 나는 몇 번 입을 달싹였지만, 끝내 대교가 한 쪽 무릎을 꿇고 예를 표할 때까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비화곡주 직속 비연대의 수장, 대교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처음 뵙는다…라, 제기… 어쩌지? 어떻게, 무슨 말을 꺼내야 하지……?
“무사히 깨어나심을 경하드립니다. …이 와룡전은 본 시 곡주님 만의 성지이나 끔직한… 사고로 인하여 소녀가 진대가를 깨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으으~ 끔직한 기분인 건 나도 마찬가지이다. 내게 이렇게 무감정하고 사무적인 태도의 대교라니……
“대교. 실은, 난… 난 말이야…….”
비로소 대교가 고개를 들고 날 올려다보았다. 투명한 얼음을 깎아 놓은 듯 냉기만이 흐르는 눈동자였다. 믿을 수가 없었다.
“설마… 진대가께서는 이번의 비극을 예견하시기도……”
나는 나도 모르게 눈을 감으며 대교를 외면했다. ‘이 성’이란 놈의 얄미운 음성이 외치고 있었다.
‘이래도 자신 있어, 진유준? 저 소녀의 얼어붙은 마음을 보고도… 그래도 자신 있어?’
“빌어먹을……!”
나는 이를 악물었다. 대교야! 네가 사랑하는 남자… 네가 소유권을 주장해도 될 영혼은 여기, 바로 여기 에…….
“아니, 자세한 건 모르지만… 다른 이유가 없겠지. 녀·석·이 와룡전에 다른 누군가를 보냈다는 건…….”
으아~ 진유준, 너 드디어 사고치는 구나.
“진하운… 내 아우가 사신(死神)을 만났다는 것을 의미하지.”
대교는 입술을 떨며 간신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신이며… 배덕의 악마였습니다.”
나는 이왕 저지른 거, 빨리 이 순간이 지나기만을 바라며 뻔히 내용을 알고 있는 대교의 보고를 듣기 시작했다. 물론, 내 귀에 그 내용이 들어올 리가 없었다.
나… 과연 잘 한 걸까…? 나 진유준은… 과연 대교와…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